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복지동향 2002 2002-08-10   1170

장애인의 편의는 모든 이의 편의

장애인편의시설 평가와 과제

생명을 담보로 한 외출

작년 1월 지하철 4호선 오이도 역에서 설을 쇠기 위해 아들집에 가려던 70대 노부부가 장애인용 리프트를 타고 1층 승강장으로 내려가다가 줄이 끊어지면서 할머니(지체 3급)는 사망하고 남편은 중상을 입은 사건이 있었다. 그리고 지난 5월에는 1급 지체장애인 윤모씨가 지하철 5호선 발산역 1번 출구에서 장애인용 리프트를 타고 계단을 올라간 뒤 리프트에서 내리다 전동 휠체어와 함께 계단으로 굴러 떨어져 사망하는 일이 벌어졌다. 이 두 사건은 공통적으로 지하철에서 발생된 사건으로 우리 나라 장애인 편의시설의 현주소를 잘 보여주는 대표적인 사례이다.

장애인에게 편의시설은 진정한 의미의 사회참여와 통합을 이룰 수 있는 근간이 된다. 물리적 환경이 장애인이 생활하기에 적합하게 조성되어 있지 않다면 이는 사회통합(social integration)을 가로막는 가장 직접적이고 기본적인 장벽이 될 수 있다. 장애인복지법 개정(1989년) 이후 우리 사회 장애인들의 편의증진을 위해 정부에서는 본격적으로 여러 가지 시책을 수행해왔다. 대표적으로 도로나 공공건물의 턱낮추기, 경사로 설치, 음향신호기, 점자블럭, 전용 화장실 등을 지속적으로 확충해 왔다. 그리고 매년 이 시설들에 대해서는 설치 여부를 조사, 집계하여 공식적인 설치율을 발표해 왔다. 2001년 말 현재 이들 시설의 설치율은 96.1%에 이른다. 이 수치만 놓고 본다면 우리 나라는 장애인이 생활하는데 있어서 최소한 구청이나 경찰서, 관공서, 각급 학교, 병원 등 공공시설에서는 거의 불편함이 없이 생활하고 있어야만 한다.

그렇지만 현실은 어떠한가. 지하철에서 휠체어 리프트는 왜 사고가 나고, 장애를 가진 학생이 교육을 받을 수 있게 해달라고 학교측에 소송을 제기하고, 투표를 하고 싶어도 2층에 투표소가 설치되어 국민으로서의 기본권 마저 포기하거나 우리도 버스를 타고 싶다고 외치고 있는가?

편의증진법과 시설설치

[장애인 노인 임산부 등의 편의증진보장에 관한 법률](이하 편의증진법)은 당초 장애인과 노인, 임산부 등이 다른 사람의 도움 없이 안전하고 편리하게 시설 및 설비를 이용하고 정보에 접근하도록 보장함으로써 사회활동 참여와 복지증진을 목적으로 1997년 제정되어 이듬해부터 시행된 법이다. 이 법이 시행된 지 5년째에 접어들고 있고 외형적으로는 이러한 시설들이 확충되고 있지만, 장애인들은 집밖 활동이나 대중교통을 이용하는데 늘 불안하기만 하다. 결과적으로 이 법은 기존의 건설교통부, 행정자치부 등 각 소관 부처별로 분산되어 있던 규정들을 장애인을 주 대상으로 하여 편의시설을 종합적으로 정리한 법률이라는 점에서는 의의가 있지만 법의 본래 취지를 제대로 달성하지 못하고 있다고 하겠다.

이와 같이 편의증진법이 시행되고 있고 공식적인 편의시설 설치율도 매우 높지만 문제는 바르게 설치되어 있지 않거나 이용이 불가능하게 설치된 사례가 많다는 점이다. 특히 이동상의 연계를 고려하지 못한 시설이나 설비들은 무용지물이 되고 만다. 2001년도 조사(장애인편의시설촉진시민연대)에 의하면 서울시 공중화장실의 편의시설 설치율은 100%이지만 이 가운데 제대로 바르게 설치된 편의시설은 49.4%로 파악되고 있다. 점자블럭에 있어서도 비규격품이 난무하여 시각장애인의 보행에 오히려 방해가 되는 경우도 발생되고 있는 것이다.

지하철에 있어서도 1호선부터 8호선까지 휠체어 리프트가 설치된 역은 전체의 34%, 엘리베이터는 10% 등 전체 지하철 역사 가운데 40%가 미설치 된 것으로 집계되고 있다(장애인편의시설촉진시민연대, 2001). 특히 설치되어 있는 리프트의 경우에도 규정에 맞지 않거나 안전성을 충분히 확보하지 못함으로써 언제든지 사고가 발생될 소지가 있다. 이에 따라 장애인과 각 단체에서는 지하철에 휠체어 리프트 설치를 반대하는 움직임과 함께 설치할 경우 규격에 맞고 안전성을 보장하도록 요구하고 있다.

