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복지동향 2021 2021-05-01   6967

[기획2] 가정폭력처벌법은 가정폭력을 처벌할까?

가정유지ᆞ보호에서 피해자의 인권보장으로 목적조항 개정 필수

손문숙 한국여성의전화

1,072명. 2009년부터 2020년까지 배우자, 애인 등 친밀한 관계 내 남성 파트너에 의한 폭력으로 살해된 여성의 숫자다. 한국여성의전화가 언론에 보도된 살인사건을 분석2)한 결과, 살인미수 및 이에 준하는 위험에 처한 피해자(주변인 포함)까지 포함하면 최소 2,514명, 한 해 평균 210명에 이른다. 언론에 보도된 건수만을 집계한 결과로 보도되지 않은 사건들을 고려하면 이는 최소치에 불과하다. 배우자이고 애인이었던 여성을 살해한 가해자들이 말한 범행 동기3)를 보자.

‘위장 이혼을 안 해줘서’, ‘술을 못 마시게 해서’, ‘술을 마셔서’, ‘잠을 깨워서’, ‘짜증을 내서’ ‘외박을 해서’, ‘명절에 시댁에 가지 않아서’, ‘밥을 달라는 자신의 말에 대답하지 않아서’

‘다른 여자관계를 추궁해서’, ‘현금서비스를 못 받게 해서’, ‘일을 그만두라고 하기 위해’

‘좋아해서’, ‘잘 만나주지 않아서’, ‘헤어지자고 해 서’, ‘동거를 거절해서’, ‘청혼을 거부해서’

‘헤어진 여성이 다른 남자와 함께 있는 모습을 보고’, ‘데이트 비용을 돌려받기 위해’

‘빌린 돈을 갚으라고 재촉해서’, ‘성관계 동영상을 지워달라고 해서’

이런 이유로 최소 1.6일마다 1명의 여성이 목숨을 잃거나 가까스로 살아남았다. 여성 살해는 여성 에 대한 통제와 지배라는 젠더 기반 폭력 (gender-based violence)의 본질을 극단적으로 보여주는 현상이다. 가해자들의 변명을 보라. 가해자들은 젠더 규범을 수행하지 않거나 불성실하 게 수행하는 여성 파트너를 ‘처벌’로 위협함으로써 본인의 지배적인 위치를 유지, 강화한다.4) 그러나 표면적으로 가해자들은 계획적이고 선별적이며 상습적인 폭력행위를 ‘사랑’이나 ‘사회생활의 어려움’ 에 따른 것으로 범죄를 미화하거나, ‘홧김에’, ‘술에 취해’ 우발적으로 한 행동으로 축소한다. ‘친밀성’은 통제라는 폭력의 본질을 가리는 기제로 작동한다.

성차별을 자양분으로 가능했던 여성들에게 가해진 위협과 폭력, 가해자의 변명은 언론 등을 통해 유통되며 다시 성차별을 공고히 한다. 여성들에게는 그런 일이 일어날 수 있다는 가능성만으로도 실제 삶에 한계가 생기고, 남성들에게는 ‘그렇게 해도 된다.’라는 강력한 메시지가 된다. 이런 사건에 대한 흔한 통념들 또한 여기에 일조한다. ‘맞은 여자도 똑같지’, ‘왜 진작 헤어지지 않았어?’… 폭력의 책임을 피해자에게 돌리는 표현은 가해자에게 면죄부가 될 뿐만 아니라, 피해자가 제대로 문제를 제기할 수 없게 하는 원인이 된다. 피해자를 둘러싼 환경이 통념에 지배받고 있다면 당연히 피해자는 문제를 해결하기도, 말하기조차도 어려워진다. 폭력을 대하는 공동체의 태도가 성차별 해결에 매우 중요한 이유다.

강서구에서 가정폭력으로 이혼한 아내를 전남편이 끈질기게 추적해 무참히 살해한 사건 등 누군가 죽거나 죽이거나 하는 ‘큰’일이 발생하고 나서야 정부는 긴급대책을 발표하고 관련 법제도 개선과 피해자 지원 체계 재정비에 나서곤 한다. 그러나 1,072명의 여성은 다시 살아 돌아오지 않는다. 소 잃고 외양간 고치는 격으로 일관해온 정부의 대응은 여성폭력 피해자를 제대로 보호하고 폭력을 예방하는 역할을 성공적으로 하지 못하고 있다. 그 사이 지속적으로 발생하고 있는 친밀한 관계 내 여성폭력은 여성의 생존과 안전을 위협하고 있다.

