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복지동향 2022 2022-05-01   386

[편집인의글] 지방선거와 복지정치

[편집인의글] 지방선거와 복지정치

김형용 동국대학교 사회복지학과 교수

선거가 다가올 때마다 우리나라의 선거제도가 매우 이상하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다. 정말 여당과 야당 사이에 첨예한 정책 갈등이 있는 것인지, 정권심판론과 인물론이 대립하는 것인지, 부정의와 비리로 사회적 갈등이 심화한 것인지 일상에서는 크게 인식하지 못한 채 산다. 그러다 선거철이 되면 이러한 대립이 드러나고 정치와 언론은 지역과 집단 갈등을 부추기는 혐오와 네거티브를 쏟아낸다. 민주주의란 서로 다른 의견을 가진 이들이 집단적 의사결정으로 함께 사는 공동체를 형성하는 데 의의가 있다. 그런데 민주주의의 꽃이라는 선거는 다양한 의견을 가진 이들을 한 공동체의 구성원으로 인정하지 않으려는 듯하다. 막상 선출된 사람들의 면면을 보면 살아온 역사나, 이후 행적 모두에서 그들 사이의 다양성을 찾기도 어렵다.

 

오늘날 우리 선거가 이해되지 않는 더 큰 이유는 결과가 국민의 선거권을 전혀 반영하고 있지 못한다는 것이다. 선거권이란 국민이 자기 의사를 대리할 대표자를 선출하는 권리다. 그러나 국회의원 선거나 지방선거 선출자는 정작 대부분 국민의 의사를 대리할 것으로 보기 어려운 사람들이 선출된다. 최고 득표자를 당선인으로 하는 한국의 선거 구조에서, 항상 50·60대 남성만이 국민을 대표하는 결과가 나오기 때문이다. 현재 전국 17개 광역시도 수장이거나 권한대행을 맡은 이들은 100% 남성이며, 시장·군수·구청장 등 전국 226곳의 기초자치단체로 보아도 여성은 8명에 불과하다. 즉 3.5%만 여성이다. 국회의원의 경우 여성 비율은 300명 중 57명으로 19%로 많이 증가하였지만, 여전히 작은 수치다. 57명 중 28명은 여성 할당 혜택을 받는 비례대표이니 지역구에서 선거 결과로 뽑힌 것도 아니다. 지방의회도 마찬가지다. 17개 광역시도의 의원 여성 비율은 19.4%이고 지역구 비율은 13.3%에 불과하다. 기초의회의 경우 그나마 사정은 낫지만 그래도 여성의원 비율은 전국 평균 20.7%이다. 연령별 격차는 더욱 심각하다. 21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300명 의원 중 20대는 2명, 30대는 11명에 불과하다. 정의당의 류호정 그리고 더불어시민당(더불어민주당의 위성정당) 전용기 의원이 없었다면, 20대를 대변할 이는 전무하였다. 주지하다시피 다수의 국가들에서 젊은 지도자가 주목받고 있다. 오스트리아, 핀란드, 뉴질랜드에서는 30대가 국가지도자로,프랑스, 덴마크, 벨기에, 룩셈부르크, 캐나다 등에서는 40대 초반의 정치인이 지도자로 선출되었다. 최근 매일 뉴스에서 볼 수 있는 우크라이나 젤렌스키 대통령도 40대 초반 대통령이다.

 

