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복지동향 2019 2019-07-10   1333

[복지톡] 모든 것이 산산이 부서져도, 삶은 고귀하게 다시 자라난다

모든 것이 산산이 부서져도, 삶은 고귀하게 다시 자라난다

 

이사랑 재단법인 진실의 힘 간사

인터뷰 및 정리 김경희, 홍정훈 참여연대 사회복지위원회 간사

 

 

쌀쌀한 어느 가을의 주말, 지인으로부터 갑작스럽지만 반가운 연락을 받았다. ‘서승, 기억의 루트’라는 프로그램에 참여할 생각이 없냐고. 부랴부랴 서승이라는 인물을 검색해보면서 조작간첩에 관한 역사에 대해 자그마한 지식을 쌓았다. 급하게 글로 접한 이야기는 마치 교과서 같았지만, 그저 외관이 아름답다고만 느꼈던 국립현대미술관을 사람들과 함께 지나치면서, 서대문구치소 자리를 둘러보면서 무뚝뚝하게 말을 내뱉는 서승 선생을 보면서 그제야 ‘인간책’을 읽고 있다는 실감이 났다. 그리고 서승 선생이 제1회 진실의 힘 인권상이라는 것도. 다가오는 6·26 ‘유엔 고문생존자 지원의 날’을 맞아 ‘서승, 기억의 루트’에 필자를 초대한 재단법인 ‘진실의힘’을 다시 방문했다.

 

– 지금과 같은 활동을 하게 된 계기는

“부모님이 학생운동하면서 만났다. 그 영향을 받아 자연스레 인권에 대한 이야기를 많이 하는 환경에서 자랐다. 어렸을 때부터 만난 부모님 지인 중에도 그런 의식을 가진 분들이 많았다. 당연히 커서도 인권 쪽에 관련된 일을 하고 싶었다. 법학과에 진학하면서 본격적으로 인권법에 관련된 활동을 시작했고, 유엔 인권이사회가 열리는 제네바에 있는 Pax Romana ICMICA라는 인권 단체에서 인턴십을 경험했다.”

 

– 제네바에서 인턴십을 경험한 것이 ‘진실의힘’ 활동을 시작한 중요한 계기가 된 것인가

“사실 인권활동가로 사는 것에 대해 자신이 없었던 시기도 잠시 있었다. 그당시 오전에만 인권단체에서 인턴십을 신청하고, 오후에는 그런 일들에 관심이 없는 사람들과 지냈다. 그런데 두 삶의 온도 차이가 극명했다. 밀양 송전탑 행정대집행, 세월호 사건이 터졌을 때 오전에는 함께 울고 분노할 사람들이 있었지만, 오후의 세상은 너무 조용했다. 차이가 너무나 큰 두 삶으로 인한 괴로움도 커졌고, 한국으로 돌아가고 싶은 마음이 생겼다. 앞으로 어떤 일을 하면 좋을까 고민하던 중에 진실의힘을 알게 됐다. 진실의힘은 국가폭력 피해자들이 직접 만든 단체이기도 하고, 피해자들과 직접 연결되는 활동이 많은 곳이라 정말 매력적으로 느껴졌다. ‘이게 뭐지? 어떻게 이런 꿈같은 단체가 있을 수 있지?’ 싶은 놀라움으로 가득했다. 비록 조작간첩에 관한 활동은 매우 무겁게 느껴질 수 있는 의제였지만, 막상 일을 시작하겠다고 결심했을 때는 오히려 마음이 가볍고 설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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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법농단 피해자들과 함께한 기자회견에서 발언하는 이사랑 진실의힘 간사 <사진 = 진실의힘>

 

– 진실의힘 활동을 소개한다면

“진실의힘은 고문과 국가폭력 피해자들이 진실을 밝히는 과정에서 함께 일했던 사람들이 만든 단체다. 당신들이 겪은 일이 다시는 재발하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 만들어졌다. 국내 피해자들 외에도 아시아 국가에서 캄캄한 동굴 속에 있는 사람들의 손을 잡아주고 싶은 마음도 컸다. 현재 진실의힘은 국가폭력 사건의 진상규명을 위한 일을 하고 있고, 피해자들을 치유하는 사업, 피해자들이 또 다른 생존자들에게 손을 내밀고 연대하는 사업을 주로 하고 있다. 치유사업은 여러 종류가 있다. 조작간첩 피해자들과 집단치유 프로그램도 있고, ‘마이데이’와 ‘기억의 루트’처럼 당사자가 직접 자신의 이야기를 증언하는 프로그램도 있다. 국가로부터 직접적으로 가해지는 폭력 행위 외에도 국가폭력의 범위가 넓어지고 있기에 그와 관련한 활동도 다양해지고 있다.”

