월간복지동향 2001 2001-03-10   1727

유아학교 반대 : 유아교육법 제정 무엇이 문제인가?

지난 1월 교육인적자원부(구 교육부)는 유아학교체제의 만 5세아 유치원 무상교육 실시를 골자로 하는 '유아교육법안'을 3월 임시국회에 제출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그러나 유치원과 어린이집 모두 민간의존도가 높은 상황에서 획기적으로 재원을 투입하고 공공성을 높이는 방안이 마련되지 않은 상황에서 제기된 유아교육법안은 각 기관의 기능과 역할의 차이를 무시한 채 유아학교라는 단일모델로의 기관만을 유일한 대안인 것처럼 제안하고 있다. 이에 유아교육법안의 문제점을 지적하고자 한다.

유아학교 체제로의 학제화 반대

유아교육법안의 내용은 현재의 유치원을 '유아학교'로 전환한다는 것이다. '학교'라는 명칭의 사용은 초등학교 취학 전에 반드시 거쳐야 하는 의무교육기관처럼 오해할 소지가 있다. 분명 유아교육의 혜택이 모든 아동에게 돌아가야 되겠지만 가정에서 또는 다른 방식으로 아이를 양육하고자 하는 가정의 요구에 대해서도 존중해 주어야 할 것이다. '학교'라는 용어를 사용하게 될 경우 유아학교가 아닌 기관에 다니는 아동들은 공교육으로부터 소외받고 있다는 느낌과 불안감을 가질 것이기 때문이다.

만약 유치원을 학제에 편입하기 위한 의도로 이러한 명칭을 사용하였다면 그것은 더 큰 문제라 할 수 있다. 유아교육, 보육기관을 학제화 한다는 것은 법에서 정하는 교육일정과 교육과정, 운영방법 등을 요구받는다는 것이며 이 결과 다양한 교육적 시도들이 차단될 수 있다. 또한 유아학교가 초등학교 입학전의 준비단계로 인식된다면 결국 유아학교는 유아기에 필요한 전인적인 발달에 맞는 교육보다 초등학교 수업을 받는데 필요한 한글, 숫자, 영어 등 인지교육 중심으로 운영될 위험이 있다. 또한 음악, 미술 등 특기교육까지 유아학교 일과시간내에서 모두 해결하겠다는 것은 부모들의 또다른 조기교육열풍을 무원칙적으로 수용하는 것이다. 영유아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안전한 환경, 균형잡힌 영양, 바람직한 생활습관의 형성과 발달수준에 맞는 자유롭고 창의적인 놀이와 교육활동이다. 이것을 제공하기 위해서 굳이 학교라는 제도의 틀을 빌려야 할 필요는 없다.

5세아 무상보육은 모든 아동에게 평등하게

3월 임시국회에 제출 예정인 유아교육법에서는 만 5세아 유치원 무상교육을 제안하고 있다. 이는 유아기부터 아동의 개별 가정환경의 차이로 인한 교육불평등을 해소하고 인적자원 개발로서 유치원 교육을 고민, 전개하겠다는 취지로 보여진다. 국가와 사회가 육아의 책임을 나누어져야 한다는 점은 재론의 여지가 없으며, 5세아를 위한 모든 형태의 지원에 대해서 원칙적으로 환영하지만 그 과정에서는 평등의 원칙이 지켜져야 할 것이다. 유치원이든 어린이집이든 형태와 상관없이 필요한 서비스를 받고자 하는 아동에게 무상보육의 원칙이 적용되어야 한다. 그러나 그것을 위해 새로운 법이 제정되어야 하는지는 의문이다. 복지부는 이미 저소득층 5세아 무상보육을 부분적으로 시행하고 있다. 유치원도 관련법(유아교육진흥법)의 조항을 통해 근거를 마련하여 시행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생각한다. 5세아 무상교육/보육은 법제정의 문제라기보다 행정부처의 시행의지의 문제이며 이는 사회적 합의와 요구속에서 강제해야 할 부분이라고 생각한다.

