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복지동향 2022 2022-03-01   1674

[동향2] 화학물질ㆍ화학사고로부터 우리는 정녕 안전할까?1)

장동엽 참여연대 선임간사

1984년 인도 보팔 참사,2020년 LG화학의 인도 가스 누출 참사, 그리고…

‘Bhopal disaster’라고 알려진 인도 보팔 가스 누출 참사(Bhopal disaster)를 떠올려본다. 1984년 12월 2일에서 3일 사이에 인도의 중소도시 보팔에서 미국의 다국적 기업이며 화학약품 제조회사인 유니언 카바이드의 현지 화학 공장에서 농약 원료로 사용되는 42톤의 아이소사이안화메틸(MIC)이라는 유독 가스가 누출되면서 벌어진 20세기 최악의 산업재해이자 시민재해다. 사고 발생 2시간 동안 저장 탱크로부터 MIC 36톤 정도가 누출되면서 하루 만에 8천여 명이나 사망했고(인도 정부 공식 집계는 2,250명 사망), 사고 후유증으로 인한 사망자도 최대 2만여 명으로 추정되면서 모두 3만여 명이 목숨을 잃은 것으로 기록된 대참사다. 인명 피해만으로는 인류 최악의 재앙으로 꼽는 1986년 체르노빌 원전 폭발 사고나 2001년 미국 9·11 테러를 넘어선다.

이같은 참사의 원인은 안전관리가 미비했고 비상대책이 전혀 없었다는 데 있다. 인구밀집지역임에도 설계비용을 줄이고자 검증되지 않은 설계방식을 도입했다. 1981년 포스겐 가스 누출로 위험성이 보고됐지만 시정조치도 이뤄지지 않았다. 사건 발생 당시에도 기본적인 조기 경보체계마저 작동되지 않으면서 유니언 카바이드에 명백한 책임이 있음이 확인됐다. 다국적 기업들의 위험 산업 수출이 얼마나 부도덕한 방식으로 이루어져 왔는지 여실히 보여줬다.

그러나 피해자들에 대한 배·보상은 매우 지지부진했고 그나마 제대로 이루어지지도 않는다. 인도 정부와 보팔 참사 피해자 대표들이 유니언 카바이드에 요구한 배·보상금은 33억 달러였지만, 1989년 인도 대법원은 4억 7,000만 달러에 불과한 배상 판결을 내렸으며 그나마도 유니언 카바이드를 인수한 다우케미컬이 배·보상을 거부하면서 인도 정부가 떠안았다. 2004년에 가서야 지연됐던 보상금 지급에 대한 인도 대법원 판결이 이뤄졌고, 558,125명의 피해자들이 배·보상금과 구호를 받게 됐다(2006년 인도 정부 발표 보고서 기준). 그제야 폐기물 처리와 오염된 수질 관리, 사고 생존자와 2세에 대한 집단의료보험이 도입됐다. 당시 유니언 카바이드의 사고책임자들에 대한 형사소송도 이로부터 6년이 지난 2010년에야 결론지어졌다. 유니언 카바이드의 당시 책임자 7명에게 업무상 과실치사 혐의로 내려진 인도 사법부의 형사처벌은 징역 2년과 벌금 약 250만 원형에 불과했다.

보팔 참사 처리의 법적 절차가 참사 발생 26년 뒤에야 모두 끝났으나, 인도 시민들이 입은 피해는 여전히 진행 중이다. 1984년 보팔 사고 희생자 중에는 태아 사산이나 유산 피해 사례가 많았고, 그 당시 어린이들이 성장해 출산한 아이 중에는 선천적으로 기형인 경우도 보고됐다. 기형이 아니더라도 심장질환, 입술갈림증(구술구개열), 지체장애 등 여러 가지 질환과 장애를 가진 경우도 많다. 이렇듯 아직도 진행 중인 보팔 대참사는 화학 참사의 특징을 여실히 보여주고 있다.

