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 한국사회에서 도시빈곤의 추이와 특성 (표빠짐)

우리 사회에서는 그동안 산업화와 도시화가 빠른 속도로 이루어지면서, 도시빈곤이 급속히 형성되다가 빠른 속도로 해체되는 상반된 양상을 함께 볼 수 있었다. 특히 최근의 외환위기로 빈곤이 폭넓게 확산되고 빈곤 감소 추세가 역전되면서, 그 향후 추세를 전망하기가 더욱 어려운 실정이다. 따라서 현재의 빈곤문제를 어떻게 인식하고, 또 앞으로 어떠한 빈곤해소 전략을 수립해야 할 것인지에 대해 논란이 분분하다. 이러한 과제를 본격적으로 다루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먼저 한국 현대사에서 빈곤문제가 어떠한 양상으로 전개되어 왔는가를 살펴볼 필요가 있다.

도시빈민의 역사적 형성

1960년대 이전 도시빈민의 원초적 형성

도시화 수준이 낮은 전통사회에서도 도시빈민은 존재했다. 그러나 20세기 이후 도시로 인구가 급속히 집중되면서, 도시빈곤은 사회문제의 관건으로 자리잡았다. 특히 일제의 식민지 수탈로 농촌을 떠날 수밖에 없었던 영세빈농의 일부가 도시로 흘러들어 형성한 '토막민'은 근대적 도시빈민의 원형을 이루었다. 그뒤 식민지 해방을 계기로 대거 귀국한 해외이주 한인과 한국전쟁으로 월남한 북한주민들 가운데 상당수가 도시로 몰리면서, 1950년대에 도시빈곤 문제가 심각한 사회문제로 등장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이 당시에는 국민 대다수가 빈곤선상에 놓여 있었고, 도시빈민들도 급격한 사회변동 과정에서 일시적으로 빈곤상황에 처했다는 점에서, 당시의 도시빈곤은 '보편적 빈곤'이자 '일과성 빈곤'의 성격을 띠었다고 할 수 있다.

1960∼1970년대 도시빈민의 구조적 형성

그러다가 1960년대 산업화가 본격적으로 추진되어 이농민이 대거 도시로 유입하면서, 농촌이 도시빈민의 유수지로 기능하기 시작했다. 이 당시의 이농은 주로 영세소농들이 가족단위로 도시로 이주하는 형태를 취했기 때문에, 학력도 낮고 기술도 없는 대다수의 중장년층 이농민 가구주들은 근대적 산업부문에 직접 취업하지 못한 채 영세상업, 행상·노점상, 일용노동 등의 '비공식 부문'에 취업하면서 도시빈민의 생활을 경험해야만 했다. 그러나 지속적인 고도성장으로 소득수준이 전반적으로 향상되고 고용기회도 늘어나면서, 절대적 빈곤의 문제는 서서히 완화되는 양상을 보여주었다.

1980∼1990년대 도시빈민의 구조적 재생산

그러나 1980년대 중반 이후 농촌인구의 절대적 감소로 이농인구가 줄어들 뿐 아니라 그 형태도 청년층의 단신이농으로 바뀌었다. 한편 생산의 자동화·합리화 등으로 도시의 노동력 수요구조가 바뀌어 여기서 탈락한 하위노동자층이 늘어나면서, 도시빈민은 점차 젊은 이농민과 도시 내 빈곤가구의 자녀들로 충원되는 새로운 양상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이러한 일련의 사실은 도시빈민이 더이상 '도시 속의 농민'(peasants in cities)이 아니며, 도시내에서 빈곤이 세대간 계승 형태를 띠고 구조적으로 재생산되고 있음을 보여준다. 그 와중에도 쉼없는 고도성장으로 극빈층의 비중이 격감하는 등 절대적 빈곤의 문제는 크게 완화되었지만, 재벌 중심의 경제성장, 중산층 위주의 사회정책 등으로 사회·경제적으로 소외된 도시빈민들의 상대적 빈곤의 문제는 거의 개선되지 못했다(〈표 1〉참조).

