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복지동향 2003 2003-07-06   764

환자들의 권리를 향한 첫걸음

환자들이 부담한 헌혈자 혈액검사비는 전액 환급받아야

건강세상 네트워크와 참여연대 등 4개 단체는 지난 6월 24일 서울대병원, 여의도성모병원, 서울아산병원 등 대형 종합병원을 부당 이중청구 및 사기 혐의로 검찰에 고발하였습니다.

지난 1년여 동안 건강세상 네트워크와 한국백혈병환우회는 병원들이 백혈병 및 혈액질환 환자들을 대상으로 혈액검사비를 이중청구한 사례를 적발하고, 유사사례를 지속적으로 접수해 왔습니다. 그 동안 병원은 환자의 알 권리가 제대로 보장받지 못하는 우리의 의료현실 하에서, 정보획득이 취약한 환자에게 정확한 정보를 고지하지 않은 채 환자에게 일방적으로 검사비를 부담시킨 후, 보험공단에 비용을 다시 청구하여 이중으로 착복하였습니다. 당사자인 환자 입장에서 보면 이것은 분명한 “사기”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런 사실이 작년 10월경 백혈병환우회에 의해 적발되면서 서울 모 병원은 몇 명의 환자들이 항의한 후 2년 전, 3년 전의 혈액검사비를 항의한 환자에게는 반환했습니다.

이렇게 내지 않아도 될 돈을 환자들은 근 20여 년간 한사람 당 수십만 원에서부터 많게는 몇 백만 원까지 내왔습니다. 그리고 대부분의 환자들이 이미 이 세상을 떠났고, 많은 사람들은 이런 사실을 모르고 있으며, 안다 하더라도 생명을 위탁해 놓은 병원에 항의할 엄두를 못내는 것이 환자들의 현실입니다.

공공재이면서 약재인 혈액을 환자들이 직접 구하는 현실

이러한 상황이 발생하는 근본적인 원인은 백혈병 환자 및 혈액질환 환자들이 자신들이 수혈 받을 혈액을 직접 구하러 다닌다는 것에 기인합니다. 환자들은 혈소판을 구하기 위해 피눈물을 뿌리며 다니고 있고, 이는 일차적으로 병원의 이윤을 위해 생긴 일인 것입니다.

혈액원에서 공급하는 “성분채집혈소판”(혈액원에서 한사람의 헌혈봉사자에게 채혈하는 혈소판)은 환자가 헌혈자를 구해서 수혈 받는 혈소판과 마찬가지임에도 불구하고 이윤이 한 팩에 만원 여 밖에 안 남는다거나 또 공급이 잘 안 된다는 이유로 그것을 쓰지 않고 수혈 받고 싶으면 헌혈자를 구해오라고 환자들의 등을 떠밉니다

환자들이 구하다구하다 결국 못 구하면 그때 가져다 쓰는 것이 전혈을 분리한 혈액원의 “농축혈소판”입니다. 병원은 아예 혈액원이 성분채집혈소판을 공급해주고 있다는 사실 자체를 환자들에게 언급하지 않습니다. 농축혈소판은 한 단위(6팩 기준)에 약 15만원에 공급받아서 약 25만원정도를 받습니다. 병원이 한번 수혈을 하게 되면 약 10만여 원이 남습니다. 물론 환자 본인 부담금은 그것의 20%입니다만 어떻든 병원은 보험공단에 청구하여 그 정도의 돈을 받게 됩니다. 성분채집혈소판보다 약 10배가 남는 거죠. 그러나 이것보다 더 많이 남는 장사가 바로 환자들을 떠밀어서 직접 공여자를 구해오게 하는 방법입니다. 환자가 공여자를 구해오면 일단 검사비를 받습니다. 병원마다 조금씩 차이는 있지만 약 5만여 원 내외의 돈을 받습니다. 그리고 그 공여자가 합격을 하면 그때서 채혈을 하게 됩니다. 그러면 기계사용료, 키트값, 채혈료, 수혈료 등 해서 약 27~8만원을 받게 됩니다. 여기에는 이미 보험공단에서 정한 혈액검사비가 이미 포함되어 있습니다.

그러기 때문에 채혈을 하고 환자가 수혈을 하면 헌혈한 사람에 대한 검사비는 다시 환자에게 돌려주어야 합니다(병원은 이 돈을 돌려주지 않고 착복한 것입니다). 어떻든 모두 합쳐서 33만 원 가량을 받게 되는 것이죠. 게다가 이미 감가상각이 끝난 자신들의 채혈기와 어차피 있는 인력을 사용해서 하는 것이니 그 이윤이야 더 크겠죠. 혈액원은 병원이 성분채집혈소판을 요구하지 않아도 조용히 두말 않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혈액원은 성분채집혈소판을 병원에 많이 공급하면 할수록 경영악화가 생기기 때문입니다. 병원과 혈액원의 이해가 서로 맞아떨어지는 것입니다.