 

– ‘마이데이’ 프로그램은 어떻게 진행되는가

“고문 피해자는 지독히도 고독한 고통 속에 살아간다. 오로지 고통을 겪은 사람만 이해할 수 있는 성격이 있다. 고문의 목적은 국가가 한 인간을 파괴하고, 그 인간의 관계를 파괴하는 것이다. 피해자가 부서진 삶, 부서진 관계, 부서진 마음을 다시 추스르기 위해서는 조금 더 많은 사람들이 그 이야기를 들어주는 과정이 필요하며, 단순히 들어주는 것뿐만 아니라 들으면서 느낀 것들을 적극적으로 나누는 것이 필요하다. 이를 전문용어로 증언치유(testimonial therapy)라고 하는데, 마이데이는 국가폭력(고문피해) 생존자가 주인공이 되는 날을 만들고, 자신 삶의 이야기를 하는 자리를 만드는 프로그램이다.”

 

– 언론이 피해자, 증언자를 다루는 방식과는 질적으로 다른 느낌이다

“피해자가 토론회나 언론에 나와서 자신의 사례를 증언하는 자리는 정말 많다. 피해자들은 진실을 밝혀야 한다는 절박함으로 자신의 이야기를 하지만, 대부분의 경우 피해자의 이야기 중 가장 극적인 내용만 소비되는 것으로 끝난다. 피해자가 힘들게 자신의 이야기를 털어놓은 이후에 남는 마음에 대한 관심은 사라진다. 그래서 마이데이는 고문을 겪었던 날의 이야기뿐만 아니라, 그 이전의 삶에 대한 이야기도 나누고, 끔찍했던 고문을 살아낸 이후의 삶을 살아낼 수 있었던 힘에 대한 이야기도 나누는 자리를 만든다.”

 

– 가장 최근에 했던 마이데이 프로그램을 소개한다면

“최근에는 5·18 생존자인 안성례 선생님과 마이데이를 했다. 안성례 선생님의 남편은 5·18 광주항쟁 수습대책위원이기도 했고, 당신 스스로도 기독병원에서 간호사로 일하며 5·18의 중심에서 있었다. 평생을 광주의 진실을 밝히기 위해 싸웠던 안성례 선생님이 마이데이의 주인공이 되어서 청중에게 들려준 이야기는 특별했다. 당신의 가족들 앞에서 그 날 남편과 있었던 갈등, 당시에 서로의 고통을 이해하기 어려웠기 때문에 있었던 일들을 이야기한 것이었다. 안성례 선생님의 따님이자, 광주트라우마센터에서 상담사로 일하고 있는 명지원 선생님은 ‘아버지가 고문피해에 대해 한 번도 말한 적이 없었지만, 센터에서 상담한 5·18 생존자들은 아버지를 보는 것 같았다’는 말을 남기기도 했다. 당시 참여했던 대학생 관객이 이제 5·18이 더 이상 역사 교과서 속에만 있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일상 속에 들어왔다는 느낌이라고 말했던 것도 기억에 남는다. 마이데이 같은 프로그램이 모든 걸 해결해주진 않겠지만, 조금이나마 외로움을 덜어줄 수 있겠구나 싶었다.”

 

– 앞서 말했던 기억의 루트라는 프로그램은 어떤가

“기억의 루트는 ‘다크투어’의 성격을 갖는다. 기억의 루트는 여타의 다크투어 프로그램과는 달리 국가폭력의 생존자와 함께 한다는 점이 특징이다. ‘서승, 기억의 루트’는 서승 선생님 당신이 보안사에서 고문을 받던 중 분신을 시도했기 때문에 국군수도통합병원(현재 국립현대미술관)에서 시작해, 서울구치소(현재 서대문형무소박불관)로 향했다. 서대문 형무소는 서울구치소이던 시절 너무나 많은 사람들이 갇혔던 대표적인 장소인데, 당신이 직접 역사적인 장소 앞에서 그곳에 살았던 이야기를 젊은 사람들에게 해줬던 자체가 의미 있었다. 한편 ‘박동운, 기억의 루트’는 ‘나는 새도 떨어뜨린다’고 할 정도로 악명 높았던 남산 안기부의 이야기가 중심이었다. 당시 남산으로 끌려갔던 대부분의 피해자는 고개가 숙여지고 눈이 가려진 상황이었기 때문에 본인이 고문을 받았던 장소를 정확히 인지할 수 없었다. 박동운 선생님이 63일 동안 고문 받고 조작간첩이 되었던 장소를 기억의 루트 참가자들과 함께 다시 찾은 것도 그런 점에서 인상 깊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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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승, 기억의 루트’ 참가자들의 모습 <사진 = 장성하>

