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복지동향 2001 2001-05-10   687

‘아이들에게 준 것보다 받은 것이 더 많아요’

들꽃피는 마을의 조순실 사모를 찾았다. 안산지역에서 남편인 김현수 목사와 함께 노동교회를 맡아하다가 새벽마다 교회에 몰려와 자고 있는 아이들을 거두어 함께 살게 된 것이 들꽃피는 마을의 시작이었다. 94년 처음 남자아이들 6명을 데리고 한 가정을 이루어 교회사택에서 공동체 생활을 시작하였는데, 그 과정이 순탄치는 않았다. 아이들이 늘어나면서 아파트로 옮겼으나 주민들의 항의로 아파트에서 쫓겨났고, 그후 봉고차안과 여인숙을 떠돌면서 유랑생활을 하다가 폐농가를 얻어 애완견을 기르며 함께 살기도 하였고, 수목원에 함께 취업하여 노동공동체로 살기도 하였다. 지금은 전국 각지에 11개의 공동체가정을 이루어 43명의 청소년이 14명의 생활교사와 함께 생활하고 있고, 안산에 들꽃피는 학교를 만들어 학교로 복귀하지 못한 아이들을 생활교사들과 자원봉사자들이 직접 가르치고 있다.

“법적으로는 가정이 있지만 사실상 가정이 없는 아이들이예요. 부모가 이혼하고 아버지쪽에서 살고 있는데 아버지가 지방으로 일을 가시거나 알콜중독인 경우가 많지요. 나중에 엄마나 누나를 찾아서 가는 경우도 있고, 갔다가 적응하지 못하고 다시 오는 경우도 있었어요. 아이가 성격에 약간 문제가 있는 경우 집에서 전화도 바꾸고 완전히 연락을 끊어서 갈 곳이 없는 아이도 있지요. 가정에서 챙겨주지 못하는 아이들은 학교에서도 적응하지 못하게 되고 결국 자기들끼리 떠돌아다니면서 약물중독이 되기 쉽지요.”

들꽃피는 마을에서는 우선 그런 아이들 몇 명을 생활교사와 함께 생활할 수 있도록 집을 얻어주고 학교에 복귀시킬 수 있는 아이는 학교에 복귀시킨다고 했다. 이렇게 가정과 학교가 정상적으로 돌아가게 되면 아이들의 대부분은 심리적으로 안정을 되찾고 약간의 문제행동도 곧 수정이 된다고 한다. 특히 생활교사에 대한 신뢰감이 생기면 아이들은 빠르게 적응해 나간다. 그런데 그 중 일부 아이들은 마음의 상처를 치유하지 못하고 문제행동을 계속해서 생활교사나 다른 아이들을 힘들게 한다. 어려운 과정을 거쳐오면서 아이들이 유사자폐증세를 보이고 그래서 평소에는 말을 잘 하다가도 문제가 생겼을 때에는 입을 딱 다물고 이야기를 하지 않는다. 자신을 콘트롤하지 못하던 한 아이는 시골의 공동체가정에 자원해서 농사일과 학교를 병행하면서 마음의 안정을 찾은 경우도 있고, 생활교사들이 직접 심리상담 공부를 하기도 하고 많은 신경을 쓰지만 몇몇 아이들의 경우 심리상담이나 성장상담전문가들의 도움이 꼭 필요하다고 했다.