한국여성의전화가 우리 사회에 39년째 끈질기게 던져온 질문. 과연 우리 사회는 친밀한 관계에서 발생하는 여성폭력으로서 가정폭력 문제를 제대로 이해하고 해결하기 위해 무엇을 해야 하는가. 다양한 공동체 내 활발한 논의와 연대를 고대하며, 가정폭력 근절과 피해자 인권보장을 위해 가정 폭력을 둘러싼 사회의 인식과 문제점을 짚고 관련 법ᆞ제도ᆞ정책 개선 방향을 제시해보고자 한다.

부부폭력 담론에 가려진 ‘성차별에 기인한 여성폭력’

한국여성의전화는 1983년, ‘여성에 대한 폭력’이 개인적인 문제가 아닌 사회적 문제임을 밝히고 이를 해결하기 위한 활동을 위해 창립하였다. 당시 창립취지문을 보면, ‘친밀한 관계에서 발생하는 여성폭력’은 그 ‘관계성’으로 인해 ‘폭력’이 아니거나 ‘개인적인 불운’으로 인식되고 극도의 ‘성차별주의’ 로 인해 가부장적인 사회구조 안에서 더욱 은폐되고 있음을 언급하며, 이는 사회적 문제이며 여성 인권의 문제임을 밝히고 있다. 본회는 문제 해결을 위해 한국 사회 최초로 시작한 ‘여성폭력상담’ 을 통해 수많은 폭력피해 여성들의 목소리를 들어 왔다. 가정폭력, 데이트폭력, 스토킹 등 ‘친밀한 관계’에서 발생하는 여성에 대한 폭력이 피해자의 인권을 침해하고, 안전과 생존을 위협하는 중차대한 범죄임을 사회에 알리고 이를 해결하기 위한 다양한 활동들을 전개해왔다. 본회는 가정폭력이 불평등한 젠더 권력 관계에 기반을 둔 여성에 대한 폭력이라는 점을 드러내기 위해 아내구타, 아내폭력, 아내강간 용어를 전략적으로 사용했다.

그러나 현재 가정폭력관련법, 가정폭력 실태조사등에서는 부부폭력, 상호폭력, 배우자 폭력으로 대신하고 있다. 이 용어들은 가정폭력이 성별과 무관하게 쌍방이 평등한 관계에서 한쪽 배우자에 의해 또는 상호간에 발생하는 문제처럼 보이게 한다. 여성폭력이 불균형한 성별권력과 성차별에 기 인한 문제임을 보이지 않게 함으로써 폭력의 본질과 실태를 제대로 알기 어렵게 한다. 현실에서 가정폭력은 피해자의 대다수가 여성으로, 친밀한 관계에서 발생하는 여성에 대한 폭력의 대표적인 형태이다. 2020년 한 해 동안 한국여성의전화가 진행한 폭력피해상담 94.6%(1,025건)5)가 전ᆞ현 배우자(25.1%), 전ᆞ현 애인, 데이트 상대자 (17.8%), 친족(16.5%)에 의해 발생하였고, 가정 폭력, 성폭력, 데이트폭력, 스토킹 대다수가 혼인ᆞ혈연ᆞ데이트상대 등 친밀한 관계에서 남성이 여성에게 가하는 폭력이었다.

친밀한 관계 내 여성폭력, 다층적ᆞ복합적으로 발생

2020년 한 해 동안 한국여성의전화에서 진행한 초기상담 1,143건을 피해유형별로 중복으로 집계 하였을 때, 가정폭력을 주로 호소한 상담은 42.6%(475건)이었다. 눈에 띄는 점은 여성들이 겪는 폭력이 ‘가정폭력, 성폭력, 데이트폭력, 스토킹’ 등 하나의 유형으로 국한되지 않고 다층적ᆞ복합적으로 발생했다. 가정폭력에서 성폭력을 동반한 사례는 16%, 스토킹을 동반한 사례는 6.3%였다. 데이트폭력에서 성폭력이 있는 경우 53.3%, 스토킹이 함께 발생한 사례는 38.1%였다. 이처럼 교차적이고 중첩적으로 발생하는 여성 폭력을 ‘가정폭력, 성폭력, 데이트폭력, 스토킹’과 같이 분절적으로 구분하는 방식으론 여성폭력 현실을 파악하기에 한계가 있다.