 

– 나도 그 프로그램에 참여했었다. 이전까지는 그 끔찍한 공간에서 있었던 이야기가 ‘책’처럼 느껴졌는데, 서승 선생님이 ‘나 저기 살았어’라며 공간을 설명하는 것을 듣고 피부에 와 닿는 현실이 되었다.

“그래서 세세한 이야기를 들어보려고 한다. 프로그램을 진행하는 나도 식사, 수면, 화장실과 같이 필수적인 일상생활에서조차 인간의 존엄성이 무너졌던 이야기를 듣는 것이 충격적일 때가 있다. 기억의 루트 참가자들은 그런 끔찍한 고통을 겪어내고 살아남은 사람들을 만나고 직접 당시의 이야기를 듣기 때문에, 프로그램에 참여한 이후에 각자의 삶에서 책이나 활자로 읽은 것 이상으로 의미를 찾게 되리라 생각한다. 기억의 루트에서 찾는 장소의 대다수는 국가폭력의 역사를 지워내려고 한 곳들이다. 대표적인 장소인 남산이 그러하고, 과거 보안사 건물들은 흔적도 찾기 어렵다. 국가가 지우려고 한 역사의 현장을 직접 찾고, 그 역사를 기억하는 사람들이 늘어날 수 있다는 것은 큰 의미가 있다.”

 

– 작년 남영동 대공분실은 민주인권기념관으로 개관했다. 민주인권기념관은 앞으로 어떤 공간으로 만들어지는 것이 좋을까

“남영동 대공분실은 2005년부터 경찰청 인권센터로 이용되다가 2018년 12월 민관으로 이관됐다. 남영동 대공분실은 한 시대를 대표하는 김수근 건축가에 의해 지어진 건물이며, 설계도에서부터 사람을 고문할 것을 염두에 둔 것을 분명히 확인할 수 있다. 작년 진실의힘에서 남영동 대공분실의 고문피해에 관한 실태조사를 했다. 민주인권기념관이 애도와 기념을 위한 공간이 되기 위해서는 피해사실에 대해 명확히 짚어내는 것이 중요했기 때문이다. 현재는 남영동 고문피해자들을 대상으로 심층인터뷰를 하고 있다. 단순히 피해자들이 겪었던 끔찍한 고문의 사실만을 묻는 것이 아니라, 그들의 삶에서 남영동이 가지게 된 의미와 남영동 이후의 삶에 대해서 충분히 알아보고자 했다. 독일이나 폴란드의 홀로코스트 기념관은 피해자들을 숫자 또는 규모로만 소개하는 것이 아니라, 피해자들의 삶 하나하나를 기억하기 위한 다양한 노력을 하고 있다. 민주인권기념관도 그런 공간이 될 수 있길 바란다.”

 

– ‘국가폭력’에 대한 정의를 내릴 수 있을까? 특히 민주화 이후, 2010년대에 일어난 국가폭력은 어떤 것들이 있을까

“1984년 유엔 총회에서 채택된 고문방지협약에 따르면, 고문의 주체는 ‘공무원 또는 공무수행자’로 정의된다. 세계적으로 고문에 대한 해석은 더 넓어지고 있는 추세이며 국가폭력의 개념 또한 확장되고 있다. 흔히 ‘고문’ 하면 떠오르는 이미지는 일제 강점기, 혹은 독재정권 하에서 안기부나 대공분실 같은 공간에서 이루어졌던 구타, 물고문 같은 폭력 행위다. 이런 형태의 고문은 민주화가 이뤄지면서 지금은 사라졌다고 볼 수 있지만, 국가폭력은 여전히 발생한다. 시민을 보호하는 것은 국가의 의무인데, 국가가 그 의무를 수행하지 않고 제도적 문제를 방관하여 발생하는 죽음과 고통 또한 국가폭력의 범주에 든다고 생각한다. 오래된 배를 수입하고 증축을 가능하게 한 제도, 거대한 배가 바다에 가라앉았을 때 단 한 명도 구조하지 못했던 무능한 해경, 그리고 존재하지 않았던 ‘컨트롤 타워’, 아직도 충분히 진실규명이 되지 않은 세월호 참사의 전반적인 과정에서 국가폭력은 발생했다. 일터에서 목숨을 잃은 故 김용균의 죽음도 마찬가지다. 과거처럼 어떤 폭력행위의 주체가 국가인 경우에만 국가폭력의 범위가 국한되지 않는다. 재난과 사고가 발생했을 때 이에 대처할 수 없는 부실한 시스템을 운영하는 국가의 방만함, 무책임함 또한 국가가 행하는 폭력에 해당한다.”

