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복지동향 2017 2017-12-01   1904

[복지칼럼] 공공성 회복을 위한 성찰

공공성 회복을 위한 성찰

 

 

이주하 | 동국대학교 행정학과 교수

 

 

– 10월 17일 서울시의회 보건복지위원회 주관으로 ‘서울시 지역아동센터 공공성 강화 및 발전방안 마련을 위한 토론회’가 개최되었고, 서울시 시의원, 공무원, 학계 전문가 및 현장 관계자들 사이의 열띤 정책 소통이 이루어졌다.  

– 10월 18일 ‘노인장기요양 공공성 강화를 위한 공동대책위원회’는 보건복지부가 추진하는 ‘사회서비스진흥원 설립 추진계획(안)’을 대통령 공약인 ‘사회서비스공단 설립을 통한 사회서비스공공성 확충’을 정면으로 부정하는 것이라고 비판하였다.  

– 10월 23일 ‘박근혜정권퇴진 비상국민행동(퇴진행동) 기록기념위원회’는 올해 2월 촛불 시민이 요구했던 ‘100대 개혁과제’ 중에 단 2개만 해결되었고, 복지 공공성 강화를 포함한 많은 과제들은 여전히 제자리걸음이라고 지적하였다. 

– 11월 9일 국민연금·건강·고용·산재·노인장기요양보험 등 5대 사회보험 업무를 담당하는 노동자들이 전국 차원의 연대조직을 구성하고 “사회보장 서비스의 공공성을 강화하기 위해 함께 노력하겠다”고 밝혔다.

 

지난 한 달 동안 복지 관련 이슈들 중 ‘공공성’으로 검색한 주요 뉴스들이다. 공공성이란 과연 무엇이며, 복지영역에서의 공공성 강화를 위해서 무엇이 필요한가? 사실 공공성에 대한 개념 정의는 시·공간에 따라 다르고, 학문분야와 연구전통에 따라 차별화되기 때문에 단일 개념의 공공성을 제시하기란 쉽지 않다. 

 

‘공적인 것(the public)’과 ‘사적인 것(the private)’의 개념적 기원은 그리스의 직접민주주의와 로마 공화정시대로 거슬러 올라간다. 그 당시 소수 사익추구 집단에 의해 다수가 지배되고 있는 사회가 아닌 자유로운 시민들이 공공선을 추구하고 그들의 대표를 직접 선출하는 사회를 ‘공화국(Republic)’이라 하였는데, ‘공공의 것’, ‘만인의 것’이라는 뜻을 가진 라틴어 ‘res publica’가 그 어원이다. 공공의 한자어는 公(사가 없이 공평할 공)과 共(함께 공)의 결합으로 사회의 구성원이 모여 함께 공동의 이익을 추구하는 것을 의미한다. 공화(국)의 한자어 어원은 사마천의 『사기(史記)』에 따르면 중국 고대국가인 주(周)의 군주가 폭정으로 인해 반란이 일어나서 쫓겨나게 되자 재상과 중신이 서로 합의하여 공동으로 조정을 본데서 유래하였다. 

 

근대적 의미의 공화국은 18세기 후반에 민중의 투쟁으로 인해 출현하였는데, 1776년 미국 독립혁명과 1789년 프랑스 대혁명은 군주제와 절대왕정이 아닌 민주공화국의 효시였다. 촛불집회의 구호와 영화 ‘변호인’의 마지막 장면에서 송강호의 절규를 통해 우리들에게 보다 친숙하게 다가온 대한민국 헌법 1조 1항도 다름 아닌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이며, 2항은 “대한민국의 주권은 국민에게 있고,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이다. 그러나 과거 한국의 민주공화국은 ‘민주’도 아니고 ‘공화’도 아닌 ‘국’이었을 뿐이며, 기득권 체제나 신분질서를 타파하면서 발전한 정의, 연대 및 공공성에 대한 전통이 부족한 편이었다. 

