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복지동향 2021 2021-12-01   2816

[기획4] 고열로 들끓는 세계를 구출하기 – 기후위기와 건강정책의 전환

변혜진 연구공동체 건강과대안 상임연구위원

기후위기는 건강위기

얼마 전 26차 유엔기후변화협약 당사국총회(COP26)가 끝났다. ‘혹시나’ 했던 기대는 ‘역시나’가 됐다. 각국 정상들은 지금 직면한 해결책을, 당장 찾아도 뒤늦은 위험 대응을 또 내일로 미뤘다. 위기 대응을 미루면서 얻고 싶은 결과는 기후위기는 ‘불가항력적’이며 ‘누구의 책임도 아니고’ 따라서 ‘일부 희생을 감수할 수밖에 없다’는 자본주의 체제 유지의 모순에 위기를 묻으려 하기 때문일 것이다. 이런 전략은 아마도 기후나 환경 위기의 우선적인 희생자들이 가장 가난하고 취약한 사람들이기 때문에 가능할 것이다.

실제 기후 변화의 충격은 불평등하며 지리적으로도 불균등하다. 애초에 이런 불평등과 불균등성은 자본주의 발전 경로 자체의 결과물이기도 하다. 미국이나 서유럽 국가들이 부자 나라가 될 수 있던 것은 기후 변화로 가장 고통받는 가난한 나라의 자원을 빼앗고 천연자원을 약탈함으로 가능했다. 자본주의는 화석연료 체제로 유지 발전해 왔으며 태생적으로 반(反) 생태적인 체계다.1) 가난한 사람들은 사회경제적 지위와 소득, 성별, 연령, 장애, 인종과 같은 비 기후적 요인에 의해 강력한 영향을 받지만, 기후적 요인은 이런 건강 위험과 결합해 더 큰 악영향을 미친다. 기존 건강 불평등을 확대시키고, 결국엔 가난한 사람들, 취약한 사람들을 가장 먼저 기후 재난의 희생자로 만들어 버린다.

기후 변화로 인한 직접적인 건강 피해는 폭염, 홍수, 폭우 등과 같은 직접적 재난이 주는 상해와 죽음 그리고 질병이다. 환기가 어렵고, 밀집도가 높은 빈곤한 주거환경에 사는 사람들은 코로나19 감염에도 취약했지만, 폭염과 홍수와 같은 기후 재난에도 취약하다. 극단적 기상 변화로 인한 기후 재난 후 찾아오는 수인성 질환, 뎅기열, 비브리오, 말라리아 등의 바이러스 질환에 노출될 위험도 커진다. 기후 변화로 인한 간접적 영향 중 가장 큰 건강 문제로 대두되는 매개성 감염질환에도 더 많이 노출될 수밖에 없다. 빈곤하고 낡은 주거환경은 모기로부터 보호되기도 어렵다. 국내 온열질환 사망자 중 의료급여 환자가 건강보험 환자에 비해 4배 많았던 사실은 기후위기와 그 재난이 불평등하게 영향을 미친다는 것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기후위기는 건강의 위기다. 하지만 코로나19가 건강에 미치는 영향과 뉴스, 그리고 각국 정부와 국제사회의 대응과 견주어 볼 때 기후위기와 건강 영향에 대한 이해도는 너무 낮다. 자연과 인간의 건강을 구분 짓는 오래된 사고방식의 문제도 있지만 건강에 대한 이해가 생의학적 모델에 너무 갇혀 있는 측면도 있을 것이다. 기후위기의 규모와 속도에 비해 보건의료-건강 대응 논의는 아직 너무 적고 또한 대중화되지 못하고 있다. 기후위기는 코로나19처럼 백신이나 치료제 개발이 가능한 위험도 아니거니와 이미 시작된 위험이며, 장기적 영향을 미치는 위험이라는 측면에서 이에 맞는 건강정책의 전환 논의가 시급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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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후-건강 영향 이해도 높이기

기후 변화로 인한 건강위기 문제는 유엔 「기후변화협약」의 근간을 이룬다. 협약 제1조는 “기후 변화에 기인한 물리적 환경 또는 생물상의 변화가 생태계의 복원력 또는 생산성, 그리고 인간의 건강과 안녕에 대하여 현저히 해로운 영향을 미치는 것을

제한하는 것”을 목적으로 두고 있다. 이는 건강과 그 지속이 기후위기 해결에 나서야 하는 강력한 근거와 정당성을 제공한다는 것이다.

