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복지동향 2001 2001-02-10   944

‘빈곤과 실업극복을 위한 국제 포럼’이 던지는 사회적 실험

얼마 전 까지만 해도 실업이 3%대로 떨어졌으므로 이제 실업은 국가의 중심과제가 아니며, 국민기초생활보장법이 제정되어 한국사회의 빈곤층의 기초생활은 국가가 보장해주게 되었으므로 남은 것은 경제 성장에 박차를 가하는 것뿐이라는 분위기가 팽배했었다.

그런데 정말 그러했을까? 빈곤과 실업극복을 위한 국제포럼을 준비해 온 단체들과 실업과 빈곤으로 고통받고 있는 이들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다. 비록 실업자 200만의 대량 실업의 시대는 끝났으나 경기회복에도 불구하고 항구적으로 노동시장에서 배제될 수밖에 없는 저소득 장기실업자들―여성, 저학력, 중고령, 비숙련―의 실업이 구조화되었다.

한편 2000년 10월부터 시행된 국민기초생활보장법으로는 실업과 불안정 고용으로 확대된 빈곤층의 수를 다 포괄하기에 역부족이다. 이번 포럼의 첫 번째 주제발표에서도 노동연구원의 황덕순 박사는 “경제가 다시 회복되기 시작한 1999년 상반기 이후 실업률은 다시 감소하여 2000년 3/4분기 현재 실업률이 3.6% 낮아졌다.

그러나 경제위기가 노동시장과 국민들의 삶에 미친 영향은 여전히 지속되고 있다. 지표상으로는 실업률과 장기실업률은 낮게 나타나지만 실업과 비경제활동, 불안정 취업상태를 오가는 반복실업자나 불안정취업층의 비중을 고려할 경우 실업과 그에 따른 빈곤문제는 여전히 극복되었다고 말하기 어렵다”며 빈곤과 실업을 해결해야 하는 과제가 여전함을 역설했다.

또한 기초생활보장법에는 <자활급여>제도가 도입됨으로써 노동능력이 있는 저소득층의 고용·복지 정책이 제도화되었다. 그러나 자활프로그램이 빈곤할 뿐 아니라 자활사업 참여를 통해 추가적으로 소득을 얻을 수 있는 인센티브 제도가 마련되어 있지 못해 장기적으로는 일자리가 창출될 수 있는 전망이 불투명하여 이 제도가 제 효력을 발휘하기 어려운 실정이다.

국제포럼은 이렇듯 외형적으로 드러나는 빈부의 심화와 빈부의 격차(gap)뿐 아니라 사람들에게 내재되어 있는 현실 인식의 간극을 메우기 위한 노력이었다. 실업률 3%대라는 허구적인 숫자에 현혹되지 말고 현실을 직시하여 실업을 극복하고 빈곤을 퇴치하기 위한 정책이 필요함을 정책 결정자에게 알리며, 실업이 곧 빈곤으로 이어지는 이들을 위한 시급한 대책을 중장기적인 관점에서 마련하여 안정적인 일자리를 창출하기 위한 노력을 기울이도록 촉구하는 장이었다. 이 호소와 제안은 비단 국가의 정책을 결정하는 정부뿐 아니라 여타의 시민사회단체들도 귀기울여야 하는 것이었다.

실업과 소외,

이를 극복하기 위한 실험으로서의 사회적 기업

서구에서 90년대 중반부터 장기 실업자 및 저소득계층의 비공식부문 종사자들의 안정적인 일자리 창출과 소외문제를 극복하기 위해 시민사회단체가 중심이 되어 ‘사회적 기업’을 지원·육성함으로써 지역사회를 기반으로 일자리를 만들고 새로운 복지서비스를 창출하는 데 성과를 거두고 있으므로 그들의 경험을 한국에 소개하였다.

영국의 지역사회기업과 사회적 회사, 프랑스의 경제활동을 통한 노동통합조직, 이탈리아의 사회적 협동조합 등은 70년대 후반부터 시작된 실업과 빈곤으로 인한 소외의 문제에 대항하여 일자리를 창출하며 사회의 통합에 기여해 왔다.

예를 들어 영국의 사회적 기업은 주거·상업·공업·지역사회·환경 분야에서 지역사회를 개발하기 위해 후미진 지역에 상점이나 공공기관을 열며 지역을 재생하고, 비숙련 장기실업자들에게 일자리를 창출하며 지역의 사회적 서비스를 제공하거나, 지역사회에 필요한 여가활동 시설을 제공하는 등의 활동을 해왔다. 특히 사회적 회사는 정신·지체 장애인의 노동통합을 위하여 이들에게 필요한 시설을 갖추어 일자리와 훈련을 제공한다.

프랑스의 경우에는 약 20년 전부터 이윤이 되지 않는다는 이유로 시장에 의해 방치되고 도외시된 수많은 경제활동 분야를 개척해왔다. 따라서 환경, 건설, 대인서비스 분야에서 경제활동을 통한 노동통합기업들은 사회적 유용성과 경제적 유용성을 동시에 개발하는 교량의 역할을 해왔던 것이다.

이탈리아에서는 1970년대에 탄생한 사회적 협동조합은 1991년 특별법이 제정되어 지역사회에 필요한 교육, 보건, 사회적 서비스를 제공하는 유형과 사회적 취약계층의 노동통합을 목적으로 하는 유형의 협동조합이 설립되어 활동하고 있다. 특히 이탈리아의 사회적 협동조합은 그 수혜자를 지역사회 또는 지역사회의 취약계층으로 명시함으로써 조합원에게 혜택을 주는 협동조합의 틀을 넘어 본격적으로 지역 차원에서 실업과 빈곤의 문제 해결을 위한 역할을 해왔다.

