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대아파트 주민 관리권 확보의 첫걸음 ㅣ 임대주택법개정

주택이 크게 부족했던 우리 나라에서의 임대차관계는 항상 빌려주는 사람이 중심이었다. 누구를 세입자로 할 것이며, 임대료를 얼마로 할 것인가는 주로 임대인의 의지에 달린 것이었다. 「주택임대차보호법」에 의해 임대기간이 2년으로 연장되었지만 아직도 대부분의 임대차가 1년 범위에서 이루어지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비록 1년 임대 후 분양되는 아파트이지만 1971년도에 세입자가 주인이 될 수 있는 임대아파트가 공급된 것은 분명히 획기적인 일이었다. 1980년대가 되어서는 5년 장기임대 아파트가, 1980년대 말에는 영구임대 아파트가 최저소득계층을 대상으로 공급되었다. 다시 1992년부터는 공공임대 5년형과 50년형, 현재의 정부아래에서는 국민 임대 10년형과 20년형이 건설되기에 이르렀다.

그러나 임대주택의 명칭이나 임대기간이 달라져도 공급자를 중시하며 공급량의 확대에 초점을 맞춘 정부의 임대주택에 대한 태도는 변함이 없었다. 이러한 사실은 1984년 임대주택과 관련해서 제정된 법률명이 「임대주택건설촉진법」이었다는 것에서도 드러난다. 「임대주택건설촉진법」은 1993년 12월 다시 5호 이상의 임대주택을 매입하여 임대사업을 하는 매입임대까지 임대주택에 포함하는 「임대주택법」으로 전문개정되었다.

이처럼 임대주택과 관련된 법률이 「임대주택건설촉진법」에서 「임대주택법」으로 바뀌었지만 정부나 임대주택 공급자는 임대주택공급이 대단한 시혜를 베푸는 행위라는 착각속에서 임차인의 비용부담으로 운영되는 주택관리까지 임차인을 철저하게 배제해왔다. "대표 없는 곳에 과세 없다"라는 지극히 당연한 사실조차 오랫동안 무시되어 온 것이다.

따라서 임대아파트 임차인은 관리사무소에서 일방적으로 결정한 관리비를 납부하면서도 관리비 규모 및 지출의 적정여부를 결정하고 감시할 대표조직을 구성하지 못하며, 단지내 공동생활과 관련된 간단한 규칙을 정하거나 입주자의 공동체 의식을 함양할 수 있는 각종 행사조차 스스로 개최할 수 없는 존재였다. 이로 인해 실제로 여러 단지에서 인건비, 소독비, 청소비, 오수정화조 청소비, 난방비 등이 과다하게 지출되고 있으며, 임차인이 관리주체에 대해 불합리한 점을 언급하면 "이 곳에 사는 것만으로도 행복하게 생각해야 한다"든지 "살기 싫으면 나가면 그만 아니냐"는 관리주체의 고압적인 대답을 듣는 일이 벌어지고 있다. 임대 아파트에 사는 사람들이 분양 아파트에 사는 사람들보다 훨씬 과다한 관리비를 지출하면서도 말 한마디 못하고 넘어가는 경우가 발생하는 것이다.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시민단체들이 변호사, 연구원, 지역단체 활동가, 임대 아파트 주민들의 참여 속에 임대주택 주민의 관리참여를 제도화할 수 있는 방안을 모색하고자 1998년 10월 "임대주택관리법 제정을 위한 시민대토론회"를 개최하였고, 11월 참여연대 공동대표 김중배외 9,803인이 임대주택 관리법 제정을 위한 청원서를 제출하였다.

입법청원의 주요 내용은 임대주택의 소유권과 직접 관련이 없는 관리행위에 대해서는 결정권을 입주자에게 부여하는 것이 마땅하므로, 이를 위해 입주자대표회의 구성과 관리규약의 제정권을 인정해야 한다는 것이다. 또한 입주자의 주거생활이나 임대사업자의 재산권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고 판단되는 하자보수, 부대시설 및 복지시설과 관련된 결정, 관리방식 결정 등의 사안에 대해서는 임대사업자와 입주자가 함께 결정하되 당사자 외에 공익위원이 참여하는 관리위원회를 두고 그 결정에 따르도록 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러한 입법청원에 대해 건설교통부는 임대주택 입주자대표회의의 구성을 인정하고, 입주자대표회의의 권한으로 임대주택의 관리에 필요한 제규정의 제정 및 개정요구, 관리비의 예산 및 결산심의, 시설물의 보수 및 교체요구 등 관리비 부담에 상응하는 수준의 관리권을 인정하며, 임대사업자와 입주자간에 발생한 분쟁을 조정하기 위해 시·군 또는 자치구에 임대주택분쟁조정위원회를 설치할 수 있는 근거를 마련한 임대주택법개정법률(안)을 공고(1999-179호, '99.5.26.)하고, 의견을 수렴하는 중이다.

공고된 건설교통부의 개정법률(안)은 주요골자만이 있기 때문에 내용을 완전히 알 수는 없지만 하자보수와 관련된 임차인의 대위변제권(임대사업자를 대신하여 시공회사에 수선을 요구하는 행위)을 받아들이는 단계에 이르지 못했으며, 아직까지 임차인의 적극적인 관리참여를 인정하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오랫동안 길들여진 공급자 위주의 시각에서 벗어나 임대주택 임차인의 관리운영에 대한 책임과 권리를 인정한 점에서 진일보한 것으로 평가해야 할 것이다.

영국이 1980년대 이후 주택법에서 임차인의 관리인 선택권을 포함, 임차인 대표의 보수공사 계획수립에 참여, 사후평가, 관리위원회에의 참여 등을 통해 주택단지의 슬럼화의 문제를 해결하려 했으며, 그것이 어느 정도 목적을 달성했음을 참고하여 우리 나라 임대주택단지도 입주자의 참여 없이는 결코 쾌적한 주거환경이 유지될 수 없음은 물론 저소득층의 주거복지를 위해 공급한 임대주택의 진정한 의미가 실현될 수 없음을 명심해야 할 것이다.

나아가 임대주택이라는 공급자 중심의 용어도 주택을 빌리는 사람 중심의 借家라는 용어로 변화될 때, 임차권의 보호, 입주자를 위한 설계, 임대료체계에 보다 합리적인 기준이 제시될 수 있을 것이다.

박신영 / 대학주택공사 주택연구소 책임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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