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행 사회복지시설 수용행위의 위헌성과 개선대책

수용시설제도의 전면적 개혁의 당위성

필자는 지난해 여름 이른바 '양지마을사건'과 관련하여 법률가단체의 구성원으로서 일부 시민사회단체 분들과 함께 시설수용인들의 문제를 접해 본 일이 있다. 그 사건에 관하여 수용인들과의 직접적인 면접조사와 관련자료들의 확인, 그리고 전국적인 시설현황 등에 대한 확인작업을 통해 일부 시설에서 자행되는 수용인들의 인권유린 실태가 얼마나 극심한가를 절감할 수 있었다. 또 이와 같은 인권침해 문제는 단지 비인격적인 특정 시설장을 비난할 수만은 없는, 제도적이고도 구조적인 것임을 깨닫게 되었다. 일부 시설에서 자행되어 온 불법감금과 폭행, 강제노역 문제는 사실 새삼스러운 것이 아니다. 비근한 예로 10여 년 전에 세간에 커다란 관심을 불러일으켰던 부산 형제복지원 사건에서도, 그리고 최근 1년에 한두 번씩 사회문제로 불거졌던 시설관련 사건들에서도 우리들은 수용인의 인권침해 문제를 충분히 확인할 수 있다. 그럼에도, 그 동안 시설의 본질적인 문제는 단 한 번도 제대로 개선되지 못하였다. 왜 그럴까? 그 이유는 이 사회를 주도하고 있는 '대다수의 잘난 우리들'에게 수용인의 인권문제는 '우리들'의 문제가 아닌 '그들'의 문제였고, 어찌 보면 그들은 '그러한 대우를 받아도 괜찮은 존재'였으며, 좀더 심하게 표현하면 '우리들'과 함께하고 싶지 않은,그래서 '보이지 않는 곳에 격리하고 싶은 존재'라는 사회적인 암묵적 동의가 있었기 때문일지 모른다.

우리 사회에서 지난 시절 '인권'은 '강자'에게 부여된 것일 뿐 '약자'에게는 '그림의 떡'이었다. 군사정부의 혹독한 시절을 지나면서 '인권'의 개념이 힘있는 자로부터 점차 '힘없는 자'에게까지 확산되어 가는 것을 제도적인, 사회적인 변화를 통하여 공감하는 오늘을 살아가고 있다. 그럼에도 '시설수용자의 인권'만은 유독 '우리들의 인권'에서 배제할 정도로 우리들은 그들을 애써 외면해 왔다고 하겠다.

'우리들'과 '우리들의 정부', 그리고 정부로부터 사회적 격리업무를 위탁받은 일부 시설운영자들은 헌법과 법률에 아무런 근거도 없이, 심지어 법관의 영장이나 신체구금에 대한 선고조차 없이 '복지'라는 미명하에 '그들'을 붙잡아 '복지시설'에 구금하고 노예처럼 사역시키는 일을 '눈감고' 스스럼없이 '행하여' 왔던 것이다. 그것도 우리의 '민주정부'가 만들어 놓은 행정지침으로 '입에 발린 복지'라는 미명하에 보호대상자로 낙인찍힌 '사회적 약자'들을 제도적으로 '격리'시켜 왔다. 이것이 우리 사회의 천박함을 보여주는 부끄러운 자화상이라고 할 수 있다.