이 와중에서 환자는 한마디로 죽어나는 것입니다. 잘 아시겠지만 지방에서 올라온 노모가 자기 자식을 살리기 위해 헌혈봉사자들을 구하다구하다 못 구해서 병원복도를 그저 울고 다닙니다. 헌혈 싸이트에 가시면 혈소판 봉사자들을 구하는 글들이 하루에도 수없이 올라옵니다. 그걸 누가 알까요, 그리고 그걸 누가 어루만져 줄 수 있을까요. 건강세상네트워크는 근간에 이런 내용을 여러 경로를 통해 단체나 환자들에게 알려왔습니다. 그리고 병원에게도 이런 문제에 대해 알리고 혈액검사비의 반환을 계속 요구했습니다만 돌아온 것은 하나 같이 “모두 다 돌려줬다”라는 말뿐이었습니다.

병원이 이런방식으로 환자들에게 진료비를 과다 징수시키는 행태는 어제, 오늘의 얘기가 아닙니다. 2003년 2월 부패방지위원회가 보고한 내용에 따르면, 전체 의료기관 중 1% 내외를 표본으로 선정, 현지확인 조사결과 과거 5년 간(1997년∼2001년) 환자부담 과다의 형태로 적발된 부정 청구 규모는 총 부정 청구 금액의 53.82%를 차지, 건강보험의 부정 청구 유형 중 환자부담 과다청구가 주류를 이루고 있다는 것을 입증해 주고 있습니다. 만약, 이러한 환자부담 과다청구액을 전체의료기관으로 확대하여 추정한다면, 피해를 본 당사자인 환자들 모두가 환수 받아야 할 금액이 상당한 수준임은 의심할 여지도 없습니다.

부정청구 방지와 환자들의 알 권리 보장

정부는 이러한 환자들의 정당한 요구와 권리를 더 이상 방관하지 말아야 할 것입니다. 보건복지부는 이번 사례와 관련된 환자들의 민원을 단순히 진료비 환급 차원에서만 접근하지 말고, 다시는 억울한 피해 사례가 재발되지 않기 위한 보다 강력하고 근본적인 제재장치를 마련해야 합니다. 부정청구방지를 위해 처벌강도의 수위를 한층 더 높이고, 이를 위한 관련법 개정을 조속히 시행해야 합니다. 정부는 환자의 알 권리를 보장하기 위한 노력에도 게을리 해서는 안 될 것입니다. 환자들은 정부가 고시하는 가격 및 급여기준의 내용을 확인하기가 용이하지가 않습니다. 환자들이 언제든 손쉬운 방법으로 의료서비스에 대해서 부담해야할 수가 및 급여기준을 알 수 있는 방안을 마련하여, 환자들이 몰라서 피해를 보는 사태가 발생하지 않도록 해야 할 것입니다. 또한, 의료법에 근거한 진료비 세부내역 제공을 의무사항으로만 명시하지 말고, 이를 위반할 경우에 처벌규정도 마련하여, 병원에서 환자의 알 권리가 침해받지 않도록 해야 할 것입니다.

공급자와 환자와의 관계는 수평적, 대등적인 관계가 아닙니다. 아픈 환자입장에선 병원이나 의사 앞에서 항상 ‘착한 환자’ 이어야 합니다. 치료과정에서 알고싶고, 궁금한 사항이 있더라도 쉽게 물어보지 못하고, 그저 순응하고 순종해야만 합니다. 자신의 생명을 병원과 의사에게 답보 한 상태에서 환자가 자신의 권리를 구체적으로 주장하기에는 어려움이 따릅니다. 여기에서 모든 문제가 발생합니다. 알지 못하는 환자, 모든 의료 및 진료비에 관한 정보에서 배제된 환자는 공급자의 요구 및 의도대로 움직일 수밖에 없습니다. 정부가 의료시장에 개입하는 근본적인 이유는 ‘소비자 보호’입니다. 의료시장은 일반시장과 같이 소비자의 주권이 전제되는 시장구조가 아닙니다. 정부개입의 근거는 이러한 비대칭적인 시장 구조에서 소비자가 건강상의 이득을 달성할 수 있도록 정부가 대리인으로서의 역할을 해야 한다는 데 있습니다. 하지만, 현 정부가 이러한 역할을 제대로 하고 있는지 의심스러울 따름입니다.

지금 환자들이 겪는 고통을 그 다음 환자에게 물려주지 않기 위해서는 우리 모두 의 노력이 필요합니다. 왜냐하면, 우리도 언제든 병에 걸릴 수 있는 예비환자이기 때문입니다. 환자나 그 가족들 그리고 봉사자들과 시민단체들이 나서서 병원이나 혈액원이 이런 문제에 대해 눈을 감으면 자꾸 문제제기하고 제도를 개선할 수 있도록 자극을 주어야 합니다. 바로 우리 문제이기 때문입니다. 혈소판 문제는 우리 나라 전체 혈액제도를 개선하는 데 첫걸음이 되는 일입니다. 그 시작을 이제 환자와 시민의 힘으로 해야 합니다.

김준현 / 건강세상네트워크 환자권리부장, jh1102@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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