2020년 5월 7일, 인도 비샤카파트남에 있는 LG화학의 현지 계열사 LG폴리머스 인디아 공장에서 스티렌 800여 톤이 누출됐다. 인도 정부 발표 기준 12명이 사망하고(일부 관련 단체들에서는 15명 사망 주장), 최대 1천여 명이 병원 이송돼 치료를 받는 사고가 일어났다. 스티렌은 세계보건기구(WHO) 산하 국제암연구소(IARC)에 의해 발암물질로 규정된 물질이다. 결국 LG폴리머스 인디아의 한국인 직원 2명 등이 구속돼 인도 사법부의 재판에 넘겨지고, LG화학 측은 사과문을 통해 “유가족과 피해자분들을 위해 가능한 모든 지원이 보장되도록 전담조직을 꾸려 장례와 의료, 생활 지원을 하겠다”며 비생대책위원회를 구성하고 현장지원단을 인도로 급파했다.

그러나 LG화학 측은 인도환경재판소의 명령에 따라 총 183억 원을 공탁한 것 외에는 “인도환경재판소의 1심 판결에서 피해 범위와 보상 규모 등이 정해지면 그 결론에 따를 것”이라는 입장을 밝히며 최근까지도 피해자들에 대한 지원을 제대로 하고 있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적어도 화학물질 사고와 관련해 예방을 위한 안전조치는 물론, 피해의 해결 과정까지 법제도와 관련 체계가 얼마나 중요한지 보여주는 사례들이다. 그러나 우리나라는 가습기살균제 참사를 겪었음에도 화학물질을 다루는 관련 산업 현장에서 노동자와 시민들이 목숨을 잃는 등 큰 피해를 입고 있다. 한국 정부와 기업들은 화학 참사 이후에도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화학 관련 설비와 화학물질 안전 관리, 제대로 이루어지고 있나? 노후 화학설비 정기 실태조사, 산업단지 시설물 안전 및 유지관리 특별법 제정 절실

국내 주요 석유화학단지 가동 시점을 보더라도 설비가 노후 됐을 가능성이 크고, 근무 중인 노동자들과 인근 지역주민들이 밀집되어 있지만2), 입주 기업들의 설비 투자를 강제할 법적 근거가 약하다. 한국은행 자료에 따르면, 지난 20년간 ‘코크스·석유 정제품’, ‘화학물질·제품’ 업종에서 계획 예방 정비에 소요되는 수선비가 제조원가에서 계속 감소했다. 업종별로 보면 제조원가 중 수선비가 차지하는 비중은 2019년 기준 △코크스·석유 정제품 0.28%(2,640억 원) △화학물질·제품 1.0%(1조5,120억 원)에 불과하다. 이렇듯 노후 설비에 대한 예방정비가 제대로 안 되면 사고 위험성은 그만큼 높아질 수밖에 없다.

환경부 산하 화학물질안전원의 최근 7년여간 통계에 따르면, 이 기간에 일어난 672건의 화학사고 원인으로 시설 결함이 39.7%(267건), 안전기준 미준수가 38.5%(259건)에 이르며, 운송차량 사고는 20.5%(138건)가 일어나고 있다. 사고 형태로는 79.6%에 이르는 535건이 누출 사고이고, 폭발과 화재가 각각 55건, 42건으로 그 뒤를 잇고 있다. 사고 원인으로는 노후화된 설비를 제대로 관리하지 못한 것이 사고의 주요 원인이며, 화학물질 사고의 특성상 중대산업재해와 시민재해로 이어질 수 있는 누출, 폭발과 화재가 사고 형태의 대부분이다.

연도별 사고 발생건수 추이를 보면, 2014년 105건, 2015년 114건을 정점으로 「화학물질의 등록 및 평가 등에 관한 법률」(화평법, 2013. 5. 22. 제정), 「화학물질관리법」 (화관법, 2013. 6. 4. 전부 개정)이 2015년 1월 1일부터 시행된 뒤, 2016년 78건, 2017년 87건, 2018년 66건, 2019년 58건으로 줄어드는 경향을 보이기도 했다.3) 그러나 2020년 75건, 2021년에는 11월까지만 89건이 발생해 증가 추세로 돌아섰다.

