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복지동향 2018 2018-12-03   783

[복지칼럼] 자업자득(自業自得): 누가 풀어야 하나?

자업자득(自業自得): 누가 풀어야 하나?

 

백종만 전북대학교 사회복지학과 교수

 

2017년 2월 국무조정실 산하 부패척결추진단이 발표한 <유치원 어린이집 실태 점검>에 나타난 어린이들의 안전과 행복을 맞바꾼 각종 형태의 비리들을 – 위법 부당한 회계집행, 불법적 운영, 노후 시설 개선을 위한 적립금의 변칙적 운영, 위생관리 부실 – 접하면서 그동안 우리는 무엇을 하였는가? 라는 질문을 던져본다.

 

이러한 부실과 비리의 발생이 국공립 유치원에서는 전혀 발생하지 않았던 것도 아니지만, 개인이 운영하는 사립유치원에서 유독 많이 발생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상세하고 세부적인 사항을 과감히 생략하고 단순화 시켜서 지적한다면, 시설 설치 및 서비스 인력의 양성과 관리에서 정부의 책임을 방기하고, 사회서비스의 생산과 공급에서 자유시장의 논리를 분별없이 받아들이며, 재정 투자를 최소화하기 위하여 개인이 사회서비스 분야에 투자하도록 유인한 결과이다.

 

우리나라에서의 사회서비스 정책의 큰 흐름은 방임(1960년대 말까지) – 규제와 지원 그리고 시장논리의 도입(1970년대에서 2000년대 초까지) – 시장논리의 확대(2006년 사회서비스산업화 논리의 도입 이후) 그리고 사회서비스 진흥을 통한 일자리 확충, 바우처 도입의 역사로 정리될 수 있다.

 

첫째, 방임의 시기는 해방 후 1960년대 말까지로 외원에 의존하여, 전쟁고아, 배우자의 죽음으로 생계가 곤란한 사람에 대한 시설보호와 입양사업에 치중하였던 시기로 국가는 시설의 설립과 운영에 관하여 훈령이나 지침 등을 통하여 행정 규제를 형식적으로 하던 시기이다.

 

둘째, 규제와 지원 그리고 시장논리의 도입의 시기는 사회복지사업법을 제정하여 사회복지법인제도를 도입하고, 외원의 공백을 채우는 수준에서 국고보조금 사업을 통한 생활시설과 이용시설중심으로 비영리민간 부문을 육성하던 시기이다. 시장기제의 도입은 아동 돌봄의 확대를 위한 일환으로 1997년 개인이나 기업의 사회복지시설 설치 허가제도를 사회복지사업법에 규정함으로써 물꼬를 트기 시작했다.

 

셋째, 시장논리의 확대는 참여정부에서 사회투자국가의 논리로 복지정책 당국이 사회서비스 산업의 육성을 통한 고용확대와 성장 동력 확보라는 유인책을 제시하여 복지논리보다는 성장논리로 무장한 경제 관료들을 회유하면서 시작되었다. 당시의 고용문제를 해결하고 시대적 과제로 등장했던 저출생⦁고령화의 문제에 대응하기 위한 노인 돌봄, 아동 돌봄, 아동에 대한 인적 투자를 강조한 사회투자국가의 논의가 시장논리 확대의 배경이 되었다.

 

이와 같이 우리나라에서 사회서비스 생산과 공급의 역사를 보면 국가는 적극적 책임과 역할을 방기한 채로 급증하는 사회서비스 욕구에 대응하기 위하여 개인이나 기업들이 사회서비스 분야에서 시설투자를 유인하는 정책을 채택한 것이라 할 수 있다. 이를 위해서 세제상의 혜택이나, 각종 투융자 지원책을 제시하여 아동 돌봄, 아동교육, 노인요양의 영역에 개인들의 관련 시설에 대한 투자가 크게 증가한 결과로 사회서비스 분야에서 민간인 개인이 운영하는 시설의 비중이 크게 증가 한 것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사회서비스 공급에서 민간부문에 대한 진입규제를 풀 경우에는 사회적 취약계층을 대상으로한 각종 지원책 마련, 소비자로서 취약계층을 보호하기 위한 시설설치 기준, 서비스 기준, 종사인력 기준 등을 통하여 정보비대칭에 따른 자유시장의 부작용이나 시장의 실패를 보완하는 기제를 촘촘하게 마련할 필요가 있다. 특히 사회서비스를 보편적 서비스로 확대하여 전 국민을 대상으로 공급하는 경우에는 여러 가지 선행 여건들을 고려하고 정책방향의 설정에서 장기적인 정책적 고려가 필요하다. 보편적 서비스 공급을 위해서는 먼저 정부가 국민최저기준을 설정할 필요가 있다. 다음으로는 서비스 공급에서 공공과 민간 간의 역할 분담과 협력을 위한 정책적, 행정적, 제도적 방안이 구체적으로 마련되었어야 한다. 그리고 특히 서비스 공급에서 지역적 불균형을 해소하기 위한 방안을 마련했어야 한다.

