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복지동향 2003 2003-07-06   3004

복지국가의 전형 스웨덴 연금개혁의 시사점

해외연금개혁동향

스웨덴 연금개혁의 공론화 필요성

연금제도의 역사가 긴 유럽의 여러 나라들이 지금 연금개혁을 둘러싸고 노정갈등의 홍역을 앓고 있다. 조합주의적 전통이 강한 오스트리아 노조는 2차대전 이후 처음으로 총파업을 감행했고, 프랑스에서도 지난달 25일 철도, 지하철, 학교, 우체국 등 공공부문 노조원 60여만명이 우파정부의 연금개혁안에 반대하는 대규모 파업 시위를 벌였으며, 독일도 집권 사민당 내 좌파와 노조의 반발로 슈레더 총리가 연금개혁법안 통과에 자신의 총리직을 연계시키는 배수진을 치고 있다. 이태리와 그리스에서도 연금개혁은 정권의 명운이 걸린 사회적 쟁점이 되고 있다. 유럽만이 아니다. 남미의 브라질에서도 현재 좌파 룰라정부가 추진하는 연금개혁에 집권당내 좌파와 공공노조가 반발하고 있어, 최대의 정치적 쟁점이 되고 있다.

이들 연금제도의 역사가 긴 유럽과 남미에서 좌파정부든 우파정부든 공히 연금갹출료를 올리고, 연금지급액은 낮추는 연금개혁을 추진하는 이유는 노령화사회의 막대한 연금지출로 인한 부담 때문이다. EU국가들은 매년 GDP 대비 12% 이상을 연금지출에 사용하고 있고, 연금은 전체 사회보장비지출의 반을 (48%, 1999년) 차지하는 “밑빠진 독”이기 때문이다 (김수봉, 2002). 재정이 취약한 브라질의 경우는 더 심각해, 연금지급이 총연방정부지출의 45%를 차지하여 재정적자의 주 요인으로 지적되고 있다.

그렇다면, 과연 연금갹출료를 올리고 혜택을 줄이는 것으로, 노령화사회의 연금위기가 해소가 될 것인가? 단순하게 생각하면, 대답은 긍정적이다. EU를 예로 들면, 현재의 지출수준을 유지하기 위해서 연금갹출률을 현 20%수준에서 30%까지 올리고, 2050까지 단계적으로 소득의 40%까지 인상하면 된다 (Rother, Catenaro, and Schwab, 2003). 그러나, 문제는 그리 간단치 않다. 다른 세금부담으로 허리가 휘어지는 마당에 젊은 세대들은 이제 더 이상 연금보험료 인상에 쉽게 동의하지 않는다. 그리고 막대한 연금지출로 인해, 공공부조, 의료, 육아 등 타 사회복지서비스에 쓰여져야 할 재원마련이 어렵게 되는 구축효과도 큰 문제다.

따라서 점차 많은 나라들이 연금보험료를 인상하고 연금지출액을 줄이는 임시 처방이 아닌, 구조적 개혁을 모색하고 있다. 연금제도자체의 기본 틀을 근본적으로 바꿀 필요성 때문이다. 이러한 점에서 스웨덴의 1999년 연금개혁에 대해 주목할 필요가 있다. 스웨덴 연금개혁이 시기적으로 새로운 것은 아니다. 그러나 스웨덴이 매우 새로운 연금개혁모형을 제시한 사안의 중요성에 비해, 한국에서의 논의는 아주 미진하기 때문에 공론에 부칠 필요가 있다. 자타가 공인하는 복지국가의 전형으로, 고수준의 전국민 연금시대를 주도해왔던 스웨덴은 어떻게 기존 연금제도를 개혁했고, 우리에게 주는 시사점은 무엇인지 살펴보자.

1999년 스웨덴 연금개혁

스웨덴 연금개혁의 배경과 내용

여타 선진국과 마찬가지로 스웨덴도 노령화율이 급속히 진전되어 15-64세 인구대비 65세 이상 인구비중이 1990년 27.6%에서 2030년 39.4%로 증가될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만약 개혁이 이루어지지 않았다면, 2025년에 현 수준의 연금급여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노동세대의 임금총액 대비 연금갹출료를 36%까지 올려야 했다. 이미 1994년에 GDP 대비 13.8%인 총사회보험지출의 64%를 점하는 연금지출의 가중되는 압력이 개혁을 불가피하게 만든 것이다. 이에 스웨덴 정부는 1999년 집권 사회민주당 등 5개 주요 정당이 모두 동의하는 가운데 제도적 개혁을 단행하였다.