시끌벅적했던 '양지마을사건'도 이제 국민들의 뇌리에서 잊혀지고 있다. 그러나 변한 것이라고는 아무것도 없다. 거리의 '홈리스들'은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이 때때로 강제수용되고 있으며, 또다시 시설수용인의 인권문제는 기억의 저편으로 사라지고 있다. IMF 구제금융시대를 살아가는 요즈음 대량실업사태로 인해 그 누구도 '홈리스'가 되지 않는다는 보장이 없고, 그 누구도 '부랑인'이 되지 않는다는 보장이 없다. '시설수용인의 인권' 문제는 바로 '우리들의 문제'임을 명심해야 한다. '강제적인 수용'이 없도록 하는 제도의 개선이 그렇게도 불가능한 것인지 우리는 정부와 우리들 자신에게 되묻고 그 개선을 요구해야 한다. 그 길만이 우리들에 의하여 자행되어 온 지난날의 시설수용인들의 인권유린 행위에 대한 최소한의 참회가 될 것이며, 이것이야말로 수용시설의 인권침해 문제에 접근하는 출발점이라 할 것이다. 제도로서의 수용의 문제 ― 이것은 전면적으로 개혁되어야 한다.

시설수용행위의 본질적 성격으로서의 인권침해

사회복지 수용시설의 역사성에서 본 인권 문제

연혁적으로 살펴볼 때, 사회복지 수용시설은 역사적으로 봉건체제에서 근대 자본주의로의 이행과정에서 나타난 대규모 부랑하는 노동가능한 빈민(able-bodied poor)을 통제하고 노동력을 착취하기 위한 노역소(workhouse)와, 노동불가능한 빈민을 수용하여 최소한의 처우를 제공해 주는 구빈원(almshouse)이 그 효시가 된다. 결국 이러한 시설들은 거주이전의 자유가 제한된 영국의 입헌군주 국가체제에서 이른바 '정주법'(定住法, Settlement Act)을 위반한 부랑인들을 일정한 지역이나 장소에 구금하여 노동을 강제하는 대신에 최소한의 생존을 제공해 주는 시설이었다. 이러한 제도는 역사적 관점에서 볼 때, 산업사회에 필요한 새로운 생산인력을 충당하는 과정에서 강제화된 무력에 의해 노동계급을 창출시키는 과정이었던 것이며, 오늘날의 시각에서 보면 매우 반인권적이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정신질환자 또는 장애인 등을 수용하는 시설의 경우에도 역사적으로 보면, 사회안전을 위해 이들을 사회로부터 격리시키는 시설에서 출발하여 그 중 치료기능이 발전한 형태가 오늘날의 병·의원제도이고, 치료기능보다 격리 또는 수용보호 측면으로 발전한 형태가 오늘날 사회복지시설로 분류되는 장애인시설, 정신질환자 요양시설 등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20세기 들어 생존권에 대한 사회적인 합의가 확산되면서 자본주의체제에서의 사회적 탈락자나 취약층에 대한 생존권의 보장이라는 차원으로 수용시설에 대한 관점도 변하게 되었다. 따라서 시설에 수용된 사람들의 생존권 보장을 위해 그들의 자유권적 기본권 보장이 기본적 전제가 되는 것이다. '수용'이라는 행위 자체가 보호대상자의 일정한 신체의 자유를 제한하는 것을 내용으로 하는 한, 수용시설에의 입·퇴소를 사법기관 또는 준사법기관이 결정하는 것이 보편적이며, 그렇지 않은 경우에는 보호대상자의 퇴소의 자유 또는 권리를 법적으로 보장하는 것을 내용으로 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한 마디로 현재의 '사회복지시설'의 존재의미는 '생존권의 보장'에 있지 '수용= 격리라는 사회방위'에 있지 않으며, 부득이 생존권 보장을 위해 '수용'이 필요하더라도 각국에서는 헌법이 보장하는 신체의 자유 제한시 요구되는 적법절차의 원리가 철저하게 지켜지는 것이다.

그럼에도, 우리의 수용시설제도는 '자유권 없는 생존'(survival without freedom)이라는 전근대적인 빈민법시대의 논리가 제도적으로, 그리고 현실적으로 지배하고 있다. 이것은 시설을 운영하는 개인이나 단체가 '복지'라는 외피를 둘러쓰고 영리를 추구하려는 의도, 정부 및 사회적 다수의 입장에서 사회방위를 목적으로 특정집단에 속하는 사람들을 격리하려는 경향 등이 중첩적으로 맞물려 사회적 약자인 수용인들에 대한 인권침해가 제도적으로 강요되고 있는 것으로 해석될 수 있다.