고용노동부가 화평법, 화관법 시행 전인 2014년에 30년 이상의 노후 화학설비 보유사업장 495곳을 대상으로 화학물질 제조취급·저장시설 전체에 대해 종합 진단에 준하는 정밀조사로 「노후 화학설비 관리실태 조사」를 실시했으나, 당시에도 조사의 법적 근거가 약해 이후 취해진 조치도 문제 사업장에 불이익을 부과하는 등 책임을 묻는 방식이 아니라, 관리 실태가 양호한 사업장에 대해 향후 지도·감독을 면제하는 등 인센티브를 주는 데 그쳐 예방 효과가 반감된 것으로 볼 수 있다.

환경부는 2022년부터 영세·중소기업을 대상으로 노후한 유해화학물질 취급시설 개선 비용의 70%를 국고로 지원하는 「화학안전 사업장 조성 지원사업」을 추진한다고 밝히긴 했으나, 예산 규모에 80억 원에 불과해 화학물질 관련 산업재해와 시민재해를 예방하기 위해 실효성 있는 정책이 될 수 있을지 의문이다.

2012년 9월 27일, 경북 구미 제4국가산업단지에 있는 휴브글로벌에서 플루오린화 수소(불산) 가스가 유출돼 노동자 5명이 사망하고 18명의 부상자가 발생하고 공장 일대의 주민과 동·식물들에도 가스 중독 증상이 나타나는 등 상당한 피해를 입힌 사례에서 보듯, 화학물질 관련 산업재해는 공장 울타리를 벗어나 지역이라는 공공의 안전을 위협하며 중대시민재해로 확대될 수 있음을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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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와 지방자치단체의 감시 감독 권한과 책임을 명시적으로 부여하고 필요시 재정 지원도 가능토록 해야 하지만, 교량, 터널, 항만, 댐 등 공공시설물 관리에 「시설물의 안전 및 유지관리에 관한 특별법」(시설물안전법)이 적용되고 있는 것과는 달리 정작 더 위험한 산업단지 설비 안전관리는 사실상 산업단지에 입주한 기업들에 내맡겨져 법제도의 사각지대에 놓여있다. 구미산단 불산 누출 사고와 가습기살균제 참사 뒤, 화평법과 화관법 등 관련 법제가 강화되긴 했으나 앞서 살펴봤듯 화학물질 사고는 다시 늘고 있는 추세다. 

일단 사고가 터지면 일반 공공시설물에 비해 중대산업재해나 중대시민재해의 위험성이 훨씬 높은 산업단지 내 화학 관련 설비와 화학물질들을 안전하게 유지 관리토록 「산업단지 시설물 안전 및 유지관리 특별법」을 제정해야 한다. 이 법에 따라 노후화학설비를 정기적으로 실태조사한 뒤, 사전에 효과적인 조치를 취할 수 있도록 법적 근거를 마련해야 한다.

화학물질 등록 평가법 중심으로 화학물질 관리 일원화 및 관련 부처 역할 강화

화학제품 안전법상 생활화학제품 전 성분 공개 표시 의무화

최악의 생활화학제품 참사인 가습기살균제 참사에서 교훈을 얻어 「생활화학제품 및 살생물제의 안전관리에 관한 법률」(화학제품안전법)이 2018년 3월에 제정돼 2019년부터 시행됐다. 화학제품안전법에서 지정한 생활화학제품에 대해 제조업체가 ‘제품에 함유된 모든 물질의 성분, 배합비율, 용도’를 환경부에 신고토록 하고 있으나, 소비자들이 생활화학제품 위해 정보 등 제품 정보 제공은 일부에 그치고 있어 문재인 정부의 국정과제인 ‘유해물질 정보 알권리 강화(57-2)’는 아직 제대로 이루어지고 있다고 평가하긴 어렵다.

