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복지동향 2003 2003-02-10   8195

중독의 원인과 사회적 대처방안

중독을 어느 한 가지 단일의 원인으로 설명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과문하여 다른 동물에게도 인간의 중독 행동과 같은 일탈행동 현상이 있는지는 들어보지 못하였으나 인간의 역사를 보면 시대와 지역을 넘어서 탐닉과 도취와 강박과 같은 여러 가지 종류의 중독적 행동들이 늘 존재하였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특히 현대에 와서 사람들은 무엇인가에 중독되지 않고서는 살 수 없는 듯이 각자 무엇인가에 빠져 있다. 술, 담배와 같은 합법적 물질은 말할 것도 없고, 히로폰, 코카인, 마리화나, 헤로인과 같은 불법적 약물이나, 본드, 시너, 부탄가스 등 각종 화공물질에까지 중독된 사람들이 있다. 그리고 이러한 물질에 대한 중독만이 아니라 도박, 섹스, 게임, 인터넷을 비롯하여 일중독과 같은 행동중독도 만연되어 있는 것이 오늘날의 실정이다.

이러한 중독의 대상으로서 각종 물질들이나 각종 행동은 그 각각의 종류와 성질이 서로 다르지만 본질적으로 동일한 현상이라고 할 수 있다. 즉, 서로 다른 남용물질들이 뇌를 매개로 하여 일으키는 인간의 행동 반응은 유사하다. 나아가서 행동중독이 일으키는 뇌 안에서의 생리적, 생화학적 변화도 남용물질들에 의한 변화와 똑같다. 또한 중독된 개인들은 사고방식, 대응방식, 대인관계 방식 등 인격 특징에서 유사한 점이 많고, 중독의 결과로 나타나는 개인적, 사회적 후유증으로 결국 인생의 모든 것을 파멸시킨다는 점에서 모든 종류의 중독은 결국 동일한 문제라 할 수 있다.

인간의 행동은 생물적, 정신 심리적, 사회적 요인들이 늘 함께 작용한 결과로써 나타나는 현상이다. 일탈된 행동이라 할지라도 중독의 문제는 어디까지나 인간행동의 한 범주에 해당하므로 중독의 원인을 이 3가지 요인으로 나누어 검토하고 이 중에서 특별히 사회적 대책을 살펴보고자 한다.

1. 생물학적 요인

어떤 행동이 생물학적으로 결정된다고 주장할 때 유전적 인과관계를 입증하는 것보다 더 확실히 생물학적이라 할 수 있는 것은 없다. 유전은 알코올중독과 관련하여 가장 강력한 소인으로 받아들여진다. 알코올중독자 부모의 자녀는 일반인 자녀보다 알코올중독이 될 확률이 4배나 높다. 알코올중독자인 입양아의 친아버지를 조사한 결과 친아버지의 25%가 알코올중독자라는 사실이 밝혀졌다. 일부의 사람들은 소량의 음주에도 얼굴이 몹시 붉어지고, 가슴이 뛰고, 두통이 오는 등의 불쾌한 증상이 생긴다. 이는 알코올을 분해하는 효소가 태어날 때부터 없기 때문이며, 이러한 사람에게서 알코올 중독은 더 드물다. 이러한 결핍은 남성보다 여성에게, 서구인보다는 아시아인에게서 더 현저하다.

2. 정신 심리적 요인

중독자들은 반사회적 또는 경계형 인격 특징이 많다. 이는 자아와 초자아가 발달하는 시기 이전에, 즉 구순기 단계에서 인격 발달이 정지되어 있는 경우라고 할 수 있다. 따라서 이들은 대인관계에서 지나친 요구와 의존성을 나타내며, 더불어 충족 연기가 어렵고 즉각적 만족 추구가 일반적 행동의 특성이다. 중독자들의 부모 관계를 살펴보면 강하고 일관성 있는 아버지 상이 없고, 어머니에 대하여도 의존과 거절의 양가적 태도가 일반적이다. 어머니들은 때로 물질 사용과 관련하여 상반된 태도를 보이기도 하고, 무의식적으로는 남용과 중독을 조장하는 점도 있다. 내적 억제력이 부족하고 장기간에 걸쳐 끈기 있는 노력으로 성취를 이루는 자아 능력이 부족하여 반복적으로 실패와 좌절을 겪게 된다. 이는 원래부터 낮은 자존심에 다시 손상을 끼쳐 더욱 자존심이 저하된다. 상대에 대하여 자기중심적인 무리한 요구와 미숙한 자아 능력으로 결국 매번 좌절감을 겪고, 이러한 정서적 고통을 물질을 이용하여 해결하려고 하는 것이 바로 중독으로 발전하게 된다는 뜻이다. 이는 마치 우울증의 경우와 매우 유사하여 학자에 따라서는 물질 중독이란 우울증에 대한 나름대로의 자가 치료 현상이라고 설명하기도 한다.