일본의 노동자 협동조합 또한 정부의 실업대책이 폐지되고 난 이후 사업단의 형태로 시작되어 일하는 사람들의 사업체를 꿈꾸며 노동자 협동조합을 설립했다. 그리하여 지역과 생활에 바탕을 둔 ‘생명, 노동, 지역 재생’이라는 슬로건을 가지고 지역주민을 만나며 불안한 고용의 문제를 자각하고 지역 만들기에 나섰다. 특히 고령화 시대에 대응하여 고령자협동조합을 설립하여 병환과 치매로 외로이 살아가는 고령자들을 고령자 스스로 돌보며 의존적이고 도태되어 가는 고령자들이 노동과 봉사를 통해 사회에 참여하는 길을 제공해왔다.

한국에서 사회적 일자리 창출의 가능성

포럼에서는 해외의 사례를 개괄적으로 이해한 후 주제토론을 통해 한국사회에서 사회적 일자리 창출의 가능성이 있는가에 대한 토론과 이를 위해 해결해야 할 과제를 살펴보았다.

우선 제기된 문제는 유럽국가들의 사회적 기업들이 공공부문에서 축소한 사회적 서비스를 위탁하며 일자리를 창출하며 취약계층을 위한 서비스를 재공할 수 있엇으나 한국사회에서는 공공부문의 사회적 서비스가 취약하여 민간위탁의 여지가 극히 협소하다는 점이다. 이에 대해 사회적 일자리 창출의 의미에 대해 발표한 황덕순 박사는 “한국사회에서 사회복지서비스 부문의 경우 절대적으로 취약하다는 점은 분명한 것으로 보인다. 따라서 우선적으로 이 부문이 사회적 일자리 창출에서 전략적으로 중요한 기회를 제공할 수 있을 것이다. …특히 이 산업의 경우 노동집약적이고 자본에 대한 투자 규모가 상대적으로 적다는 점에서 공공부문의 지원규모에 대비한 일자리 창출의 가능성은 더 크다”고 했다.

한편 사회적 일자리 창출의 모태가 되는 자활공동체, 또는 생산공동체들이 가지는 자본과 기술에서의 취약성으로 인해 이들의 지속가능성에 문제를 제기할 수 있다. 제 3 섹터형 자활생산공동체의 특성과 장점에 대해 발표한 호서대의 이현송 교수는 “이 공동체들은 사회적 약자로 구성되어 경쟁력이 취약하고, 주로 사회적 서비스를 생산하여 보호된 시장을 필요로 하며, 그 소비자의 성격이 특수―지역사회 주민, 사회적 취약계층, 사회적 정의에 공감하는 일부 민간집단―하므로 생존을 위하여 이념성 및 운동성에 대한 사회적 지지가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따라서 자활생산공동체는 많은 부문 공공부문 뿐 아니라 지역사회 및 시민단체를 포함한 민간부문 전반의 지원을 필요로 하므로 사회적 일자리의 창출을 위해 사회적 연대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사회적 일자리 창출을 위한 과제

제 4 주제인 사회적 일자리 창출을 위한 법적·제도적 개선 과제에서 다시 확인한 바는 비록 한국사회에서 사회적 일자리 창출이 어렵다고 할지라도 이는 꼭 필요한 일이라는 공감대가 형성되었다. 따라서 이를 위한 방안과 해결해야 할 과제를 도출해 보았다.

첫째, 실업대책 차원에서 공공근로사업이 일부 민간으로 위탁되어 만들어진 임시적인 일자리를 안정적인 일자리로 전환해야 한다. 예컨대 영세민을 위한 무료 간병인 사업의 경우 취약한 사회서비스를 제공함으로써 꼭 필요한 사업임이 밝혀졌고, 여성가장이 노동시장에 진출하여 소득을 확보할 수 있는 기회를 주므로 빈곤층의 다수를 차지하는 여성가정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 또한 음식물재활용과 같은 친환경적인 사업이나 영세민을 위한 무료 집수리 사업과 같은 지역 도우미 또한 제도화하여 활성화해야 한다는 것이다.

둘째, 사회적 자원의 확보가 필요하다. 서울시정개발연구원의 김수현 박사는 “보건·복지·환경·교육 등 지역사회에 보탬이 되는 공익적인 분야에서 일단 10만개의 일자리를 만드는 목표를 설정해야한다. 이를 위한 재원은 기본적으로 정부예산을 통해 확보되어야하며, 예산 항목은 기존의 공공근로 예산을 활용하는 방식이 용이하겠지만 단계적으로 일반예산으로 전환해야 한다”고 발표했다.

셋째, 지자체 사업의 민간위탁, 물품 구매를 통한 보호된 시장을 형성해야 한다. 사회적 일자리는 한국사회에서 새로운 실험이며 따라서 이 일자리가 정착되어 안정적인 시장이 형성되어 사회적 기업이 될 때까지 정부, 특히 지자체의 지원이 필요하다. 그러나 그 방식은 구호차원의 원조가 아니라 생산과 서비스를 조력하여 자생력을 갖도록 사업위탁이나 일감 알선, 물품 우선 구매 등의 형태로 진행되어야 한다.


김신양 / 한국협동조합연구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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