물론 환경부-시민사회-기업 간 협업으로 세탁제·방향제 등 22개 기업의 1,500여 개 생활화학제품의 전 성분 정보를 ‘초록누리’에 공개하는 방식으로 ‘소비자의 알 권리와 기업 책임성 강화를 위해 전 성분 공개 확대와 제품 각 성분에 대한 유해성 공개를 추진’4)하고 있으나, 여전히 협약을 통한 자발적 공개에 그쳐 강제성에는 의문이 따른다.

EU는 REACH5)라는 체계를 두고 엄격한 화학물질 평가 과정과 생산기업과 소비자단체 등 이해관계자들과의 소통을 통해 등록을 마친 화학물질만이 제품을 중심으로 관리하는 개별법령들로 전달되고, 품목별 안전관리 기준에 따라 제품을 제조하고 유통하도록 하고 있다. 반면, 우리나라 환경부에서 화학물질과 제품을 통합 관리할 수 있는 품목은 생활화학제품 35개 품목과 살생물 제품 뿐이다. 시중에 유통 중인 수많은 화학물질과 제품 관리체계가 식품의약품안전처의 「화장품법」과 「위생용품 관리법」, 산업통상자원부의 「어린이제품 안전 특별법」(어린이제품법) 등 개별 정부 부처로 각기 나뉘어 있어 사각지대가 있다. 중복 규제나 사각지대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하려면 화평법을 중심으로 관리를 일원화해 책임을 분명히 하는 체계의 변화가 필요하다. 화평법의 위상을 「화학물질관리 기본법」 수준으로 상향시켜야 하며, 화학물질·제품의 통합 관리를 위해 정부 각 부처와 지방정부 등의 역할을 명확히 해야 한다. 무엇보다 어린이 제품의 안전관리를 산업통상자원부에서 환경부로 이관해, 물질과 제품을 통합 관리토록 해야 한다. 그리고 소비자의 알 권리 충족과 국민들의 생활화학제품 안전성 우려를 해결할 수 있도록 화장품 전 성분 표시제와 같이 화학제품안전법 등에 ‘전 성분 공개·표시’ 관련 조항을 신설해 법률에 시행 근거를 명시하고 의무화하도록 해야 한다.

‘가습기살균제 증후군’ 정의 통해 피해 인정 및 지원 범위 확대

2018년 5월 환경부 국립환경과학원의 ‘가습기살균제 건강피해 인정 및 판정기준 개선 연구’ 용역보고서와 정부의 가습기살균제 피해 인정 현황을 살펴보면, 가습기살균제가 기존에 정부가 가습기살균제 피해로 인정하고 있는 질환 외에도 다수의 질환과 연관성이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 환경독성보건학회 소속 연구자 44명이 참여한 해당 보고서에 따르면, 2017년 8월부터 2018년 5월까지 빅데이터 분석 및 독성학적 연구 결과, 기존에 정부가 피해로 인정해온 폐섬유화, 천식, 태아 피해 외에도 간질성 폐질환, 폐렴, 기관지확장증, 독성간염 등의 연관성이 높은 것으로 판단한 내용이 담겼고, 비염, 아토피 피부염, 결막염, 중이염 등도 연관성이 드러나고 있어 동반질환 및 합병증 등으로 지원받을 수 있도록 추후 종합 검토가 필요하다는 내용도 포함돼 있다. 당시 연구진은 간질성 폐질환, 폐렴, 기관지확장증, 독성간염에 대한 인정기준안을 마련할 것을 제안했다. 

이같은 관련 연구들을 토대로 기존에 호흡기계 질환만 대상으로 하던 것과 달리 가습기살균제 노출 후 전체적인 건강상태 악화 여부를 종합적으로 확인 검토해, 호흡기계 질환과 동반되는 피부질환, 중이염 등의 기타 질환도 피해구제를 인정하는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다. 그러나 호흡기계 질환이 동반되지 않은 각종 질환들을 앓고 있는 피해자들의 피해를 인정하는데 정부는 여전히 소극적이다. ‘가습기살균제 증후군’ 개념을 도입해 경증과 중증, 지속적 피해와 일시적 피해, 신체적 피해와 심리적 피해 등 가습기살균제로 인해 피해자들이 겪고 있는 다양하고 복합적인 피해를 포괄적으로 인정하고 지원해야 한다.

