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복지동향 2017 2017-12-01   1987

[동향2] 생리대 사태와 여성 건강권

‘생리대 사태’와 여성 건강권

조은지 | 여성환경연대 환경건강팀

“국민이 사용하는 생리대 가운데 안전성 측면에서 위해성이 확인된 제품은 없다”

지난 9월 28일, 식약처는 생리대 휘발성 유기화합물(VOCs)에 대한 1차 조사결과를 발표하며 위와 같이 밝혔다. 본격적으로 온라인 커뮤니티를 중심으로 생리대 문제가 제기된 8월 초 이후 두 달 여 만에, 여성환경연대가 생리대 검출실험을 진행한 3월 이후 6개월 만에야 식약처가 답을 내놓은 것이다. 이에 발맞춰 생리대 제조업체들은 “당사가 제조·판매하고 있는 모든 생리대 제품이 안전한 것으로 확인되었습니다.”, “식약처 발표에서 나타난 VOC 수치는 일반 관리 기준보다 현격히 낮아 위해성과 연계하기 어렵다”며 그동안의 ‘오해’에서 벗어나고자 하였다.

현행법상 생리대는 약사법에 따라 의약외품으로 분류되어 식약처가 관리한다. 기존에 국내에서 판매 되고 있는 생리대와 동일한 원료를 사용한 경우에 대해 신고제품으로 관리되며, 신소재 등을 사용할 경우에만 허가제품으로 관리된다. 제품 출시 이후에 시중에 유통되는 전 품목의 전 성분에 대한 전수조사가 시행된 경우는 단 한 번도 없었다. 또한 안전관리 항목은 매우 한정되어 있다. 뿐만 아니라 일회용 생리대의 전 성분 표기는 의무 사항이 아니기 때문에 제품의 포장지에는 일부 성분만이 쓰여 있다. 이로 인해 대부분의 생리대에서 확인할 수 있는 주요성분은 부직포, 흡수체 등에 그친다. 많은 경우 논란이 되고 있는 고분자 흡수체와 접착제 등이 무엇인지, 어떤 성분으로 만들어진 건지 알 수 없다. 올해 들어 일부 제조사가 홈페이지 상에 전 성분을 표기하였으나 해당 성분이 어떤 이유에서 쓰였고 인체에 어떤 영향을 미칠 수 있는지에 대한 설명은 없다. 실제 월경을 겪는 여성이 생리대를 선택할 때에 안전성을 고려하기 어려운 현실이다. 국내 일회용 생리대 시장은 반백년이 넘는 기간 동안 확장되어 최근 5년 간 연간 8%의 성장률을 기록하고 있지만 여성 건강과 안전성에 관한 현실은 암담하였다.

예견된 문제, 방관과 침묵

여성환경연대가 지난 3월 이미 발표했던 일회용 생리대 10종에 대한 검출 실험에서 총 200여 개의 화학물질이 발견되었다. 국제암연구소(IARC)의 발암성 물질, 유럽 연합의 생식독성·피부 자극성 물질 등 유해물질로 확인된 것만 22종으로 나타났다. 이 중 피부 자극과 피부 유해성이 확인된 물질은 8종, 여성의 생식 건강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생식 독성 물질은 2종이다. 당시 실험 결과를 식약처에 알렸고 이에 대한 답을 요구하였으나 어떠한 답변도 들을 수 없었다. 뿐만 아니라 지금으로부터 1년여 전, 이미 온라인 커뮤니티에는 특정 일회용 생리대 제품에 대한 여성들의 의문이 제기되었다.

물론 조사를 통해 밝혀진 물질과 여성들의 부작용 호소가 직접적인 연관이 있다고 단정 지을 수는 없다. 그러나 담당부처로서 식약처는 문제가 제기된 즉시 발 빠르게 대처했어야 한다. 모든 목소리에 대해 방관하고 침묵으로 일관하다가 사태가 커진 후에야 황급히 대처에 나서는 늑장대응을 과연 ‘대응’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인가? 그동안 이미 여성들은 월경을 겪어왔고, 지금 이 순간에도 겪으며 고통 받고 있다. 무엇을 해야 하는지, 어떤 제품을 써야 하는지 그 의문과 불안감에 대해 식약처는 전화조차 제대로 받지 않았다. 여성환경연대 등 관련 시민단체로 식약처도, 어떤 기업도 연락이 닿지 않아 답답함을 토로하는 여성들의 전화가 빗발쳤다.