사소화되고 정상화되는 친밀한 관계 내 여성폭력

가정폭력ᆞ데이트폭력ᆞ피해자들을 대상으로 진행된 포커스그룹 인터뷰6)에서 참여자들은 하나같 이 입을 모아 자신이 피해자임을 스스로 인지하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렸다고 답했다. 가족ᆞ 애인 등에게 당한 폭력은 ‘폭력’으로 인식되지 못하고, ‘사랑싸움’, ‘애정표현’, ‘부부갈등’, ‘가정불화’로 치부되며 사소화하고 정상화하는 사회적 분위기 때문이다. 우리 사회 깊숙이 자리하고 있는 불평등한 젠더 규범은 결혼ᆞ 데이트 관계 형성과 유지에 강력한 영향을 미친다. 친밀한 관계 내에서 여성은 이해하고, 돌보고, 수용하는 성 역할을 기대 받는다. 가부장적이고 성차별적인 사회에서 여성 이 기대되는 성역할을 성공적으로 수행하지 않을 때 그 여성은 비판받아 마땅한 존재가 된다. 여성에게 향하는 남성의 폭력은 자연스럽게 훈육으로 평가된다. 이렇게 여성에게 가해지는 폭력은 일상 적인 ‘문화’처럼 사회에 스며든다. 이 과정에서 여성들은 스스로 자신을 비난하고 통제하면서 젠더 규범을 내면화하기도 한다. 여성들은 무엇인가 잘못되었다고 느끼면서도 그 경험을 폭력으로 이름 붙이고 관계를 중단하기는 쉽지 않다. ‘친밀한 관계 내 여성폭력’에서 벗어나기 위한 노력이나 대응이 쉽게 좌절되는 이유는 이에 대한 사회적으로 왜 곡되고 협소한 통념에 기인한다. ‘헤어지면 되는 문제’이기 때문에 피해자의 선택과 의지의 문제로 간주된다. 우리 사회가 친밀한 관계에서 발생하는 폭력을 어떻게 바라보는지 알기에 피해자는 폭력을 인지하더라도 주변에 도움을 청하는 등 대응을 주저하게 될 수밖에 없다. 여성폭력에 대한 사회 인식의 부족은 피해자를 고립시키며 피해를 악화 시키는 주요한 원인이 된다.

주변인, 수사ᆞ재판 기관에 의한 2차 피해7) – 사회 통념 구체적으로 드러내

가정폭력 피해자가 들은 2차 피해의 말들은 우리 사회의 가정폭력에 대한 통념을 더 구체적으로 보 여준다. 가족ᆞ주변인에게 도움을 청했을 때 “때리지는 않지 않나. 이혼해 봤자 좋을게 없다”, “왜 이제와서 그러냐”, “네 남편이 나빠서 그런 것이 아니니 참고 살아라”, “가족이 힘들어지면 너도 힘들지 않겠냐”라며 폭력을 외면ᆞ은폐하려는 사례가 많았다. 또한 “너 때문이다. 네가 오기 전에는 (가족이)행복하고 평화로웠다”, “너만 가만히 있으면 된다”, “왜 잘 살지를 못하냐”며 폭력의 원인을 피해자에게 돌렸다. “남자(남편)한테 지는 것도 필요하다”, “잘 구슬리면 되는데, 너무 뻣뻣하다”며 피해자에게 가정 내 ‘여성의 성역할’을 잘 수행함으로써 폭력을 해결하라고 ‘충고’하기도 하였다. 이처럼 성차별적ᆞ가부장적 인식에 기반을 두어 여성에게 성역할을 강요하는 분위기 속에서 가정폭력이 지속적으로 발생하였다.

가정폭력으로 신고한 피해자에게 경찰이 “잘 해결 하세요. 말로 좋게 해결하세요”, “남편 기분을 상하게 하지 마세요”, “별것도 아닌 일로 그런다”, “그냥 이혼하라”고 성의 없이 말하며 가정폭력을 ‘가정사’나 ‘부부싸움’으로 치부하고 피해자를 탓 하는 사례들이 있었다. 여러 번 신고했으나 신고 를 못 받아주니 다른 경찰서에 신고하라며 “차라리 칼에 찔리세요. 증거가 남게”라며 무시하는 사례는 수사ᆞ사법기관에 의한 2차 피해의 심각성을 보여준다. 경찰이 출동했지만 “우리 집에 아무 일도 없다”는 가해자의 말을 믿고 별다른 조치 없이 돌아가거나, 피해자의 정신과적 병력을 들먹이며 피해자의 말을 의심하기도 했다.