이러한 이해를 바탕으로 중독의 치료에서는 개인 및 가족과 집단에 대한 정신치료적 접근이 이루어진다. 여기에는 전통적 정신분석 이론보다는 인지이론이나 학습이론을 배경으로 한 치료 접근이 더 유용할 수도 있다.

3. 사회적 요인

사회 문화는 집단의 물질적 문화, 세계관, 사회조직, 상징, 육아, 언어 등 삶의 모든 방식의 총체를 구성한다. 물질과 관련된 태도와 사용 행태 또한 사회 문화의 영향을 받는 것은 너무나 당연하다. 물질, 특히 술과 담배에 대한 사회 문화적 관습과 태도, 해당 지역에서의 입수 용이도, 동료의 유혹과 압력 등을 통하여 물질 사용 행동이 결정된다는 것은 잘 알려져 있다. 중독자들은 나름대로 자신들만의 응집적이고 특징적인 아문화를 형성하여 중독자들은 여기에서 벗어나 독립적 생활을 하려 하지 않는 수가 많다.

역사적으로도 중독과 관련된 기록은 많다. 15∼16세기에 벌써 담배나 아편에 대한 중독이 만연되었고, 17세기 영국에서 진이 소개된 이후 2세기에 걸쳐 시민들의 심한 노동과 경제적 어려움을 해결하는 손쉬운 방법으로 많이 남용되었다. 한때는 기독교로부터 금욕과 절제의 풍조가 대두되기도 하였으나, 20세기 중반에 들어 청년문화는 술, 마리화나, 마약 등의 문제가 그들의 음악, 의상, 이념, 도덕관 등과 더불어 역사의 큰 획이 된다. 현대에 와서도 국가, 종족, 종교, 직업, 가족 배경에 따라 각종 물질에 대하여 다른 사회 문화적 관습과 태도를 가지고 있다.

남용되는 물질들의 약리적 효과 이외에 문화에 따른 물질의 선택과 사용 양상이 다르다. 물질 사용을 조장하는 문화적 요인이 있을 수 있다. 성당의 미사나 우리 나라 제사의 음복이 그러한 예가 된다. 또한 물질의 사용을 금지하는 문화와 종교의 요인도 있다. 이슬람권과 보수적인 개신교에서는 술에 대하여, 몰몬은 커피를, 오늘날 우리 나라에서는 아편을 끔찍하게 여기고 금지한다. 자신의 신분, 가치관, 태도, 특성을 나타내는 상징으로 물질을 사용하기도 한다. 젊은이들은 반항심의 표상으로 마리화나를 사용하였다. 물질이 하나의 사회적 연대로 이용되는 경우도 많다. 우리 나라의 독특한 술 문화에는 숨겨져 있는 이러한 사회 문화적 요인에 대한 깊이 있는 통찰이 필요하다.

급격한 기술 문명의 변화가 초래한 사회조직의 전면적 변화는 가족관계를 위시한 여러 가지 문화적 상징과 코드를 변화시켜, 동질적 문화로의 사회화 결여, 세대간 변화, 긍정적 자기 정체성의 상실 등을 일으키고, 이는 바로 물질 사용 및 중독과 관련되는 원인으로 작용할 수 있다.

4. 사회적 대처 방안

사회적 대처방안은 크게 2가지로 나뉠 수 있다. 첫째는 이미 중독이 된 사람들에 대한 사회적 대책이고, 둘째는 중독을 예방하기 위한 사회적 대책이다.

중독된 사람들은 그 개인과 가족의 인생이 조만간에 모두 파괴되어 버리는 것이 전형적인 경과이다. 이 경우는 우선 의학적 모델에서 이를 일차적인 하나의 질환으로 간주하고 집중적인 치료를 해야 한다. 이 과정이 매우 자연스럽도록 사회의 인식 변화, 의료 및 보험체계가 확립되어야 하고, 이를 위한 사회적, 정치적, 의료정책적 정비와 지원이 필요하다. 그 이후에도 회복이 어려운 환자를 위한 재활수용 등의 대책이 필요하고, 이 단계의 중독자에 대하여는 사회복지적 개념이 요구된다 하겠다. 나아가서는 장래에 마약중독을 병존하는 한 사회적 현상으로 인정하는 사회적 모델의 입장에서 마약 중독자에게 사회적 자원으로 메사돈 대체투약이나 또는 헤로인 무료 투약과 같은 진보적인 사회적 대책도 고려해볼 수 있을 것이다.