수용행위의 내재적 한계로서의 인권침해

현재 정부뿐만 아니라 사회복지계에서조차 시설수용제도가 가지고 있는 "자유권의 일정한 제한을 통한 생존권의 보장"이라는 현실적인 문제에 대한 진지한 검토가 거의 전무한 실정이다. 시설수용제도는 본질적으로 수용이 당사자 개인의 승낙없이 이루어지게 되면, 신체의 자유를 근간으로 하는 기본적인 자유권의 침해라는 문제를 내포한다. 이와 같은 인권침해의 문제는 종류별로 크고 작은 차이가 발생할 수는 있으나, 기본적으로 자신의 의지에 반한 입소의 경우에는 전면적으로 발생하는 문제라 할 수 있고, 자신의 의지에 의한 입소라 해도 퇴소가 자유롭지 않는 한 인권침해의 문제는 여전히 남게 된다.

정신질환자, 장애인, 부랑인 등을 수용하는 시설의 경우에는 사회질서의 유지, 타인의 자유 침해 방지의 이익과 개인의 자유권 보장 문제간의 형평성 문제가 인권적인 측면에서 충분히 논의되고 있는지 반성적으로 접근할 필요가 있다.

우리들은 그간 정신질환자나 부랑인들이 사회의 안정성을 해칠 위험을 가지고 있어 이들로부터 사회를 지키고자 격리시켜야 한다는 근거 없는 편견을 맹신하고 사회방위차원에서 시설수용의 문제를 접근하였다. 더욱 심각한 것은 이와 같은 정신질환자나 부랑인 수용시설뿐 아니라 다른 유형의 사회복지수용시설 역시 정도의 차이는 있으나 수용인의 생존권 보호 및 사회복귀 차원보다 격리 차원의 제도를 운용하고 있는 것으로 분석된다.

따라서 각 근거법에서 정한 복지시설 설치목적의 현란함에도 불구하고 시설의 실제 운용형태가 수용인의 관점에서 '자신의 의사에 반하는 수용'이라고 한다면 그것은 '자유권을 박탈한 노예적 생존의 강요'에 불과할 뿐이며, 이와 같은 현실에서 '인간다운 생존의 보장', '사회복지'는 한낱 허구에 불과하다고 할 것이다.

사회복지시설별 입·퇴소제도 현황과 문제점

시설별 입·퇴소제도 현황

1994년 말 현재 인가 받은 사회복지 수용시설의 총수는 759개, 여기에 수용된 인원은 76,723명이었다. 사회복지시설 중 이용시설을 제외한 수용시설은 크게 8개 분야로 구분해 볼 수 있는데, 이 글에서는 그 중 제도적으로 인권침해의 소지가 큰 분야에 대해서만 살펴보기로 한다.

아동시설의 경우 아동복지법 제12조, 시행령 제2조에 의한 영·육아시설, 아동일시보호시설, 직업보도시설, 교호시설, 자립지원시설로 구분할 수 있다. 여기서 인권침해와 관련하여 제도적으로 검토되어야 할 부분은 요보호아동의 자유의사에 반하여 시·도지사에 의하여 입·퇴소와 관련한 강제처분이 가능한 육아시설, 아동일시보호시설, 직업보도시설, 교호시설 등 네 가지 종류이다.

부랑인선도시설의 경우 사회복지사업법 제2조, 부랑인선도시설 운영규정에 근거를 두고 전국적으로 총 42개소가 있으나 수용인원은 13,370명으로 전체 수용인의 17.4%를 차지하고 있다. 이 시설은 18세 이상을 대상으로 하는 부랑인시설과 아동을 대상으로 하는 부랑아시설로 구분할 수 있다.

