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복지동향 2011 2011-06-20   4028

[특집] “복지국가에 대한 7가지 오해와 진실” 강좌 후기 ②



김현민│참여연대 아카데미 느티나무 자원활동가

 

[다섯 번째 강의]
                 복지국가가 도덕적 해이를 가져오는가

 

신광영 | 중앙대학교 사회학과 교수

 
도덕적 해이는 마치 유령과도 같다. 실체도 없이 많은 사람들에게 두려움을 가져다 준다. 그것이 정확히 무엇인지 아는 사람은 별로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복지 정책과 비용의 확대를 반대하게 하는 꽤 근거 있는 이유로 제시된다. 복지국가의 도덕적 해이 문제, 어떻게 이해해야 하는 것일까?

 

복지국가를 반대하는 근거로써의 도덕적 해이
반복지 논리와 도덕적 해이, 반복지 논리는 19세기 말 자유주의 경제학에서 전형적으로 제기되어 온 것이다. 세금을 가져가는 것 자체를 부정적으로 보고 복지는 낭비라는 인식이다. 높은 조세를 통한 복지가 이뤄지면 일을 안하려 하고 게을러지며 이에 따라 인적 투자 기피의 문제가 있다고 경제학자 린벡은 주장한다. 복지혜택을 주면 저임금 노동을 기피한다는 주장도 있다. 또한 복지 개입을 하면 결국 공공부문이 확대되고, 확대되면 민간투자 자원을 흡수해 민간부분 동력을 충분하게 공급하지 못하는 등 민간부문 노동력 고갈의 문제가 있다고 지적하기도 한다.

 

도덕적 해이에 대한 ‘그들’의 논리
실업보험의 경우 실업을 해도 적극적으로 취업을 하려는 노력을 안하고 또 적극적으로 일자리를 유지하기 위해 노력을 안 할 경우를 도덕적 해이라고 지목한다. 이 논리에 따르면 대체적으로 실업보험이 잘 된 나라에서 취업률이 낮고, 실업률이 높아야 정상이 된다. 또 안 배운 사람과 배운 사림이 비슷하게 복지혜택을 받아 생활을 영유하면 굳이 공부를 안하려 할 것이고, 대학진학률은 떨어질 것이라고 지적한다. 이 역시 도덕적 해이의 한 현상이란 설명이다. 때문에 복지국가에선 대학 진학률이 감소할 것이다. 또 당연히 실업급여에 의지해 실업률이 높아져도 일을 안하는 경제활동 참가율도 떨어진다. 다른 사회적 안전망이 있기에 이 또한 도덕적 해이로 볼 수 있다는 주장이다.

 

도덕적 해이의 문제, 그것이 정말 진실인가?
여러 자료를 비교해 보자, 앞서 말한 그들의 논리는 정말 진실일까?
2009년 OECD 국가별 대학진학률을 살펴보자면 한국은 71%로 상당히 높은 수준이고 미국과 스웨덴, 덴마크가 질적으로 큰 차이를 보이지 않고 있다. 왜 그럴까. 일을 안해도, 고등교육을 받지 않아도 스웨덴, 덴마크는 살 수 있는데 왜 그런 복지국가에서 대학진학률이 미국과 비슷할까. 경제학에서는 대학진학과 관련해서도 주로 비용을 가지고 설명하고 교육에 투자할 때 얼마의 수익률, 교육투자회수율 등을 가지고 고등교육을 받는 사람들의 선택을 설명하고자 한다. 하지만 이는 자기 잠재능력을 발휘하고자 하는 욕구 등에 대해 설명하지 못한다. 사회현상에 대해 경제학은 제한적인 설명력을 가진다. 그런데 많은 복지국가 비판담론은 경제학적 가정과 인간관에 기초해 현실과 다른 설명을 한다.
두 번째는 2008년 OECD 국가 취업률이다. OECD 국가 15~64세 평균 68%가 일을 한다. 미국이 71.8%, 스웨덴이 78.6%로 상당히 높은 비율이다. 한국은 63.9%이다. 덴마크는 거의 80%대에 이르고 있다. 사실 미국보다 더 높은 비율로 복지국가들의 취업률이 높다. 
다음으로 2000~2007년 OECD 국가 고용률의 변화를 살펴보자. 스위스, 노르웨이, 덴마크 등이 증가세를 보였고 이탈리아는 하락했다. 대체적으로 늘어가는 가운데 미국은 줄었다. 전반적으로 일하는 사람의 비율이 국가마다 늘었는데 미국은 반대로 감소 추세이다. 미국의 고용률과 복지국가로 불리는 나라의 고용률 차이도 있지만 추세의 차이도 있다. 미국은 오히려 떨어지는 국가로 도덕적 해이 논의와 반대현상을 보여주고 있다.
이 문제는 두 가지를 보여준다. 하나는 도덕적 해이 현상이 복지국가와 관련돼 있지 않다는 것이다. 다음으로 미국의 고용율 하락세는 경기와 관련돼 있다. 도덕적 해이라는 한가지 변수로 설명이 되는 것이 아니라 고용의 문제는 경제사이클에 큰 영향을 받는다. 이 시기 전세계적으로 경기불황을 준비하고 있었다. 여러 가지 이유가 있지만 자동화 등도 고용률에 변화를 촉발시킨다.