정서적ᆞ경제적 폭력만 있는 경우 도움 요청하기 어려워

사람들은 흔히 신체적ᆞ물리적 행위의 유무와 정도에 따라 폭력의 경중을 판단한다. 그러나 가정 폭력 피해자들은 지속적, 복합적, 중첩적으로 폭력을 경험한다. 고로 폭력 경험을 정서적ᆞ신체적ᆞ경제적ᆞ성적 폭력으로 분리하는 것은 그들에게 크게 의미가 없다고 이야기한다. 피해자들의 경험에서 폭력이란 가해자의 통제권 안에서 절대 도달할 수 없는 가해자의 기준을 맞추도록 억압 당하는 모든 순간이다. 실제 피해자들은 자신을 통제하고 무력화시키며, 인간의 존엄성을 훼손시키는 가해 행동을 모두 ‘같은’ 폭력으로 인식한다. 오히려 폭력의 경중을 나누는 사회적 시선으로 인해 본인의 피해를 검열하기 일쑤다. 실제로 정서적ᆞ경제적 폭력만 있는 경우, 피해자 본인도 폭력으로 인지하기조차 쉽지 않다. 경찰에 신고 하더라도 증명하기 어렵다는 이유로 피해자는 제대로 보호조차 받지 못하는 경우들이 발생한다. 이는 현행 가정폭력 관련법에 규정된 폭력의 정의와 개념 문제와 연결된다.

‘본질’은 사라지고 ‘행위’만 남은 가정폭력8)

한국의 「가정폭력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 (이하 ‘가정폭력처벌법’)과 「가정폭력방지 및 피해 자 보호 등에 관한 법률」(이하 ‘가정폭력보호법’) 에 정의된 ‘가정폭력’과 ‘가정폭력범죄’의 개념은 다르다. ‘가정폭력범죄’는 가정폭력처벌법, ‘가정폭 력’은 가정폭력보호법에서 주로 등장한다. 법에 따르면 ‘가정폭력’은 가정구성원 사이의 신체적, 정신적 또는 재산상 피해를 수반하는 행위를 말한다. 한편 ‘가정폭력범죄’9)는 ‘나열된 형법상 범죄’에 해당하는 죄로 ‘특정 범죄’만 규정되어 있다. 따라서 가정폭력은 ‘행위’에 따라 형법에 규정된 특정 범죄에 부합해야 처벌이 가능하다. 그렇기에 ‘물증’을 증명하기 어려운 정서적, 경제적, 성적 폭력은 ‘형법상 범죄’로 해석되기 어렵다. 따라서 가정 폭력 문제의 본질을 들여다보려는 노력 없이 이루어지는 가정폭력범죄 처벌은 표면에 드러난 몇몇 행위들을 처벌하는 데만 그친다. ‘협박’, ‘모욕’, ‘명예훼손’, ‘학대와 유기’ 등 ‘정서적 폭력’과 관련된 몇몇 범죄가 가정폭력범죄로 정의되어 있으나 이 역시 지속적인 맥락을 가지고 발생하는 폭력을 고려하는 것은 아니며, 입증의 어려움, ‘벌금형’ 수준의 처벌이 이루어지는 등의 한계가 있다. 피해자들이 경험하는 ‘폭력’을 모두 담기에도 한계가 있다. 또한 급변하는 시대 속에서 가해자들의 날로 진화 하는 폭력의 유형을 담기에도 제한적이다.

피해자를 통제해 온 폭력 발생의 맥락과 서사

‘친밀한 관계 내 여성폭력’은 관계를 맺어온 시간 만큼이나 그러한 폭력들이 발생하는 ‘맥락’들이 발생한다. 폭력이 발생하는 ‘맥락’을 통시적으로 바라보고 가해자가 피해자를 어떻게 통제해왔는가에 대한 접근이 있을 때 피해자가 경험한 폭력의 본질에 더욱 가깝게 다가갈 수 있다. 따라서 ‘단편적인 사건/행위’와 피해자의 서사 안에서의 그 사건/행위의 본질은 달라질 수 있다. 가정폭력은 맥락을 가지고 있기에 피해자들은 “너무나 일상적이어서”, “어떤 이야기부터 해야 할지 몰라서” 사법기관에서 요구하는 사건 중심으로 자신의 폭력 경험을 진술하는데 어려움이 있다. 가해행위를 파편화된 ‘행위’로서 규정하고 판단하는 것은 이를 ‘범죄’로 규정하고 가해자를 제대로 처벌하는 것을 방해한다. 가해자의 행위를 사소하거나 범죄가 아닌 것으로 만들기도 하며, 피해자의 방어행위가 쌍방폭력이라는 이름으로 가해자와 똑같은 가해로 해석되기도 한다.