정신요양시설의 경우 정신보건법 제3조 제5호, 제10조에 근거를 두고 전국적으로 총 75개의 시설이 있으나 수용인원은 17,944명으로 수용인의 23.4%를 차지하고 있다. 부랑인선도시설과 정신요양시설이야말로 수용인의 의사에 반한 보호조치가 가능하여 인권침해가 가장 첨예하게 발생할 수 있는 시설로서 이른바 '형제복지원사건', '양지마을사건'이 모두 같은 종류의 시설들에서 발생한 사례들이다.

부녀선도보호시설은 '윤락행위등방지법' 제11조에 근거한 것으로 여기서 요보호자는 법 제2조 제2호에서 정한 대로 "윤락행위의 상습이 있는 자와 환경 또는 성행으로 보아 윤락행위를 하게 될 현저한 우려가 있는 자"를 대상으로 한다. 문제가 되는 점은 소년법상의 보호처분과 별개로 법 제9조에서 시·도지사에 의하여 1년의 범위 안에서 선도보호조치를 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는 점이다. 이는 사실상의 강제구금을 수반하는 것으로 1995년 8월 21일 발생한 '경기여자기술학원 방화사건'의 예에서 알 수 있듯이 제도적으로 심각한 인권침해가 발생할 위험이 큰 시설들이다(그러나 이 사건에서 시설장은 업무상과실치사상의 죄명으로 기소되었고, 감금부분에 대하여는 책임을 물은 바 없다).

장애인복지시설은 장애인복지법 제37조에 근거한 것으로 전국적으로 총 160개소, 13,936명으로 전체 수용인의 18.2%를 차지하고 있다. 문제가 되는 점은 제20조 제1항 제3호에 따른 시·도지사, 시장·구청장·군수가 장애인에 대하여 시설입소조치를 할 수 있도록 규정하고 있는데, 이 역시 자유의사에 반하는 시설입소조치 및 퇴소요구의 거부 등 사실상의 구금을 의미하는 것으로서 이러한 문제 때문에 인권침해의 문제가 수시로 발생하는 시설이기도 하다.

행정처분에 의한 수용처분의 위헌, 위법성

헌법상의 신체의 자유에 대한 검토

(1) 헌법 제10조는 모든 국민은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가치를 가지며, 행복을 추구할 권리를 가진다고 규정하고 있다. 이와 같이 이른바 행복추구권은 자유권의 가장 본질적인 권리로서 해석되고 있다. 행복추구권의 본질은 바로 '자유행동권'에 있다는 것이 일관된 헌법재판소의 판례의 입장이며, 이러한 자유행동권의 출발점이 바로 헌법 제12조에서 정한 신체의 자유라고 할 수 있다. 헌법 제12조 제1항은 "모든 국민은 신체의 자유를 가진다. 누구든지 법률에 의하지 아니하고는 체포, 구속, … 을 받지 아니하며, 법률과 적법절차에 의하지 아니하고는 처벌, 보안처분 또는 강제노역을 받지 아니한다"라고 규정하고 있다. 또 제3항은 체포, 구속 … 을 할 때에는 적법한 절차에 따라 검사의 신청에 의하여 법관이 발부한 영장을 제시하여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따라서 국민들의 신체의 자유를 억압하는 그 어떠한 강제처분도 그 명칭 여하를 불문하고 그것이 신체의 자유를 침해하는 것인 한 위헌임이 명백하다(참고로 헌법재판소에서는 법관의 실질적인 선고없이 행하여지는 구사회보호법 제5조 제1항 소정의 '필요적 보호감호처분'은 적법절차원리에 위배한 위헌조항이라고 판시한 바 있다. 89.7.14. 선고 88헌가5,8호 89헌가44호 사건 참조). 따라서 위와 같은 헌법 규정은 "체포, 구속, … 처벌, 보안처분, 강제노역"의 근거가 되는 법률은 정당한 절차에 의하여 제정되어야 하고, 또 실체적으로도 '정당한 법'이 아닌 한 위헌임을 명시하고 있는 것이다. 이와 같은 구사회보호법상의 '필요적보호감호처분'은 헌법에서 정한 신체의 자유에 대한 제한을 할 경우 그와 같은 강제조치는 반드시 '법관의 영장'에 의하도록 하는 '적법절차의 원칙'에 위배된다는 이유로 대표적인 반인권적, 위헌적인 제도로 개선을 요구받아 왔다가 헌법재판소의 위헌결정에 따라 위헌규정의 전면적인 개정을 하게 되었다.