 

한국에서의 도덕적 해이 문제
경제학에서 말하는 인간관이란 노동기피현상이 일어날 것이라는 게 핵심이다. 그런데 왜 복지국가들에서는 그런 행동 방식이 보이지 않을까. 스웨덴에서 오랜 기간에 걸쳐 정립된 핵심적인 정책원리 중 하나는 하고 싶은 일을 하게 하는 것이다. 돈을 벌기 위해 하기 싫은 일을 억지로 하는 것은 막는 것이 노동시장정책의 중요한 이념이다. 그래서 스웨덴은 다른 유럽국가에 비해 상대적으로 근속연수가 짧다. 복지라는 것이 심리적 차원에서 먹고 살기 위한 호구지책으로 하는 것이 아니라 원하는 일을 하는 것을 국가가 도와주는 것을 노동시장 정책의 중요한 원리로 삼고 있기 때문이다.
또 한가지는 이른바 산업민주주의 문제가 있다. 이것이 70년대 스웨덴에서는 큰 문제였다. 노조가 경영에 참여를 요구했고, 적극적인 방식으로 입법화했다. 그래서 경영참여라는 것이 제도화됐다. 노동자 대표가 중요한 기업의 경영과 관련된 의사결정과정에 참여하는 것이다. 산업민주주의 문제는 우리 사회에선 거의 이야기가 안된다. 그런데 이 일 자체가 권위주의적 기업 조직 체제 아래 일방적인 명령으로 이뤄지는 기업조직에서 일이 즐겁지 않은 상황을 개선시킨다.
그런 점에서 일이라는 게 돈만 가지고 해결되는 것이 아니라 결국 자기 자신의 인격이 걸린 문제이고, 대접받고 환경을 만들고 궁극적으로 자기실현이 된다면 일을 기피하고 복지의존의 방식을 선택하지 않는다. 남성이나 여성이나 적극적으로 일에 참여하려하고 재교육을 통해 자기가 하고 싶은 일을 하려 한다. 그러다 보니 실업률이 낮은 상황들을 보여주고 있다. 도덕적 해이는 끊임없이 지적되는 문제이지만 실제로는 나타나지 않는다. 그래서 도덕적 해이 문제로 복지국가를 지적하는 논리는 현실을 모르는 주장이다.

 

[여섯 번째 강의] 
              성장과 복지, 세계화와 복지는 상극인가  

 

이정우 | 경북대학교 경제통상학부 교수

 

분배와 성장, 이 두 가지는 복지에 관련된 아주 ‘오래된 이야기’이다. 한국 사회에서 복지와 관련된 가장 익숙하고 (또 거의 유일한) 이야기이기도 하다. 하지만 여섯 번의 강의를 통해 복지를 선택하는 것이 곧 성장을 늦추는 것이 아님을 확인해 왔다. 오히려 그 반대였다! 오래되고 또 지루한 이야기를 뒤집어 보는 신나는 시간이었다.

