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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간 복지동향 200호 발행
  • 2003
  • 2003.08.12
  • 420
주5일 근무제(주40시간제)로 어디 한번 팔, 다리를 쭉 펴고 제대로 쉴 수 있을 것인가?

2002년 9월 5일 노동부가 주5일 근무제 시행을 위한 근로기준법 개정안을 입법 예고한 뒤 개정안의 통과 여부를 두고 온통 국민들의 관심사가 여기에 있다. 더욱이 여기 저기서 휴가일수를 조정한 주 5일제 시행의 물꼬를 트기 시작하자, 뜻하지 않던 삼성, 한화 등 재벌들도 앞다퉈 주5일 근무를 하고 있는 등 이를 당연시하게 됐다.

국민 대다수가 주5일 근무제에 찬성하고 있고 특히 노동계는 주5일제 도입을 위해 총파업까지 벌여가며 강력히 요구해온 마당에 정부가 주5일제를 시행하겠다는데도 다시 총파업으로 반대하고 나선 이유는 무엇인가?

이를 위해서는 과연 우리가 무엇 때문에 주5일 근무제를 시행하려고 했는지, 또 국민들이 제대로 된 여가생활을 즐길 수 있는 바람직한 주5일제의 모습은 어떤 것인지 알아보자.

주5일제가 꼭 필요한 이유

무엇보다 우리 나라에서 주5일제가 꼭 필요한 이유는, 한국 노동자가 노동하는 시간이 세계에서도 손꼽힐 만큼 길다는데 있다. 한국의 연간 실노동시간은 2000년 현재 2,474시간으로, 1,300∼1,600시간대의 네덜란드, 독일, 프랑스 등 대부분 유럽국가나, 일본(1,853시간), 미국(1,869시간)을 훨씬 앞지르고 있다. 이렇게 장시간 노동한 결과 지난 한해에만 산업재해로 노동자 2,474명이 소중한 목숨을 잃었으며 노동자 8만 여명이 부상을 당했다.

주5일 근무를 통해 노동시간을 단축하면 육체적 피로와 정신적 스트레스가 줄어들어 산업재해와 직업병이 줄어든다. 과로사와 일 중독증 압력에서도 벗어난다. 주5일 근무의 1차적 효과는 일하는 사람들의 생명과 건강을 지켜주는 것이다.

주5일 근무가 실시되면 여가와 문화생활을 즐길 여유가 생겨 노동자의 삶이 풍요로워진다. 그 동안 잔업, 특근 등 밤낮으로 일에 지쳐 찌든 몸과 마음을 풀 수 있고, 가족에 대해 못다 한 사랑을 공유할 수 있는 시간이 점차 늘어난다는 것은 개인의 풍요로움 뿐만 아니라 가정 파탄, 가족 문화 해체 등에 따르는 이혼, 청소년 문제 등 사회문제도 줄어 행복한 가정, 건강한 사회를 낳는다.

요즘 각광받고 있는 주말농장부터 놀이마당, 유원지, 낚시 등 노동으로 잃어버린 가족과의 시간과 여가생활을 가질 수 있고, 나아가 사회봉사나 환경보호, 인권활동 등 공동체 활동을 할 수 있는 기회도 늘어나는 등 공익적 활동을 더 촉발시킨다. 재교육과 재충전할 기회도 늘어난다. 과중한 업무 때문에 부족했던 능력개발과 학습을 통해 자기개발을 할 시간을 가질 수 있다.

실제로 한길리서치 조사 결과에 따르면, 국민들은 주5일 근무제가 실시되면 가족과 함께 시간을 가지거나(30.0%), 여가를 즐기거나(28.6%), 능력개발에 투자하거나(15.4%), 휴식으로 피로를 풀거나(5.9%), 자원봉사 등 공익적 활동에 참여하고(3.1%) 싶어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총 근로시간 확대시킨 주5일제 정부안

정부안은 법정노동시간을 4시간 줄이는 대신 초과 노동한도를 오히려 16시간으로 지금보다 4시간이나 늘리고 연·월차 휴가를 대폭 축소하였으며 탄력적 근로시간제 단위기간을 3개월로 확대하는 등 실노동시간 단축과는 정반대로 가고 있다. 또한 초과노동 할증률을 최초 4시간 분에 한해 25%로 낮추어 초과근로는 지금보다 더욱 늘어날 전망이다.

특히 2003년 7월부터 2010년까지 무려 7년에 걸쳐 규모와 업종에 따라 단계적으로 주5일 근무를 실시키로 한 것은 가뜩이나 저임금 장시간 노동에 시달리는 중소영세업체 노동자들의 불평등과 격차를 더욱 심화시킬 것이다.

연·월차 휴가에 대해 재계는 정부안에서 이미 15∼25일로 대폭 축소했음에도 불구하고 가산 연수를 3년으로 늘리고 법정공휴일마저 3∼4일 더 줄이자고 주장하고 있다. 그러나 세계 어느 나라도 노동시간을 단축하면서 기존 휴일, 휴가를 축소한 예가 없다. 연 2,500시간대의 실노동시간을 2,000시간 이내로 단축하기 위해서는 법정노동시간 단축과 더불어 초과 노동한도를 지금보다 더 줄이고 실제 사용할 수 있는 휴일, 휴가를 오히려 더 늘려야만 한다.

