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복지동향 2022 2022-03-01   547

[동향1] 동물이 수단 아닌 목적으로 존재하는 세상을 꿈꾸며

정진아 동물자유연대 팀장

한때는 조금 순진한 생각을 했었다. 시민운동을 하겠다고 처음 동물단체에 입사해서 뭣도 모르고 열심히만 뛰어다니던 시절이었다. 그때 나는 세상에 이루어지는 악행 중 상당수는 단순히 무지가 원인이라고 생각했다. 자신이 하는 행동이 나쁜 결과를 가져온다는 사실을 알려준다면 그는 더이상 같은 행동을 반복하지 않을 거라고 믿었다. 유기동물 입양 캠페인도 그 중 하나였다. 매년 10만 마리 이상의 동물이 유기동물 보호소에 들어가고 그중 절반 가까이는 보호소 안에서 목숨을 잃는다. 그럼에도 한 편에서는 어린 동물이 끝없이 태어난다. 펫숍에서 동물을 사는 건 최소 두 마리의 동물을 고통에 빠뜨리는 일이었다. 하나는 입양 기회를 얻지 못하고 보호소에서 죽음을 맞이할 유기동물, 또 하나는 펫숍에서 판매하는 새끼를 낳기 위해 평생 임신과 출산을 반복하며 착취당하는 번식장 동물. 오로지 인간의 욕심에서 시작한 비극이므로 참혹한 실태를 세상에 널리 알리면 모두가 더는 펫숍에서 동물을 구입하지 않을거라 확신했다. 

그러나 애초에 세상은 그런 식으로 단순하게 꾸며진 꽃밭이 아니었다. 모든 무지가 악행의 원인은 아닌 것처럼 앎이 무조건 긍정적인 변화를 가져오는 것도 아니었다. 유기동물 입양 캠페인이 전국에 걸쳐 이뤄지고, ‘사지마세요, 입양하세요’와 같은 구호가 이제는 새삼스럽지도 않을 만큼 번식장의 폐해가 널리 알려졌음에도 사람들은 여전히 작고 어리고 품종 있는 동물을 원했다. 앎과 실천은 전혀 다른 문제라는 걸 그제서야 깨달았다. 그들에게 반려동물은 각 동물이 가진 존재적 가치에 앞서 자신의 욕구를 채워줄 도구로서의 목적이 더 중요했던 것이다. 

품종에 대한 선호는 보호소 내 동물의 운명을 갈라놓는 원인이 되기도 한다. 2021년 동물자유연대가 발표한 ‘2016-2020 유실·유기동물 분석 보고서’ 중 비품종견과 품종견 간 안락사 건수의 엄청난 격차를 보면 마음속 깊은 곳에서부터 씁쓸한 서글픔이 올라온다.

2013년쯤 반려동물 생산업 현황 파악을 위해 여러 곳의 번식장을 조사한 적이 있다. 그 당시에는 지금과 달리 생산업이 허가제가 아니었기 때문에 영업 요건이 까다롭지 않았음에도, 그 별것도 아닌 기준을 어기거나 심지어 등록도 제대로 안하고 운영하는 업체가 여럿 있었다. 배설물을 보다 수월하게 치우기 위해 바닥에 구멍이 뚫린 뜬장을 이용한 사육 방식이 일반적이었는데, 발을 제대로 딛기 어려운 뜬장에서 장기간 사는 동안 개들은 발에 염증이 생기거나 심한 경우 발이 절단되기도 했다. 쉴 새 없이 출산을 반복해온 어미들은 쇠약하고 병들어 있었다. 고양이 번식장에는 당시 인기가 많던 품종묘들이 잔뜩 모여있었지만 다들 몰골이 말이 아니었다. 춥고 지저분한 환경에서 잦은 임신과 출산으로 면역력이 떨어진 고양이들은 대부분 감기 같은 호흡기 질환을 앓고 있는 탓에 얼굴이 눈물과 콧물로 엉망이었다. 그들이 고통스러운 삶을 견디며 낳은 새끼들은 어느 펫숍 유리장에서 반짝반짝 빛나는 모습으로 전시되어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작고 사랑스러운 아기 동물들을 만들어낸 어미는 번식 도구로서의 가치가 사라질 때까지 착취당하고, 그 후에는 누구의 이목도 끌지 못한 채 쓸쓸히 버려진다. 