유치원·보육시설 연령별 분담 체제 반대

현재 일각에서 거론되고 있는 유·보 연령별 분담에 대해 원칙적으로 반대한다.

유치원과 보육시설의 연령별 분담체제는 아동을 0-3세 미만, 3-7세 미만으로 구분하여 보육시설과 유치원이 각각 전담하자는 것이다. 연령별 유아교육기관의 단일화를 통해 소관부처의 인적·물적 자원의 중복과 비효율성을 개선하고 국가 인적자원 관리체제의 기본틀을 유아기에서부터 체계화할 수 있다는 것이 그 근거이다.

그러나 유치원과 보육시설의 목적, 역할은 다르며, 그에 따른 운영방식이나 시설의 환경 역시 상당한 차이가 존재한다. 유치원이 취학전 연령의 아이들에게 교과과정을 통한 교육활동을 주로 제공해 왔다면 어린이집은 장시간 보육이 필요한 아동을 위해 가정을 대신하여 건강, 영양, 안전과 연령별 발달에 필요한 교육 프로그램을 제공해 왔다. 어린이집의 시설이 조리실, 낮잠 등이 가능한 휴식공간 등을 모두 포함하며 가정과 같은 편안한 환경을 제공하는데 중점을 두었다면 유치원은 교실이라는 교육활동을 주로 담당하는 공간을 중심으로 설계되어 있다. 교육부와 복지부의 성의 있고 일관된 행정적 관리와 지원 및 긴밀한 공조가 밑받침된다면 오히려 기존 유아기관들이 그 목적과 특성에 맞는 교육과 운영을 이루어낼 수 있을 것이다.

사회적 변화에 따른

다양한 형태와 서비스를 제공하는

유아기관이 필요

현대사회는 핵가족화로 인해 가족 중 보호자 한쪽에게 문제가 발생하면 바로 아동이 방치되는 상황으로 이어진다. 특히 여성의 사회참여 증가에 따른 기혼여성의 취업률도 증가하고 있어 가정을 대체할 수 있는 보육시설에 대한 요구 역시 증가하고 있으며, 이혼율 증가로 한부모 가정이 늘어나고 있는 현실도 무시되어서는 안될 것이다. 뿐만 아니라 직업의 근로형태가 다양해지고 있어 이러한 사회적 변화들을 받아들일 수 있는 유아기관의 필요성을 요구되고 있다. 유아학교로 단일화된 교육기관으로는 이와 같은 다양한 서비스에 대한 요구를 충분히 담을 수 없다. 더군다나 사회의 다변화는 앞으로 더욱 가속화될 것이기에 이에 대한 대응으로서 다양한 운영방식과 그 특성별 교육이 진행되는 유아기관들이 오히려 이 시대에 요구되는 것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이번 유아교육법 제정과 관련한 여러 단체들의 의견이나 움직임들을 보고 혹자들은 자기들의 잇속만을 챙기려는 것이라고 혹독하게 이야기한다. 그러나 우리는 이러한 평가를 올바르지 않다고 생각한다. 우리가 서있는 곳이 유치원이든 보육시설이든 간에 우리가 이 자리에 서 있는 이유는 우리 아이들의 현재와 미래를 고민하는 사람들이기 때문이다.

진정한 유아교육의 공교육화는 일원화라는 행정상의 편의만으로 이루어질 수 있는 것이 아니며 아이들을 양육하는 문제는 효율성이나 편의주의만으로 해결할 수 없는 문제이다. 유난히 사립의존도가 높은 우리 유아교육계의 현실에 대한 분석과 이들에 대한 적극적인 지원책 모색, 그리고 다양한 목소리의 열린 교육을 실시할 수 있는 환경과 제도적·재정적 뒷받침이 마련되었을 때 진정한 유아교육의 공교육화가 이루어질 수 있을 것이다.

이윤경 / 한국보육교사회 공동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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