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복지동향 2021 2021-10-01   430

[복지칼럼] 지대추구경제와 공정성

복지칼럼 : 지대추구경제와 공정성

남찬섭 동아대학교 사회복지학과 교수

 

제20대 대통령 선거를 5개월가량 남겨둔 요즘 우리 사회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들은 적폐세력들의 부정부패 카르텔이 촛불을 통한 정권교체에도 불구하고 재벌과 법조계, 정치계를 정점으로 하여 사회 곳곳에 여전히 강고하게 남아 있음을 적나라하게 보여주고 있다. 그리고 이런 일들은 우리 사회에서 일어나고 있는 공정 담론이 어디를 향해야 하는가도 잘 알려 주고 있다. 

 

검찰은 한 성인이 10년도 더 전인 고등학교 시절에 받았다는 표창장을 들어 기소까지 하고 2심 법원은 해당 전문대학원에서 그 표창장이 당락에 영향을 미치지 않았다고 밝혔음에도 불구하고 그 성인의 어머니에게 징역 4년을 선고하였다. 하지만 이런 고등학교 시절의 표창장보다 몇천 배, 몇만 배나 더 중요한 박사학위논문의 적격 여부에 대해서는 이 박사학위를 수여한 대학교에서 검증시한이 지났다는 이유로 판단 자체를 유보해 버렸다. 하지만 실제로는 그 대학교가 학위논문 검증시한을 이미 폐지했고 그 폐지를 교육부에 보고했다는 사실이 드러났다. 이런 상황에서 우리 사회 일각에서는 아직도 표창장이니 입시니 하면서 공정성 타령을 하고 있다. 한참 번지수가 잘못된 공정담론이라하지 않을 수 없다. 

박사학위논문 검증문제가 불거진 직후에는 이른바 ‘고발 사주(使嗾)’ 사건이 터져 나왔다. 이 사건을 알린 인터넷 언론과 공익신고자에 따르면 검찰이 그 수장인 검찰총장을 괴롭히는 사람들을 혼내 주기 위해 스스로 고발장을 작성하여 이를 야당 국회의원에게 넘겼다는 것이다. 만일 이것이 사실이라면 이는 검찰이 사설흥신소처럼 행세했다는 것으로 검찰을 해체해야 할 정도로 엄청난 사태이다. 실제로 공익신고자의 신고 내용에는 조작흔적이 없다는 것이 공수처의 공식발표이며 고발사주 사건과 밀접한 관련이 있는 대검의 수사정보정책관의 이름이 텔레그램에서 그대로 추적되기도 하는 등 상당히 확실한 증거도 나왔다. 사태가 이러한데도 이 사건에 관련된 야당은 이를 ‘제보 사주’ 사건으로 몰아갔고, 언론은 야당의 프레임 설정에 맞추어 제보자 신상털기를 하는 등 제보 사주 프레임을 강화시키는 데 여하한 노력도 아끼지 않았다. 

 

검찰의 눈물겨울 정도로 탈법적인 고발사주 실행에 밀접히 연관된 것으로 의심되는 전임 검찰총장은 대통령이 되겠다고 나와서는 부마항쟁과 1987년 민주화 투쟁을 혼동하더니 그 후에는 ‘쩍벌’과 같은 이상한 태도의 시연으로부터 시작하여 일주일에 120시간 노동을 해야 한다느니 손발노동은 아프리카에서나 하는 것이라느니 인문학은 다른 전공과 병행해도 되고 대학 4년이나 대학원까지 공부할 필요가 없다느니 임금만 차이가 없으면 비정규직이나 정규직이나 별 차이가 없다느니 가난한 사람들은 부정식품이라도 싼 가격에 먹을 자유를 줘야 한다느니 온갖 망언을 쏟아내다가 급기야는 집이 없어서 주택청약통장을 못 만들었다고 하여 주택청약제도 자체를 모르고 있다는 사실을 드러내는 지경에까지 이르렀다. 이런 사람이 대통령이 되겠다고 그것도 제1야당의 1위 주자로 오르내리고 있다는 사실 자체가 불공정의 전형을 보여 주는 것이다. 우리 사회의 기득권 적폐 카르텔은 자기들 진영에서는 대통령이 누가 되든 그건 큰 상관이 없는 것이다. 자신들의 적폐 카르텔을 유지시켜 주고 얼굴마담 역할을 할 대통령이 필요한 것이지 국민들의 삶을 지켜줄 대통령 같은 것은 애초부터 안중에 없는 것이다. 그 얼굴마담이 고발사주 사건에 연루된 것으로 의심되는 검찰총장 출신이든 해괴한 박사학위논문을 쓴 사람을 배우자로 둔 사람이든 입시에 아무런 영향을 주지 않은 고등학생의 표창장에 목숨을 걸듯 수사한 사람이든 상관이 없는 것이다. 대통령이 누구든 상관이 없는 것은 제1야당도 마찬가지다. 그들 역시 적폐 카르텔의 몸통이기 때문이다. 국가를 대표한다는 대통령을 자신들의 얼굴마담 정도로 여기고 그런 사람을 후보로 내세울 정도의 사고방식을 가진 자들이 정치를 한다는 것이 불공정이 아니면 무엇인가. 