가정유지ᆞ보호에서 피해자의 인권보장으로, 가정폭력처벌법 전면 개정 필수

UN 여성폭력철폐선언은 여성에 대한 폭력을 “공사 모든 영역에서 여성에게 신체적, 성적 또는 심리적 손상이나 괴로움을 주거나 줄 수 있는, 성별에 기반한(gender-based) 폭력 행위, 그리고 그러한 행위를 하겠다는 협박, 강제, 임의적인 강제박탈” 로 정의하고 여성에 대한 폭력이 발생하고 지속되 는 근본적인 원인이 불평등한 성별 위계에 있음을 명확히 하고 있다(UN General Assembly, 1993). 그 범주로 가족 내 폭력을 주요하게 명시한다. UN의 가정폭력에 관한 모범 입법안에서는 가족구성원으로부터 가족 내 여성에게 가해지는 성별에 근거한 모든 신체적, 정신적, 성적 폭력행위라고 규정하면서, 가정폭력을 ‘강력한 여성 억압수단’으로 정의한다. 2019년 12월에 시행된 「여성폭력방지기본법」은 여성폭력방지와 피해자 보호ᆞ 지원에 관한 국가 및 지방자치단체의 책임을 명백히 하고, 여성폭력방지정책의 종합적ᆞ체계적 추진을 위한 기본적인 사항을 규정함으로써 개인의 존엄과 인권 증진에 이바지함을 목적으로 하고 있다. 이 법에서 규정한 ‘여성폭력’의 정의는 성별에 기반한 여성에 대한 폭력으로 신체적ᆞ정신적 안녕과 안전할 수 있는 권리 등을 침해하는 행위로서 관계 법률에서 정하는 바에 따른 가정폭력, 성폭력, 성매매, 성희롱, 지속적 괴롭힘 행위와 그 밖에 친밀한 관계에 의한 폭력, 정보통신망을 이용한 폭력 등을 말한다. 또한 여성폭력방지 및 피해자 보호ᆞ지원에 관하여 다른 법률을 제정하거나 개정할 때에는 이 법의 목적과 기본 이념에 맞도록 하여야 한다고 명시되어 있다.

그러나 현행 가정폭력처벌법 전반을 관통하는 패러다임은 ‘가정 보호 및 유지’이다. 가정폭력처벌법은 제1조(목적) 조항에 분명히 드러나듯, 가정 폭력범죄를 가해자 개인의 ‘성행의 문제’로 규정하고, 다른 범죄와 다르게 ‘형사처벌이 아닌 보호처분’을 통해 ‘가정의 평화와 기능을 회복’하는 것에 방점을 두고 있다. 피해자의 인권보장보다 가정유지ᆞ보호가 중점인 처벌법의 목적 조항은 가정폭력을 ‘심각한 폭력 범죄’가 아니라 여전히 ‘가정 내의 경미한 범죄’로 여기는 법 관점으로 작동하고 실효성 있는 조항의 도입을 가로막고 있다. 가정 폭력은 개인의 존엄과 인권을 침해하는 사회적 범죄로 명확히 규정하고, 가정폭력처벌법은 ‘폭력 가해자와의 가정’을 보호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폭력으로부터 침해받은 가족구성원의 인권’을 보장하기 위해 존재해야 한다. 이를 위해 첫째, 피해자의 안전과 인권보장을 중심으로 목적조항 수정. 둘째, 가해자 격리 및 체포 의무화 등 사법 경찰관의 현장조치 강화. 셋째, 상담조건부 기소유예폐지, 가정보호사건으로의 처리 폐지 또는 제한 등 가정폭력범죄에 대한 형사처벌 원칙 수립. 넷째, 수사ᆞ 재판절차 상 피해자의 안전과 권리보장을 위한 제도 강화 등을 골자로 전면 개정이 필요하다.

가해자에 대한 적극적 체포와 기소

여성폭력 근절은 가해자에 대한 적극적 체포와 기소 정책을 통해 여성폭력이 국가가 묵인하지 않는 심각한 범죄라는 사실을 사회 전체에 각인시키는 것에서부터 출발해야 한다.

