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복지동향 2013 2013-06-15   1436

[동서남북] 청소년 휴카페 고래(go來)

 

마을은 청소년의 정체성입니다

청소년 휴카페 고래(go來)

 

이주희|관악사회복지 상임활동가

 

 

복덕방 정씨 아줌마를 찾습니다. 

 

관악구 달동네에서 태어나고 자란 저는 부동산에 대한 아주 특별한 추억을 가지고 있습니다. 집 앞에 있던 복덕방에는 늘 뽀글뽀글 파마머리만 하시는 정씨 아줌마가 계셨습니다. 저는 심심하면 복덕방에 갔습니다. 달달한 요구르트를 얻어먹기 위해서죠. 근데 요구르트 한 병을 얻어 먹으려면 반드시 재롱잔치를 해야만 했습니다. 당시 유행하던 주현미 아줌마 노래를 한 곡 하던지, 김완선 언니의 춤을 보여 드리면 찐~한 뽀뽀와 함께 요구르트 한 병을 얻어 먹을 수 있었습니다. 어느 날은 보여 드릴 재롱이 떨어졌습니다. 그래서 부모님의 부부 싸움 이야기를 신나게 했습니다. 이 사실을 알게 되신 엄마한테 혼쭐이 났죠.^^

 

저는 그 복덕방을 꿈꿨습니다. 저는 그 정 씨 아줌마를 찾습니다. 언제든 찾아가 웃고 떠들고 놀 수 있는 곳, 내가 어떤 잘못을 해도 내 편이 되어줄 정씨 아줌마가 있는 곳. 한 마을에 살기에 서로의 사정을 잘 알고, 서로 도우며 사는 것이 당연했던, 그 따뜻한 달동네를 꿈꿨습니다. 

 

 

태어나고 자란 마을을 진짜 ‘우리 마을’로 만들어 갑니다 

 

관악사회복지는 지난 18년동안 마을의 청소년들과 다양한 마을 활동을 진행했습니다. 단순한 청소년 동아리 활동을 넘어 같은 마을에서 태어나고 자란 청소년이 모여 마을에서 성장하는 과정을 만들었습니다. 

 

갑자기 시작된 놀토를 심심해 하는 동생들을 위해 <청소년이 운영하는 주말공부방>을 8년째 운영하고 있습니다. 주말동안 동네 동생들과 맛난 점심을 만들어 먹고 청소년이 직접 기획한 놀이프로그램이 진행됩니다. 놀토가 시행되었지만 지역에서 아직 준비가 되지 않은 당시에 놀토 초등학생 프로그램을 제안한 것은 청소년들이었습니다. 놀이터에서 심심한 동생들과 자신들의 문제이기 때문에 제일 잘 알고 있었던 겁니다.. 청소년들은 이것을 마을의 문제로 인식했고, 스스로 주말공부방을 열었습니다. 사실 말이 공부방이지 매일 뛰어 놀고, 서로 장난 치는 것이 전부입니다. 하지만 단순한 놀토 프로그램이 아니라 동네 형·동생이 되는 새로운 동네 관계가 쌓이는 시간입니다. 동생이 맞고 오면 복수하겠다며 달려가는 형들 때문에 고민이 많지만(^^::) 진짜 가족이 되어가는 것이라 믿습니다.

 

또한 마을 어르신들을 찾아가 우리 마을의 옛날 이야기도 듣고 어르신들의 첫사랑 이야기도 듣습니다. 한번 시작하시면 기본적으로 60년은 거슬러 올라갔다 내려오시죠.^^ 그 이야기를 서툴지만 기록으로 남겨 어르신들의 자서전을 만들어 드리고 있습니다. 눈이 어두워지셔서 손톱 손질이 어려우신 어르신께 손톱을 정돈해 드리고 꽃분홍 매니큐어를 해드리는 청소년 네일아트 모임도 있습니다. 

 

그렇게 아이들은 마을의 문제를 서툴지만 그들의 언어로 표현하고, 그들의 방식대로 변화 시키려고 기여하고 있습니다. 그 과정에서 아이들은 회의하고 토론하고 행동합니다. 늘 주눅 들어 있고, 목소리 한번 듣기 힘들어 속 터지게(?) 하던 녀석들이 이제는 자치 회의를 진행하고, 마을의 문제를 스스로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을 고민할 줄 압니다. 다양한 활동을 통해 아이들은 그렇게 서로 의지하고 토론하고 행동하는 멋진 녀석들이 되었습니다.  

 

관계가 살아난 마을 안에서는 가출도 쉽지 않습니다. 일년에 한번 연례행사처럼 집을 벗어나는 아이들. 어른들은 며칠을 고생해도 찾아내기 쉽지 않습니다. 하지만 같은 마을에서 살며 다양한 마을활동을 같이 했던 청소년들은 다릅니다. 같은 동네에서 자랐기에 가출한 동생들의 아지트를 제일 잘 압니다. 마을 한 바퀴만 돌면 찾아낼 수 있죠. 그리고 한참을 이야기하고 다독여 집으로 돌려보냅니다. 어른들의 잔소리와는 다릅니다. 이후에는 고민이 생기면 제일 찾는 사람도 같은 마을에 사는 언니 오빠들입니다. 그렇게 이 동네에는 청소년 사이에 관계가 살아났습니다. 그리고 한 마을에 사는 우리끼리 의지하고 위로할 줄 알게 되었습니다.  

 

 

우리, 마을을 헤엄치다. 고래(go來)

이렇게 마을에서 성장한 녀석들과 함께 동네에 작은 청소년 우선 공간을 마련했습니다. 달동네 정 씨 아줌마가 있었던 복덕방처럼 언제든 찾아와서 재롱도 피우고 위로도 받는 청소년의 공간을 마련했습니다. 자신이 살아가는 마을에 애정을 가지고 더 많은 마을 사람들을 만나고 배려하고 소통하는 공간입니다. 그 과정에서 소소하지만 자신들의 힘으로 변화하는 세상을 보고 싶습니다. 프로그램 시작하는 시간에 맞춰 가야하고, 끝나면 바로 나와야하는 공간이 아니라 오고 가는 것이 자유로운 공간이라는 이름으로 고래(go來)라고 부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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