최근의 경제위기와 도시빈곤

그런데 최근의 외환위기로 일자리를 잃고 소득이 감소된 가구가 늘면서, 중간층의 빈곤층으로의 하강이동이 증가하는 한편 도시빈민의 생활도 더욱 어려워지고 있다. 특히 빈약한 사회적 안전망마저 제구실을 하지 못하는 까닭에, 도시빈민들은 가족해체, 자살 및 범죄충동 등과 같은 반사회적 양상마저 보이기 시작하고 있다. 게다가 더 큰 문제는 이러한 경제위기가 해소되더라도 향후 고도성장에 따른 저실업 상황이 재현되기 어렵다는 점에서, 절대빈곤층의 적체, 상대적 빈곤감의 확산, 빈곤문화의 정착 등과 같은 도시빈곤 문제가 심화될 것으로 전망된다는 사실이다.

〈표 1〉도시빈곤율의 추이 : 1967∼1998년

(단위 : %)

1) 절대적 빈곤 : 1991년 기준 1인당 월평균 소비지출이 10만원 이하인 가구원 및 가구의 비율

2) 상대적 빈곤 : 도시가구 평균 가계지출의 50% 이하인 가구원 및 가구의 비율.

* 자료 : 통계청, 각년도,《도시가계연보》.

도시빈민의 생활상

도시빈민의 경제활동

도시빈민은 교육·훈련이 부족하고 산업재해, 고령 등으로 정상적인 노동력을 발휘하기 어려운 까닭에, 미숙련 임시직이나 영세자영업과 같이 고용상태가 불안정하고 소득이 낮은 업종에 주로 취업했다. 가구주 1인의 경제활동만으로 생계를 꾸려가기 어렵기 때문에, 배우자나 자녀들이 경제활동에 참여해 부족한 소득을 충당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러나 취업가구원이 가구주에 비해 소득도 낮고 고용상태도 더 불안하기 때문에, 보조수입원의 역할을 담당하는 데 그쳤다. 그 결과 가구원의 취업을 통해 빈곤을 타개하는 것은 기대하기 어려운 실정이다. 따라서 이들은 빈곤상황에 적응하며 생계를 꾸려가기 위해 식료품 등 생필품을 제외한 사회·문화 활동 등과 관련된 각종 지출을 최소한으로 줄이려는 생활태도를 보여주었다.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 TV, 냉장고, 전화, 세탁기 등과 같은 내구성 생활용품의 보유가 급격히 늘어나는 등 생활수준이 향상되어, 그동안 절대적 빈곤을 서서히 탈피해왔음을 보여준다.

도시빈민의 주거생활

도시빈민은 불완전 취업과 저소득으로 정상적인 주택에 안정적으로 거주하지 못하는 '주거빈곤' 상황에 있다. 물론 그동안 생활수준 향상과 재개발정책 등을 통해 주택형태가 움막집, 토굴에서 판잣집을 거쳐 블록집, 영구임대아파트로 바뀌고, 단칸방 거주 가구비율이 줄고 주거면적이 늘어났으며, 화장실, 상하수도시설 등도 꾸준히 개선되는 등 물리적 주거환경이 향상되어 왔다. 그러나 자가소유 비율이 지속적으로 줄어들고, 정부의 대대적인 철거·재개발정책으로 저렴주택 재고가 급속히 감소되어 주거비 부담과 주거불안이 커지는 등 주거빈곤은 오히려 더욱 심화되었다.

도시빈곤의 한국적 특수성

'희망의 빈곤'에서 '절망의 빈곤'으로?

서구나 다른 제3세계 국가들과 달리 한국의 도시빈민은 취업욕구, 자녀교육열이 높고 빈곤을 탈하려는 욕구와 계층상승의 적극적인 의욕을 지니고 있고, 가족구성이나 생활태도에서 결코 '빈곤문화'에 찌들어 있지 않다. 이러한 점에서 지금까지의 한국의 도시빈곤은 '희망의 빈곤'이라고 볼 수 있다. 이는 식민지 해방, 농지개혁, 한국전쟁 등과 같은 급격한 사회변동으로 계층이동의 기회가 폭넓게 열려 있었고, 도시화와 산업화가 병행되어 대규모 이농민에 대한 일자리 창출이 원활히 이루어졌기 때문이다. 그러나 사회구조가 안정되면서 계층이동의 통로가 좁아지고, 지속적인 고도성장을 기대하기 어려워지면서 빈곤상황에 적체된 도시빈민이 늘어나고 '빈곤문화'의 조짐이 나타나고 있다. 따라서 이들이 '절망의 빈곤' 상황으로 전락하리라는 우려를 자아내고 있다.