모든 건강 위협과 마찬가지로 예방이 치료보다 나은 대안이며, 사전예방의 원칙은 건강과 생명에 늘 우선되어야 할 원칙이다. 올해 여름 기후 변화에 관한 정부 간 협의체(IPCC)는 ‘최후 방어선’으로 예견된 지구온도 1.5도 상승 시기가 10년 앞당겨졌다고 발표했다. 그야말로 가장 실효성 있는 건강정책은 빠르게 온실가스 배출을 제로로 만드는 것이다. 온실가스 배출 제로는 ‘이윤과 경쟁적 축적’에 기초한 자본주의의 법칙이 아니라 생명과 건강을 우선하는 사회로의 전환을 전제하는 것이기에 이 과정은 비 기후적 건강 위해 요인 해결을 동반할 수밖에 없으므로 가장 좋은 건강정책이다.

당장 온실가스 배출량을 줄이는 것, 즉 ‘감축’만으로도 건강에 직접적이고 긍정적인 영향을 미친다. 전 세계가 화석연료에서 재생에너지로 전환하면 세계 모든 이들의 평균 수명을 최소 1년 연장할 수 있다고 추정한다. 당장 줄이는 것만으로도 대기오염과 미세먼지를 줄여 각종 암과 폐질환, 천식과 심혈관 질환을 줄일 수 있고 아동 천식과 알러지를 줄일 수 있고 기후 우울과 비탄도 줄일 수 있다.2) 지난 2년간 극단적 기상이변으로 인해 줄어든 곡물 생산량과 미량영양소 결핍 문제도 일부분 해결할 수 있어 당장 굶어 죽어가는 가난한 나라의 아이들에게 도움이 되는 것도 분명하다.

우선 기후 변화로 인한 건강 영향의 사회적 이해도를 높여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다소간 ‘탄소환원주의’로 빠지고 있는 기후 변화 전문용어의 ‘인간화’ 뿐만 아니라 생의학적이고 전문가주의에 닫힌 건강영향 논의를 기후환경과 건강 영향의 생태 의학적 관점을 통해 상호 영향 측면에서 통합하고 설명해 사회적 이해와 관심을 높이도록 애써야 한다. 기후위기의 전략으로 외교적 언사가 얹어진 ‘유엔어(UNese)’라는 지적을 받는 ‘완화와 적응’이 꼽힌다 할지라도3) 두 가지 모두 당장 어떤 조치라도 취하는 것이 건강 위험을 완화하고 더 큰 재앙을 막을 수 있다는 것이 분명하다. 건강영향에는 더욱 그러하다. 기후정의 운동에 의사, 간호사 등 보건의료인들이 결합되고 점점 앞장서 나서는 이유다.

기후 변화로 인한 건강영향 문제를 사회적으로 의제화하고, 공중보건 관점과 접근법에서 기후-건강정책을 주류화하는 것이 필요하다. 이를 위해 의료 종사자들이 기후-건강영향 관련한 이해도를 높여야 하고, 이를 위한 보건의료 내 교육도 필요하다. 보건의료인들의 기후 영향 관련 이해도는 현재로는 매우 낮다. 기후 변화는 장기간에 걸쳐 작용한다는 점에서 많은 전통적인 건강 문제들과 다르게 간주되어야 함에도 불구하고 의과대학이나 간호대학 내 기후-건강영향에 대한 교육은 현재로는 전무하다. 의료 종사자들이 기후-건강 상호 영향에 대한 이해를 높이도록 요구하고 교육 커리큘럼에 포함시켜 보건의료인들이 생명과 건강을 지키는 자신의 사회적 역할을 제대로 수행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의료종사자들이 기후-건강 영향에 대한 이해도를 높이는 것은 보건의료 적응 대응에 필수적일 뿐만 아니라, 인간의 건강이 생물학적인 차원을 넘어 사회 생태적 영향을 주고받는 문제라는 점을 인식할 수 있는 계기가 돼 사회에 ‘더 나은 치료자’로 거듭나는 기회가 될 수 있다.