 

분배에 민감한 한국사회
이 교수는 참여정부 당시 정책 기획위원회 위원장을 맡았었다. 그래서 그는 복지가 한국 정치 현장에서 어떠한 민감도를 가지고 있는지 또 얼마나 넓은 스펙트럼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는지 잘 알고 있었다. 그는 보수언론에 ‘분배주의’라고 분류(?)되면서 비난받았다. 실제로 참여정부가 분배에 좀 더 신경을 쓴 것은 사실이다. 그 전 보수정부에 비해 복지예산을 늘인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그걸 분배주의, 좌파로 부를 만한가. 그것을 보려면 다른 나라를 봐야 한다.
OECD 평균 경제예산은 10% 대이다. 복지예산은 평균 55%이다. 10대55로 비교가 안된다. OECD 국가 중 미국은 가장 덜 복지국가이고, 가장 후진적인 복지국가이다. 하지만 미국도 중앙정부 예산을 보면 OECD 평균과 비슷하다. 그러나 한국은 오랫동안 경제예산이 복지예산보다 많았다. 나머지는 행정, 국방 등이었다. 유독 우리나라만 기형적인 예산구조를 가진 것이다. 다들 우리보다 다섯배 정도 쓰는데 우리는 반대했다. 이걸 조금 바꾼 것이 참여정부의 28%이다. 이게 과다한 것일까. 참여정부가 한 30~40%로 올렸으면 좋았겠지만 그랬다면 난리가 났을 것이다.

우리의 복지수준은 굉장히 늦고 너무나 빈약해 이야기하기도 부끄러운 수준이다. 이를 정상화하려는데 분배주의/좌파라고 한다. 이런 보수언론 가진 것과 함께 학자도 마찬가지이다. 대부분 보수이다. 9할이 보수 경제학자이고 보수이다. 분배복지에 대한 식견이 없다. 공부를 제대로 안하고 단순히 분배는 성장의 발목을 잡는다는 보수언론 말을 막연히 맞다고 믿고 있다. 경제학자조차 이러니 국민이 이걸 믿는 것이 이상한 게 아니다.

 

성장과 분배와 복지, 그들은 정말 삼각관계인가?
그러면 실제로 성장과 분배 복지의 관계가 발목 잡는 관계인가, 그렇지 않다. 보수 언론의 구호인 복지가 성장의 발목을 잡는다는 틀렸다고 많은 경제학자들이 증명하고 있다. 그 이유는 세 가지이다. 하나는 분배가 불평등할수록 재분배 요구가 많고 따라서 세금을 많이 걷어 소득을 재분배해야 하는데 그러면 성장을 저해한다는 것이다. 두 번째는 분배가 불평등하면 정치사회적으로 불안정해 외국의 투자가 안 들어오고, 그래서 성장을 저해한다. 세 번째는 인적 자본에 대한 투자문제이다. 분배가 불평등할수록 가난한 집의 인재가 공부를 할 수가 없다. 이렇게 지나친 불평등은 성장을 저해하는 세 가지 연결통로가 있다. 지난 20년간 경제학자들이 발견한 것이다. 압도적 다수 의견이 분배 개선은 성장에 유리하다고 말한다. 분배가 나쁠수록 성장에는 불리해 진다는 이야기이다.
이 교수는 참여정부 때 이 부분에 대해 강조하려고 글 쓰고 강연을 많이 했다고 한다. 그는 2005년 2년 반 일하고 나올 때 글 하나를 남겼다. 최성수의 노래 동행의 가사를 인상깊게 들었고 이것을 따와서 “성장과 분배는 동행이다”, 라는 제목의 글을 썼다고 한다. 그렇게 최성수의 동행 이야기를 하면서 성장과 분배도 동행이라고 설명했다. ‘세 가지 메커니즘인 조세재분배, 인적 자본, 정치 불안정을 이야기 했다. 경제학 연구에서 밝혀져 있다, 더 이상 흔들지 마라, 보수는 근거를 가지고 비판해라, 말도 안되는 낡은 레코드를 계속 틀지 마라, 발목 잡는다 하지 말고 자신을 가지고 분배 복지 강화 정책을 계속 해달라’고 남기고 나왔다. 그런데 지금까지도 복지국가 논쟁이다. 그때는 성장분배, 지금은 복지국가로 이름만 다르고 내용은 같다. 지금도 낡은 레코드를 틀고 있다.

