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복지동향 2001 2001-08-10   836

제2의 전자주민카드, 전자건강카드 도입을 막아야 한다

편집자 주 : 전자건가카드. 이를 둘러싼 보이지 않는 전쟁이 벌어지고 있다. 개인정보 유출 위험성의 극대화를 이유로 이를 막고자 하는 세력과 사회적 편익을 주장하며 이를 도입하자는 세력간의 전선. 그 너머에는 전자건강카드 사업을 따내기 위한 거대기업들로 구성된 컨소시엄 간의 전장이 펼쳐져 있다. 전자건강카드가 무엇이고, 어떤 위험과 이익이 있기 때문인지 각계의 입장을 들어본다. 주무부서인 보건복지부와 컨소시엄 중의 하나인 KHC의 의견에 다소 중복이 있으나 정확한 입장 이해를 위해 그대로 전제하였다.

건강보험증, 전자주민카드를 만나다

지난 4월, 보건복지부가 의료기관에서 자행되고 있는 부당, 하위청구를 근절하고 이를 통해 의료보험의 재정을 안정화시킬 목적으로 IC칩이 첨부된 '전자건강카드'를 도입한다고 언론을 통해 밝혔다. 의료기관의 부정행위를 막고 의료보험 재정까지 아낀다는 데에 반대할 국민이 어디 있겠는가만은 보건복지부가 이를 슬며시 언론에 공개하자마자 대기업까지 줄줄이 컨소시엄을 구성해 현재 5개의 기업별 컨소시엄이 구성되어 복지부를 상대로 치열한 로비전을 펼치는 등 극성을 떨고 있다.

컨소시엄 설명회와 이제까지 정부 발표를 통해 드러난 전자건강카드의 대강의 윤곽은 다음과 같다. 주민등록번호, 성명, 혈액형, 처방내역 그리고 개인병력사항 등을 기록할 수 있는 IC칩을 보험증에 삽입하고 여기에 신용카드 기능까지 부과하는가 하면, 본인확인을 위해 전자지문감식 기능을 도입하는 것까지 적극 검토하고 있다고 한다. IC칩, 개인정보, 신용카드, 전자지문 등이 모두 하나의 전자카드에 담기고 모든 국민이 소지한다는 것인데, 어디서 많이 들어본 적이 있는 내용들이다. 게다가 정부에서 공식적으로 붙인 명칭이 바로 '전자건강보험증'이다. 기능과 이름에서 알 수 있듯이 여기서 우리는 과거 국민들의 거센 저항으로 폐지된 '전자주민카드'를 다시 만나게 된다.

전자건강카드, 무엇이 문제인가

전자건강카드에 사진, 지문과 같은 본인확인이 가능한 정보가 삽입되고 국민개개인에게 발급되면 그것은 주민등록증과 같이 국민이면 누구나 소지하고 있는 국가신분증이 된다. 그러나 그냥 국가신분증이 아니라 현재의 주민등록증보다 훨씬 더 강력한 통제기능을 갖는 국가신분증이 탄생한다. 주민등록증의 경우 만17세 이상 3천6백만명에게 발급되는데 비해, 전자건강카드는 거의 모든 국민에게 발급되어 대상자가 4천6백만명이 넘는다. 또한, IC칩과 신용카드기능이 있는 전자건강카드는 의료기관을 이용할 때 뿐 아니라 물건을 사고 팔 때나 금융 거래 시에도 이용되며 전철이나 버스 등 교통카드 및 전자화폐로도, 건물 출입 시 신분카드로도 이용될 수 있다. 그 이유는 전자건강카드가 도입되면 국민이면 누구나 이 카드를 갖고 있을 것이라고 믿기 때문에 카드의 활용이 전 사회적으로 급속히 확장될 것이기 때문이다. 문제는 그렇게 되면 개인 사생활의 세밀한 기록까지 전산망이나 전자적인 형태로 저장되고 언제라도 추적이 가능하게 된다. 그만큼 국가신분증에 IC칩이나 마그네틱 카드와 같은 전산기록장치를 설치하는 것은 국민인권에 치명적인 영향을 낳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문제는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전자건강카드가 도입되면 국민 개개인의 개인정보 특히, 신체와 관련된 특이사항 등 핵심적인 개인정보들이 유출될 위험이 더 없이 증대된다. 전자건강카드에는 개인의 치료 및 처방과 관련된 정보 그리고 특이체질인 경우 그 사항까지 기록될 수 있어 유출될 경우 치명적인 문제를 야기할 수 있다. 게다가 대금결제를 위해 지불내역서를 신용카드회사에 전송해야 한다. 그렇게되면, 신용카드 회사에 진료 및 제약내역이 전송되어 환자의 병력사항과 투약내역을 볼 수가 있고 환자별, 의료기관별, 약제품별로 데이터베이스로 저장할 수 있다. 이 정보들은 현재 보험회사와 제약회사 등에서 핵심적으로 알고자 하는 정보들이기 때문에 상업적 이용가치가 충분히 있어서 상업적 거래와 유출의 위험성이 매우 높다.

한편, 더욱 한심한 것은 전자건강카드를 도입하더라도 의료기관의 부당, 허위청구를 근절시키는데 거의 실효성이 없다는 점이다. 그 이유는 진료내역서를 작성하는 과정에서 얼마든지 부당·허위청구가 가능하고 병원과 약국 및 환자의 담합을 통한 가짜환자 만들기에도 전자건강카드가 실효성이 없기 때문이다. 게다가 현재 의료기관의 부당·허위 청구양상이 가짜 환자 만들기 등 허위 청구에서 진료비를 부풀려 청구하는 부당 청구가 많아지는 쪽으로 바뀌고 있는데다가 실제 진료비 청구는 자체 심사를 거쳐 진료 시점보다 최소한 2-3일 후에 이루어지므로 이 과정에서 부당 청구는 얼마든지 이루어질 수 있다.

