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복지동향 2011 2011-12-19   6011

[심층분석2] 지역 간 건강불평등 해결을 위하여 -영국의 경험을

윤태호│부산대학교 의학전문대학원 예방의학 교수 

 

나는 인류에게 두 가지 불평등이 있다고 생각한다. 하나는 자연적 또는 신체적 불평등이라고 부르는 것이다. … 또 다른 불평등은 일종의 약속에 좌우되고, 사람들의 동의로 정해지거나 적어도 용납되는 것으로 도덕적 또는 정치적 불평등이라고 할 수 있다. 후자는 일부 몇몇 사람들이 다른 사람들에게 손해를 끼쳐 누리는 갖가지 특권들… 에 의해 성립된다.

Jean-Jacques Rousseau

 

Ⅰ. 들어가며

 

건강 결과의 지역 간 불평등
한국의 지역 간 불평등은 전통적 지역 구분인 도시와 농촌을 이미 넘어섰으며, 전 지역적인 문제로 확대되고 있다. 특히, 서울을 중심으로 한 수도권으로의 발전이 집중된 결과로 최근에는 수도권과 비수도권 간 건강 불평등이 뚜렷하게 관찰되고 있다. 하지만, 서울 역시 지역의 건강불평등 문제에서 자유롭지 않은데, 특별시, 광역시를 포함한 대도시 중에서 평균적인 건강수준은 가장 좋으나 강남, 강북으로 대표되는 지역 내 상대적 격차는 가장 큰 것으로 파악되고 있다. 이러한 점에서 건강불평등은 지역 간 문제에만 한정되는 것이 아닌, 동일 지역 내의 문제이기도 하다.

 

지역 간 건강불평등의 또 다른 특징은 낮은 행정단위로 내려갈수록 커지는 양상을 보인다는 것이다. 광역시도 보다는 시군구 간에, 시군구 보다는 읍면동 간의 불평등이 더욱 커지는 특징을 보이며, 이는 지역 간 건강불평등을 해결하기 위해서는 보다 낮은 지역사회 단위에서의 사업들이 필요함을 시사해 주고 있다.

 

 

보건의료 서비스의 지역 간 불평등
과거 한국의 부족했었던 보건의료서비스 공급은 1977년 의료보험제도 도입 이후 미충족 의료의 폭발적 증가 등으로 인한 의료이용량의 증가를 경험하였다. 이에 대해 국가는 공급자로서의 역할은 최소화하는 대신 시장의 기능에 대부분 맡기는 방식으로 대응해 왔었다. 그 결과, 보건의료서비스의 공급은 민간부문에 전적으로 의존해 왔었고, 그 과정에서의 공공적 조절 기능은 전무하였으며, 이로 인해 “공공부문은 예방서비스, 민간부문은 치료서비스” 라는 이분법적 사고 또는 ‘공공부문은 민간부문이 수행하지 못하거나, 수행할 수 없는 영역에 집중’ 이라는 인식이 고착화되었다. 또 다른 한편으로, 공급의 시장화로 인하여 지역 간 보건의료 자원 분포는 공급 과잉과 공급 부족 현상이 공존하는 상황이 지속되고 있다. 지역 간 건강불평등을 해결하기 위한 가장 기본적인 보건의료자원이 불균형적으로 분포한 상황은 문제의 해결을 더욱 어렵게 하고 있다.

 

 

Ⅱ. 본론

이러한 건강결과와 보건의료서비스의 지역 간 불평등을 어떻게 극복 내지는 약화시켜 갈 것인가? 먼저, 이 주제와 관련하여 국가적 수준에서 가장 활발한 노력을 기울여 왔었던 영국의 경험들을 살펴보고, 우리 사회에 던져주는 몇 가지 중요한 시사점을 도출해 본다.