도시기반시설의 상대적 부족으로 인한 빈곤의 심화

서구의 경우 점진적인 도시화 과정에서 도시의 노동력, 일자리 및 도시기반시설이 순조롭게 공급되었다. 반면 다른 제3세계 국가에서는 도시인구의 급팽창으로 일자리와 도시기반시설의 부족 문제가 모두 심각한 실정이다. 이와 달리 한국에서는 도로·주택·환경시설·주민휴식공간 등의 도시기반시설이 꾸준히 공급되어 도시에서의 생활환경이 개선되고 삶의 질이 향상되었다. 그러나 도시빈민에게는 이들 시설이 충분히 공급되지 못하였다. 도시기반시설의 상대적 부족으로 인해 이들의 빈곤 상황이 더욱 가중되고 상대적 박탈감도 심화되었다.

공공복지의 미성숙과 자조적 복지체제의 확산

서구사회에서는 빈부격차로 인한 사회적 갈등을 완화하기 위해 사회복지체제를 정비해서 빈곤층을 보호해 왔고, 일부 제3세계 국가에서도 사회적 약자에 대한 초보적인 사회복지제도가 시행된 바 있다. 그러나 한국에서는 고도성장으로 절대빈곤층이 빠른 속도로 감소한 까닭에, 사회적 차원의 빈곤구제가 불필요하다는 인식이 확산되어, 공공부문의 사회적 안전망이 체계적으로 마련되지 못했다. 따라서 도시빈민이 개별적으로 빈곤상황에 대처하기 위한 '자조적 복지체제'를 형성하는 '복지후진국' 상태를 면치 못하고 있다. 그러나 최근의 외환위기에서와 같이 중산층의 붕괴로 도시빈곤층이 확대되고 빈곤이 심화되는 상황에서는 자조적 복지만으로 대처하기 어렵다. 때문에 공공복지의 체계화가 더욱 시급하다.

맺음말

지난 반세기 동안 한국사회의 도시빈민은 엄청난 변화를 겪어왔다. 즉 도시화·산업화가 급격히 진행되는 가운데 절대빈곤의 상태에서 서서히 벗어났으며 그 가운데 일부는 빈곤에서 탈출하기도 하였다. 이러한 변화를 겪으면서 이들은 나름의 독특한 특성을 갖춰갔다. 즉 '절망의 빈곤' 문화에 찌들기보다는 가난에서 벗어나 잘 살 수 있다는 낙관적 태도를 견지하는 '희망의 빈곤' 문화를 만들어왔다. 또 일자리 공급은 비교적 원활했지만 도시기반시설이 제대로 공급되지 못해 일상생활에서의 어려움 뿐 아니라 별도의 사회경제적 비용을 부담해야 하는 '상대적 과소도시화'의 문제상황에 봉착해 왔다. 빈민층에 대한 사회적 안전망이 제대로 갖춰지지 못한 까닭에, 도시빈민 스스로 생존을 위한 자구책으로 자조적 복지체제를 갖춰 왔다.

도시빈곤의 이러한 특수성은 급속한 도시화와 이에 보조를 맞춘 장기간의 고도성장이 병행된 데 따른 것이다. 그러나 이제는 이농인구의 감소에 따른 도시화 속도의 변화, 한국경제의 저성장 단계로의 이행 등 사회·경제적 구조가 변하는 조짐이 나타나고 있다. 따라서 도시빈민들의 위와 같은 특성들은 소멸되거나 새롭게 변모될 것이다.

장세훈 / 국회도서관 입법조사연구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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