(2) 모든 국민은 생존권적 기본권을 보장받기 위하여 법령에서 정한 각종 사회복지제도상의 보호와 보장을 받을 수 있고, 법령상의 요건을 충족하는 자의 경우 시설에서의 보호를 요청할 수 있는 것은 두말할 나위가 없다. 그러나 보호대상자가 법령상에 그에게 보장된 보호를 거부할 경우 국가와 지방자치단체는 그 보호를 강제할 아무런 헌법적인 권한이나 근거가 없다. 보호대상자들이 '사회복지수용시설'에 입소하여 소정의 보호를 받을 것인가의 여부는 전적인 '자유의사'에 의하여 결정될 것으로서, 만일 이와 같은 '자유의사'에 반하는 일방적인 조치에 의하여 시설이라는 '일정한 지역에 수용'되고, 즉각적인 장소적인 이탈이 제한된다면 이는 곧 헌법 제12조에서 규정하고 있는 신체의 자유를 법관이 발부한 영장에 의하지 아니한 '구금'에 해당한다. 그럼에도 위에서 본 바와 같은 다섯 가지 유형의 수용시설의 종류별로 시·도지사에 의하여 행하여지는 일방적인 보호조치들은 그것이 보호대상자의 자유의사에 의한 것이 아닌 한 보호대상자의 인권이라는 관점에서 볼 때 이는 '강제구금'에 해당한다. 따라서 위와 같이 보호대상자 본인의 자유의사에 반하는 입소조치를 가능하게 하는 내용으로 해석되는 한 각 개별 법률의 근거조항은 위헌임을 면할 수 없다고 하겠다.

시설유형별 검토

부녀선도보호시설, 장애인시설 관계법령의 문제점은 위에서 살펴본 것으로 대체하고 여기서는 대표적인 문제점을 안고 있는 부랑인시설과 정신질환자 시설을 중심으로 살펴본다.

(1) 부랑인 시설

이 부분에 관한 한 부랑인들에 대한 입소조치는 헌법 제12조의 적법절차의 원리까지 살펴볼 필요도 없이 현행 법률상으로 아무런 근거도 없이 '생활보호사업지침', 또는 '부랑인선도시설운영규정'에 의하여 이루어지고 있다. 더구나 법령의 그 어디에도 '부랑인'의 개념정의조차 없어 그 법적 모호성은 말할 것도 없고, 아예 근거법률조차 없이 행정기관에 의하여 자의적으로 이루어지고 있는 것이다. 따라서 현행 부랑인입소 및 자유퇴소제한조치(퇴소심사에 따른 퇴소거부 조치를 포함한다)는 그것이 보호대상자의 의사에 반하는 한 헌법 제12조가 정한 적법절차의 원리 및 신체의 자유에 정면으로 배치되는 명백히 위헌·위법인 처분이라고 하겠다.

(2) 정신질환자 시설

현행 정신보건법 제23조 제3항(자원입원자의 퇴원제한), 제24조 제6항(보호의무자에 의한 입원시 퇴원제한), 제25조(시·도지사에 의한 입원) 규정 등은 '정신질환자'에 대한 '사회방위적 차원'에서의 문제접근의 필요성에도 불구하고, 헌법 제12조에서 정한 적법절차의 원리에 반하여 시·도지사, 보건복지부 또는 지방자치단체 산하에 설치된 '정신보건심의위원회'라는 행정기관으로 하여금 정신질환자에 대한 입·퇴소 관련 강제처분을 가능하게 하고 있는데, 이와 같은 문제점은 정신의료기관이 아닌 '정신요양시설'의 경우에 더욱 심각하여 현실적으로는 그나마 정신보건법에서 정한 입·퇴소 심사마저 유명무실화시킴으로써 '양지마을사건'(그중 '송현원'이 이에 해당함)과 같은 인권의 사각지대를 낳게 하는 가장 중요한 요인이라고 하겠다.