기후와 건강 영향에 대한 구체적인 파악을 위해서는 건강 영향 모니터와 건강 적응 평가 체계를 구축하는 것이 필요하다. 기후 재난은 거주 지역과 다양한 기후 영향에 대처하는 자원과 능력에 따라 사람들의 건강에 불균등한 영향을 미친다. 가장 취약한 사람들은 돌봄이 필요한 영유아 및 아동, 노인, 가난한 사람들, 허약한 건강 상태에 놓인 사람들이다. 따라서 우선적으로 취약 인구집단에 대한 면밀한 파악과 지속적인 모니터 체계를 통해 장기적 관점에서 어떤 사회적-생태적-의료적 지원 체계를 구축해 나갈지 논의해야 한다.

기후위기 영향으로 인한 건강 영향 모니터와 적응 평가 체계에는 젠더 형평성도 중요하다. 가난한 나라의 경우 홍수, 산불 등 기후 재난에서 여성 사망률이 남성에 비해 더 높고, 평균 연령도 더 젊다고 조사되었다. 기후로 인한 기근 재난 상태에서 여성과 소녀들이 식량불안과 영양결핍을 가질 가능성이 더 높다. 극심한 기후 변화로 자원이 응급에 놓여질 때, 물을 길러 이동하거나 그 자원을 조달하는 노동 역시 여성들 몫이다. 마찬가지로 임산부들은 기후 변화로 인한 계절적 변동과 전염성 질환에 더 취약하다.4)

기후 회복력을 가진 보건의료 

기후 변화로 인한 건강 영향에 대응하기 위한 의료 대응 능력도 증가시켜야 한다. 기후 회복력을 높이는 사회정책들은 상호의존적이다. 보건의료 시스템이 이미 시작된 기후-건강 영향에 탄력적으로 대응하기 위해서는 정부의 기후위기 대응 과제에 건강 관련 정책이 우선으로 포함되어야 하며 보건복지부 내 기후위기와 건강 문제를 책임지는 전담 부서와 재정이 마련되어야 한다.

의료 시스템이 기후 재난에 대처하는 능력을 갖추기 위해서는 지역사회 내 기후 취약지역과 대상에 대한 위험 모니터링, 조기 경보 체계 등의 일상적 소통 체계를 가지고 있어야 한다. 이는 촘촘한 지역사회 기반의 개방적이고 민주적인 거버넌스 위에서야 실제로 가능하고 기능한다. 공공의료는 이런 측면에서 이윤 추구 중심, 가난한 사람들의 접근이 배제되는 민간의료보다 기후위기 대응 측면에서도 더 유용하다. 의료 외 다른 사회정책과의 상호의존과 통합을 통해 지역사회와 마을 단위에 기후-건강 영향에 대응하는 장기적이고 보다 체계적인 적응 계획을 마련할 수 있으며 더 지속가능하다. 지역의 공공병원은 1차 의료기관과 함께 지역사회 내 기후 위험에 대한 대처 지식을 공유하고 교육하며, 기후 재난의 불균등성과 건강 불평등 완화 정책을 통합시켜내는 실질적 역할을 할 수 있다. 코로나19와 같은 감염병 대응만이 아니라 기후 회복력이 있는 보건의료 시스템 구축과 건강 적응 계획의 구현자로서 더 많고 충분한 공공의료는 필수적이다.

마지막으로 보건의료 분야 내 온실가스 제로를 향한 ‘정의로운 전환’ 과제가 수행되어야 한다. 의료기관 내 탄소 배출에 대한 정확한 추산은 연구가 미진하지만, 세계 탄소 배출에서 보건의료산업 비중은 전체 배출의 5위를 차지한다. 국가별로 보면 미국은 전체 탄소 배출 중 의료부분이 9.8%, 유럽의 경우 전체 탄소 배출에서 의료 부분이 5~15%를 차지한다고 추정한다.5) 에너지 집중도와 물 소비량, 일회용품과 과자 포장재 포함, 의료폐기물 생산 및 처리 과정, 운송과 이송, 낭비적 병동 건축 방식과 인프라, 병원 먹거리 체계가 주로 탄소 배출의 원인으로 지목된다.