 

우리의 파이는 복지를 통해 커진다.
복지국가에 대해 우리나라 보수에서 끊임없이 하는 이야기가 복지국가 위기론이고 한 때 잘나갔지만 위기라고 한다. 그러나 아이러니하게도 복지 안하는 나라가 먼저 복지를 줄인다. 진짜 복지국가는 복지를 안 줄인다. 진짜 복지국가에 문제가 있고, 노동이나 창의력, 인센티브를 저해하는 게 있어 성장을 죽이고 효율 줄인다면 제일 많이 하는 북유럽이 후퇴를 제일 많이 해야 하는 게 맞는데, 그렇지 않고 여전히 복지국가로 건재하다.
보수 중에서 이런 말을 하는 사람이 있다. 복지는 작은 복지와 큰 복지가 있다는 것이다. 성장은 큰 복지라고 말한다. 이건 교묘한 신조어이다. 전에는 선성장 후분배로 세뇌를 했다.  그러다 복지국가 위기론을 말했다. 이제는 성장이 큰 복지고 복지는 작은 복지라고 한다. 이 말은 선성장 후분배를 교묘히 다르게 표현한 것으로 보여 진다. 성장하면 온 국민이 다 혜택을 받지만, 복지는 일부 가난한 계층만 혜택을 준다는 이야기는 그럴 듯 해 보인다. 따라서 큰 복지가 좋게 보이고 세뇌 받기 쉬운 셈이다. 
 
복지국가는 거대한 세계화의 바람을 이겨낼 수 있을까?
세계화와 복지국가는 맞지 않는다는 주장도 있다. 세계화와 국제경쟁력 강화를 위한다면 임금이 싸야 투자가 들어오지만 복지국가는 세금도 많은데 어느 기업이 들어오려 하겠냐는 것이다. 세계화와 복지는 상극이란 것이다. 그럴 듯한데 실제 자료로 검증하면 맞지 않는다. 유력한 가설이 경주가설이다. 아래로 향하는 경주, 위가 아닌 밑으로 내려가는 경쟁이 있다. 외국자본의 유치를 위해 임금을 삭감하고 복지를 삭감한다. 그래서 외국자본에게 매력이 있는 투자처로 보이게 만든다. 그렇게 하다보면 복지국가가 안 된다는 것이 아래로의 경주가설이다. 그럴 듯한데 검증하니 맞지 않는다. 세계화 시대에도 복지국가가 후퇴한 것은 별로 없다. 후퇴한 것은 약한 복지국가이다. 강한 복지국가는 후퇴 안한다. 또 하나 외국자본이 어느 나라에 투자 하는가를 결정할 때 복지국가가 어느 정도 돼 있냐, 법인세가 높으냐 낮으냐, 이런 것은 별로 보지 않는다. 크게 중요한 요인이 못된다. 또 중요한 사실은 복지국가에 가보면 다국적 외국자본이 이들 복지국가에 투자하면 복지국가처럼 행동하고 저임금 저복지 3류 수준 나라에 투자하면 3류처럼 행동한다는 것이다. 이것을 높은 길과 낮은 길이라고 부른다.
따라서 세계화로 자본 이동이 활발하다고 복지국가가 쇠퇴할 이유가 없다. 검증하니 강한 복지국가는 전혀 후퇴가 없고, 약한 복지국가는 일부 후퇴했다. 높은 길은 더욱 높은 길, 낮은 길은 더욱 낮은 길로 간다. 한국은 전형적인 낮은 길을 걷고 있다. 밑으로의 경주가설에서 제일 타당한 가설은 수렵클럽 가설이다. 북유럽 복지국가는 강한 복지국가끼리 모이고 약한 복지국가는 원래 약한데다 더 약해지는 쪽으로 수렴돼 각각 자기들끼리 노는 클럽이 있다. 어느 클럽 속하는 게 중요하다. 그 클럽 중 복지국가는 복지국가 클럽끼리 놀면서 세계화의 영향을 안 받는다. 