 

 

영국의 경험
영국은 1948년부터 국영보건서비스(NHS) 방식의 무상의료 제도를 운영해오고 있는 국가로 익히 알려져 있다. 그런데, 영국은 미국을 제외한 서구 선진국들 중에서 건강불평등이 가장 심각한 국가인 것으로 1980년 블랙보고서에서 밝혀졌었다. 블랙보고서는 노동당이 정권을 잡았었던 1977년에 시작하여 1980년에 완료된 프로젝트로 당시 영국사회를 뒤흔들만한 잠재력을 지닌 보고서였지만, 대처정부는 이 보고서를 간단히 묵살하고 만다. 지난 정권의 산물일 뿐 아니라, 막 출범한 정권의 정책방향과 맞지 않다는 이유에서였다. 그러함에도 불구하고, 블랙보고서는 건강불평등 문제에 대하여 영국 사회가 새로운 눈을 뜰 수 있도록 하였으며, 학계에서 건강불평등 연구를 촉발시킨 계기가 되었다. 블랙보고서는 영국의 건강불평등을 해결하기 위해서는 우선적으로 영국사회에 만연해 있는 사회구조적 불평등 문제를 해결해야 하며, 영국의 자랑인 NHS 역시 건강불평등 문제를 해결하기 위하여 어떠한 방식으로 기여해야 하는지를 고민해야 한다는 정책적 과제를 던져 주었다.

 

하지만, 영국의 건강불평등 해결을 위한 국가적 노력은 블랙보고서가 출간된 지 17년 넘게 흐른 1997년 노동당이 다시 정권을 잡게 된 다음에야 가능하게 되었다. 블랙보고서가 나온 지 한참이 지난 시점이었기 때문에 영국 노동당 정부는 그 기간 동안의 영국의 건강불평등 문제를 다시 종합적으로 조명하고, 이에 근거한 보건 및 사회정책 과제를 도출하기 위하여 도날드 에치슨(Donald Acheson)에게 연구를 의뢰하게 되었고, 그 결과물이 ‘건강불평등에 대한 독립보고서’ (Independent Inquiry into Inequalities in Health Report)이다. 이 보고서에서는 2가지 총괄권고와 12가지 분야에 걸쳐 37가지 권고를 제안하였다. 총괄권고로는 국가에서 시행하는 모든 정책들이 건강에 미칠 영향을 고려(특히 건강불평등의 측면에서) 하도록 하는 건강영향평가를 실시할 것과, 영유아를 둔 엄마와 산모, 아동들의 건강을 개선하고 건강불평등을 줄이는데 정책적 우선순위를 두어야 한다고 하였다. 12가지 분야는 ‘빈곤, 소득, 조세 및 급여’, ‘교육’, ‘고용’, ‘주거 및 환경’, ‘운송 및 오염’, ‘영양 및 일반농업정책’, ‘모자 및 가족’, ‘청년 및 경제활동 성인’, ‘노인’, ‘인종’, ‘젠더’, ‘국영의료서비스’ 이다. 이 보고서는 구체적이지 않고, 너무 포괄적이다라는 지적도 있지만, 영국 정부의 강력한 정책의지와 결합하여 정부 정책으로 반영되었다.
영국의 가장 대표적인 지역 간 건강격차를 줄이기 위한 지역 기반 사업으로는 건강활동구역(Health Action Zones), 슈어스타트(Sure Start), 스피어헤드 그룹(Spearhead Groups) 등이 있다.

 

 

(1) 건강활동구역
이 사업은 건강불평등을 감소시키기 위한 정부의 첫 주력 사업으로, 1998년에 15개 지역에서 시작하여 1999년에 11개 지역이 추가되었으며, 연간 지역 당 4-5백만 파운드의 예산이 투입된 7년간 사업이었다. 신노동당 정부에서 의욕적으로 추진하였으나, 지나치게 의욕적이고 호소성 짙은 목표들을 너무 많이 발표함으로써 변화에 대한 열정이 이를 수행할 역량을 넘어서 버렸다. 예컨대, 한 HAZs 에서는 광역도시 전체의 기대수명이 7년 내에 서부유럽국가들의 상위 10%에 해당하는 인구집단의 기대수명에 도달하는 것을 목표로 하였고, 더군다나 겨우 연간 4-5백만 파운드가 지원되었을 뿐이었다. 또한 재정 지원 외에 모든 것을 지역에 맡김으로써 사업을 평가하기가 매우 어려운 한계가 있었다.