게다가, 카드 발급 및 재발급, 수수료, 신용카드 연회비 등 제 비용을 상승시켜 실제 국민의 의료비 부담만 가중시켜 놓게 된다. 정부는 시스템 구축에 드는 비용을 3천억에서 6천억으로 추산하고 있지만 실제는 그렇지가 않다. 시스템 구축 비용은 차치해 놓더라도 여기에 카드 (재)발급 비용과 수수료 등 정부와 가계에서 부담해야 할 비용은 모두 빠져 있으며, 계산하더라도 카드 제작 단가를 계산하고 있지 실제 국민들이 지불해야 할 비용과는 거리가 있다. 이 비용을 추산해 보면 전자건강카드 시행에만 시스템 구축비를 제외하고 2조원 가량 들게 되고, 매년 1조원씩 추가 비용이 들게 된다.

정부의 무책임함과 계속되는 말 바꾸기

정부의 전자건강카드 도입 발표가 있고 공방이 가시화되자 정부는 정부정책이 결정되지 않았다는 무책임한 이유를 대며 계속해서 말을 바꾸고 있다. 처음에는 의료기관의 보험료 부당·허위 청구 근절을 목표로 전자건강카드를 도입한다고 하다가 실효성에 의문이 제기되자, 국민들의 의료편익 증대를 목표로 한다고 말을 바꾸었다. 하지만 국민편익 증대라는 것이 환자의 조제 대기시간 단축과 신용카드 결제가 가능한 것으로 설명할 뿐이라서 국민의 입장에서 전자건강카드 사업도입의 정당성을 찾을 수 있는 부분은 전혀 없다. 이렇게 되자 다시 보건복지부는 뻔뻔스럽게도 전자건강카드 사업이 사실상 재벌기업의 시장수요을 충족시켜 주기 위한 사업이라는 것을 고백하였다. 보건복지부는 지난 6월 29일자 보도자료에서 "IC칩은 국내 삼성전자, 현대 ICS 등이 생산능력을 보유하고 있으나, 시장수요가 없어 생산을 못하고 있음"이라고 적시하면서 전자건강카드 사업이 삼성과 현대의 재벌기업의 시장수요 확대를 위해 추진하고 있다는 속내를 밝혔다. 결국, 많은 국민들이 우려하는 바대로 전자건강카드 사업은 국민의 인권을 팔아 재벌기업의 이익을 보장해 주기 위한 사업이라는 사실을 그대로 보여주고 있다.

또한, 정부는 전자건강카드 사업추진비용 전액을 민간업체에서 부담하게 할 것이라고 강조하고 있으나, 수천억에 달하는 사업추진비용을 민간업체에서 무상으로 제공할 것이라고 믿는 국민은 아무도 없다. 만약 민간업체에서 사업비용을 전액 부담한다고 하더라도 반드시 그 사업을 통해 수익을 창출하기 위한 조건을 달려고 할 것이다. 실제 정부에서 신용카드 연계를 고려하는 결정적인 이유도 여기에 있다. 연간 17조에 달하는 의료비의 개인부담금을 신용카드로 결제할 경우 매년 수천억을 신용카드 수수료로 국민들이 지불해야 하며, 카드 발급과 재발급에도 연간 수천억의 비용을 고스란히 국민들이 지불해야 할 것이다.

한편, 최근 보건복지부는 전자건강카드에 개인 신상정보와 처방전 내역만이 수록된다고 밝히고 있다. 만약 전자건강카드가 국민의 반발에도 불구하고 강행된다면 복지부의 설명대로 그렇게 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미 국회에 상정된 특별법안에는 카드에 수록될 정보와 사용방법 등이 모두 보건복지부 장관의 고시로 결정하도록 되어 있다. 이는 카드 수록정보 등 중요한 사항들을 보건복지부 장관이 임의로 변경할 수 있음을 의미하는 것으로 현재 카드 수록내용이 어떻다고 하는 것은 아무런 의미를 갖지 못하며, 뿐만아니라 현재의 논리상 카드업체의 수익모델 창출에 따라 카드 수록내용이 결정될 수 있음을 의미하는 것이다.

전자건강카드의 도입은 반드시 막아야 한다

어떤 사람들은 정부와 민간업체 그리고 시민단체와 의료기관 등 관련 주체들이 모여 합의점을 도출하는 것이 좋지 않는가라고 점잖케 권고하기도 하지만 이 사업의 경우 재론의 여지는 전혀 없다. 그 이유는 정부가 의료기관의 부당허위 청구를 방지하여 보험재정 누수를 막겠다는 취지에서 시행 방침을 밝힌 전자건강카드는, 부당허위 청구 근절에 아무런 효과도 없을 뿐더러 오히려 개인 정보 유출과 프라이버시 침해, 국민 부담 가중 등 부작용만을 불러일으킬 것이기 때문이다. 게다가 과거 전자주민카드 도입에 관하여 제기된 무수한 문제점이 여전히 해결되지 않았음을 잘 알고 있는 정부가 또 다시 제2의 전자주민카드인 전자건강카드를 도입하겠다는 발상을 하고 있다는 것 자체가 큰 문제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전자건강카드 시행반대 사회단체 연대모임'의 입장은 보완과 개선을 통한 예상되는 피해의 최소화에 있는 것이 아니다. 이 사업자체의 전면 백지화를 주장하고 있는 것이다. 국민의 인권을 볼모로 오직 카드업계에만 특혜를 주는 이 사업을 조금이라도 받아들일 이유는 없기 때문이다.

홍석만 / 사회진보연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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