장애인의 이동권과 정보접근권

잘 알려진 바와 같이 최근 이동상의 불편을 겪고 있는 장애인을 중심으로 대중교통을 이용할 수 있게 해달라는 요구의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이는 편의증진법이 시설설치 중심으로 되어 있어 장애인의 이동권을 보장해주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현행 장애인복지시책은 자기 차량을 갖고 운행하는 장애인에 대해서는 상대적으로 혜택이 크도록 되어 있다. 이에 따라 차량을 구입할 수 없는 장애인은 대중교통수단을 이용할 수 밖에 없는데, 앞서의 사례처럼 휠체어 장애인에게는 지하철은 목숨을 걸고 이용할 수밖에 없고, 버스는 탑승 자체가 불가능한 경우가 많고, 택시는 비용부담이 따른다는 점이다. 따라서 “우리도 버스를 탈 수 있게 해달라”는 것이 장애인들의 요구이다.

이처럼 편의증진법이 주로 물리적인 시설의 측면에 중점을 두고 있음으로 해서 정보접근에 관한 규정 또한 미약하다는 점은 매우 심각한 문제이다. 특히 시각이나 청각 장애인의 정보접근은 이동상의 장애인만큼 시급하고 중요한 사안이다. 청각장애인을 위한 전자문자안내판이나 수화, 자막방송 등은 과거에 비해 늘어나기는 했지만 아직도 크게 부족한 실정이다. 수화통역센터의 경우 현재 국고지원을 받는 37개소가 있으나 전체 청각장애인 규모를 고려한다면 턱없이 부족한 형편이다. 시각장애인의 경우에는 화면해설방송이 일부 시도되고 있으나 시각이나 청각장애인처럼 감각기능의 장애인에 있어서는 무엇보다 정보격차의 문제가 중요한 사안인 만큼 편의증진법에 정보접근에 관한 규정이 보다 강제성있는 내용으로 포함되어야 한다.

민간에 대한 지원과 부처간 연계 부족

현행 편의시설은 공공시설 중심으로만 되어 있어 장애인들의 불편을 해소하는데는 매우 제한적이다. 즉, 많은 장애인은 월드컵이나 야구경기장, 대규모 공연시설 등을 자주 이용하지 못한다. 이들 건물에 편의시설이 잘 되어 있다 하더라도 장애인이 빈번하게 이용하는 시설들은 아닐 것이다. 오히려 자주 이용하는 곳은 살고 있는 주택이나 또는 근린생활시설들이다. 편의증진의 측면에서 민간에 대한 지원이 없으면 효과가 반감될 수밖에 없다. 예컨대 장애인이 거주하는 주택의 개조에 필요한 지원이 거의 전무하다는 점도 문제라 할 수 있다.

행정적인 측면에서는 보건복지부, 건설교통부, 행정자치부, 정보통신부 등 관련부처의 업무협조가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 관련 법률간 규정이 다름으로 인해 건물 하나에도 규격에 맞게 편의시설을 설치하기 어렵게 된다. 월드컵 경기장의 경우처럼 대표적인 건물에 설치된 편의시설이 서로 제 각각이라면 실제 이용하는데는 많은 불편이 따르게 된다.

장애에 대한 이해와 차별 없는 보편적인 환경

장애인 편의시설은 과거의 방식대로 “장애인 전용”이 아니라 누구나 다 편리하게 사용할 수 있는 시설과 설비가 되어야 한다. 선진국의 경우처럼 장애인 편의시설이 특별히 눈에 띄지 않을 때, 진정한 복지국가가 달성될 수 있다. 지하철 역사의 경우만 하더라도 엘리베이터를 설치한다면 장애인만이 아니라 노인이나 임산부, 유아 모두 편리하게 이용할 수 있을 것이다. 바닥이 낮고(저상), 다음 정차역을 알리는 전자문자 음성 안내 서비스가 제공되는 시내버스는 누구나 부담 없이 편리하게 이용할 수 있는 것이다. 마찬가지로 일반인과 장애인의 출입문이 다르다면 진정한 의미의 통합은 이루어지기 어렵다.