 

– 국가폭력 피해자를 위한 트라우마 치유의 중요성에 대해 알려 달라

“진실을 밝히기 위해 가장 먼저 필요한 것은 피해자가 가능한 모든 기록을 모으는 것이다. 고문피해자의 경우 이미 오랜 시간이 지나 가해에 대한 증거를 모으기 쉽지 않다. 재심을 하는 과정에서는 피해자들이 당시의 상황은 물론, 신체에 남아있는 고문의 상흔을 가능한 자세하게 기록해야 한다. 그런데 피해자들은 자신이 겪었던 끔찍한 고통의 기억을 되새길 때 트라우마가 발현될 수 있기에, 고문피해자들의 재심 과정에서 이 심리적 상흔을 치유해야 한다는 필요성을 절감했다. 정혜신 진실의힘 이사와 함께 고문피해자들에게 개인상담, 집단상담, 마이데이와 같은 증언치유 프로그램 등 다양한 상담 프로그램을 운영했다. 피해자들뿐만 아니라 가족들을 위한 프로그램도 운영했다. 대부분의 고문, 국가폭력의 피해자들은 ‘나의 고통은 나밖에 이해할 수 없다’는 고독한 고통에 시달린다. 정말 운 좋게 재심을 통해서 배상을 받는다고 해서 고통이 완전히 끝난다고 볼 수도 없다. 수많은 피해자들을 낳았던 국가보안법, 보안감찰법이 아직도 존재하고, 고문으로 인한 허위자백을 증거능력으로 인정하게 만든 형사소송법 조항 등은 아직도 버젓이 존재한다. 가끔은 법정에서 재판관이 피해자들에게 사과하는 경우도 있지만, 재발방지를 위한 국가시스템이 마련될 때 비로소 피해자들의 오랜 상처가 아물 수 있으리라고 생각한다.”

 

– 앞서 말했던 진실의힘 인권상도 소개해달라

“진실의힘 인권상은 고문 피해 및 국가폭력에 대항해서 다시는 그런 일이 일어나지 않는 사회를 만들기 위해서 헌신한 분들에게 존경과 감사를 보내기 위해 2011년에 만들어졌다. 인권상 시상식은 유엔 고문생존자 지원의 날인 6월 26일에 연다. 이날은 유엔 사무총장이었던 故 코피 아난이 ‘말할 수 없는 고통을 겪어낸 이들을 오늘 단 하루만이라도 전 세계 사람들이 기억하고 존경하는 날로 만들자’는 취지로 제안한 기념일이다. 고문 피해자들이 이전에도 6월 26일을 기념하며 크고 작은 기념행사를 치렀는데, 진실의 힘을 만들고 나서 더욱 뜻깊은 프로그램을 만들자는 논의가 있었다. 인권상 수상자는 한국뿐만 아니라 아시아 전역의 국가폭력 피해자들을 대상으로 한다. 식민지배와 독재정권 등 한국과 비슷한 결을 가진 아시아 여러 국가들에서 고문과 국가폭력이 발생했고, 이에 대항해서 삶으로 헌신한 분들이 있기 때문이다.”

 