2011년 남아공 더반에서 열린 COP17 회의 때부터 기후-건강 영향 문제를 제기하며 지속적으로 보건의료 분야의 기후 변화 문제 동참을 호소해 왔던 ‘해를 주지 않는 보건의료(Health Care Without Harm, HCWH)’는 이번 COP26 회의 기간 중 보건의료 탄소 배출량을 줄이는 협정을 제안, 50여 개국의 동참을 이끌어냈다. 한국은 동참하지 않았고 아직 구체적 실행 계획은 없지만 일부 진전이다. 이 조직은 세계보건기구와 세계은행 등의 국제기구 권고안과 영국 국영의료시스템(NHS)의 탄소 저감 정책들을 비교 분석해 보건의료 감축의 7가지 로드맵을6) 제안했는데 이를 바탕으로 우리나라에 적용해 보면 다음과 같다.

첫째, 쓸모없는 에너지 및 물 사용을 줄이고, 화석연료에서 해가 없는 깨끗한 재생에너지로 100퍼센트 전환해야 한다. 병원은 24시간 불이 켜져 있고, 각종 고비용 고에너지 기계 사용과 물 사용이 많은 공간이다. 의료영리화로 ‘의료군비경쟁’ 수준의 값비싼 기계를 더 많이 수입해 밤새 검사 기계를 돌리는 것이 문제가 되고 있는 우리나라의 경우 기후 회복력을 지닌 의료로 전환되기 위해서도 이에 대한 규제가 필요한 셈이다. HCWH는 지역사회 재생에너지 정책 및 전략에 병원 에너지가 포함되어야 하며, 이것은 지역사회 재생에너지 전환에도 그 규모에 있어 도움이 된다고 제한한다. 이러한 깨끗한 재생에너지 전환은 에너지 위기 환경에서도 환자 치료와 관리가 가능하도록 기후 탄력성을 갖출 수 있는 방안이다.

둘째, 의료기관 건물 증축과 인프라 구축에서 탄소 배출 제로를 지향하고 이를 위해 투자해야 한다. 건물과 기반 시설 설계 및 시공 시 저탄소 운송을 촉진하는 방식이나 친환경 건물 인증 도구와 표준을 사용해 배출물이 없는 건물 설계를 모색할 수 있다. 자연 채광과 자연 환기는 환경과 환자 모두에게 이롭다. “만들면 팔린다”는 식으로 병상을 증축하고, 밀집도를 높이고, 대형 주차장과 장례식장 등 의료 외 수익이 더 커지고 있는 우리나라 대형병원들의 부대사업 확장은 감염병 예방에도, 탄소 배출 감축에도 해가 된다. 병원 간 경쟁으로 점차 대형화되는 의료는 기후와 감염병 시대에 적합하지 않다. 지역주민의 필요에 알맞고 가장 가깝게 이용할 수 있는 적정규모의 체계와 계획성을 갖춘 병상총량 제한이 탄소 감축에도 바람직하다.

셋째, 병원 이용을 위해 장거리 이동을 줄이고, 대중교통으로 의료시설을 이용할 수 있도록 도시 계획에 친환경 의료 이용을 통합시켜야 한다. 온실가스를 생산하는 주범인 자동차 등의 이동수단은 미세먼지, 오존 등 기타 대기 오염 물질을 생산하는 주범이기도 하다. 온실가스 배출량은 전기와 열을 생산하기 위한 에너지 부문에서 34.6%, 농업 및 토지 이용에서 24%, 산업 부문에서 21%, 운송에서 14%를 차지한다. 기후 변화와 대기오염은 같은 문제의 두 측면이다.7) 의료 이용에서 대기오염 원인을 없애나가는 것은 날로 증가하는 대기오염과 건강 영향을 볼 때 매우 중요하다. 환자 이송을 포함한 병원 내 모든 차량은 친환경 차량으로 교체하고, 병원의 인력을 늘려 간병의 가족, 보호자 부담을 줄여나가야 한다. 영국 NHS는 직원들의 자전거 출근을 지원하고 병원 내 의료운송 수단을 친환경으로 바꾸는 캠페인을 시작했다. 항공 이용을 부추기는 해외 학회 등도 줄여나가도록 권고하고 있다. 주차장 건물이 병동보다 더 대형화되고 있는 우리나라 빅5 병원을 비롯한 수도권 대형병원들이 귀담아 들을 내용이다. 지방에서 장거리를 이용해 서울과 수도권의 대형병원으로 쏠리도록 왜곡된 한국의 의료전달체계는 고탄소 배출 방식이며, 결과적으로 건강에 해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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넷째, 병원 내 건강하고 지역적이며 지속 가능한 신선 계절 먹거리 공급체계와 기후 친화적 농업을 지지하는 식재료 구매와 식이를 이용해 먹거리를 친환경으로 전환해야 한다. 글로벌 먹거리 체계는 세계 온실가스 배출에서 24~26%를 차지할 정도로 높다. 기업형 가공육 생산공장을 위해 삼림과 숲이 훼손되었고 동물유래 감염병은 더 늘어나고 더 자주 주기적으로 출현하고 있다. 축산업은 기후위기의 주요 원인으로 지목되었고, 불건강한 먹거리는 세계 질병 부담의 가장 큰 요인이며 비감염성질환(NCDs)의 원인이 되기도 한다. 병원 내 환자 식이는 치료제이기도 하다. 보다 영양가 높은 신선한 식단으로의 전환은 건강을 증진시키고 기후에도 도움이 된다. 우리의 식탁에서 농업을, 그 생산현장을 지우지 않고 복원시키는 일은 건강을 최우선으로 하는 의료기관의 의무다. 이를 위해서는 비용절감을 이유로 병원식당을 외주화한 민영화를 되돌리는 정책도 필요하다.

