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복지동향 2022 2022-04-01   1353

[동향1] 420 장애인차별철폐의 날 20년 ‘투쟁은 끝나지 않았다’

[동향1] 420 장애인차별철폐의 날 20년 ‘투쟁은 끝나지 않았다’

연윤실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 활동가

시혜와 동정으로 얼룩진 장애인의 날을 거부하다

4월 20일은 ‘장애인차별철폐의 날’이다.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전장연)는 매년 노동·인권·사회·학생단체 등 진보운동 단체와 개인이 광범위하게 참여하는 420장애인차별철폐공동투쟁단(420공투단)을 꾸린다. 420공투단은 장애해방열사 최옥란의 기일인 3월 26일을 기점으로 전국장애인대회를 열고 5월 1일 노동절까지 1달여간에 걸친 집중투쟁을 벌인다. 420장애인차별철폐투쟁(420투쟁)은 올해 20주년을 맞이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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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월 20일이 처음부터 ‘장애인차별철폐의 날’이었던 것은 아니다. 1972년 한국장애인재활협회가 ‘재활의 날’로 정하고 기념하던 것을 전두환 정권이 1981년부터 ‘심신장애자의 날’로 지정했다. 1981년 UN이 정한 ‘세계장애인의 해’가 되자 한국정부가 1982년부터 그 명칭을 ‘장애인의 날’로 바꾸었다. 장애인의 날은 장애인에 대한 이해와 장애인의 재활 의욕을 고취하고, 복지 증진의 계기를 마련하기 위해 제정했다고 한다. 이날을 기념하며 각종 행사가 벌어지는데 장애인 복지유공자 포상, 장애인 ‘극복상’ 시상, 축하공연 등이 이어진다. 이런 방식으로 장애인의 날을 기념하는 행위는 장애인을 ‘이해해야 하는 대상’으로 타자화하고 ‘재활·극복을 해내야 하는 자’로 대상화한다. 

 

장애인들은 시혜와 동정으로 얼룩진 장애인의 날을 거부했다. 1987년 6월 항쟁과 7, 8, 9월 노동자대투쟁을 거치며 장애인의 문제를 개인이 극복해야 하는 비극이 아닌 사회구조적인 관점으로 바라보고 해결하려는 장애인 운동이 태동했다. 장애인이동권연대에 참여했던 단체들이 ‘장애인의 날’을 ‘장애인차별철폐의 날’로 명명하고 장애대중과 함께하는 420투쟁을 주도했다. 장애인 정책 담론은 보호와 재활의 수준에서 권리와 자립으로 변모해왔다. 하지만 20년 전 이동권 투쟁에서 외쳤던 ‘장애인도 버스를 타고 싶다’라는 슬로건은 여전히 유효하다. 저상버스가 운행되고 지하철 역사에 엘리베이터가 설치되면서 ‘살만해진’ 요즘 세상에도 여전히 장애인 이동권을 외친다.

 

여전히 ‘장애인도 버스를 타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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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년 국토교통부가 실시한 교통약자 이동편의 실태조사 연구에 따르면 2020년 12월 기준 전국 저상버스(시내버스) 보급률은 27.8%(9,840대)다. 정부가 제3차 교통약자 이동편의 증진계획 변경(안)(2017~2021)에서 밝힌 저상버스를 전국 시내버스의 42.0%까지 보급하겠다는 목표와 비교하면 66.1% 달성한 수준이다.

 

서울특별시(57.8%), 대구광역시(34.9%)의 저상버스 보급률에 비해 전라남도(11.5%), 충청남도(10.0%)의 저상버스 보급률은 매우 낮아 지역 격차가 심각하다.

 

운송회사들은 정작 저상버스를 도입해도 이용률이 낮아 실효성에 의문이라고 한다. 그러나 저상버스 보급률이 57.8%에 달하는 서울특별시도 저상버스를 운행하지 않는 노선의 비율이 19.7%다. 목적지로 가는 노선에 저상버스가 없기 때문에 버스를 이용할 수 없고, 버스만으로 환승하는 데 한계가 있다. 전국의 저상버스 운행노선 비율은 21.0%에 불과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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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월 17일 대법원은 장애인 시외이동권 소송 원심판결을 파기 환송했다.1) 대법원은 휠체어 이용자들이 향후 탑승할 ‘구체적·현실적 개연성이 있는 노선’을 휠체어 탑승 설비 설치 대상으로 하되, 버스회사들의 재정상태를 감안해 단계적으로 설치하도록 했어야 한다고 판결했다. 해당 판결은 이동할 수 있는 기반 자체가 없어 이동하지 못하는 장애인들을 차별하고 배제하는 우리 사회의 단면을 보여준다.