 

[일곱 번째 강의]
             보편주의 복지는 무책임한 퍼주기 복지인가 

 

윤홍식 | 인하대학교 사회과학부 교수

 

보편주의가 사회적 화두가 되었다. ‘보편적’이라는 말이 한국 사회에서 이토록 불편한 말이었는지 새삼 놀라게 된다. 무상급식을 반대하는 사람들의 서두는 늘 이렇게 시작된다. “그렇다면 삼성 이건희 회장 손주들도 무상급식을 주어야 하는가?‘. 찬성하는 쪽도 이 지점에서는 무언가 석연치 않다. 이번 강의는 바로 이 부분에서 불편한 양 쪽 모두에게 필요한 내용이었다.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다 준다?
보편주의에 대한 비판의 논점은 보편주의냐, 선별주의냐로 나뉜다. 보편은 진보고 선별은 보수라는 이분법적 구조다. 사실 쉽게 말하면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다 주는” 복지는 존재하지 않는다. 모든 복지는 세 가지 선별기제를 가진다. 인구학적 특성, 기여여부, 자산과 소득에 따라 대상자를 선별한다. 돈 있고 없는 사람을 구분하는 것이다. 이 세 가지 선별원칙 중 어떤 것을 취하냐가 중요하다. 모든 복지 정책은 이 세 가지 중 하나를 가지거나 또는 세 가지를 조합하는 경우도 있다. 일반적으로 앞의 두 가지 근거를 두고 선별 할 경우 보편주의 복지, 마지막을 적용하면 잔여주의적 복지라고 한다.
선별원칙은 보편주의 복지 원칙의 반대가 아니다. 보편주의 복지의 반대는 잔여주의 복지이다. 보편주의 복지도 차이를 인정한다. 다만, 자산조사와 소득에 따라 선별하는 잔여주의적 복지에 반대하는 것이다. 통상 선별주의는 원칙이 아니다. 선별적 잔여주의라고 부르는 게 맞다. 자산과 소득에 따라 정책대상에서 선별하는 이러한 정책을 말하는 것이다. 이것을 선별주의로 표현하고 있다. 이미 대중화 되어 되돌리기 힘들지만 보편주의 복지와 선별주의를 잘 구분해야 한다.

 

보편주의의 재원은 어디서 와야 할까?
가장 중요하고 논란 될 거리는 진보는 증세를 지지해야 하는가, 라는 물음이다. 부자들에게 부유세를 걷자고 하면 반대가 별로 없다. 가진 사람 것을 뺏어서 가난한 사람들에게 나누자는 것인데, 그들의 작태를 보면 당연하다는 입장도 있고, 통쾌해 보이기도 한다. 
보편주의 복지국가는 사회보장세, 소득세, 담배 술 등에 부과하는 죄악세 등의 세금이 무척 강하다. 소득세, 부가가치세 등이 스웨덴에선 25%이다. 소득 역진적이라고도 지적된다. 진보에서는 소비역진적인 소득세, 자산/법인세 확대 등을 이야기 한다. 그런데 북유럽 세제를 보면 법인세와 자산에 대한 세금이 영국과 미국보다도 낮다. 80년대에 보면 법인세가 마이너스 수준이었다. 주류경제학에서는 시장 친화적 조세는 소득세 등이라며 법인세 확대 등은 투자 의지 꺾는다고 말한다. 주류가 싫어하는 세금인 셈이다. 그런데 자유주의 경제 활성화 국가인 미국과 영국 등이 북유럽보다 훨씬 세다. 북유럽은 오히려 약하다. 역설적이다.
스웨덴 사민당은 소득세와 죄악세를 늘려야 한다고 밝힌다. 왜 그럴까. 그것은 보편주의 복지에 대한 원칙이 있기 때문이다. 보편주의 복지는 남의 것을 뺏어서 주는 것이 아니다. 보편주의 복지는 우리가 낸 것을 우리가 돌려받는 것이라고 말한다. 복지 확대를 위해선 보다 많은 사람이 세금을 부담해야 한다고 본다. 복지 수급자가 재원 담세자와 일치해야 한다는 것이 보편주의 복지의 핵심원리이다.