다섯째, 불필요한 의약품 사용을 줄이고, 고배출 의약품을 기후 친화적인 대안으로 대체하며, 기후에 좋은 의약품 생산 유통 소비 체계로 전환해야 한다. 의료인들이 예방에 보다 적극적으로 개입해 전체적으로 온실가스 배출을 줄일 수 있도록 조기에 환자를 진단하고 관리하는 데 힘쓰는 것을 우선해, 명확한 건강 개선 효과의 경우 외에는 의약품 사용 처방을 줄이자는 것이다. 의료 생산 영역에서 발생하는 온실가스는 의약품과 의료기기와 관련된 낭비요소가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한다. 이러한 관행을 바꾸려면 의사들의 처방 패턴을 바뀔 필요가 있다. ‘녹색 처방전(green prescription)’은 생물다양성 손실 및 생태계 파괴와 같은 환경 건강 문제와 공중보건 문제가 독립적이지 않고 상호 연관을 맺으며 악화된다는 것을 이해하고 자연 기반 건강 개입 방식을 우선한다.8) 자연과 생태 환경에서 가능한 시간과 활동을 의사가 처방하고 이를 모니터하는 방법이다. 이런 생태 처방의 방법은 전통적인 처방 방법을 보완하는 역할도 할 수 있다. 정기적인 자연 산책, 치료 원예, 명상, 야생의 예술과 공예, 돌봄 농업, 생물다양성 보호를 위한 활동 등 녹색 처방 패턴은 사회적 맥락과 의학적 치료 그리고 생태환경을 연결시켜 건강을 증진시키고, 예방할 수 있다. 낭비의료와 과잉의료를 조장하는 행위별 수가제를 생태처방으로 권장하는 방식 등으로 수가체계를 친환경적으로 전환하는 것도 필요하다.

여섯 번째로 의료 낭비를 줄이고 자원순환을 통해 의료폐기물 관리 등을 변화시키는 순환 경제 의료를 시행해야 한다. 의료는 모든 측면에서 폐기물을 줄여야 한다. 보건의료는 ‘위생 담론’ 때문에 일회용 프라스틱과 과한 포장재가 심각하게 많이 사용되는 분야다. 그러나 사실 대형병원에서 일회용품 사용 구매가 패턴화되는 것은 위생보다는 이윤 때문이다. 재소독과 재사용을 위해 필요한 병원 내 주요 인력과 공간 대신 자동화로 회전율을 높이기 위한 방식이 의료자원 낭비와 폐기물 처리의 탄소 배출을 더 증가시켰다. 의료폐기물은 그 자체로 다른 폐기물과 다른 위험도를 가진 대기오염원이기도 하다. 따라서 폐기물에 대한 분리, 위험도별 처리 등의 체계를 만들고, 재활용 가능한 의료자원에 대한 낭비를 줄이고, 의료기기와 치료재료의 과대 포장을 규제해야 한다. 세계보건기구는 의료폐기물에서 유기 오염물질에 관한 스톡홀름 협약에서 권장하는 기준에 부합하지 않는 모든 소각 방법을 단계적으로 축소할 것을 권고하고 있다. 의료자원의 공급과 조달에서부터 의료기술의 배치 등까지 의료폐기물 부피와 독성을 줄이고 폐기물의 지속 관리를 위한 선순환 구조와 체계를 만들 필요가 있다. 이를 위해서는 기후 친화적 의료자원의 우선 구매와 공공적 자원 통제와 계획 등이 공공의료체계 속에 마련되어야 한다.