(3) 평 가

이와 같은 정부의 행정입법들은 결국 '수용시설보호'의 관점을 보호대상자에 대한 '복지급부'의 관점에서 보는 것이 아니라 이른바 사회적으로 불필요한 구성원으로 낙인찍힌 사회적 약자들을 '사회방위'적인 차원에서 제도적으로 '격리'시키는 관점을 강조한 것으로서 사회적 약자들에 대하여는 헌법에서 정한 신체의 자유마저 박탈한 채 '다수의 폭력'으로 '위선적인' '빈민법'적인 이데올로기를 강요하고 있다고 하여도 결코 지나치지 않다고 하겠다.

보호대상자에 대한 강제노역, 자유퇴소 등의

제한조치의 위헌성

헌법 제12조에 의하여 강제노역을 가능하게 하는 유일한 처분은 형사처분으로서의 '징역' 이외에는 없다. 따라서 부랑인시설이나 정신요양시설 등에서 행정지침 등을 근거로 '자활사업'이라는 명분으로 시설수용인들에게 의사에 반하는 노동을 강요하는 경우 이는 신체의 자유를 침해하는 위헌적인 처분이며 형법상의 범죄행위라고 할 것이다.

한편, 앞서 살펴본 바와 같은 맥락으로 시설수용인들은 자유의사에 의한 입소가 보장될 뿐 아니라 자유퇴소가 보장된다. 그럼에도 수용시설 관련 훈령과 지침에서 퇴소심사에 관한 조항들을 두고 있는 것은 명백하게 헌법 제12조를 위반한 것으로서 위헌임을 면할 수 없다고 하겠다. 더욱이 양지마을 사건에서 밝혀졌듯이 일부 악덕 시설장의 경우는 시설수용인들의 외부로의 서신교환을 차단하고, 외부와의 전화 통화 등 통신을 차단하는 등 다양한 형태의 범법행위들을 자행하였으며, 시설내의 다양한 폭력, 성폭행, 독방 감금 등 일련의 인권침해 행위들이 드러나고 있는데, 이와 같은 시설에서의 제반 문제점들은 바로 자유로운 퇴소를 제도적으로 차단함으로써 발생한 부산물들이라고 하겠다.

제도 개선 방향

사회복지적인 차원의 제도개선 방향에 대하여는 생략하고 여기서는 인권적인 측면에서의 제도개선 방향만을 소개하기로 한다("구체적인 개선방향과 관련하여," 백종만 외,《사회복지수용시설 수용인의 인권실태와 대책》, 1998.8. 국회인권포럼 제3회 정책심포지움 자료집 pp.18∼21).

입·퇴소 자유의 전면적인 보장과 시설보호수준의

법정화(탈수용시설화)

사회복지시설은 자유권을 억압하는 대신 생존권을 보장해 주는 제도가 아닌, 자유권의 보장을 전제로 한 생존권을 확보해 주는 제도여야 한다. 따라서 원칙적으로 시설보호 법제나 프로그램은 우선적으로 입·퇴소의 전면적인 자유가 제도적으로 보장되어야 한다.