결국 정부의 역할이 사라진 상황에서 여성환경연대는 검출실험 이후 다시금 ‘생리대 피해 사례 제보 접수’를 진행하였다. 이에 48시간 동안 3천여 건이 넘는 제보가 쏟아졌고 여성들은 생리통의 심화, 생리 양과 기간의 감소, 자궁 내막증 등의 자궁질환까지 여러 부작용을 호소하였다. 한 법무법인이 진행한 소송에도 5천여 명의 여성들이 참여하였다. 뿐만 아니라 일회용 생리대의 전수조사와 역학조사를 요구하는 청원 운동에는 7천 여 명이 함께 하였다. 수많은 여성이 자신의 몸과 건강에 대해 누구보다 염려하고 고통 받는 과정에서 국가는 부재하였던 것이다.

뒤늦은 대처와 미흡한 조사

식약처는 뒤늦게 진행한 휘발성유기화합물(VOCs) 10종에 대한 조사를 통해 여성들에게 ‘안전’을 이야기 하고 있다. “하루에 7.5개씩 한 달에 7일간(월 52.5개), 팬티라이너는 하루에 3개씩 매일(월 90개) 평생 동안 사용하는 경우를 가정하여 평가한 결과 안전역이 확보 되었다”고 발표하였다. 그러나 이는 휘발성유기화합물(VOCs) 10종에 대해서만 진행한 매우 제한적이고 성급한 결과물이다.

해당 조사는 동시 노출되는 여러 물질에 대한 누적 위해도가 아닌 개별 물질의 독성수치를 단순 계산하여 위험 여부를 평가하는 데에 그쳤다. 각 개별 물질의 검출량이 미량이라는 점을 들었지만, 미량이기 때문에 안전하다고 말할 수는 없다. 또한 현재 일회용 생리대의 허가 기준으로는 조사를 통해 검출된 물질을 규제할 수도, 해당 생리대의 유통과 판매를 막을 수도 없다. 현행법상 생리대 관련 규제는 폼알데히드, 색소, 형광물질, 산·알칼리에 대해서만 규정되어 있다. 뿐만 아니라 본 조사는 생리대가 직접 맞닿는 여성의 질이라는 특수한 노출 경로를 고려하지 않았다. 질은 다른 피부에 비해 흡수성이 높고 외음부는 외부 자극과 유해물질에 취약하며, 생리대는 밀폐된 좁은 환경에서 사용되어 상대적으로 농도가 높음에도 불구하고 실험결과 해석에 반영되지 않았다.

실험결과를 발표하며 식약처는 생리대의 휘발성유기화합물(VOCs)과 생리량의 변화, 생리 불순 등의 명확한 인과관계는 밝혀진 바 없으며, 그로 인한 증상으로 걱정된다면 전문의를 찾으라고 덧붙였다. 이미 무수히 많은 여성들이 월경의 변화와 질환으로 인해 전문의를 찾았으나 ‘원인을 알 수 없다’는 답을 지치도록 들은 터였다. 지나치게 우려하기보다 사용 시 자주 교체하라는 무의미하고도 무책임한 조언까지. 여성들이 호소하는 피해 증상에 대한 피드백 및 역학조사는 진행하지 않은 채 식약처는 섣불리 ‘안전’을 선언하였다.

여성, 월경의 봉인

생리대의 직접 사용자이자 이해당사자는 여성임에도 불구하고 여성의 발언권은 빼앗겨 왔다. 남성 중심의 사회, 의과학사 속에서 월경은 부끄러운 문제, 월경 기간은 ‘예민한 그날’, ‘마법에 걸린 날’로 지칭되었다. 피를 흘리는 여성의 월경에 대해 남성은, 국가는 이 사실을 외면해왔다. 개인의, 그것도 여성의 사적인 문제로 치부되어 왔다. 여성이 대체 어떻게, 얼마나 피를 흘리는 건지 월경으로 인한 고통이 무엇인지는 여성들 안에서조차 서로가 겪는 경험과 고통에 대해 침묵하게 만들었다.