가정폭력처벌법은 가정폭력을 처벌할까? 법무부 자료10)에 따르면, 2011년부터 2018년 7월까지의 가정폭력 기소율은 7.1%에 불과하다. 2017년 폭력 범죄 기소율은 25.8%11)인 데 반해 가정폭력 기소율은 9.6%에 그쳤다. 가정폭력 범죄는 사실상 형사 처벌되지 않는다는 것을 의미한다. 가정폭력 처벌법상 검사는 가해자의 성행 등을 고려하여 상담조건부로 기소유예하거나 보호처분을 위해 가정보호사건으로 처리 할 수 있다.이 과정에서 피해자의 안전과 권리를 보장하기 위한 원칙과 절차, 전문성이 담보되지 않은 채 피해자의 ‘혼인관계 유지 의사와 혼인 상태’, ‘처벌 의사’를 기계적으로 판단해 처리하고 있다. 2018년 가정보호사건으로 송치 되어도 아무런 처분도 받지 않는 가해자가 40%나 된다. 보호처분 시에도 대부분은 상담이나(27.0%) 사회봉사가(12.7%) 주요하다. 피해자의 안전을 확보할 수 있는 접근행위금지, 전기통신이용 접근행위금지, 친권행사제한 등의 처분은 미미한 상황이다.12)

이혼과정에서의 피해자의 권리보장

이혼소송 중에 남편에 의해 여성이 살해되거나 생명을 위협받는 사건이 끊임없이 발생하고 있다. 아내의 이혼 요구에 대한 가해자의 보복은 상상을 초월하고 범죄의 양상은 납치, 감금, 폭행, 방화살인 등에 이르며 매우 심각하다. 가정폭력 피해여성이 이혼소송을 시작하게 되면 가해남편의 분노는 극에 달하며 결국 피해자는 집을 나와 피신하게 된다. 간신히 폭력으로부터 탈출하여 이혼소송을 진행하는 과정에서도 가정폭력 범죄의 특수성은 고려되지 않아 피해자에 대한 보호는커녕 다시 폭력 상황으로 내모는 과정이 연속된다. 결국 피해자에게는 이혼과정 또한 생존을 건 현장이 될 수밖에 없다. 그러나 법원에서는 가정폭력으로 인한 이혼과정 중인데도 가정폭력범죄의 특성을 간과한 채 가해자에 대한 자녀면접교섭권, 부부상담 명령을 내리고 있다. 이로 인해 쉼터 등에 피신해있는 여성과 자녀들은 별다른 보호책 없이 가해자를 만나게 되며 비공개시설인 쉼터와 비밀전학을 한 학교 보육 시설이 노출되면서 폭력피해의 위험은 증폭된다. 면접교섭권이나 부모교육, 부부상담 명령 등을 통해 가해자를 만나게 하는 것은 이미 오랜 기간 폭력을 당해온 피해 여성과 자녀들에게 법의 이름으로 가하는 2차 폭력이라고 할 수 있다. 이혼 당사자의 가정폭력 피해와 추가 피해 가능성을 면밀히 살펴 피해자의 신변안전 및 권리 확보를 최우선 원칙으로 삼도록 이혼 관련 국가의 사법 행정처리 전반의 개선이 필요하다. 가정폭력에 의한 가정보호사건은 다른 형사사건보다 우선하여 신속히 처리하도록 법에 규정되어 있다. 그러나 가정폭력을 원인으로 하는 이혼 등 가사소송에는 이러한 특례가 없어 가해자에 의한 스토킹 및 이별범죄의 위험에 장기적으로 노출된다. 더구나 부부상담으로 인해 소송 기간이 2~3개월 더 연장 되면서 하루빨리 피신 생활을 끝내고 사회에 복귀 하길 원하는 피해자들의 자립에 큰 걸림돌로 작용 하고 있다.

가정폭력 피해자에 대한 통합적 자립지원

가정폭력 피해자 지원은 가정폭력보호법에 규정된 상담소, 보호시설(이하 ‘쉼터’) 등을 중심으로 이 루어지고 있다. 가정폭력 피해자의 지원 체계는 쉼터에 집중되어 있으며 쉼터는 가정폭력 피해자가 가해자의 추적을 피해 안전하게 자립을 준비하는 곳이다. 그러나 쉼터를 간다는 것은 폭력이 발생하는 공간, 즉 ‘집’을 떠나서 다른 곳을 가야 한다는 것을 의미하고 이는 폭력의 책임이 있는 가해자가 아닌 피해자가 자신의 일상을 두고 떠나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는 1987년 한국 사회 최초로 쉼터가 만들어진 이후 30여 년이 지난 지금도 마찬가지이다. 가정폭력피해자 보호시설(이하 ‘쉼터’) 입소자 중에는 노출로 인한 위험의 정도가 낮거나 가해자가 찾을 가능성이 희박한 피해 여성도 있다. 그러나 현재 모든 쉼터가 비공개로 운영되고 있으며, 노출 방지를 위해 매우 엄격한 내부운영 원칙들을 적용하고 있다. 일상생활에 필수적인 신용카드, 통신기기(핸드폰, 인터넷 등), 의료기관 이용, 4대 보험이 가입되는 경제활동 등이 제한되어 피해자의 치유와 자립에 현저한 제약이 발생한다. 이런 이유로 쉼터 입소를 포기하게 되어 쉼터에서 제공하는 각종 지원제도에 접근하는 것이 어려워진다.