 

일반적으로 공공성에 대해 논의를 할 때 많이 활용되는 접근방법은 공공성이 절차적으로 구현되는 형식적인 측면과 공공성이 실질적으로 구체화된 내용으로 구분하는 것이다. 형식적/절차적 공공성은 행위 주체에 초점을 두는데, 정부나 공적 기관이 주도적으로 수행하는 것 뿐 아니라 다양한 공동체 구성원들의 적극적 참여와 합의도 중요시되고 있다. 사회복지와 관련해서는 공적 영역(국가)과 사적 영역(시장, 기업, 비영리조직, 가족)이 복지를 생산하고 배분하는 과정과 그러한 복지혼합에서 국가가 차지하는 역할이 형식적/절차적 공공성의 핵심이다. 반면 실질적/내용적 공공성은 행위 결과에 주목하는데 사회적으로 합의된 수준의 공익, 평등, 정의 등이 이에 해당된다. 복지 영역의 경우 복지혼합의 결과로서 사회권, 분배적 정의, 평등의 실현 정도로 파악할 수 있겠다. 

 

그런데 공공성 개념의 다의성 및 공공성 논의의 시·공간적 다양성을 고려할 때 실질적/내용적 공공성에 대해 합의를 이루는 것은 쉽지 않은데, 이는 공익에 대한 오랜 (정치철학적) 논쟁을 통해서도 잘 알 수 있다. 공익에 대한 학설은 크게 실체설과 과정설로 나누어지는데, 먼저 실체설은 공익을 ‘사익을 초월한 실체적·규범적·도덕적 개념’으로 파악한다. 구체적인 내용은 논자에 따라 공공선, 정의, 형평, 복지, 인간존중 등 다양하나, 공동체가 추구해야하는 공익은 사익의 단순한 총합이 아닌 그 이상이라는 관점을 공유하고 있다. 이에 반해 과정설은 공익이란 ‘사익의 총합이나 집단과정에서 나타나는 특수한 집단이익의 총합으로 개인 또는 집단 간의 타협과 조정의 산물’에 불과하다고 주장하는데, ‘최대 다수의 최대 행복’으로 대변되는 공리주의적 입장이 대표적이다. 오늘날 주류 자유주의 담론 및 신고전학파 경제학의 철학적 기반이기도 한 공리주의적 입장에 따르면 공적 영역의 역할은 개인의 사적 영역에서의 자유로운 활동을 위한 권리를 보호하는 데 그쳐야 한다. 그러나 실체설에 입각한 공화주의적 시각에서 볼 때 공공의 의미는 개인의 권리 보호에만 머무르는 것이 아니며, 공적 영역은 개인의 권리와 시장에 대한 국가개입의 정당성이 인정되는 동시에 공동체의 이익과 문제해결을 위해 시민들의 자발적 협력과 상호조정이 이루어지는 공간이다. 

  

공공성 담론은 한국의 특수한 역사적·정치적 맥락에서 ‘원조’격인 서구에서와 다른 의미로 사용되곤 하였던 좌·우파 논쟁을 올바르게 인식하고 제대로 된 정책대결을 촉진시키기 위해서도 매우 중요하다. 사실 좌파와 우파의 역사적 연원은 공간적 메타포에서 비롯되었는데, 1789년 프랑스 대혁명 직전에 소집된 삼부회에서 앙시앵레짐 하에서 인구의 2% 정도밖에 되지 않지만 주요 권력과 부를 독점한 제1신분(성직자)과 제2신분(귀족)은 국왕의 오른쪽에, 대다수 민중을 포괄하는 제3신분인 평민대표들은 왼쪽에 앉게 되었다. 이후 국민의회 및 입법의회 등을 거쳐 현상유지를 지향하고 변화에 소극적인 온건세력을 우파로, 상대적으로 급진적이고 새로운 변화를 추구하는 진보세력을 좌파를 지칭하는 것이 관례가 된 것이다. 하지만 좌·우파의 개념은 시대에 따라 변화하는 상대적인 개념이기도 한데, 서구 유럽의 경우 좌파의 중심세력은 부르주아 자유주의 운동에서, 민주주의 운동을 거쳐 사회주의 혹은 사민주의 운동으로 변화하였고, 2차 세계대전 이후 집권세력의 한 축으로 복지국가의 건설에 핵심적인 역할을 담당하였다. 그러나 ‘비동시성의 동시성’으로 특징지어지는 한국의 경우, 남북 분단의 현실 속에서 좌·우파 담론이 제대로 정착하는 것이 힘들었으며, 국가와 시장에 대한 접근법 역시 서구와 다른 궤적을 보여주었다. 즉 정치적 우파인 박정희 정부는 ‘발전주의 국가(developmental state)’로 대변되는 정부주도의 산업화 전략을 채택하였고, 상대적으로 진보적 색채를 띤 김대중·노무현 정부는 시장친화적인 신자유주의 정책을 적극적으로 수용하였다. 이와 같은 한국적 상황을 고려할 때 진보-보수의 구도가 공공성을 중심으로 한 가치와 정책 경쟁으로 전환하는 것은 시의적절하고 의미 있는 일이다. 