국가 및 지방정부 차원의 공공독성물질중독관리센터(PCC) 설치해야

독성물질 중독관리센터(Poison Control Center)는 국가나 지역사회에 존재하는 유해 독성물질 파악, 진단, 환자 치료 지원과 정보 제공, 예방과 감시 활동, 교류 협력 등을 전반적으로 수행하는 기관으로 1940년대 후반에 유럽에서 도입되기 시작했다. 세계보건기구(WHO)는 화학물질 등 독성물질 노출로 인한 중독사고에 대해 공중보건 위기 대응 차원에서 국가 차원의 ‘독성물질 중독관리센터’를 도입해 대응할 것을 권고하고 있으며, 중독관리센터 가이드라인을 제시하고 있다. 2019년 기준으로 WHO 기준으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가입국과 WHO 회원국의 절반 정도인 91개국에 312개의 중독관리센터가 도입돼 운영되고 있지만, 우리나라에는 올해 초 서울시가 고려대학교 안암병원에 위탁해 개설한 공공 PCC가 유일하다. 그나마도 아직 WHO 가이드라인을 충족하는 국제인증 중독관리센터는 국내에 전무한 실정이다.

물질 중독 감시 총괄부처 지정 문제, 물질 중독 감시-예방 부처 및 중앙정부-지방정부 간 협력 문제, 지역별 거점 병원들이 지역중독관리센터를 맡아 참여하는 문제, OECD 국가들 중 공공의료시설이 가장 부족한 국내 현실에 맞는 한국형 중독관리센터 모델을 구축하는 문제 등은 법제도적으로 반드시 해결되어야 할 시급한 과제다. 

대통령 직속 재난안전위원회 통한 진상 규명 및 재발방지 대책 마련 지속

가습기살균제 참사는 여전히 진행 중이다. 2022년 1월 31일 기준으로 정부에 접수한 피해자는 7,651명, 이 가운데 사망자는 1,742명이다. 가습기살균제가 처음 만들어진 1994년부터 2011년까지 17년 동안 약 998만 개의 제품이 팔렸다. 제품 사용자는 342~401만 명에 이르고, 이 가운데 건강 피해자는 49~56만 명에 이른다는 학계 연구도 있다. 접수 피해자는 물론, 중증 환자들은 아직도 고통받고 있으며 사망자 수도 여전히 늘고 있다.

그 어떤 참사도 피해 규모가 확인, 확정되지 않고는 진상 규명이 이루어졌다고 말할 수 없다. 피해 구제와 재발방지 대책 마련 또한 피해 규모 확정을 포함해 진상 규명 과정이 전제되어야 함에도 가해기업들과 책임·관련자 처벌이나 피해자들에 대한 배·보상 논란을 뛰어넘지 못하고 있다. 참사가 빚어진 출발점부터 현재까지의 사실관계 등을 명확히 해 다시 이같은 참사가 되풀이되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라도 민·형사상 책임 외에도 과거 정부들의 법규와 행정상 책임은 없는지 반드시 밝혀내야 한다.

산업재해와 시민재해의 진상 규명은 반드시 책임·관련자 처벌이나 피해 구제를 넘어 재발방지를 위한 법규와 행정 체계를 구축하는 데 있어 필수·전제조건이다. 기존 재난 참사 가운데 아직 원인이 명확히 드러나지 않은 세월호 참사와 가습기살균제 참사 등의 원인 규명과 재발방지 대책 마련에 집중할 수 있도록 대통령 직속으로 ‘재난안전위원회’(가칭)를 두고, 정부, 피해자단체들을 비롯한 시민사회, 관련 이해당사자들이 함께 단 한 생명이라도 안전사고의 피해자가 되지 않도록 관련 법규와 행정체계를 갖추는 데 최선을 다해야 한다. 정부는 기업들과 관련 단체들의 ‘규제 완화’ 요구에 맞춰 ‘규제혁신위원회’를 두고 있는데, 규제 완화가 자칫 시민들과 노동자들의 생명과 안전을 위협하는 뇌관으로 작용하지 않도록 재난안전위원회를 통해 견제·관리해야 한다. 대통령은 직속 재난안전위원회를 두고 피해자단체들과 관련 시민사회단체들이 제안해 온 생명안전 기본법상 안전사고에 대한 독립 조사기구의 조사 결과와 정책개선 권고에 따라 정부 차원에서 이행 방안을 마련하고 그 상황을 철저히 점검하는 과정을 살펴야 한다.