쉼터의 비공개 운영으로 인한 어려움이 해소된다 해도 가정폭력 피해자의 자립을 위해서 해결되어야 할 과제는 여전히 산재해있다. 자립 지원은 대부분 쉼터 입ᆞ퇴소자를 중심으로 이루어지고 있기 때문이다.13) 쉼터에 입소하지 않은 가정폭력 피해자라도 주거지원, 직업훈련, 자녀돌봄 등 충분히 가정폭력 피해자를 위한 자립 지원제도에 접근할 수 있어야 한다. 사회적 자원이나 보편적인 복지 서비스를 이용할 때도 가해자의 스토킹으로 신변노출 위험을 신경써야 하는 점 등 가정폭력 피해자의 특성을 고려한 조치를 받을 수 있어야 한다. 또한, 주변인에게 가정폭력 피해를 드러내기 어려운 피해자들이 서로 지지할 수 있는 네트워크에 쉽게 접근할 수 있어야 한다. 이처럼 가정폭력 피해자의 자립은 정서적ᆞ경제적ᆞ사회적 지원과 공동체의 지지가 통합적으로 이루어질 때 가능하나 지금은 지원제도를 찾는 것부터 피해자 개인과 개별 지원기관의 역량과 노력에 의존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에 피해 여성을 단일화된 ‘보호’ 대상으로 바라보고 ‘조심’하고 ‘단속’할 것을 요구하는 정책에서 탈피하여 피해자가 일상을 살아가며 폭력적인 관계를 중단하고 삶의 주체성을 찾아가는 과정을 지원할 수 있는 다양한 여성의 삶을 고려한 종합적이고 통합적인 가정폭력 피해자 지원 정책이 요구된다.

다양한 형태의 가족의 모습 상상해야

가정폭력처벌법은 제2조에서 가정폭력의 발생 관계를 가정구성원으로 한정하고, 가정구성원을 “배 우자(또는 배우자였던 사람), 자기 또는 배우자 와 직계존비속관계에 있거나 있었던 사람, 계부모 와 자녀의 관계 또는 적모와 서자의 관계에 있거나 있었던 사람, 동거하는 친족”으로 정의한다. 이러 한 이성애 기반 혼인중심, 혈족 및 친족중심의 관계 정의로 인해 현대의 다양한 가족형태 및 친밀한 관계 내의 폭력은 가정폭력처벌법의 사각지대에 놓인다. 한국사회의 가족형태 및 가치관의 변화는 1인 가구, 비혼 및 비혼 동거, 이혼ᆞ사별ᆞ재혼 증가(통계청 인구총조사, 2020)에 따른 이성애 기반 혼인주의 및 혈연주의의 가족변동으로 대표된다. 이러한 변화 최근에 갑자기 발생한 일시적 변동이 아닌, 1990년대부터 약 30년간의 지속적이고 꾸준한 변화이며, 이는 그동안 정상가족 이데올로기에 기반하여 당연시 여겨지던 핵가족 모델 규범의 붕괴를 의미한다. 동시에, 가족의 결성과 해체, 재구성 등의 유동적 생애모델이 오히려 통계적 수치에 따라 ‘정상’적 가족 모델로 인식될 수 있음을 의미하기도 한다.14) 이성애 중심의 혼인과 혈연으로 맺어진, 즉 부부와 자녀로 구성된 가족만이 ‘정상가족’이며, 남성이 생계부양자라는 가족 정책의 전제는 더는 유효하지 않으며 오히려 차별을 조장한다. 전통적인 ‘혼인’과 ‘혈연’에 의한 가 족 구성원만이 아닌 동성혼, 친족/혼인 관계 이외의 동거 등 다양한 형태로 존재하는 ‘가족’의 모습을 상상할 필요가 있다. ‘가정구성원’의 재규정은 피해자 지원 및 권리보장을 확대할 수 있다는 점에서 기대된다. 생활동반자법 제정을 통한 피해자 지원범위 확대가 좋은 예가 될 수 있다. 그러나 현행법의 한계를 그대로 담보한 채 ‘대상’만을 확대하는 것은 우려가 있어 전면적인 법 개정이 반드시 선행되어야 할 것이다.