이와 같은 노력은 보편적인 설계(universal design)를 통해서 가능해진다. 누구나 다 차별 없이 누릴 수 있는 그런 시설과 설비는 이동상의 장애인뿐만 아니라 정보접근에 어려움을 겪는 장애인들에게도 동일하게 적용된다. 따라서 앞으로는 우리 사회 누구나 불편함 없이 편리하게 이용할 수 있는 보편적 환경의 조성이 중요한 과제가 될 것이다. 특히 장애인에 있어서는 시설이나 정보 접근권은 기회의 균등과 같이 기본적인 권리로서 점점 그 중요성이 강조되고 있으며, 장애계에서도 이에 대한 요구가 점점 높아지고 있다.

편의시설과 관련해서는 사회적 인식의 개선 없이는 효과가 없다. 이는 단순한 물리적 통합만으로는 장애 문제를 해결할 수 없기 때문이다. 장애를 이해하고 차별 없이 받아들일 수 있는 여건이 성숙되지 않는다면 전시효과적인 시설의 설치만 늘리는 결과를 빚게 될 것이다. 다시 말해서 시설의 확대도 필요하지만 이 것만큼 중요한 것은 장애와 장애인에 대한 이해의 증진이다. 선진국의 경험에 비추어 볼 때도 편의시설의 설치는 단기간에 이루어질 수 있는 것도 아니고 설치가 아예 불가능한 건물들도 많다. 결국 이러한 제한점이나 한계는 사람과 사람의 관계를 통해서 극복될 수 있으며, 이러한 맥락에서 대인적인 서비스(personal service)가 필요한 것이다. 이는 시청각 장애인의 경우에 특히 그렇다.

해결해야 할 과제들

장애인의 편의증진을 위한 방안은 앞서 언급한 바와 같이 장애유형, 관련 법과 소관 부처 등 다양한 요인들을 고려해야 하므로 단순하게 정리될 수는 없으나 우선순위별로 주요 과제들을 제시해보고자 한다.

첫째, 법적 측면에서 현재 물리적인 접근권 중심의 편의증진법은 정보접근 내용을 강화하고 세부 지침을 포함하는 개정작업이 요구된다. 정보접근권의 확대를 위해 관련 세부적인 규정을 포함하고 지침을 강화하여 시 청각장애인을 위한 점자나 음성안내, 수화통역사 배치 등과 같은 서비스를 확충하여야 하며, 이에 대한 재정적인 지원이 이루어져야 한다.

둘째, 제도적으로 편의시설이 관련법률 및 소관부처에 따라 다르게 적용되고 있다는 점에서 법률의 개정과 함께 관련부처 간 의견을 조율하고 통일된 기준을 시행할 수 있는 전담기구를 두고 종합적인 발전계획을 수립하여 시행함으로써 정책적인 실효를 거둘 수 있다.

셋째, 이동권 보장의 확대를 위해서는 시내버스에 저상버스의 도입을 단계적으로 확대하고, 버스나 택시 등 대중교통에 대한 접근성을 제고하기 위한 재정적 지원방안이 강구되어야 할 것이다. 예컨대 복지택시와 같이 비용을 지원함으로써 승차거부 등 장애인 기피현상을 방지하고, 특별 교통수단의 도입이 요망되고 있다.

넷째, 편의시설에 관한 전문인력의 양성이 필요하다. 현재 법은 있으나 제대로 지켜지지 않는 것은 편의시설에 관한 인식부족과 함께 전문가가 크게 부족하기 때문이다. 전문인력을 양성하기 위해 설계사나 시공사를 대상으로 전문 교육과정을 설치하여 운영하는 방안과 장기적으로는 이를 자격 제도화하는 방안도 가능할 것이다. 그리고 현재 설치기준에 관한 매뉴얼의 보급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는 점에서 인터넷 등을 활용한 편의시설 상세표준도의 보급과 같이 많은 사람들에게 알림으로써 적합하지 않은 편의시설의 설치를 줄여나갈 수 있을 것이다.

넷째, 공공시설이 아닌 민간시설의 시설설치에 대한 지원이 이루어져야 한다. 공공시설은 기본적인 요건으로서 당연히 설치해야 하지만 장애인의 이용도가 높은 민간시설의 경우에는 건물개조에 따른 법적 요건의 완화나 세제 지원 등을 통해 설치를 유도하도록 해야 한다.

다섯째, 장애인의 생활터전인 주택개조에 필요한 비용을 지원해야 한다. 많은 중증재가 장애인은 대부분 집에서 생활하고 있다. 이들의 시설입소를 최소화하고 가족의 부담을 덜어주기 위해서는 적정 주택개조비용을 지원할 필요가 있다. 현재 기초생활보장수급 장애인에게 일부 지원이 이루어지고 있으나 금액이 턱없이 부족한 실정이다.

권선진(평택대학교 사회복지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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