지난 2월 18일, 경남 창원의 에어컨 부품 제조기업 두성산업 직원 16명이 전자부품 세척액인 ‘트리클로메탄’에 급성 중독되는 사고가 일어났다. 두성산업은 산업안전보건법에 따라 트리클로메탄을 쓰는 작업장에 대해 작업환경측정을 통해 이 물질에 대한 노출 평가를 하고, 노출 기준을 초과하면 작업환경개선을 해야 했다. 사업자에는 특수검진을 통해서 노동자의 몸 상태를 주기적으로 관찰하고 화학물질이 공기 중에 퍼지는 것을 막아야 할 의무가 있었다. 그러나 두성산업은 지난해 10월, 이 세척제로 바꾸면서도 환기시설을 제대로 갖추지 않았고, 작업자들에게도 알리지도 않았으며, 당연히 특수건강검진도 실시하지 않았다. 2월 21일에는 경남 김해에서도 노동자 3명이 같은 중독 사고를 겪었다. 고용노동부 조사 등을 통해 드러난 바로는 세척액 제조사인 유성케미칼이 이 세척액을 납품하면서 화학물질 취급 주의사항을 담은 ‘물질안전보건자료(MSDS)’ 서류에 ‘트리클로로메탄’대신 독성이 덜해 노출 기준도 덜 엄격한 ‘디클로로에틸렌’으로 사실과 다르게 적었다고 한다. 피해 노동자들이 목숨을 잃지 않은 것에 감사하며 가슴을 쓸어내리고 끝낼 일이 아니다. 그저 중대재해처벌법에 따른 처벌이 가능한지 여부보다 더 중요한 문제가 있다. 더 큰 참사로 이어지지 않도록 책임자나 관련자들에 대한 형사처벌 뿐 아니라, 진상 규명과 재발방지 대책 마련이라는 지극히 당연한 과정을 건너뛰거나 멈추어서는 안 된다. 비용과 시간을 핑계로 예방 조치를 방치하고, 참사가 일어난 뒤 진상 규명도 내던지는 나라에서 또 다른 참사는 반드시 되풀이될 수밖에 없다는 사실을 대선 후보들을 비롯한 정치권과 우리 사회 모두가 잊지 말아야 한다. 


1) 이 글은 2022년 1월 25일에 열린 <대선 캠프 초청 국민 생명안전 대토론회>을 위해 제출한 발제문 「화학사고 및 화학물질 대책 마련」을 다시 고쳐 쓴 것입니다.

2) 가장 먼저 가동된 울산석유화학단지만 봐도 1972년 가동을 시작해 생산액만 83조 원에 이르는데, 308개사가 입주해 있고 2만1,100명의 노동자들이 일하고 있음. 1979년 가동 시작한 여수단지도 129개사가 입주해약 2만400명의 노동자들이 일하고 있고, 최근인 1991년에 가동 시작한 서산 대산단지는 11개사가 입주했고 근무 중인 노동자는 약 4,300명에 이르는 것으로 파악됨.

3) 환경운동연합, [팩트체크] 「화평법」,「화관법」 시행 후 5년, 화학사고 절반으로 줄어, 2020. 06. 22. (http://kfem.or.kr/?p=207934) 

4) 환경부, [보도자료] 세탁제·방향제 등 생활화학제품 전성분 정보 공개, 2021. 01. 28.

5) Registration, Evaluation, Authorization and of Chemicals, 유럽 신화학물질 등록 평가 관리 제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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