터부시되는 여성과 월경에 유독 민감하게 반응했던 건 소비자본주의 사회의 기업이었다. ‘그날’에도 문제없이 외출을 하고, 운동을 하고, 흰바지를 입는 등 평소와 다름없는 자유를 누릴 수 있도록 광고하며 기업은 자신만만하게 상품을 내놓았다. 더 빠른, 더 많은 흡수와 부드러운 감촉, 편안함, 가벼움을 무기로 여성을 현혹시켰다. 꽃무늬의 형형 색색한 자태로 놓인 일회용 생리대는 그렇게 ‘생필품’으로 여성의 생활에 안착하였다. 때문에 식약처가 묵묵부답으로 일관하는 가운데서도, 무책임한 조사 결과를 내놓은 이후에도 빈틈을 파고든 건 기업이었다. 기업은 조사에 포함되지 않은 제품, 조사에 포함되지 않은 물질을 사용한 것을 근거로 들어 발 빠르게 ‘안전한’, ‘유해물질 없는’ 제품이라는 점을 내세웠다. 물론 이러한 표현에 대해 공인된 기관의 인증을 받은 것인지 소비자는 확인하기 어려우며 식약처 또한 명확한 조치를 취하지 않고 있다.

정부가 방관하고 기업이 나선 월경 문제에 있어서 여성은 배제되었다. 어떤 제품을 원하는지, 어떤 질병이 있는지 발언권이 주어지기는커녕 말하는 이에 대한 혐오만이 이루어졌다.   국가와 기업이 취하는 이러한 관점에 여성은 강압적으로 동화되었다. 내 몸에서 나온 피는 냄새나지 않아야 하고, 어디에도 이야기하지 않아야 하며, 빨리 쓰레기통으로 사라져야 할 더럽고 불결한 것이 되었다. 월경은 긍정할 수 없는 해치워야 할 귀찮고 불편한 일이 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성에게 월경은 선택할 수 없는 문제이자 자연스러운 인체의 현상이다. 여성은 생애 중 40여 년 동안 모든 순간, 모든 장소에서 월경과 맞닥뜨리며 10,000여 개 이상의 생리대를 사용한다. 수많은 여성들이 월경에 대해 각각의 경험, 질환, 가치관을 가진다. 여성에게 월경은 기본적인 인권이며 생리대는 기본권을 지키기 위해 반드시 필요한 매개이다. 지금의 ‘생리대 사태’는 어떤 생리대가 문제인지, 어떤 물질이 문제인지를 규명하는 것 뿐만 아니라 자신의 몸, 건강, 기본권이 어디에서도 존중받지 못한 여성의 삶이 이제야 수면위로 드러난 것이다.

손가락으로 달을 가리킬 때

여성들이 제기한 질문은 ‘부작용과 고통을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인가?’, ‘일회용 생리대는 과연 안전한가?’, ‘앞으로 어떻게 월경을 치러야 하는가?’였다. 그러나 정부 부처는 물론 언론과 제조업체, 일부 정치권에서는 계속해서 ‘누가 특정 제품명을 먼저 말하였는가?’만을 제기하였다. 정작 생리대를 사용하는 여성들이 원하는 답은 내놓지 않으며 주변만을 쫓았다. 잘못된 프레임으로 인해 ‘생리대 사태’의 본질인 생리대 안전성과 여성 건강권은 외면 받았다. 왜 이 사태가 발발했으며 누구 때문인지 문제를 제기한 여성에게 책임을 캐물었다. 그 배후와 당사자는 여성 본인임에도 불구하고 여성을 제외한 그들은 어김없이 경제 손실을 우려하고 조속히 생산이 재개될 수 있도록 나아갔다. 손가락으로 달을 가리킬 때, 그들은 손가락을 보느라 달을 잊었다.