마지막으로 의료 체계의 기후 효과성을 평가에 통합하고 낭비적 의료행위와 처치를 줄이는 것을 제안한다. 환자치료와 기후효과를 고려한 의료시스템을 구축하며 전체적으로 온실가스 배출을 제로화할 수 있는 방식을 만들어 나가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이윤보다 생명을 우선하는 의료, 이윤보다 지구환경을 먼저 우선하는 의료가 필요하다. 건강보험 체계 내에서도 기후 친화적 의료기관과 의료자원을 우선으로 지원하고 탄소배출을 고려하지 않는 낭비의료에 대한 재정 지원의 규제를 만들어 나가는 구상이 필요하다. 시민들의 보험료가 건강을 해치는 낭비의료와 기후위기의 주범인 탄소 배출에 쓰여지게 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보건의료 분야는 각국 정부의 굼뜬 대응 때문에 가속화되는 기후-건강 피해에 대한 ‘적응’과 ‘감축’을 동시에 이끌어가야 하는 주요 영역이다. 따라서 보건의료 분야의 기후 복원 접근법으로의 통합은 불안정한 현재 상태에서 기후 관련 충격과 스트레스에 대응하고 대처하는 것을 넘어 기후 최전선에 위치한 기후 취약 인구집단의 건강 증진과 예방을 위해서도 필수적이다. 또한 현재 우리가 당면한 위기는 기술적 문제가 아니라 사회적 문제들이 장벽을 만들고 낭비를 만들어 발생했다는 점을 생각해 볼 때 단순한 기술적 해결책이 아니라 사람들을 돌보는 일에 무엇이 우선되어야 하는지를 다시 생각해 보는 것으로 문제 해결 논의를 시작해야 한다.

위기의 증폭과 층위

우리는 지금 고열의 고통 속에 동물도 사람도 죽어가는 두 해를 보내고 있다. 호주 대륙을 삼켜버릴 듯 타오르던 고열의 불길은 33명의 소방대원의 목숨과 10억 마리의 코알라, 캥거루와 같은 야생 동물들을 태워 버렸다. 고열과 함께 중증으로 발전하는 코로나 바이러스 역시 비슷한 시기 함께 세계를 덮쳤다. 주로 가난한 사람들, 쉬지 못하는 사람들, 건강이 취약한 사람들이 바이러스로 인해 고열에 시달리고, 500만 명이 넘는 사람들이 목숨을 잃었다.

‘뉴 노멀(New Normal)’은 주류 경제 이론가들이 즐겨 써온 용어다. 세계를 뒤흔든 위기가 닥칠 때 대중을 설득시키는 방식으로 ‘이것이 새로운 정상’이니 여기에 적응해야 한다는 의미로 이용됐다. 2008년 경제 위기 충격 이후 회복되지 못하는 저성장이 일상이 되는 상황을 일컫는 데 주로 사용되기도 했다. 코로나19 이후 어려워진 경제 상황에 빗대어 수많은 곳에서 ‘뉴 노멀’을 이야기했지만, 도대체 왜, 무엇 때문에, 누구를 위해 평범한 많은 사람들이 이런 사회에 적응해야 하는지에 대한 제대로 된 토론도 설명도 없이 말이다. 코로나19가 방아쇠 역할은 했지만 세계 경제가 타고 있던 건 이미 오래전부터다. 2020년에 나온 유엔 기아보고서는 2010년 이후부터 코로나19가 출현하기 전인 2019년까지 세계 기아가 계속 급증하고 있던 것을 보여준다. 2030년까지 제로 헝거(Zero Hunger) 목표가 도달 불가능해진 건 코로나19 때문이 아니다. 코로나19로 헝거 팬데믹(Hunger Pandemic)이 온 것이 아니라 항상적 헝거 팬데믹 하에서 코로나19가 초래됐다. 그래서 “지속가능한 개발 목표(Sustainable Development Goals,SDGs)는 현대의 아편이다!”9)라는 말은 정말이지 맞는 지적이다. ‘이윤과 경쟁적 축적’이라는 자본주의 법칙으로는 부자들을 초부자로 만들 수는 있을지언정, 가난한 아이들이 굶주림으로 평생 장애를 짊어지고 살거나 기아와 질병으로 숨지는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 SDGs는 굶주림과 비참 없이 유지되지 않는 자본주의의 모순을 가리는 그린 워싱이다.