 

 

(2) 슈어 스타트
이 사업은 빈곤지역을 중심으로 영유아 초기의 취약가정을 지원하기 위하여 1999년부터 실행한 지역 기반 프로그램으로 보육서비스의 접근성 향상, 아동들의 건강과 정서적 발달을 향상, 부모에 대한 지지와 부모들의 고용 지원 등을 통하여 아동과 부모, 지역사회에 더 나은 결과를 달성하기 위한 것이었다. 1999년에서 2003년 사이에 524개의 Sure Start 센터가 설립되었으며, 이후 빈곤지역에만 국한하는 것이 아니라 모든 지역의 빈곤 아동들을 위한 사업을 수행하도록 하였으며, 2010년 현재 잉글랜드 전역에 걸쳐 타운 수준(한국의 읍면동에 해당)에 약 3,500개의 센터를 설치하여 운영하고 있다. 이 사업은 영국에서 실시했었던 지역 기반 사업 중 가장 성공적인 사업으로 평가받고 있다. 한국에서도 이와 유사한 사업을 2006년부터 희망스타트라는 이름으로 수행해 왔었고, 정권이 바뀐 2008년부터는 드림스타트로 이름을 바꾸어 운영해 오고 있다. 하지만, 한국은 현재 시군구 단위로 101개 센터가 있을 뿐이다.

 

 

(3) 스피어헤드 그룹
스피어헤드 그룹은 가장 건강수준이 열악하고 박탈수준이 높은 70개의 지방정부 관할 지역들(88개의 PCT에 해당)이며 인구의 28%를 포괄하고, 주로 잉글랜드 지역의 북부와 중서부 및 런던의 일부 지역들이 속한다.

 

이 사업은 중간에 폐지된 건강활동구역 사업의 평가를 통해 시작된 사업으로 건강활동구역과 마찬가지로 건강취약지역을 중심으로 수행된 사업이라는 점에서는 동일하다. 하지만, 건강활동구역사업에서의 교훈을 바탕으로 지역의 범위를 조정하고, 목표를 보다 현실적이고 명확하게 설정을 하였으며, 국가적 수준에서의 건강불평등 해결을 위한 실행 보고서에 근거한 사업이라는 점에서 차이가 있다. 2004년에 발간된 정부 실행보고서에서는 다음의 두 가지 총괄 목표를 제시하였고, 12가지의 대표 지표들을 설정하여 각 지역, 특히 스페어헤드 그룹에서 개선이 이루어지도록 하였다.

– 2010년까지 스피어헤드 지역(Spearhead group)과 전국 평균 간 기대수명 격차를 최소 10% 감소
– 2010년까지 육체직 집단과 전체 인구집단 간 영아사망률 격차를 최소 10% 감소

 

 

시사점
한국의 지역 간 건강불평등이 심화되고 있다는 것은 여러 경로를 통해 확인이 되고 있으며, 더 이상 방치할 수 없는 중요한 아젠다이다. 현 시점에서 지역 간 건강불평등을 해결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건강불평등을 주요한 사회적 문제로 인식하고, 이를 해결해야 겠다는 정책의지이다. 이것이 없이는 아무리 구체적이고 세련된 정책이 있다 하더라도 무용지물이다. 영국의 경험에서도 살펴본 바와 같이 건강불평등 해결을 위한 정책은 바로 정치적 의지에서 출발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이유 때문에 현 시점 한국에서 건강불평등이 정책 의제화되기는 상당히 어려울 것이다. 그러함에도 불구하고, 지역 간 건강불평등을 해결하기 위한 정책적 노력을 수행할 경우에 고려해야 할 사항들을 지적해 보고자 한다.

 

첫째, 목표를 명확하게 설정을 하는 것이다. 목표 설정에서 가장 중요하게 고려해야 할 것은 지역을 어떻게 설정하느냐이다. 건강수준이 특히 낮고, 지역의 사회적 조건도 낮은 지역들을 행정구역을 고려하여 선정하고 이들 지역들을 중심으로 예산을 투입하여 사업을 수행하는 것이 더 적절한 것으로 판단된다. 그 다음으로 고려해야 할 것은 비교해야 할 지역의 정의를 어떻게 내리는가이다. 비교 지역으로 최상위 지역과 최하위 지역의 격차를 줄이는 방식을 할 수도 있겠으나, 그러한 경우에는 목표를 달성하는데 현실적 어려움이 있을 것으로 예상되므로, 영국에서처럼 전국 평균치와의 차이를 줄이는 방식으로 목표를 설정하는 것이 바람직할 것으로 판단한다.