무엇보다도 수용시설에 관한 제도는 자유입소와 자유퇴소가 전면적으로 보장되는 방향으로 즉시 개선되어야 한다. 현행 사회복지시설 중 단순 이용시설이 아닌 '수용시설'의 경우는 요보호대상자에 대한 '신체의 자유를 제약하는 시설의 기준과 내용'을 담고 있다. 먼저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보호대상자의 구금 등 신체의 자유나 기타 자유의사를 저해하는 내용의 각종 행정법률, 지침 및 운용규정 등 관계법령을 전면 폐기해야 한다. 또한 시설의 보호수준을 인간다운 생존과 사회복귀가 가능토록 보호수준을 법정화함과 아울러 대상자의 욕구에 맞는 형태의 '주거 및 관련분야 급부 및 서비스를 일정 기간 동안 제공하는 시설'로 전면적으로 전환할 필요가 있다.

시설수용인들의 경우 사회적 약자들로서 그들의 인권침해를 대변할 수 있는 힘이 없기에 그 동안 비인도적이고 반인권적인 제도 운영실태에 대한 정부의 책임을 회피할 수 있었다고 하겠으나 국가인권위원회의 설치와 그 시행을 앞두고 있는 오늘날 이와 같은 '반인권적인 제도'를 정부 스스로 폐기하지 않는다는 것은 어떠한 명분으로도 정당화될 수 없다.

적법절차의 원리 법제화

그러나 예외적으로 보호대상자의 신체의 자유를 제한하는 강제적인 입·퇴소 관련 제한조치가 필요하다면, 그것은 반드시 적법절차의 원리(법관의 재판 형식에 의한 입소결정)가 완벽하게 보장되는 방향으로 관계법률이 전면적으로 개정되어야 한다. 또 이와 관련된 사법제도 역시 전면적으로 정비되어야 하며, 시설입소자의 절차법적인 권리들이 명시적으로 보장될 뿐 아니라 그들의 인권을 공익적인 차원에서 보호할 수 있는 제도들이 신설되어야 한다. 그 어떠한 경우든 강제노역은 전면적으로 배제되어야 한다. 그리고 이를 감시할 수 있는 인권보장적인 차원에서의 제도가 정비되어야 한다. 이와 같은 제도개선이 없는 한, 한 번 입소하면 퇴소가 거의 불가능한 상태에서의 노예적인 삶을 강요당하는 오늘의 몇몇 시설에서 드러난 인권유린의 문제점은 개선될 수 없을 것이다.

시설의 전문화 및 소규모화

시설수용인의 재활과 사회복귀를 위하여 전문적인 서비스가 전문가에 의해 제공되어야 한다. 실제로 문제가 된 사회복지 시설의 경우, 시설장이 사회복지 비전문가인 경우가 많고 직원도 실질적인 사회복지사가 없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이러한 전문화와 관련하여 수용인의 사회적 기능을 향상시키기 위해서는 시설의 규모를 축소해야 할 필요가 있다. 시설보호가 필요한 대상자들에게 가장 좋은 환경은 시설이 곧 가정과 같은 분위기를 갖는 것이다. 이를 위해서는 소규모의 그룹 홈이 필요한 것이다.

수용시설의 국가 및 지방자치단체 관리, 운영

현행과 같은 강제입·퇴소 절차가 존속하는 한 수용시설은 국·공영시설로 운영되어야 할 것이다.

시설복지의 궁극적인 책임자는 국가이다. 결국 시설보호를 받게 될 국민은 이 사회에서 스스로 자신의 의식주의 전반적인 문제를 전혀 해결할 수 없는 가장 열악한 상태에 놓여 있는 사람들이라고 할 것이고, 이들의 생존을 보장할 궁극적인 책임은 정부에게 있다고 할 것이므로 정상적인 사회생활을 할 수 없거나 부양해 줄 가족이 없는 대상자들, 각종 사회보장제도로부터 배제된 사람들에게 국가가 그들의 가정을 마련해 주는 것이 곧 시설복지인 것이다. 기존의 민간 수용시설은 점진적으로 각종 일시보호시설 또는 이용시설과 재가복지사업이나 지역사회보호사업으로 전문화하도록 유도해야 할 것이다.

이찬진 /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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