– 역대 인권상에 어떤 사람들이 포함되어 있나

“제1회 수상자는 앞서 말했던 서승 선생님이다. 서승 선생님은 고문을 이겨낸 사람을 상징하는 존재 그 자체다. 제2회 수상자는 김근태 선생님이다. 김근태 선생님은 2011년 제1회 수상식에 혼자 참석하셔서 굉장히 많이 울고 가셨다고 들었다. 당신의 저서인 ‘남영동’은 치열한 투쟁으로 고문을 밝혀내고, 고문 가해자를 고발한 과정이 기록되어 있다. 안타깝게도 당신은 시상식 전에 고문 후유증인 파킨슨병으로 돌아가셨다. 시상식은 평생의 동지이자, 공동수상자인 인재근 선생님이 참여하셨다. 제3회 수상자는 초대 인권 변호사로 국가폭력 피해자들과 늘 함께했던 홍성우 변호사였다. 홍성운 선생님은 조사실에서, 감옥에서 괴로워했던 고문피해자들에게 가장 든든한 조력자였다. 혹독한 환경 속에서도 1980~90년대 있었던 웬만한 국가폭력 사건을 도맡아 변호했고, 국가폭력 사건을 변론한 기록을 모아 ‘인권변론의 한 시대’라는 책을 내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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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메라를 응시하는 우윈틴(U Win Tin)의 모습 <사진 = 진실의 힘>

 

– 앞선 수상자들은 한국 사회가 기억하지 않을 수 없는 상징적인 존재인 것 같다. 아시아 국가의 수상자도 소개한다면

“미얀마의 우윈틴 선생님이 제4회 인권상 수상자였다. 반군사독재 운동을 위해 민족민주동맹(NLD) 창당에 힘쓴 우윈틴 선생님은 19년간 수감생활을 했다. ‘버마에 단 한 명의 양심수도 남아있지 않을 때까지 수의를 벗지 않겠다’며, 석방 후에도 돌아가실 때까지 감옥에서 입던 옷을 벗지 않았다. 우윈틴 선생님은 시상식을 얼마 남겨두지 않은 2015년 4월 21일에 돌아가셔서 시상식에 오실 수 없었다. 인권상 상금은 우윈틴 선생님이 양심수와 언론인을 위해 만든 재단인 우윈틴 재단으로 전달되었고, 그 기금은 미얀마 고문피해자들이 무료로 이용할 수 있는 병원 운영에 쓰이고 있다. 제7회 수상자인 베드조 운퉁 선생님도 소개하고 싶다. 인도네시아도 한국과 굉장히 비슷한 역사를 갖고 있는데, 1965~66년 수하르토 정권에서 공산당원 혹은 공산당에 동조했다고 의심이 된다는 이유만으로 50~300만 명이 학살됐다. 베드조 선생님은 민간인 학살 피해자들이 진상규명을 위해 만든 YPKP65의 대표다. 수하르토 독재정권이 감추고 있는 당시 생존자의 증언 기록, 집단학살 무덤 기록, 진실화해위원회법 입법운동 등 학살의 진상규명를 위한 일부터 시민사회와의 연대활동을 직접하고 있는 분이다. 그런데 인도네시아에서 당시 일어난 학살은 아직도 금기어에 가깝다. 피해자들의 진상규명 운동은 군부, 무슬림 우익 세력들의 심한 탄압을 받고 있으며, 베드조 선생님 당신도 살해 협박을 여러 차례 받았다고 밝힐 정도다.”

 

– 아직 한국 사회에 널리 알려지지 않은 이야기인 것 같다. 닮은꼴인 두 사회의 모습을 어떻게 연결할 수 있을까

“인권상 수상 이후 베드조 선생님은 작년에는 4·3을 맞아 제주에, 올해는 5·18을 기억하기 위해 광주를 방문해 인도네시아의 이야기를 증언했다. 선생님은 올해 광주 심포지엄이 끝나고 서울을 방문했는데, 마침 그날 한국전쟁 민간인 학살 유족회의 집회가 열려서 그 자리에도 참석했다. 과거사법 개정을 요구하기 위해 전국 각지에서 유골을 들고 상경한 유족들의 앞에서 발언하는 베드조 선생님의 모습은 굉장히 인상적이었다. 베드조 선생님은 ‘굳이 말하지 않아도, 서로의 눈을 바라보기만 해도 이해할 수 있다’며, ‘오늘 우리가 만나게 된 것은 신의 뜻이다. 앞으로 함께 싸우고, 함께 투쟁해나가라는 뜻’이라고 말했다. 비록 언어와 국적이 다르고, 서로가 겪었던 일을 자세히 알지 못했지만, 서로의 경험을 나눠보니 두 사건이 굉장히 비슷하다는 것을 알게 됐다. 학살과 관련한 그 사건들뿐만 아니라, 그 이후 이어진 사회의 모습까지도 굉장히 비슷했다. 끔찍한 고통을 겪어내고 그 참상의 진실을 밝히기 위해 삶을 바치고 있는 국가폭력 생존자들의 연대가 서로에게 힘이 된다는 것을 확인한 것만 같았다.”