 

그러나 정부는 장기적 관점을 결여하였고 합리적인 역할 분담을 위한 정책적 제도적 정비 방안을 마련하지 못했다. 현재 직면한 시장의존적인 유치원 교육서비스 공급시장 구조와 이를 지탱하는 정책과 제도상의 미비로 인한 문제들은 유사한 시장 구조와 제도적 장치로 작동되고 있는 노인요양보호서비스 공급시장에서도 조만간 사회적 이슈로 발생하고 등장할 것을 예상해 볼 수 있다. 최근에 불거진 이러한 문제들의 해결책을 사립유치원 운영자들의 도덕성이나 교육자로서의 양심에 호소하여 해결할 수 있는 성격의 문제들은 아니다. 문제의 해결과정에서 사립유치원의 운영자들을 도덕적으로 과도하게 비난하거나 매도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한다. 비난과 공격을 사설 유치원에 퍼부을 것이 아니라, 이 모든 비리와 문제 발생을 사전에 예방하지 못한 정책 당국의 책임을 일차적으로 물어야 할 것이다.

 

1980년대 이래 정부의 사회서비스 정책은 상류층은 유료서비스, 중산층은 실비서비스, 저소득층은 무료서비스라는 방향성을 가지고 추진되었다. 이를 위해서는 경제적 지위에 따라 차별 없이 이용할 수 있는 최저 서비스 기준(국민최저선)이 정부에 의하여 마련되어야 할 것이고, 정부는 모든 국민이 이들 서비스를 이용할 수 있도록 해야 할 것이다. 최저선 이상의 서비스는 국민 개개인의 자신의 욕망과 능력에 따라서 이용하면 될 것이다. 최저선 이상의 서비스의 이용은 시장에서의 수요와 공급 법칙에 따라 시장에서 공급되도록 그 진입을 허용하도록 하면 될 것이다. 정부는 공공 인프라의 구축과 지역적 불균형 해소를 위한 최소한의 노력과 투입도 없이 선뜻 개인 사업자들로 하여금 투자를 하도록 하여 국민의 기본적인 서비스 수요를 해결하려다(손 안대고 코 풀기하려다가) 문제를 키운 것이다.

 

과연 우리 정부는 이런 의무를 잘 수행하였는가? 장기적 관점에서 합리적으로 이런 정책을 수립하기 위하여 전력을 다하였는가? 전력과 최선을 다했다고 할 수 없다면 그 것은 바로 우리 정책당국자들의 행한 업보(業報)이고 정책 수립에 참여한 학자들의 업보라 하지 않을 수 없다.

 

지난 10월에 교육부가 내어 놓은 종합대책과 박용진의원이 대표 발의한 이른바 ‘박용진 3법’ (유아교육법·사립학교법·학교급식법 개정안)은 이러한 법과 정책을 만드는 책임을 질 위치에 있는 사람들이 지금의 사태가 바로 자신들이 지은 자업자득(自業自得)임을 뒤늦게 인식하고 반성하는 모습을 보여주는 것은 아닐까?

 

복지동향 제242호: 2018년 12월 발간

 

편집인의 글

복지동향 제242호 | 김형용 편집위원장, 동국대학교 사회학과 교수

 

기획주제: 한국형 실업부조에 관한 전망

[기획1] 한국형 실업부조의 도입 방향 | 이병희 한국노동연구원 고용안전망연구센터 소장

[기획2] 독일의 실업급여 및 실업부조 제도 | 박귀천 이화여자대학교 법학전문대학교 교수

[기획3] 특수고용노동자를 위한 고용보험과 실업부조 | 이주하 동국대학교 행정학과 교수

[기획4] 청년정책의 경험으로 본 실업부조 도입의 과제 | 김민수 서울청년정책네트워크 실행위원회 이사장

 

동향

[동향1] 정치하는엄마들의 정보공개거부처분취소소송 경과 | 류하경 정치하는엄마들 소송대리인

[동향2] 가입 장벽은 높아지고 차별은 강화될 이주민 건강보험 제도 개정안의 문제 | 김사강 이주와 인권연구소 연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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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지톡] 멋진 법이 있어도 거리에서 싸울 수밖에 없는 사람들을 위해 | 김재왕 공익인권변호사모임 희망을만드는법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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