 

서울시 2015년 이동권 선언 및 세부 추진계획에 따르면, 올해(2022년)까지 지하철 전 역에 1동선 엘리베이터2)가 100% 설치되어야 하지만 여전히 30개 역사가 미설치3)로 남아있다. 아직도 장애인은 목숨을 담보로 위험한 리프트를 타며 이동해야 한다.

 

장애인거주시설은 ‘감옥’이다

국가인권위원회가 2017년에 실시한 ‘중증·정신장애인 시설생활인에 대한 실태조사’ 결과에 따르면, 2017년 기준 장애인 거주시설은 1,517개소이고, 장애인 거주시설에 입소 중인 장애인은 무려 30,693명에 달한다. 장애인거주시설에 비자발적으로 입소한 비율은 67.0%이고, 입소 기간이 10년 이상인 경우는 58.0%로 조사되었다. 비자발적 입소 사유는 ‘가족들이 나를 돌볼 수 있는 여력이 없어서’가 44.4%로 가장 높게 응답되었다. 장애인 거주시설 생활인의 42.6%는 ‘시설에서 나가 살고 싶다’고 응답하였지만, 28.6%의 응답자는 ‘시설장’이, 25.2%의 응답자는 ‘가족’이 퇴소결정 권한을 가지고 있다고 인식하고 있었고, 퇴소 가능성 자체를 인지하지 못하는 장애인도 18.0%에 이르는 것으로 조사되었다. 

 

문재인 대통령은 ‘장애인 탈시설 등 지역사회 정착 환경 조성’을 국정과제로 정한 바 있다. 정부는 지난 1월 ‘보건복지부 탈시설 장애인 지역사회 자립지원 시범사업’을 발표했다. 그러나 그 내용은 실효성 없는 ‘시험사업’에 불과한 수준이다.

 

2022년 탈시설 시범사업 예산은 총 43억 800만원으로 시설예산 6,224억의 0.7%에 그친다. 3년 간 시범사업에 참여하는 장애인을 개인별 특성 및 지자체 상황에 맞게 지원할 서비스와 지원인력 예산이 부재하다. 또한 UN장애인권리협약에 기반한 탈시설 원칙을 반영하지 않았다. 시설 폐쇄 기한을 두지 않았고 신규시설 설치와 전원 및 신규입소를 금지하지 않았다. 인권침해사건 및 재난·위기상황 등 긴급한 탈시설·자립지원이 필요한 장애인에 대한 지원체계도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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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 국회에 2020년 12월 10일 최혜영의원이 대표발의한 ‘장애인탈시설지원법’이 계류되어 있다. 해당 법안에는 UN장애인권리협약 제19조 「자립생활과 지역사회 통합」에 기반한 탈시설 정의를 명시한다. 탈시설 초기에 정착할 수 있는 지원으로 탈시설지원센터 설치 및 개인별 탈시설지원계획 수립, 정착지원금, 활동지원급여 추가 제공, 지원주택, 장애인주치의 법제화를 담았다. 10년 내 거주시설을 폐쇄하도록 하고, 인권침해시설에 대해 제재할 수 있으며 시설 거주인의 탈시설을 지원하는 내용이 담겨있다. 

 

탈시설자립지원 정책의 부재는 곧 장애인 인권의 공백으로 이어진다. 인권침해 사건으로 폐쇄명령 조치된 시설에 이용자가 수용된 채 남아있거나 지역사회의 지원체계가 미비해 장애인과 가족이 사회적 사망에 이르는 사건이 잇달아 벌어지고 있다. 국회는 하루 속히 장애인탈시설지원법을 제정해 제 역할을 수행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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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애등급제 가짜 폐지?!