스웨덴 연금개혁의 주요 내용은 다음과 같다. 첫째, 종전의 기초연금(AFP)과 소득비례 부가연금(ATP) 대신에, 부과방식의 명목확정기여 (Notional Defined Contribution) 연금제도가 신설되고, 완전적립 방식으로 민간 부문에서 운영되는 사적 연금이 부가적으로 도입되어 2층 체계로 전환되었다. 둘째, 생애 소득원칙 하에서, 사용자가 9.25%, 근로자가 9.25%를 부담하여 총 개인소득의 18.5%가 연금보험료로 갹출된다. 이중 16%는 명목확정기여연금에, 나머지 2.5%는 사적연금에 보내진다. 셋째, 새 연금제도의 양대 기둥인 명목확정기여연금과 사적연금 모두 개인계정(individual account)에 근거한 확정기여(defined contribution)를 전제로 하기에 소득재분배가 일어나지 않으므로, 기초보장 차원에서 개인적인 이유로 취업 경험이 없거나, 일정 연금소득이하 사람들을 위해 최저보장연금(Guarantee Pension)이 신설되었다. (양재진, 2002; National Social Insurance Board. 2002).

위와 같은 스웨덴 연금개혁의 특징은 크게 두 가지다. 하나는 기존 공적연금제도의 확정급부(defined benefit)에서 확정기여(defined contribution)로 전환한 것이며, 나머지 하나는 연금제도에서 보험과 소득재분배기능을 분리해 낸 것이다. 신연금제도하에서 연금지급액은 가입기간내 기여한 기여금과 법정이자율(정확히는, 평균 소득증가율, the growth rate of covered earnings)이 합해진 총액을 은퇴시의 잔여 여명으로 나누어 평생 지급하게 된다. 즉, 구제도하에서 느슨하게 연계되었던 기여와 급부의 관계를 보다 명확하게 하여, 자기가 평생 낸 보험료와 이자를 총자산으로 해 연금을 받도록 만든 것이다. 기본원리로만 볼 때, 민간시장의 보험이나 개인연금의 원리와 동일하게 된 것이다. 여기에는 소득재분배적 요소가 자리잡을 여지가 없게 된다. 따라서 스웨덴정부는 기존연금제도에 내재되어 있던 소득재분배적 요소는 분리해내는 대신, 최저보장연금 (Guarantee Pension)을 통해 이를 충족시키고 있다. 즉, 연금권을 확보하지 못했거나, 연금급여액이 낮은 경우 생계를 보장하는 최저연금이 국가재정에서 자산조사 없이 지급되는 것이다. 종합적으로 볼 때, 안정된 소득원을 바탕으로 하는 중산층이상은 자신이 낸 보험료로 노후보장을 하고, 그 이하 저소득계층은 일정수준의 삶을 국가가 보장하는 방향으로 개혁된 것이라고 평할 수 있다.

스웨덴 연금개혁의 장단점

명목확정기여연금제도를 주축으로 하는 스웨덴의 새로운 연금제도는 기존의 연금개혁방식과는 다른 “제3의 길”을 제시하고 있다. 갹출료 인상을 통해 수입을 늘이고 연금액을 낮추어 수지균형을 맞추려는 소위 모수적 개혁(parametric reform)은 앞서 지적한 바와 같이, 노령화사회에서 정책적 합리성을 잃고 있고, 국가와 국민이 끊임없는 줄다리기를 반복해야하기에 정치적 합리성의 측면에서도 한계가 분명한 개혁방안이다. 한편, 근본적인 구조적 개혁이라 할 수 있는 칠레식의 연금민영화는 세대간 소득이전으로 인한 불평등문제나 과도한 국가부담을 근본적으로 차단하는 효과를 기대할 수 있으나, 노후소득의 불가측성과 노후소득보장의 지나친 개인책임화로 비판을 면하지 못하고 있다. 반면에 명목확정기여방식을 골간으로 하는 스웨덴의 연금개혁은 확정기여의 개인계정화로 인해 연금민영화와 같은 효과를 보면서도, 개인의 투자수익률이 아닌 법정이자가 지급됨으로 인해 노후소득이 보다 안정적으로 보장된다는 장점을 가지고 있다. 그리고 기존 제도의 수지적자를 메우기 위해 국가재정이 부담했던 재원을 기초보장연금에 활용함으로써 소득재분배효과를 오히려 강화할 수 있게 된다.

스웨덴 연금개혁은 정치적 합리성 측면에서도 장점을 가지고 있다. 모수적 개혁에서는 국가가 지속적으로 급여는 낮추고 갹출료는 올리기에, 국민의 입장에서 보면 “막연히 손해본다”는 생각이 지배적이 된다. 따라서 항상 파업과 시위 등 극한 대립이 일어나게 된다. 그러나 명목확정기여방식 연금개혁은 “낸만큼 가져가는” 방식으로의 전환을 의미한다. 따라서 막연히 손해본다라는 인식이 생길 여지가 없다. 물론 구제도하에서보다 소득대체율이 낮아지는 등, 국민의 입장에서 볼 때, 잃는 것이 없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스웨덴 정부는 “투명한 회계제도”를 가지고 국민에게 기존 확정급여 공적연금제도가 한계에 다다른 상황을 설명하고 개혁에 동의해 줄 것을 설득할 수 있었다. 그리고 국가재원이 아껴지는 만큼, 저소득층을 위해 기초연금을 제공하고, 타 복지서비스의 공급도 원활히 할 수 있게 되어, 사회적 연대와 소득재분배를 강조하는 노조 등 친복지정치세력의 동의를 구해낼 수가 있었던 것이다.