 

보편주의는 누가 주도하는가
보편주의 복지 국가인 스웨덴의 복지정책은 1930년대 사민당이 주요 정치세력으로 등장하기 전에 보수당에 의해 만들어졌다. 당시 사민당은 처음부터 보편주의 복지를 지지하진 않았다. 당시 사민당은 노동자의 이해를 대변했는데, 좌파의 핵심 테제는 당파성이다. 그런데 맑스의 주장과 달리 노동자 계급은 전체 다수를 차지하지 못했다. 집권을 위해 노동자 외에 중소상공인, 소자본가, 쁘띠 브르주아 등 다른 계층과 연대가 필요했다. 사민당 초기 우선 농민과 손을 잡았다. 50~70년대에는 화이트칼라, 중산층과 손을 잡았다. 그래서 보편주의 복지 국가는 사실상 좌우 날개로 함께 날아야 한다. 노동자 중소상공인 농어민 중산층 여성 진보적 지식인 저소득층이 함께 이끌어야 한다.
이것을 오해하면 보수도 보편주의 복지를 할 수 있냐는 질문으로 이어진다. 한나라당은 자발적으로는 못한다고 생각한다. 서구도 마찬가지다. 왜 한나라당이 기초노령연금 공약을, 이명박 대통령이 무상보육과 반값등록금을 말했을까. 기층민중과 시민이 요구했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보수도 조직된 시민이 요구했기에 보편주의 복지를 말할 수 밖에 없었다. 그래서 좌우의 날개로 보편주의 복지는 난다.

 

이건희의 손자에게도 무상급식을!
보편주의 복지 국가는 이건희 손자도 무상급식 대상이 돼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 이유의 첫째는 중산층이 참여하지 않는 복지서비스는 질이 담보가 안되기 때문이다. 만약 지역아동센터를 중산층 아이가 이용한다고 보자. 지금보다 훨씬 높은 수준의 서비스를 요구할 것이다. 만약 공적 제공 서비스에 대해 중산층이 불만을 가진다면 서비스를 이용 안하고 시장에서 구매를 할 것이다. 대부분 이용을 안하면 세금도 안내려고 할 것이다. 이건희 손자도 같이 먹을 급식이 되어야 한다. 그래야 우리 꿈꾸는 평등한 사회에서 모든 아이들이 수준 높은 급식을 먹을 수 있다. 
둘째, 예전엔 열심히 일하면 빈곤에서 탈출할 수 있었다. 그러나 97년 외환위기 이후에는 회사에 몸 바쳐 충성해도 언제든지 잘릴 수 있게 됐다. 공적복지는 가난한 사람에게만이 아니라 가난해 질 가능성이 모두에게 있기 때문에 중요하다.
셋째, 그러면 부자에게 걷어 가난한 사람을 주면 불평등이 줄까? 미국은 전체 복지 지출에서 가난한 사람이 차지 비율이 60%이다. 북유럽의 최고 다섯 배인 점은 논리적으로는 빈곤과 불평등이 적어야 하는데 그렇지 못한 재분배의 역설이 일어나는 것이다. 왜 그럴까? 보편주의 복지의 핵심은 나와 우리가 낸 것, 보편적 증세를 통해 보편적으로 돌려받는 구조이다. 세금을 내야 하는데 나를 위해 쓰이지 않고 저소득층, 가난한 사람에게만 돌아간다면 고귀한 사회적 이상과 철학 때문에 일정 부분 기꺼이 낼 수는 있겠지만 전체적으로 그러긴 어렵다. 그것이 결정적이다. 보편적으로 세금을 내는 나라에선 복지자원총량이 훨씬 크다. 그 총량에서 n분의 일을 나누니 가난한 사람에게 돌아가는 것이 커진다. 하지만 가난한 사람만 공적복지가 필요한 것이 아니다.