 

둘째, 지역의 필요에 근거한 공평한 예산 배분 체계를 확립하는 것이다. 인구의 크기는 동일하지만, 필요도에서 큰 차이가 있는 두 지역에 동일한 예산을 배분하는 방식으로는 지역 간 건강불평등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 또한, 사업계획서를 평가하여 점수를 더 많이 받은 지역에 더 많은 예산을 교부하는 방식으로도 지역 건강불평등 문제를 해결하기는 더더욱 어렵다. 특히, 건강불평등 해결과 관련된 예산을 지역에 교부할 때는 목적교부금(ring fenced budget) 방식으로 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셋째, 지역보건행정체계의 관리 기능을 확대․강화하는 것이다. 현재 한국의 지역보건의료체계에서는 지역의 보건의료서비스 공급을 조절하는 역할이 거의 불가능하다. 보건소가 있긴 하지만, 여기에서는 제한적인 행정지도와 공중보건사업이 수행되고 있을 뿐이다. 하지만, 지역 주민의 건강수준 향상 및 건강불평등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압도적 다수를 차지하는 민간의료기관이 같이 움직여야 한다. 개인이 자신의 건강을 위해 본인부담을 지출하는 방식의 민간 중심 건강서비스 제공에 의존해서는 건강불평등의 해결은 요원하겠지만, 민간의료기관을 배제한 채 보건지소 또는 주민건강증진센터 등 공적 조직을 확대한다고 해서 해결되기도 어렵다. 따라서, 핵심은 지역의 모든 공공과 민간 의료기관이 지역의 건강문제 해결이라는 공동의 목표 달성을 위해 활동을 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며, 이를 위해서는 영국의 PCT와 같이 지역 주민들의 건강 필요에 근거하여 의료기관과 직접 계약을 맺는 강력한 관리자가 필요하다.

 

넷째, 지역 간 건강불평등 감소 정책의 효과적 수행 및 평가를 위한 지원체계가 있어야 한다. 지역의 건강문제라 해서 지역에 모든 것을 일임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왜냐면, 지역의 여건이 천차만별이기 때문이다. 특히, 건강이 취약한 지역에서의 사업계획 수립 및 수행 능력이 떨어지기 때문에 이를 지원하기 위한 중앙정부의 노력이 필요하다. 이러한 점에서 건강형평성 지원팀의 설치가 필요할 것이며, 사업 수행을 모니터링하는 시스템이 갖추어져야 할 것이다.
 

 

Ⅲ. 마치며

건강불평등을 해결하기 위해서는 건강의 사회적 결정요인을 해결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고, 효과적이라는 수많은 연구 결과에도 불구하고, 건강불평등에 대한 제한적 인식, 현실적 여건들로 말미암아 결국은 보건의료서비스의 문제로 한정될 수 밖에 없는 상황이다. 하지만, 보건의료서비스에 국한된다면, 건강불평등의 해결이 국가적 아젠더가 되지 못한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며, 지역에 있는 보건의료 종사자들의 업무 부담만 가중된 채 실효를 거두지 못하는 결과를 초래하여 결국은 비판의 도마 위에 올라가서 폐기처분 되고 마는 절차를 밟을 것이다.

 

이러한 점들을 고려할 때, 지역의 건강불평등 해결은 그 자체가 목적이 되는 사업 수행보다는 지역균형발전이라는 측면에서, 지역균형발전의 성과를 측정하는 핵심 지표로 인식하는 것이 중요하다. 그럴 때에만 지역의 여러 자원들과의 협력이 가능할 것이며, 건강의 사회적 결정요인들을 해결하기 위한 실질적 노력이 동반될 것이다. 주민들의 건강(복지)과 삶의 질은 지역균형발전의 핵심적 가치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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