장애등급제는 1988년부터 실시된 장애인등록제도와 함께 만들어졌다. 의학적 손상 수준을 기준으로 장애인에게 1~6급의 등급을 매기고 그것을 기준으로 사회보장급여를 제공했다. 사람의 장애정도를 측정하고 판정함으로써 이 정도면 장애인인지 아닌지, 서비스를 받을 수 있는 사람인지 아닌지, 서비스는 얼마나 받을 수 있는지 구분했다. 주어진 등급으로 인해 장애인연금이나 활동지원서비스 등 필요한 서비스를 신청할 수 없거나 필요한 만큼의 서비스를 받지 못하는 사람들이 생겨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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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별적이고 폭력적인 장애등급제의 대안은 ‘권리에 기반한’ 합리적 기준을 마련하는 것이다. 그에 따라 누구나 원하는 서비스를 신청하고 적격여부에 따라 서비스를 받을 수 있다. 

 

전장연은 박근혜 정권 내내 광화문 지하차도에서 장애등급제 폐지를 요구하며 5년 넘게 농성을 했다. 2017년 문재인 대통령은 장애등급제 폐지를 약속했고 박능후 보건복지부장관이 농성장에 방문해 그 약속대로 장애등급제를 폐지하겠다고 밝혔다. 장애인의 완전한 사회 통합과 참여를 위한 정책들을 함께 논의하는 민관협의체를 구성하며 농성을 마무리했다. 

 

2019년 장애등급제단계적폐지가 시행되었지만 장애인에게 개별적 맞춤형 서비스를 지원하기 위해 도입했다는 서비스지원 종합조사는 또다시 장애인을 중증과 경증으로 구분했다. 의학적 기준도 기존의 장애등급제와 흡사하다. 정부는 장애등급제 단계적 폐지라는 타이틀을 내걸고 있지만 결국 다른 방식으로 장애등급을 심사하는 형국이다. 서비스지원 종합조사는 서비스 수급자의 수를 적절히 통제함으로써 예산 범위를 초과하지 않도록 하는 기제로 작동한다.

 

예산 없이 권리 없다!

2021년 12월 31일 교통약자의이동편의증진법이 개정되었다. 이로써 시내버스·마을버스 등의 대폐차 시 저상버스를 의무적으로 도입하도록 하는 등의 성과가 있었다. 그러나 특별교통수단의 국비지원 의무조항이 원안의 의무조항과 달리 ‘할 수 있다’는 임의규정으로 통과되었다. 법률이 만들어지고 권리가 법에 명시되었어도 그에 걸맞은 예산이 편성되지 않으면 아무리 법이라 할지라도 휴지조각에 불과하다. ‘사회서비스/노동/소득보장/문화/교육’ 등 다양한 삶의 영역에서 충분한 사회보장이 이루어지려면 충분한 예산이 수반되어야 한다.

 

장애인들의 이동할 권리, 교육받을 권리, 노동할 권리, 감옥 같은 거주시설이 아니라 지역사회에서 함께 살 수 있는 탈시설권리를 20년 넘게 외쳤고, 그 권리를 대한민국 법률로 명시했음에도 불구하고 지금껏 지켜지지 않은 것은 사회적 책임이다. 

그 책임이 가장 무거운 자는 대한민국을 이끄는 대통령이다.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과 안철수 대통령직 인수위원장은 시혜가 아니라 권리를 쟁취하려는 420공투단의 외침을 겸허히 듣고 ‘23년 장애인권리예산 반영을 책임 있게 약속하길 바란다.


1) 2014년 전국장애인차별철페연대는 시민사회단체와 연대하여 국가와 서울시·경기도, 버스회사를 상대로 차별 구제 및 손해배상 청구 소송을 냈다. 2022년 2월 17일 대법원은 이러한 판단이 비례의 원칙에 반해 과도하다고 판단하고 원심을 파기 환송하였다.

2) ‌ ‌1역 1동선 확보란 장애인 등 교통약자가 타인의 도움 없이 엘리베이터를 이용해 하나의 동선(지상↔대합실↔승강장)으로 이동할 수 있는 것을 의미한다.

3) 서울교통공사 관할 21개역, 한국철도공사 관할 8개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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