 

한국은 보편주의에 어디쯤인가
한국사회를 보면 보편주의 복지가 첫 번째 가난한 사람들만 지지하느냐, 두 번째는 보편주의가 경제성장 도움이 되는가, 세 번째 정치적 조합이냐 시스템과 체제로 만들어야 하는가, 라는 문제가 남는다. 결국 보편주의 복지와 잔여주의 복지는 극명해 진다.
가장 중요한 것은 가치와 철학에 대한 것이다. 과연 한국사회에선 그 사람의 성격과 품성, 근로동기와 상관없이 인간의 존엄성에 따라 누구나 복지를 보장하는 가치에 동의할까? 우리나라는 경제중심적이다. 일하지 않고 게으른 사람에게도 복지를 준다는데 동의하지 않는다.
진보세력이 정권을 잡는다면 복지국가 될까? 보편주의는 정치적 결단의 출발점이지만 시간을 요구한다. 몇 개의 정책 조합이 아닌 체제 변화는 많은 변화를 요구할 것이다. 국민들도 다음 정권에서 진보정당이 집권해도 5년 내 다 한다 는 기대를 버려야 한다. 이것은 출발점이다. 다른 세력이 집권한다 해도 이 방향으로 국민이 요구하는 힘을 가져야 한다. 시민의 조직된 힘으로 내가 무엇을 할 것인가 일상에서도 구체적으로 고민하고 조직된 힘으로 나타나지 않는다면, 쉽지 않은 문제다.

 

[여덟 번째 강의]
          어떻게, 어떤 복지국가로 갈 것인가

 

신광영 | 중앙대학교 사회학과 교수

 

마지막 강의다. 오늘의 강의 제목은 마지막에 다다른 우리 모두의 마음속에 생겨난 질문이 아니었을까 – 어떻게, 어떤 복지국가로 갈 것인가. 이번 강의는 그 질문들이 각자의 상상력을 달고 풍성해졌을 것이라 생각된다. 신광영 교수는 마지막 강의를 정리하면서 복지의 개념을 확장할 수 있도록 인간의 기본적인 가치를 돌아보게 하였다.

 

우리가 꿈꾸는 복지국가 
우리는 어떠한 복지국가를 꿈꾸고 있는가, 그 구체적인 내용을 그리는 것들이 중요하다. 신교수는 몇 가지 지점을 제시했다. 첫 번째는 전국민의 안전을 최대로 보장하는 국가이다. 즉 국가가 사회적 위험으로부터 국민을 보호하는 것이다. 이것은 사회적 시민권을 바탕으로 한다. 두 번째는 사회적 차원의 효율성을 극대화하는 것이다. 사람이 자원이라는 마인드로 인적 자원을 최대한 활용해야 한다. 세 번째는 적극적 노동시장 정책을 하는 국가이다. 고용을 우선하고 여성의 고용을 늘리기 위해 적극적으로 정책을 제시할 수 있어야 한다. 마지막으로는 지속가능한 복지제도이다. 저출산은 심각하고 중요한 문제임에도 불구하고 아직 사회적으로 이에 대한 위기의식이 없는 것 같다. 적정 출산율과 인구구조를 유지할 수 있는 복지국가의 구조를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
우리는 여전히 경제와 복지를 이분법적 사고 안에 두고 양자택일의 문제로 이해하는 논리에 익숙하다. 복지를 선택한다고 해서 경제가 후퇴하는 것이 아니며 또한 어느 정도의 경제수준에 다다라야지만 복지를 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즉 성장과 분배의 선후는 없다. 이것은 사회시스템의 문제이다. 미국은 가장 먼저 1만불 소득을 달성한 제 1의 경제대국이지만 복지는 여전히 후진국이다.
우리는 복지국가에 대해 꿈꿔야 한다. 그리고 그것은 치열하고 동시에 구체적이어야 한다. 낡고 오래된 논리를 깨고 새롭게 꿈꾸어야 하는 시간인 것이다.

 

한국의 지금은 어디쯤일까
여러 강의를 통해 한국의 복지국가 수준이 후진적이라는 것을 확인하였다. GDP대비 한국의 공공 개인 사회지출을 보면 외국과 비교했을 때 월등히 개인지출이 높다. 사교육비 지출은 세계 2위이다. 1995년에서 2008년의 여성 고용률의 변화를 보면 핀란드의 경우 10% 상승했을 때 한국은 단 2%만 증가했다는 통계도 있다. 이러한 수치들은 어디에서 오는 것일까. 복지에 대한 몰이해, 현대 국가의 역할에 대한 무지에서 온다. 우리는 국가에 요구해야 한다. 변화를 요구해야 한다.