강력한 성평등 정책 실시

성차별은 여성에 대한 폭력의 원인이자 그 결과이다. 따라서 여성폭력 근절 정책은 성평등정책에서 출발해야 한다. 여성가족부가 있지만 한 개 부처에 주어진 권한과 자원의 한계를 고려할 때 국가의 성평등정책을 실질적으로 총괄 추진할 수 있도록 기구가 필요하다. 현행 가정폭력, 성폭력, 성매매 예방교육 등은 정규 교육과정이 아니고 단발성 교육에 그쳐 성평등 의식과 일상에서의 감수성을 지속적으로 기르기에는 한계가 있다. 성평등과 인권을 공교육의 정규과정으로 신설해야 한다. 가정폭력 및 친밀한 관계 내 폭력의 심각성과 다양한 관계에 대한 인식을 위한 아동ᆞ 청소년 의무교육 과정이 필요하다. 더불어 여성, 성소수자, 장애인, 이주민 등 사회적 소수자에 대한 차별을 규제하고 차별로부터 구제하여 실질적으로 평등을 실현하기 위한 기본법으로서의 차별금지법이 제정되어야 한다. 사회적으로 성평등ᆞ 인권감수성을 높일 수 있는 다양한 교육 및 활동이 활발히 전개되는 것 또한 필요하다. 개개인들의 변화를 위한 일상의 실천과 반격들이 만들어지고, 믿을 수 있는 공동체가 형성되고, 진정한 예방이 가능해질 수 있을 것이다.


1) 2021 가정폭력 없는 평화의 달 캠페인 슬로건. 1997년 가정폭력방지법 제정 후 한국여성의전화와 전국 25개 지부는 매월 5월을 ‘가정 폭력 없는 평화의 달’로 선포, 가정폭력범죄에 대한 처벌과 예방을위한 캠페인 진행 http://hotline.or.kr/may4women/

2) 2020 분노의 게이지 – ‘친밀한 관계’에 있는 남성에게 살해당한 여 성 통계. 한국여성의전화가 매년 언론 보도된 사건 집계, 분석 발표.

http://hotline.or.kr/board_statistics/69738

3) 분노의 게이지 분석 보고서 분석 내용 인용

4) 분노의 게이지 10주년 포럼 ‘친밀한 파트너에 의한 여성 살해’ 발제 중 ‘분노의 게이지 10년 성과와 과제’(송란희, 2019)

5) 초기상담 1,143건 중 폭력피해가 없는 기타상담과 성별을 파악하기 어려운 기타상담 59건 제외, 1,084건이 분석 대상

6) 2020 한국여성의전화 여성폭력 피해자 포커스그룹 인터뷰(FGI), 2020년 8월부터 9월까지 총 4회에 걸쳐 가정폭력피해자(혼인관계, 혈연관계) 및 데이트폭력 피해자(성인, 10대) 총 10명을 대상으로 그룹별로 인터뷰를 진행하였음

7) 2020 한국여성의전화 여성인권상담소 상담통계(2021)

8) 본 글의 4~8p 내용은 한국여성의전화가 주최한 친밀한 관계 내 여 성폭력 법ᆞ제도 개선 토론회 중 <당사자들이 목소리를 통해 본 ‘친 밀한 관계 내 여성폭력’ 관련 입법 과제 및 방향>(최선혜, 2020) 발제문의 내용을 재구성하여 작성됨

9) “가정폭력범죄”란 형법상 죄목 해당하는 죄로 정의. 형법 제2편 제25장~42장, 상해, 폭행, 유기, 학대, 체포, 감금, 협박, 강간, 유사 강간, 강제추행), 준강간, 준강제추행, 강간 등 상해ᆞ치상, 강간 등 살인ᆞ치사, 미성년자 등에 대한 간음 및 추행, 명예훼손, 모욕, 주 거ᆞ신체 수색, 강요, 공갈, 재물손괴 등

10)  법무부, 정춘숙 의원실 제공 자료(2018년 7월): 2011~2018년 7 월까지 가정폭력사범 접수 및 처리현황

11)  e-나라지표, 검찰청 「범죄분석통계」 분석(2020. 1. 6.)

12)  대법원, 「2019 사법연감」(2019)

13)  여성가족부, 가정폭력 피해자 자립역량강화 방안 연구(2019)

14)  친밀한 관계 내 여성폭력 법ᆞ제도 개선 토론회 발제문 중 <가정폭력 처벌법 및 방지법 개정의 방향>(유화정, 2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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