 

– 현재 국회에서 ‘진화위법’ 관련 논의가 어떻게 진행되고 있나

“참여정부 때 ‘진화위(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 정리위원회)’가 5년간 활동하고 마무리됐다. 당시 진화위는 법에 따라 피해자들이 진실규명을 신청할 수 있는 기간을 1년으로 제한됐다. 한국전쟁 민간인 학살만 해도 피해자의 규모가 수백만 명으로 추정되는데, 피해자로 인정된 사람은 수백 명에 불과했다. 또한 진화위 조사 결론이 권고 수준에 그쳤고, 수사권을 갖지 못했다는 한계도 있었다. 그래서 문재인 정부는 100대 국정과제 중 세 번째로 ‘국민 눈높이에 맞는 과거사 문제 해결’을 꼽았고, 2018년 상반기부터 진화위 활동을 재개하겠다고 약속했다. 제2기 진화위 출범을 위해서는 진화위법의 개정이 필요한데, 국회 행정안전위원회에서 아직까지도 진화위법 개정안이 계류 중이다. 야당도 비협조적이지만, 여당 내에도 진화위법을 주도적으로 추진하는 의원이 딱히 없다.”

 

– 명백히 현재 진행형인 ‘과거사’를 해결하기 위한 국가의 역할은 무엇이어야 할까

“국제사회는 중대한 인권침해 사건의 해결을 위해 진상규명, 정의(가해자 처벌), 배상과 재발방지를 기준으로 제시한다. 한국 사회에서 이런 기준에 따라 완벽한 해결을 이룬 경우는 전무하다. 오히려 국가는 계속해서 진실을 밝히기 위해 삶을 헌신한 피해자를 괴롭히고 있다. 진도 일가족 (조작)간첩단 사건의 피해자인 박동운 선생님은 1981년 전라남도 진도에서 남산 안기부로 끌려왔다. 일가족이 68일간 고문을 받았고, 당신은 17년간 감옥에 수감됐다. 석방 이후에도 보안관찰 대상이 됐다. 출소 직후부터 가족, 다른 고문피해자들과 함께 진실을 밝히기 위해 애썼고, 28년이 지난 후에야 재심에서 무죄를 받아냈다. 박동운 선생님은 이어서 손해배상 소송을 제기해 2심까지 승소했으나, 대법원이 국가배상 책임을 인정하지 않겠다는 파기환송 판결 이후 국가는 박동운 선생님에게 1심에서 받은 손해배상금을 법정이자와 함께 돌려내라고 했다. 당신과 가족들의 피 묻은 돈이었다. 같은 피해자이자, 박동운 선생님의 고모인 한등자 선생님의 경우도 ‘우리 아배(남편) 피 묻은 돈’을 돌려줄 수 없다고 울었고, 부당이익금 소송이 진행되는 동안 세상을 떠났다. 그런데 당시 대법원의 판결은 이후 양승태 사법농단에서 재판거래의 대상이었다는 사실이 드러났다. 사법농단의 실체가 드러난 이후인 작년 8월, 박동운 선생님은 헌법소원을 청구해서, 중대한 인권침해 사건에서 소멸시효를 적용할 수 없다는 헌법재판소의 결정을 다시 받아냈다. 선생님은 그런 헌재의 결정을 근거로 손해배상에 대한 민사 재심을 시작해서 올해 4월 승소했다. 그리나 국가는 또 상고했다. 국가는 박동운 선생님을 비롯한 고문, 국가폭력 피해자들에게 단 한 번도 완전한 사과조차 하지 않았다.”

 

– 마지막으로 남기고 싶은 말이 있다면

 

“진실의힘은 ‘인간의 삶은 폭력보다 강하다.’는 믿음을 바탕으로 만들어졌다. 고문이 인간을 부수고 파괴하는 것이 목적이라 할지라도, 완전히 소멸되고 폐허가 되어 재밖에 남지 않는 곳에서도 삶은 다시 시작될 수 있고, 재생된 삶은 고귀하고 이전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의 힘을 가질 수 있다고 생각한다. 가능한 많은 이들이 과거에 일어난 고문과 국가폭력이 현재 우리의 삶과도 이어진다고 생각한다면 좋겠다. 다시는 이런 일이 반복되지 않게 하기 위해서 우리 모두가 기억하는 것을 시작으로, 국가가 진상규명, 손해배상, 재활과 재발방지를 위한 시스템을 구축하도록 만들어야 한다. 현재의 우리도, 그리고 그 다음 세대의 우리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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