남성 위주의 국가와 기업이 두려워하는 것은 당장 몸이 아프고 일상을 걱정해야 하는 여성의 삶, 월경이 아니다. 가임기여성 분포 지도를 만들 정도로 여성의 ‘재생산성’에 대해 지대한 관심을 보이던 국가는 그 가임기여성의 건강에 대해서는 외면했다. 출산은 마땅히 장려되어야 하고 가임기여성이 해야 할 의무로 칭송되었지만 월경은 그렇지 않았다. 지금껏 여성의 몸을 담보로 이윤을 추구해온 기업은 정부 허가 기준을 면죄부 삼아 문제가 없다고 일관하고 있다. 여성들이 가리키는 문제는 다시 사적인 문제, 부수적인 파편이 되어버렸다. 일련의 사건과 분노, 책임 회피는 모두 ‘사태’로 수렴되고 말았다.

※2017.9.5. 정부서울청사 정문 앞에서 여성환경연대가 기자회견을 열고 생리대의 모든 유해성분 규명 및 역학조사를 촉구하는 다이인(Die-in) 퍼포먼스를 진행하고 있다(사진: 여성환경연대).

정부와 기업이 답하시라

사태 이후 여성들은 줄곧 외쳤다. “내 몸이 증거다, 나를 조사하라!”며 월경하는 몸, 여성 자신을 직접 조사할 것을 요구하였다. 그제야 정부는 뒤늦게 건강영향평가를 조사하겠다는 계획을 내놓았지만 누구를, 어떻게, 어떤 물질에 대해 진행할 것인지 명확한 내용은 여전히 알려지지 않았다. 여성은 언제까지 기다려야 하는가. 무엇을 더 해야 하는가. 그저 쓰던 대로 쓰고, 살던 대로 살라는 국가와 기업의 명령 아닌 명령 속에서 여성의 기본권은 다시금 잊혀질 것인가?

이제, 국가와 기업이 책임지고 나설 때이다. 국가는 여성의 기본권을 보장하기 위해 최선의 예방적 조치와 사후 조치를 다하여야 한다. 정확한 ‘유해물질 전 성분 조사’와 잘 설계된 역학조사를 시행함과 동시에 유해화학물질 등록과 평가 등을 통해 화학물질 통합관리에 대한 조치를 취하여야 한다. 이를 통해 향후 일회용 생리대 생산 기준을 명확히 하고 유통 및 수입되는 일회용 생리대 전반에 걸친 지속적인 사후 관리를 실시하여야 한다. 기업은 자신들이 생산한 제품에 대해 생산, 유통, 폐기에 걸쳐 전 과정을 확인하고 책임져야만 한다.

이뿐만이 아니다. 여성 건강과 월경에 대한 전반적인 패러다임의 전환이 필요하다. 월경과 월경하는 몸을 터부시하고 혐오하는 인식에서 벗어나야 한다. 공교육 내에서의 월경 교육, 생리 공결제와 생리 휴가 사용의 정당한 보장, 다양한 생리 용품에 대한 평등한 제공 등 월경과 여성 건강을 위한 더 나은 환경에 대한 문제는 도처에 있다.

물론 본 사태를 통해 오십 여 년 간 생리대가 유통되면서 변하지 않았던 많은 것들이 이미 조금씩 바뀌어 나가기 시작했다. 8월 이후 월경과 여성건강에 대해 지속적으로 수많은 문제제기가 이어지고 있고 이에 확인할 수 있는 성과들이 나타난 것이다. 내년 10월부터 생리대 전 성분 표시제가 시행될 것이며, 4월부터는 ‘위생용품관리법’의 개정을 통해 공산품으로 분류되었던 팬티라이너, 여성 위생용품 일부 등에 대해 식약처가 관리하게 된다. 갈 길은 머나, 여정은 시작되었다.

일회용 생리대를 계기로 여성 건강권과 월경이 이제야 사적인 문제에서 벗어나 공론장에 출현하였다. 여성의 월경, 건강, 몸은 더 이상 사적인 문제도, 화학물질 실험장도, 돈벌이 수단도, 출산을 위한 도구도 아니다. 이제 여성이 더 이상 국가와 소비자본주의, 남성의 도구가 되기를 거부하며, 여성이 주체가 되는 월경문화가 거듭 커지기를 바란다. 일회용 생리대의 문제를 넘어서 여성이 외치고 싶은 단 한마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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