“김경임 선생님은 수녀원을 나오시고 이곳 생활교사가 되셨는데 1년 만에 한계를 느끼시고 그만두셨어요. 그리고는 상담학을 공부하시고 다시 오셔서는 너무 잘하고 계셔요.” 옆에 있던 김경임 선생님이 부연설명을 하신다. “아이들에게 가장 부족한 것이 사랑이니까 사랑을 주겠다고 생각해서 1년간 하다가 사랑이 바닥나서 그만두었는데, 지금은 나 자신을 위해서 이곳에 있어요. 상담학을 공부한 후에는 관계설정에 대해서 알게 되었고, 그래서 일방적으로 아이들을 어설프게 이해하려고 하지 않고 구체적으로 대하지요. 나도 감정이 있는 인간으로서 아이들에게 솔직하게 대하고 아이들을 인격체로서 동등하게 대하려고 해요. 100원을 빌려줘도 끝까지 받고 일 분담도 공평하게 분배하지요. 내가 일방적으로 아이들을 거들어주는 것이 아니라 동거인으로서 서로가 떳떳하게 살아가는 거예요. 지금은 아이들에게 문제가 생겨도 힘들지 않고 오히려 탐구심이 생기고 더욱 노력하게 되요. 상담학을 공부한 후에 나 자신이 건강해진 것 같아요. 아이들이 갖고 있는 문제를 함께 해결하는 데도 너무 도움이 되구요. 지금은 아이들을 위해서라기보다 나 자신이 완성된 인간이 되기 위해서 이곳에 있는 것 같아요.”

조순실 사모는 생활교사 선생님들을 너무나 존경한다고 했다. 자신도 직접 생활교사로서 살아왔지만 젊은 나이에(평균 30세 정도임) 상처받은 아이들과 함께 씨름하며 본을 보이며 사는 일이 정말 어려운 일인데도 너무나 잘하고 계시다고 하였다. 그러면서 그들의 앞날에 대한 걱정에 빠뜨리지 않았다. “들꽃피는 마을을 책임지고 있는 입장에서 선생님들의 장래를 많이 걱정하고 있어요. 한 달에 활동비 3-40만원을 드리고 있는데, 그것조차도 선생님들은 아이들을 위해 들어온 후원금을 자신들을 위해서 쓰는 데에 꺼려하는 마음을 갖고 있어요. 그래서 젊은 선생님들 중심으로 음식장사를 한다든지 자립사업을 해보자는 논의도 되고 있는데 쉽지는 않은 일이지요. 선생님들도 나이가 들고 결혼하고, 최근에는 결혼 후에도 공동체생활을 유지하시다가 아이를 출산해서 함께 살게 된 경우도 있어요. 공동체가정이 필요한 만큼 충분히 확보되려면 생활교사들의 생활도 안정이 되어야 하는데, 우선은 장래보장을 위한 사회보험이나 퇴직금 제도라도 만들어졌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고 있어요.”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예전에 비해서 들꽃피는 학교에 학생들이 적어보였다(필자는 조순실 사모와 노동교회 시절부터 소중한 인연을 이어오고 있다). 아이들이 줄었느냐고 물었다. “공동체가정 수는 더 늘어났는데, 아이들이 최근 학교로 많이 복귀해서 들꽃피는 학교에는 아이들이 줄었어요. 좋은 현상이지요. 들꽃피는 학교에 다니는 아이들은 검정고시를 준비하고 있는데 열심히들 공부해요. 지금까지 들꽃피는 마을에 150명 정도의 아이들이 거쳐갔어요. 30% 이상은 가정으로 복귀했고, 독립한 경우도 있고, 계속 공부해야 하거나 독립하기 어려운 경우 자립가정을 만들어 자립할 때까지 한시적으로 지원하지요. 지금까지는 보통 1년 내지 1년 반을 머물렀는데 점점 어린 아이들이 들어오면서 기간이 길어질 것 같아요. 이전에는 가출해서 비행을 하고 그래서 형사나 이웃 등을 통해서 들어왔기 때문에 10대 후반의 큰 아이들이었고 머무는 기간도 짧았는데, 요즘은 경제난으로 가정이 해체되고 갈 곳이 없어진 아이들이 전국의 15개 청소년쉼터를 통해서 들어오는 경우가 늘어나서 연령이 낮아졌고 아이들의 적응도도 높아졌어요.”