 

공공성의 회복을 위한 정부의 역할이 무엇보다 필요한 분야가 바로 사회복지인데 다음의 3가지 차원에서 접근해 볼 수 있겠다. 정부의 규모가 큰가, 영향력이 큰가, 그리고 일을 잘하는가? 우리나라 정부는 인력과 재정 측면에서 다른 선진국에 비해 작은 정부에 속하는데, 특히 ‘저부담-저복지’ 유형인 한국의 공공사회복지지출과 국민부담률은 OECD 최하위 수준이며, 향후 어떻게 ‘중부담-중복지’ 혹은 ‘적정부담-적정복지’로 나아가는지가 주요 과제이다. 그러나 정부의 (재정적)규모가 정부의 영향력 및 역량과 늘 비례하는 것은 아니다. 중앙집권적인 권력구조와 과거 권위주의 체제 하 형성된 우리나라 중앙정부의 영향력은 결코 작다고 할 수 없는데, 이는 발전주의 국가론이나 복지에 있어서 ‘제공자(provider)’가 아닌 ‘규제자(regulator)’로서의 정부역할에 대한 논의에서도 잘 나타난다. 결국 보다 중요한 것은 정부가 공공성을 확대하는데 있어서 얼마나 일을 잘 수행하는지 여부이며, World Bank와 UN의 ‘바람직한 거버넌스(good governance)’와 최근 들어 활발하게 연구가 진행되고 있는 ‘정부의 질(quality of government)’ 담론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특히 많은 연구결과들은 높은 수준의 정부의 질이 보다 나은 경제적 성과, 낮은 소득불평등과 빈곤, 우수한 교육과 건강 수준 등을 가져온다는 사실을 보여주고 있으며, 북유럽 복지국가와 남유럽 복지국가의 사회·경제적 성과의 차이 역시 정부의 질과 밀접한 연관이 있다. 

 

그러나 형식적/절차적 공공성 개념에서처럼 공공성의 주체로 국가만 있는 것은 아니며, 정부의 질은 공공성을 확보하기 위한 필요조건이지 충분조건은 아니라 할 수 있다. 스웨덴 복지국가의 성공비결 역시 적극적인 국가의 개입과 최상위 수준의 정부의 질 뿐 아니라 공동체주의에 기반을 둔 활발한 시민사회가 있다는 사실을 간과하여서는 안 된다. 다시 말해 공공성의 회복을 위해 중요한 것은 정치적 참여를 강조하는 시민권을 바탕으로 시민들 사이에서 자발적으로 공공의 이슈가 제기되고 집단적인 심의를 통해 해결되는 과정이다. 물론 OECD 국가 중 최장 노동시간 부문 1,2위를 다투는 한국의 경쟁중심 사회에서 ‘저녁이 있는 삶’ 조차 누리기 힘든 현실에 비추어 볼 때 시민으로서 공적 생활을 영위하기란 녹록치 않다. 그러나 일찍이 아리스토텔레스가 강조하였듯이 시민들이 ‘실천적 지혜(프로네시스)’를 바탕으로 공동체의 집단적인 의사 결정 과정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것은 개인 삶의 행복과 좋은 정치 모두의 근간이라는 점을 명심해야한다. ‘바보’, ‘멍청이’를 뜻하는 idiot의 어원인 ‘idiotes’는 ‘공적인 일엔 관심 없이 오로지 사적인 일에만 몰두하는 사람’이라는 사실이 오늘날 더욱 의미심장하게 느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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