 

외국의 현재
외국은 시대적 상황에 따라 복지의 형태가 변화‧발전되고 있다. 그 방향은 고용과 복지를 어떻게 연계 시킬 것 인가에 대한 문제이다. 영국 노동당은 사회투자국가로 덴마크와 네덜란드는 유연안전모형으로 현재 사회에 당면한 문제들을 복지의 구조를 변화시킴으로써 극복하고자 한다.
근로복지국가는 복지의존성 타파가 목적이고 일을 하지 않는 경우 복지제공을 중단한다. 그에 비해 사회투자국가는 복지지출을 경제적인 효과와 연동하여 효율성을 강조한다. 빈곤 가족과 아동에 초점을 맞춘다. 유연안전모형은 노동시장의 유연화와 복지강화 그리고 적극적 노동시장 정책이 함께 가는 것이다. 스웨덴이나 핀란드가 이와 같은 변화를 추진할 수 있는 데에는 기업과 노조 그리고 정부의 합의가 있었기 때문이다. 그 합의는 이러한 적극적 복지 정책들이 결국에 서로에게 윈윈이라는 것을 이해했기 때문이다.

 

어떻게 복지국가로 갈 것인가
모든 보편적 복지는 단계적으로 실시되어야 한다. 보육, 교육, 일, 주택, 연금, 건강, 장애 등의 영역에서 급한 것부터 보편주의에 기초한 복지 정책의 선택적 도입이 필요하다. 이것을 실행하기 위해선 정책 로드 맵이 필요하다. 장기적인 접근을 하기 위해서 재정 문제 역시 고려되어야 하고 이것이 많은 이들에게 설득력이 있어야 한다. 모두에게 윈윈 이라는 것에 대해서 말이다. 이것이 가능하기 위해선 여러 단위의 복지 동맹이 형성되어야 한다. 정당과 학계 뿐만 아니라 시민단체, 복지단체 그리고 복지수혜자가 한 목소리를 낼 수 있어야 한다. 한국은 이 부분이 매우 약하다. 복지에 대한 인식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우리가 기억해야 할 것은 복지는 국방의 개념으로 이해해야 한다는 것이다. 국민의 의무를 다한 사람은 사회적 위험으로부터 보호를 받을 권리를 갖는다. 이 개념이 이해되어져야 지만 시민들은 국가에 자신들의 권리를 요구할 수 있으며 국가는 이에 대해 반응하게 되는 것이다. 여기서 복지국가의 바탕을 유추해 볼 수 있다. 너무나 당연한 귀결이겠지만 복지국가는 사람이 근본인 국가이다. 그렇기 때문에 복지를 국방이라고 주장하는 것이다. 개개인의 행복에 대해 주장할 수 있는 국가. 꿈도 함께 가지면 현실이 된다. 지금 이 순간 우리의 ‘꿈꾸기’가 의미 있는 이유이다. 

 

 

강의 후

 

여덟 번의 강의가 다른 교수로 구성되었음에도 강좌는 하나의 이야기로 잘 엮어져 나갔다. 그것은 마치 Crescendo(크레센도, 점점 크게)로 연주되는 음악 같았는데 그것은 강의에 참여하는 수강생들의 진지한 태도와 열심 때문이었다.
복지는 문화다. 인간의 권리를 무엇으로 이해할 것인가, 노동을 어떻게 받아들일 것인가에 대한 우리의 반응은 문화를 통해 형성되고, 다시 그것이 문화가 된다. 우리가 고민해야 할 지점은 정책을 아우르는 ‘복지적 문화’를 어떻게 만들어야 하는지에 관한 것이 아닐까. 복지국가 강좌를 듣기 위해 모인 사람들의 움직임은 그러한 문화를 만들어가는 기분 좋은 출발이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나는 사람들의 움직임이 음악처럼 느껴졌나 보다. 
 
앞서 프레임은 무엇을 무엇으로 사고하게 하는 것이라고 이야기했다. 우리의 복지 프레임은 더욱 단단해지고 견고해졌다. 그리고 우리 삶 속에서 그 프레임을 통해 드러나게 될 복지는 아름다운 음악이 될 것이라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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