오래동안 마음의 상처를 가진 아이들과 함께 씨름하느라 지치지 않는지 물었다. “물론 지칠 때가 있지요. 하지만 전 오히려 아이들 때문에 성숙해졌어요. 몸과 마음이 예전보다 건강해진 것 같아요. 준 것보다 받은 것이 더 많은 것이지요. 세상에는 너무 좋은 분들이 많고 너무 훌륭하신 생활교사들, 후원자들, 자원봉사자들이 이렇게들 찾아와 주셔서 함께 해주시니 저는 저절로 일을 하는 것이에요. 예전에는 가정을 만들고 유지하는 데 힘을 썼다면 이제는 아이들을 어떻게 주체로 세울 것인가에 더욱 신경쓰고 있어요. 수화동아리, 밴드동아리 등 취미활동을 장려하고 무대에 설 기회도 많이 만들어주고 있어요. 세상에 나가 자신있게 살아갈 수 있도록 연습을 하는 것이지요. 또 공동체가정 수가 많아지면서 아이들이 살아가는 규칙도 만들고 있어요. 예를 들면 용돈은 들꽃피는 학교에서 일괄 관리하면서 공동체생활, 학교생활 등의 점수에 따라 용돈을 주고 있어요. 그리고 아르바이트를 하다가 들어오거나 본인이 아르바이트를 원하는 경우가 있는데 가정에 머무르면서 패스트후드점에 나가는 경우도 있고 일하는 곳에 기숙하다가 보름만에 혹은 3개월만에 복귀하는 경우도 있지요. 요즘은 아르바이트도 체험학습으로 인정을 하고 있고, 그곳에서 얻은 수입은 50% 이상을 저축하고 개인적으로는 한달에 10만원 미만에서 사용가능하도록 재정위원회 내규를 만들었어요.” 작지만 중요한 규칙 하나하나에 대한 설명을 들으며 공동체가정은 일시적인 이벤트가 아니라, 생활 그 자체라는 것이 실감되었다.

세상에는 남이 일해놓은 것을 빼앗아 살아가는 사람들이 있고, 남이 이루어놓은 것에 무임승차해서 살아가는 사람들이 있다. 그런 세상이 그나마 유지될 수 있는 것은 남을 위해 열심히 일하는 꿀벌과 같은 사람들이 있기 때문일 것이다. 요즘 민주화와 개혁에 무임승차한 자칭 주류들이 되레 큰소리로 떠드는 것을 보며 가뜩이나 심란해 있던 터에, 소리없이 남을 위해 삶 자체를 내어놓는 그러면서도 자기자신을 위해서 일할 뿐이라고 조심스러워하는 조순실 사모와 생활교사들을 만나서 이야기를 나누는 것은 큰 힘과 위로가 되었다.

저녁에는 후원자모임이 있었다. 대학에 진학한 아이에게 장학금을 대어주는 화가, 아이들의 치아를 무료로 치료해주는 치과의사, 물심양면으로 지원하는 시의원, 들꽃피는 마을이 처음 시작될 때 큰 힘이 되어주었던 목사님, 항상 관심을 갖고 지켜보는 교수 등이 들꽃피는 학교에 모였다. 아이들과 후원자들이 자연스럽게 어울릴 수 있는 기회를 자주 만들자는 제안이 있었고, 가까운 시일내에 체육대회를 갖자는 의견도 모아졌다. 근처에 있는 공동체가정에도 방문해서 아이들과 서로에게 유익한 이야기들을 나누었다. 결국 살아가면서 의미있는 시간은 마음을 나눌 수 있는 사람들과 만나서 눈을 맞추고 웃음을 나누는 것이다.

아이들을 만나고 함께 들꽃피는 학교로 나오는 봉고차안에서 여자아이들 둘이 서로 손을 꼭 잡는 것이 보였다. “아까 그 제일 작은 아이가 초등학생이니?” “예. 6학년이에요.” “너희들이 잘 돌봐줄 거지?” “예!!” 둘이서 목소리 높여 합창을 한다. 이렇게 귀엽고 사랑스러운 아이들이 거리를 떠돌다가 유흥가로 빠진다? 도저히 있어서는 안될 일이었다. 어린 아이 하나를 영접하면 곧 예수를 영접하는 것이고, 어린 아이 하나를 실족케 하면 차라리 연자맷돌을 목에 달리우고 깊은 바다에 빠지는 것이 낫다는 성경말씀이 새삼 두려워지는 저녁이었다.


박주현 / 변호사, 본지 편집위원, 참여연대 사회복지위원, 공동모금회 활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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