 

민족의 대명절인 추석을 앞두고는 이른바 ‘대장동’ 사건이 터졌다. 아니 대장동 사건을 기득권 적폐세력이 터뜨렸다고 봐야 할 것이고 여기에는 기득권 적폐세력의 일원인 언론의 역할이 컸다. 아마도 고발사주 사건이 추석 민심에 미칠 영향을 사전에 차단하고 여당의 호남경선에 영향을 미칠 목적에서였을 것이다. 그래서 그들은 대장동 사건을 대표하는 이름도 생소한 한 상징을 내세워 ‘화천대유는 누구 겁니까’라는 선동을 감행하였다. 하지만 대장동 사건은 새로운 국면으로 접어들고 있다. 한 국회의원의 아들이 화천대유에 7년 정도 근무하고 퇴직하면서 퇴직금인지 산재보상금인지 성과급인지 하여튼 50억 원을 받았다는 사실이 드러난 것이다. 이렇게 되자 ‘곽천대유는 누구 겁니까’, ‘상도대유는 누구 겁니까’라는 패러디가 등장하였고 또 해당 국회의원의 해명을 빗댄 ‘오십억 게임’이라는 패러디와 이 사건과 연루된 야당의 명칭과 아빠찬스를 함께 빗댄 ‘아빠의 힘’이라는 패러디도 등장했다. 대장동 사건에 이름이 등장하는 이들은 모두 야당과 연관된 인사들이며 그들은 모두 법조계와 정치계에 몸 담고 있는 이들이다. 또 며칠 전에는 모 재벌그룹 오너의 여동생이 등장하기도 했다. 사태가 이러한데도 야당과 언론은 퇴직금 50억 원 사건을 이익설계의 문제로 프레임화하려고 안간힘을 쓰고 있다. 

 

대장동 사건의 본질은 토지불로소득의 창출과 그에 대한 기득권 적폐세력들의 지대추구이다. 모 국회의원의 아들이 받았다는 50억 원이 어떤 정치적 거래의 대가인지는 모르겠고 그런 대가가 아닐 수도 있겠지만 그 대가가 생겨날 수 있었던 원천이 토지불로소득이라는 것은 분명하다. 한정된 자원인 토지에서 발생하는 불로소득은 기본적으로 토지사용을 둘러싼 정부의 토지수용과 인허가, 개발 등에 따른 결과이다. 정부는 국민의 세금으로 운영되므로 이러한 정부의 정책적 행위로 인해 창출된 지대는 국민들에게 돌아가는 것이 정상이다. 하지만 적폐세력들은 이 불로소득을 국민이 아니라 자신들의 배를 불리는 데 충당하였고 그것을 위해 각종 제도와 관행을 만들어 왔으며, 그를 통해 자신들의 부와 권력을 불리고 그것을 대물림해 왔다. 이런 지대추구는 공공성의 영역을 끊임없이 축소시킨다. 기득권 적폐세력들이 대장동의 공공개발을 필사적으로 막은 데는 이것이 민간개발로 추진되어야 지대추구가 가능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런 지대추구는 토지가격을 끊임없이 상승시키는 주범이기도 하다. 이 불로소득 추구의 기득권 적폐를 끊어내지 않고는 부동산 가격이 안정될 수 없을 뿐만 아니라 경제 전체의 안정도 복지국가의 구축도 불가능할 것이며 공정성의 실현은 더더욱 불가능할 것이다. 

 

한국은 토지불로소득에 대한 지대추구에 더하여 다른 면에서의 지대추구도 점차 강화되고 있다. 제2차 대전 후 자본주의는 1970년대 중반까지 복지국가를 통한 소득제공으로 수요를 유지해 오다가 그 이후 통화공급을 통해 수요를 유지해 왔고 그것이 한계에 부딪히자 부채를 통해 수요를 유지해 오고 있다. 그러면서 자본주의는 부채주도성장경제가 되었으며 이것을 경제운영기법으로는 금융화가 뒷받침하고 이데올로기적으로는 신자유주의가 뒷받침해 왔으며 보다 최근에는 디지털화로 뒷받침해 오고 있다. 최근 4차 산업혁명이라 불리는 현상의 본질 역시 디지털 기술에 뒷받침 받은 금융화를 매개로 한 지대추구이며 그런 점에서 4차 산업혁명은 ‘가짜’ 산업혁명이다. 한국은 부채주도경제에다 토지불로소득을 추구하는 지대주도경제이며 여기에 경제의 디지털화로 플랫폼 지대추구까지 겹쳐지고 있다. 

 

이번의 대장동 사건은 좁게는 토지불로소득을 추구하는 기득권 적폐 카르텔의 부정부패를 적나라하게 드러낸 것이지만 보다 넓게 보면 한국 자본주의 도처에 만연해 있는 지대추구의 고리를 드러낸 것이고 우리는 이 후자에 더 주목할 필요가 있다. 각종 불로소득에 대한 지대추구 행위는 지대추구 자체를 가능케 하기 위해서라도 태생적으로 민영화를 선호하고 따라서 공공성의 영역을 왜소하게 만들고 공동체의 가능성을 축소시킨다. 기득권 적폐 세력들이 입만 열면 민간, 민간 외치는 이유이다. 

 

 

부채주도경제를 소득주도경제로 전환시키고 불로소득추구경제의 고리를 차단하고 새로운 지대추구로 등장하고 있는 플랫폼 경제에 공공성을 도입할 필요가 있다. 우리 사회 일각에서 논의되는 기본소득이 이러한 불로소득을 국민 모두의 몫으로 돌리는 한 방안이 될 수 있을 것이며 여기서 더 나아가 기본소득과 같은 방안들을 매개로 불로소득에 대한 지대추구 자체를 제거하는 방안이 필요할 것이며 이렇게 될 때 우리 사회의 진정한 공정성이 확보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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