한국연금개혁에 주는 시사점

복지국가의 상징적 존재인 스웨덴의 연금개혁이 한국에 주는 시사점은 무엇인가? 그것은 한마디로 기존 공적연금의 틀을 벗어날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양재진, 2003). 한국의 노령인구 증가속도는 매우 급속하며, 출산율 또한 OECD국가 중 최하위를 기록하고 있다. 그리고 경제성장 또한 과거와 같은 고도성장을 기대할 수 없는 형편이다. 국민연금의 경우, 개혁이 이루어지지 않는 경우, 수지적자를 메우기 위해서는 2040년 한해만 100조원 가까이를 국가재정에서 부담해야 하는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

문제는 두가지다. 첫째는 개혁이 제때에 필요한 만큼 이루어지가 현실적으로 매우 어렵다는 것이다. 노무현 정부는 소득대체율을 50%로 낮추고 보험료를 15.85%로 높이는 모수적 개혁을 추진중이다. 그러나 이미 노동단체와 시민단체가 반대의사를 분명히 하고 있다. 그리고 현재 국민연금에 대한 국민의 불신을 감안할 때, 급여는 낮추면서 소득의 15%이상을 국가에서 세금처럼 떼어 간다고 하면 이를 순수히 따를 국민은 몇 안될 것이다. 1999년에 자영업자 소득파악이 제대로 안되고 있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정권이 흔들리는 파동을 겪은 경험을 상기할 때, 노무현정부가 과연 급여수준은 낮추면서 보험료를 제 때에 올릴 수 있는 용기를 갖고 있는지 의문이다. 두 번째 본질적인 문제는, 설사 노무현 정부가 현재 추진중인 모수적 개혁에 성공한다 할지라도, 근본적인 대책이 되지 못한다는 점이다. 단적인 예로 현재의 연금개혁안은 출산율 1.34를 전제로 하여 만들어졌다. 그러나 이미 우리의 출산율은 1.17로 더 떨어진 상태다. 차기 정부에서 다시 모수적 개혁에 착수하지 않을 수 없는 상황인 것이다. 여기에 노령인구는 의학발전으로 인해 정부추계보다 늘어날 것이 예상된다. 결국 서구의 노령화사회에서 보듯이, 정권이 바뀔 때마다 연금개혁으로 인해 불필요한 사회적 갈등이 반복될 것이다. 따라서 스웨덴이 과감히 그 고리를 끊은 것처럼, 한국도 후발주자의 잇점을 살려 하루빨리 제도적 쇄신을 단행해야 한다.

물론, 우리가 스웨덴식 연금개혁을 시도하는 경우, 우리 나라 국민연금제도가 가지고 있는 보편주의와 소득재분배기능에 애착을 갖고 이 틀을 허무는 구조적 개혁에 반대하는 목소리가 나올 것이다. 그러나 현재 국민연금에 내재되어 있는 소득재분배 기능은, 모든 저소득자가 보험가입자로 충실히 기여금을 내어 수급권을 확보할 경우에만 발휘될 수 있다. 그러나 현실은 그렇지 못하다. 정작 소득재분배를 받아야 할 취약계층은 사각지대에 남아 제도에 포괄되지 못한 상태에서, 중산층끼리 혹은 직장가입자에서 지역가입자로 소득재분배가 이루어지고 있는 게 현실이다. 저소득계층이 제외된 연금에 적자를 메우려 국가가 예산지원을 하는 것처럼 소득역진적인 것은 없는데, 우리는 그곳을 향해 달려가고 있다.

노령화사회 확정급부 공적연금제도는 정책적 합리성도 낮고 정치적으로도 유지되기 힘든 제도이다. 따라서 복지국가의 전형인 스웨덴이 선택한 연금개혁안을 우리가 간과할 이유가 하나도 없다. 스웨덴처럼, 연금제도의 보험기능과 소득재분배기능의 분리 그리고 명목확정기여로의 전환을 신중히 검토해야 할 때이다.

참고문헌

김수봉. 2002. ‘EU국가들의 연금개혁 동향과 국민연금의 향후 과제.’ 보건복지포럼. 제70호.

양재진. 2002. ‘연금 개혁의 제3의 길 : 스웨덴의 명목확정기여방식 연금개혁과 한국에의 도입 필요성.’ 행정논집, 40권 2호.

양재진. 2003. ‘한국 연금개혁의 주요 이슈와 제도개혁대안: 명목확정기여방식을 중심으로.’ 연세대사회과학논집. 33집.

Rother, ,P. C., M. Catenaro and G. Schwab. 2003. ‘Ageing and Pensions in the Euro Area: Survey and Projection Results.’ World Bank Social Protection Discussion Paper No. 0307.

National Social Insurance Board. 2002. The Swedish Pension System Annual Report.

양재진 / 연세대학교 행정학과 교수, jjyang@yonsei.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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