우리는 사람을 살리는 일에 돈을 쓰지 않으려는 정부 덕에 ‘위드 코로나’로 전환한 후에 ‘병상 부족과 인력 부족’이라는 항상적 위기에 시달리고 있다. 지난 2년 동안 ‘긴축이 사람을 죽였다’. 의료긴축은 모자란 병상, 모자란 인력, 모자란 개인보호장비로 ‘사람을 죽였다’. 부유층의 부가 재난을 기회로 이용해 더 증폭되는 재난자본주의도 계속되고 있다.

기후위기는 이 낡고 오래된 위기들과 함께 우리 앞에 와 있다. 어느 것이 어느 위기를 만든 것인지를 따지는 것은 의미가 없다. 이 재앙과 위기들이 상호 어떻게 증폭되는지를 이해하고 폭로하는 것만이 의미가 있다. 왜? 그래야 이 위기의 주범이 누구이며 왜 각국 정치인들이 이 위기들의 규모와 상호 영향에 비해 분절적이거나 턱없이 모자란 대안들만 내놓고 있는지를 이해할 수 있다. 누구의 이윤을 보호하기 위해 이런 모지리같은 대응을 하는지를 사람들에게 더 알려야 한다. 기후위기로 인한 건강 위기를 해결하려면 이 위기의 핵심을 겨냥하고 그 주범을 분명히 해야 한다. 그래야 가능성이 있는 전환의 패러다임을 구축할 수 있으며, 이런 전환을 현실화 시킬 수 있는 유일한 방안, 즉 대중의 집단행동을 만들어낼 수 있다.

어떤 위기가 다른 위기의 딜이 될 수 있다는 적당한 ‘균형론’은 또다시 초부유층을 초-초부유층으로 만들기 위한 익숙해지지 않을 ‘뉴 노멀’ 일 뿐이다. 위기에 적응하는 게 아니라 위기에 저항해야 한다. 의료가 이윤을 위해 존재하지 않는 사회, 필요에 기초한 생산을 하는 사회, 충분한 선택지가 주어지고 이를 통해 삶을 계획할 수 있는 사회, 이런 사회를 만들기 위한 상상력과 행동들을 고무하고 응원하고 함께 해야 한다. 그래야 인간이 자연과 맺는 방식의 변화를 만들어 내고 우리도 지속가능한 미래 속에 함께 할 수 있다.


1) 장호종(2021), 마틴 엠스 외, 『기후위기, 불평등 재앙』, 책갈피.

2) Watts, Nick, et al.(2020), “The 2020 report of The Lancet Countdown on health and climate change: responding to converging crises”, The Lancet.

3) 조효제(2020), 『탄소사회의 종말』, 21세기북스.

4) World Health Organization(2014), Strengthening health resilience to climate change, World Health Organization, Geneva, 24-28.

5) World Bank(2017), Climate-Smart Healthcare: Low-Carbon and Resilience Strategies for the Health Sector, World Bank, 2017.

6) Annex, A.(2021), “G loba l Road Map for Health Care Decarbonization : a navigational tool for achieving zero emissions with climate equity”, Health care Without Harm.

7) 이상윤(2021), ‘기후위기는 건강 위기이고, 사회불평등을 증가시킨다’, 복지동향.기획주제 4 고열로 들끓는 세계를 구출하기 – 기후위기와 건강정책의 전환 33

8) Robinson, J. M., Breed, M. F.(2019), Green Prescriptions and Their Co-Benefits: Integrative Strategies for Public and Environmental Health, Challenges, 10(1), 9.

9) 사이토 고헤이(2021), <지속 불가능 자본주의>, 김영현 옮김, 다다서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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