물질 남용과 중독을 미리 예방하기 위한 사회적 대책은 물질의 사용과 직접 관련되는 대책과 물질 사용 행동이 만연될 수 있는 사회 자체의 차원으로 나누어 생각할 수 있다. 우선 불법적 물질에 대한 입수 용이성, 접근, 수용에 대한 대책이 필요하다. 마찬가지로 중독을 치료하는 질환으로의 인식과 치료기관 이용 용이성, 접근성, 수용성도 고려되어야 한다. 환자나 치료진은 물론 일반 사회는 궁극적으로는 중독자들이 사회문화적으로도 회복되어야 한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과거 중독의 문화에서 회복의 아문화를 거쳐서 지난날의 갈등, 혐오, 거부를 벗어나 궁극적으로 기존 사회문화로 재진입하는 과정을 인식하여야 한다.

사회의 물질 사용 행동 및 중독과 관련하여 여러 가지 사회적 대책을 세울 수 있다. 사람들의 의식의 개발을 통하여 우선 삶이 더 정의롭게 안정되고 균형있게 배려되는 사회를 이루는 것이 보다 근원적 대책이 된다. 왜냐하면 한 사회 안에서 내재된 개인의 가치와 역할의 갈등이 늘 물질의 남용과 중독을 유도하기 때문이다. 더불어 물질 상용과 관련된 행동 결정을 개인의 의지에만 맡기는 것은 무책임한 일이다. 왜냐하면 개인의 행동은 본인이 모르는 사이에 너무나 많이 사회 문화에 의해 결정되기 때문이다. 당연히 중독과 같이 인생에 큰 폐해를 끼치는 인간행동에는 사회적 개임이 없을 수 없다.

장래 성인기에 본격적인 물질 남용으로 연결되기 쉽기 때문에 소아 또는 초기 청소년기에 담배나 술, 마리화나와 같은 물질에 접근하는 것을 강력하게 예방하여 물질 사용의 첫 단계에 진입하지 않도록 하는 것이 필요하다. 또한 수요 감소를 위하여 물질사용에 대한 개인의 태도와 지각과 행동을 변화시키는 노력이 요구된다. 공급을 감소시키기 위하여서 개인보다는 사회 쳬계와 환경에 초점을 맞추어야 한다. 1차 예방으로 전 인구 집단에 대한 물질과 관련한 교육이, 2차 예방으로 학업문제아, 약물사용자, 사회적 기능 손상으로 정신적 고통을 겪거나, 불우한 가정과 불우한 동료 관계와 같은 위험 집단에 대하여 개인 상담, 집단 상담,지지 집단 등의 방법이 활용된다. 가출, 절도, 비행 등 더 심각한 중독의 고위험 집단에 대하여는 외래 통원과 상담 또는 입원 치료 등 초기 개입이 필요하다. 동료로부터 물질 사용 제안에 대한 거절 기술과 위험도 감소에 대해 직접 초점을 맞추거나 또는 성적 저하, 대화 미숙 등 위험 요인의 개발이나, 사회적 결속, 생활 기술 개발 등 중독 방어적 요인에 초점을 둔 간접적 방법이 있다. 이를 위해 초등학교 때부터 사회적 결속, 대화방법과 같은 방어적 요인의 계발이, 중등학교에서는 주장능력, 물질 거절 능력, 의사결정 능력 따위의 계발이 필요하다.

학교, 부모, 지역사회 조직과 단체, 매스미디어 등이 각각 활동할 수 있고, 또는 연합하여 종합적인 지역사회 프로그램으로 조직되는 것이 효과적이다. 우리 나라 실정에서는 아직 어느 것 하나도 아직 제대로 작동되지 못하고 인식조차 미흡하다. 먼저 관계 전문가 집단으로부터 물질과 중독의 문제, 대책에 대한 인식의 확대를 위한 노력이 무엇보다 절실하다.

신정호 / 연세 원주의대 정신과, 한국중독정신의학회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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