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복지위원회 칼럼(sw) 2005-03-29   583

<안국동窓> 신불자(信不者) 진정으로 구제하려면

정부가 또다시 신용불량자 대책을 내놓았다. 지난해 3월 대책을 내놓을 때에만 해도 마지막 대책이라고 강조했음에도 이번에 또다시 대책을 발표하게 된 것은 그동안의 추진과정에서 나타난 문제점을 보완해야 하기 때문이라고 한다. 그렇다면 이번 대책은 마지막 대책이 될 수 있을까.

부러진 다리 약바른다고 낫나

이번의 정부 대책을 간단히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기초보장수급자는 이자 전액을 감면해 주는 대신 수급자에서 벗어난 뒤에 원금을 장기 분할 상환하도록 하고, 청년층 신용불량자는 취업할 때까지 최장 2년간 채무상환을 유예하며, 영세자영업자는 원금상환 유예 후 신용회복위원회를 통해 장기 분할 상환하도록 하거나 또는 은행별로 자체적인 지원방안을 강구하도록 하는 것이다.

이러한 정부 대책을 둘러싸고 일부에서는 ‘퍼주기식’ 대책이고, ‘선거를 앞둔 선심성 대책’이라고 비판하고 있다. ‘퍼주기’라고 비판하는 사람들의 주장을 살펴보면, 첫째 어려운 환경 속에서도 금융기관 부채를 성실히 갚아온 사람들과의 형평성에 문제가 있고, 둘째 성실한 사람들에게 도덕적 해이를 유발할 수 있으며, 셋째 금융기관의 자체적인 판단을 막아 시장메커니즘을 방해하는 결과를 초래할 수도 있다는 것이다.

일면 타당한 점이 있으나 이러한 비판이 더 설득력을 갖기 위해서는 신용불량자 양산의 원인을 분명히 하는 것이 선행되어야 한다. 그리고 설령 그러한 비판이 옳다고 하더라도 신용불량 문제를 그냥 방치해 둘 수는 없다. 왜냐하면 신용불량의 문제는 사람들로 하여금 삶의 희망을 잃어버리게 만들고, 가족해체, 노숙, 사회불안으로 이어지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정부의 이번 조치는 최선의 대책이라고 보기 어렵다. 문제의 크기와 깊이를 제대로 이해하고 있지 못한 듯이 보인다.

우리 주변에는 최저생계비 이하의 소득이면서 여러 가지 이유 때문에 기초보장수급자로 선정되지 못한 비수급 빈곤층이 2백만명이나 있고, 차상위 계층 또한 1백50만명에 달한다. 이러한 가구는 먹기 위해, 아이들을 학교에 보내기 위해, 단전·단수 당하지 않기 위해, 그리고 병원에 가기 위해 대부분 빚을 지게 된다.

최근 통계에 따르면 단전·단수를 경험한 가구가 연 68만가구가 되고, 생활비 줄이려고 연탄을 때는 가구가 1백만가구에 달하며, 건강보험료 체납가구가 1백91만가구나 되는 것도 신용불량자가 많은 이유와 무관치 않은 것이다.

넘어져 부러진 다리는 상처에 약 바른다고 낫지 않는다. 다리를 낫게 하려면 깁스를 하고 뼈가 붙을 동안 양질의 영양분을 공급해 주어야 한다. 그리고 또 넘어지지 않도록 근본적인 대비를 해야 한다. 정부는 더 이상 상처에 약만 발라주려 해서는 안 된다. 대형 유통업체 및 인터넷 쇼핑센터와의 경쟁에서 도태될 수밖에 없는 영세 자영업자에게 다른 지원 없이 대출만을 늘려주는 것은 빚을 불리는 악재가 될 가능성이 높고, 기초보장수급자에서 벗어난 후 원금을 갚게 하는 조치도 그들에게 수급자에서 벗어나지 말라고 강요하는 것과 다르지 않다. 수급자들에게는 파산선고와 면책을 통해 채무에서 완전히 벗어나도록 하는 것이 합리적일 것이다.

새출발 도울 근본처방 내려야

그리고 영세자영업자들은 소득이 있는 경우이므로 개인회생제도를 통해 가용소득 범위 안에서 최장 5년간 채무를 변제한 후 완전히 새 출발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 것이 타당할 것이다.

그리고 신용카드 활성화 정책 등 경제정책 실패와 부실한 사회안전망이 생계형 신용불량자를 양산하게 된 주 요인이기에 정부가 좀더 근본적인 대책을 수립해야 할 것이다. 빈곤을 발생시키는 기제가 존재하는 한 생계형 신용불량자 문제는 어떠한 모습으로든 존재할 수밖에 없다.

* 이 칼럼은 <경향신문> 3월 29일자에 실린 글입니다.

허선(순천향대학교 사회복지학과 교수, 사회복지위원회 실행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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