확률과 표본에 조금이라도 지식이 있는 이들이라면, 대표자를 가장 잘 뽑는 방법이 제비뽑기인 것을 알고 있다. 국민이나 주민 개개인에게 모두 같은 확률로 선택될 기회를 부여하기 때문이다. 과거 아테네 민주주의의 선거가 제비뽑기였던 이유이다. 모집단을 가장 잘 대표하는 표본을 뽑기 위한 단순무작위표집이다. 모든 이들이 선택될 확률이 동등하다는 면에서 과학적이다. 제비뽑기가 불안하다면, 즉 확률표본이 불쾌하다면, 비확률표본에서 그나마 대표성을 잘 반영하는 것이 할당표집이다. 인구 사회학적 특성을 가장 잘 대표하는 성연령 비율을 반영하는 의미에서 20대 여성, 30대 남성, 60대 여성 등 성연령 인구수에 맞추어 표본을 선정한다. 대부분의 사회조사 또는 여론조사가 이 방법을 사용한다. 따라서 대의제 민주주의 제도하에서 대표성을 높이기 위해서는 국민이 자신을 대표할 이들을 할당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한 명을 뽑는 대통령이나 자치단체장 선거에 반영하기는 어렵지만, 국회나 지방의원을 뽑는 것에서만큼은 할당이 있는 것이 좋다. 예컨대 전체인구의 680만 명에 달하는 20·30대 여성 비중 13.1%를 반영하여 의원을 선출하는 것이다. 이 또한 불쾌하다면, 각 성연령 집단이 자신의 대표를 뽑을 수 있도록 할당 투표를 할 수도 있다. 이미 그 사회적 시의성이 매우 감소한 지역별 선거구가 아니라 성연령 선거구로 선거를 치르는 것이다. 이 정도만이라도 실현된다면 현재 모든 선거 결과를 장악하고 있는 강고한 기득권 카르텔이 조금이나마 완화되지 않을까 싶다.

 

우리가 선거를 치르는 이유는 헌법상 기본권 보장의 책임을 국가와 지방자치단체에 책무로 위임했기 때문이다. 복지는 이러한 기본권의 핵심적 내용 중 하나인 생존권 보장을 실현하는 사회정책이다. 그런데 오늘날 사회보장급여는 지역별로 다르게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인구 사회적 특성에 따라 주어진다. 사회보장기본법에 평생 사회안전망이 그러한 개념이다. 따라서 생애주기별 사회정책 요구를 반영할 수 있는 일상생활의 대의정치가 훨씬 타당하다. 아동에게 적절한 돌봄, 청년에게 기본수당과 일자리, 중장년 여성에게 일자리를 제공하는 공약이야말로 지금 이 순간 필요한 공약일 것이다. 이러한 공약을 실현하기 위해서는 선거제도의 대표성 비례성 강화가 요구된다. 그러나 변화 없는 이번 지방선거에는 이전의 선거들과 같이 헛된 공약과 거짓 홍보, 그리고 이미지 매표 행위만 득세할 것으로 예상된다. 결국 필요한 것은 집단별 민의를 반영할 수 있는 복지운동이다. 형식은 지방선거인데 중앙정치의 2탄 또는 아류의 자치단체장과 의원들을 보고 싶지는 않다.

 

본 호는 다가오는 제8회 전국동시지방선거를 앞두고 지방자치와 복지운동 이슈를 다루었다. 첫 번째 기획 글에서 이주하 교수는 복지 강화를 위한 지방자치단체의 자치입법권·재정이 부족한 현실 속에서 ‘지방정부의 역량강화’를 강조하였다. 지자체가 자신의 책임을 다하기 위해 필요한 제도적 자원의 종류와 수량, 활용방식에 대해 스스로 결정할 수 있는 정치적 권한을 행사할 수 있어야 하며, 이번 지방선거가 바로 이러한 원칙에 대한 논의의 장이 되어야 함을 강조하였다. 두 번째 글에서 김이배 박사는 지방자치단체 선거에서 복지공약이 주요 의제로 등장해 왔으나 여전히 자치단체장의 공약에 대한 책임성이 불투명하고 주민들도 지방복지의 이슈를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는 지방선거의 현실을 지적하였다. 이에 복지운동 주체들이 적극적으로 지역복지 의제를 발굴하고, 공약 이행에 대한 철저한 평가를 수행하고, 복지정책 의사결정 참여, 교육, 그리고 지방정치인과의 소통을 강화해 나갈 것을 주문하고 있다. 마지막으로 김보영 교수는 대구 참여연대를 중심으로 지방선거에서 지역의제를 형성하고 이를 관철하는 사례를 소개하였다. 3대 비전 돌봄도시, 청년도시, 자치도시라는 정책의제와 정책과제를 만들어 중앙중심의 거대 담론이 아니라 지역에서부터 출발하는 의제를 이끌어내었다.

 

이제는 선거가 공공적 가치를 논의하는 기점이 되기를 바란다. 이를 위해 정치는 각 지역 인구집단의 절실한 복지요구를 경청해야 하고, 선거에서는 각자를 대변하는 이들이 선출되길 희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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