정부안대로 하더라도 우리 나라 평균노동자(근속년수 5.6년)의 연차휴가일수는 17일에 불과해 일본의 18일보다 오히려 1일이 더 적다. 만약 하루 8시간 노동일을 기준으로 본다면 우리 나라 노동자의 노동일은 총 306일(2,447시간/8시간=306일)에 달해 계산상 휴일 수는 59일에 불과하다. 따라서 주5일 근무제를 시행하더라도 8시간 노동일 기준 휴일 수는 85일에 불과하여 일본의 135일이나 멕시코의 126일에 비해 턱없이 부족한 실정이다.

노동시간 늘리는 탄력근로시간제의 확대

정부안에서 미사용 휴가에 대한 금전보상의무를 없애도록 한 것도 큰 문제이다. 휴가는 노동시간 단축 취지로 볼 때 온전히 휴가로 사용하는 것이 맞지만 휴가를 사용할 수 있는 여건이 제대로 마련되지 못한 상황에서 금전보상의무만을 없앨 경우 자칫 휴가도 가지 못하고 임금만 삭감되는 결과를 초래하게 된다. 이럴 경우 1년 근속자의 경우 최대 22일분의 연·월차 수당이 깎인다.

탄력근로시간제의 확대 또한 오히려 노동시간을 늘리게 될 뿐 아니라 수당 없는 연장근로를 합법화하고, 생활주기를 파괴해 노동자 건강을 크게 해치게 될 것이다. 초과노동한도를 16시간으로 늘리고 할증율을 25%로 낮추는 것은 실노동시간 단축이라는 주5일제 도입의 근본취지에 완전히 역행하는 것이다.

모성보호 역행하는 생리휴가 무급화

또한 여성노동자 69%가 10인 미만 사업장에 종사하며, 73%가 비정규직인 현실에서 생리휴가 무급화는 월 3.1%의 임금이 삭감되어 상대적으로 저임금에 시달리는 여성노동자의 처지를 더욱 어렵게 만들고, 사실상 생리휴가를 폐지하는 것과 마찬가지여서 모성보호를 심각하게 후퇴시킬 것이다.

게다가 법 부칙에 단체협상 및 취업규칙을 근로기준법에 맞춰 바꾸도록 의무화한 것은 노사가 오랜 세월 노력을 통해 합의에 이른 단체협상을 하루아침에 백지화시키는 것이다. 이는 근로기준법이 근로조건의 최저기준을 규정하는데 불과하다는 것을 고려하면 노사가 자율적으로 결정한 임금을 최저임금수준으로 저하시키라는 것과 다를 바 없다.

이처럼 정부와 재계의 주장대로 주5일제를 실시한다면 노동시간단축효과는 거의 없고, 가뜩이나 저임금, 장시간 노동에 시달리는 중소영세 비정규노동자들의 노동조건은 더욱 악화되어 노동시간 단축을 통한 삶의 질 향상은 그림의 떡에 불과할 것이다. 주5일제는 세계 최장노동시간을 줄임으로써 삶의 질을 개선하고 일자리를 늘리는데 목표가 있는 것이지 다른 노동조건을 희생시키면서 노동시간을 줄이자는 것이 아니다.

노동자 삶의 질 높이는 여가권 확보

따라서 노동자와 국민이 생활의 질을 높일 수 있는 여가권을 확보하기 위해서는 어떻게 주5일제를 시행해야 할까? 이는 주5일제 도입 논의가 수년을 끌어온 데 비하면 의외로 매우 간단하다. 주5일제의 기본 취지가 연간 2,500시간대에 달하는 실노동시간을 2,000시간 이내로 줄이자는 데 있는 만큼 이를 위해서는 법정노동시간을 주40시간으로 줄이는 것과 더불어 초과노동한도를 줄이고 실제 사용할 수 있는 휴일, 휴가를 확대하면 된다.

우리 나라 노동자들의 실노동시간이 지나치게 긴 이유는 초과노동시간 한도가 현재 주당 12시간으로 지나치게 길기 때문이다. 따라서 초과노동한도를 주당 10시간으로 줄이고, 더불어 18세 미만 및 여성 노동자의 근로시간 특례에 대해서도 성장기 소년과 모성보호를 위해 현행 주42시간에서 주 38시간으로 줄이는 한편, 탄력적 근로시간제 역시 현행 1개월 단위로 유지하되 오히려 1일 12시간, 1주 56시간 한도에서 10시간, 48시간으로 각각 줄여야 한다.

연·월차 휴가일 수도 줄일 것이 아니라 임시, 계약직 등 비정규 노동자가 전체 노동자의 53%인 점을 감안하여 연차휴가 부여기준을 6개월 이상 근속자로 완화하고, 그 이하 근속자는 근속기간에 비례해서 휴가를 부여토록 해야 하며 연·월차 휴가를 사용하지 않을 경우 수당으로 지급토록 해야 할 것이다.

도입 시기에 대해서는 재계는 최초 시행시기를 정부안보다 더 늦추고 2012년까지 시행을 완료할 것을 주장하고 있으나 지금도 다른 나라에 비해 주5일제 도입이 많이 늦은 만큼 시행 뒤 6개월 안으로 모든 사업장에서 한꺼번에 실시해야 한다.

유급생리휴가제도는 모성보호 관련 규정으로서 노동시간 단축 문제와 연계해서 처리할 문제가 아니다. 다른 나라에 없다고 폐지하자고 할 것이 아니라, 오히려 국제적인 기준에 맞게 우리 나라에 없는 모성보호제도를 적극 도입하지 않는다면 이는 엄연한 노동조건 하락을 가져올 것이다.

중소 영세, 비정규, 여성노동자의 노동조건 하락 없는 주5일제를 시행한다면, 우리 국민들의 여가는 그야말로 질적인 변화를 겪을 것이다.

박승희 / 민주노총 여성부장, ddal@nodong.or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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