번식 도구에서 실습 대상까지…참혹한 번식장 동물의 생애 

당시 방문했던 번식장을 떠올려보면 하나하나 마음 쓰이지 않는 곳이 없지만, 그 중에서도 특히 기억에 남는 곳이 있다. 여러 품종의 개들을 뜬장에서 키우는 번식장이었는데 그 중 일부가 말끔하게 미용이 되어있었다. 주위에는 배설물이 가득하고 사육장은 녹이 슬 만큼 노후한데 그 안에 사는 푸들은 머리와 귀털이 묶여 있고 다리 털까지 완벽히 미용되어 있는 모습이 어쩐지 이질적이고 기이했다. 나중에 들어보니 그 개들은 미용학원 실습용으로 쓰이는 녀석들이었다. 나는 그 말을 듣고 꽤나 충격을 받았다. 솔직히 말하면 한참의 시간이 지난 지금까지도 이 사실을 생각하면 인간의 바닥을 들여다 보는 느낌이라 인간으로서 삶의 의욕을 조금 잃곤 한다. 당시 그 번식장의 주인은 “어차피 목욕도 제대로 못하는 애들인데 그런 곳이라도 가서 목욕도 하고 치장도 하면 좋지 않냐”며 대수롭지 않게 말했다. 그러나 새끼 낳는 기계로 사는 번식장 개들이 미용학원에서는 소중한 생명으로서 대접을 받을 것 같지 않았다. 아직 실력이 서툰 수강생들의 연습 도구가 되어 이러저러한 실습 대상이 되었다가 다시 뜬장으로 돌아올 개들을 생각하니 번식장에서 느꼈던 슬픔이나 설움과는 또 다른 절망이 와르르 몰려왔다. 

그로부터 한참의 시간이 흐른 지난 2021년 어느 애견미용학원 수강생의 폭로를 통해 실습 대상인 개들에게 행하는 온갖 학대가 알려지며 많은 이들의 공분을 샀다. 당시 알려진 바에 따르면 실습용 개들은 번식장에서 데리고 오는데 출산 직후 제왕절개 흉터가 아물지도 않은 채 들어온 아이도 있었고, 다리가 꺾이거나 발바닥에 피가 흐르는 등 치료가 필요한 동물이 다수 있었다고 한다. 그럼에도 학원에서는 치료는커녕 무리한 방식으로 수업을 진행했고 온수가 나오지 않는다는 이유로 차가운 물로 목욕을 시켜 번식장으로 돌려보냈다. 실습생들의 서툰 솜씨로 인해 살이 잘리거나 상처가 나더라도 연고 한 번 발라주지 않을 만큼 그곳의 동물은 실습용 인형보다도 못한 취급을 받았다.1)

이 소식을 접하고 나는 문득 몇 년 전 번식장에서 마주친, 알록달록한 머리끈을 하고 동글동글하게 꼬리와 다리를 미용한 푸들이 떠올랐다. 절박함 속에 원망이 섞인 것 같기도 했던 그들의 눈이 또렷이 생각났다. 

산업의 성장이 복지의 향상을 담보하지는 않는다 

국내에 반려동물을 키우는 인구가 천만 명에 달하고 반려동물을 더이상 동물이 아닌 가족과도 같이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아지고 있다지만 국내 반려동물 산업의 성장을 보면 어딘가 기형적으로 느껴진다. 조금만 외곽으로 나가보면 여전히 1미터도 안되는 목줄에 묶여 평생 눈, 비 피할 곳도 없는 곳에서 무료함과 외로움으로 평생을 보내는 개들을 수없이 만난다. 번식업이 허가제로 전환된 지금까지도 암암리에 불법 번식장이 성행하고 허가를 받은 번식장의 기준 역시 동물의 건강과 복지를 보장하기에는 턱없이 부족하다. 한 편에서는 사람의 것보다 더 비싼 음식과 옷과 물품을 사용하는 동물이 있는가 하면 다른 쪽에서는 오늘 하루를 살아남는 것 그 자체가 삶의 목적인 동물도 있다. 산업은 점점 성장하고 그로 인해 벌어들이는 수익은 어마어마한데 정작 그 수익이 고통에 처한 동물에게는 돌아가지 않는다. 그저 격차만 점점 더 커질 뿐이다. 

하기야 물질적 가치를 최우선으로 여기는 현대 사회에서 수단 취급 당하는 생명이 반려동물 뿐이겠는가. 인간의 가장 좋은 친구라는 반려동물도 그럴진대 조금이라도 경제적으로 이용할 가치가 있는 동물은 대부분 산업의 도구로 전락했다. 이름부터 산업동물로 분류된 동물은 그들을 이용하고 도구로서 대하는게 지극히 당연히 받아들여진다. 그들에 대한 우리의 부족한 인식을 여실히 보여준 사례가 얼마 전 드라마 촬영 과정에서 사망한 경주마 ‘까미’(예명) 사건이다. 

경마나 승마를 취미로 삼은 게 아닌 이상 살면서 경주마의 생에 대해서 궁금해하거나 생각해보는 사람은 얼마나 될까. 솔직히 말하면 나 역시 경주마의 일생에 대해 진지하게 파헤쳐 본 적은 없었다. 그러다 작년 말 은퇴한 경주마를 보다 효과적으로 이용하기 위해 경주마를 이용한 펫사료 공장 건립을 검토한다는 소식을 접했고, 이를 막기 위해 제주 지역 단체인 ‘생명권행동 제주비건’과 함께 경주마 복지 체계 구축을 위한 활동을 시작했다. 

그러던 중 올해 1월 드라마 낙마신 촬영을 위해 말의 앞 발목을 줄로 묶어 강제로 넘어뜨린 사실이 알려졌다. 발이 줄에 묶인 말은 미처 예상치 못한 사고로 인해 목이 완전히 꺾인 채 고꾸라졌다. 해당 장면을 촬영한 영상이 온라인에 게시되자 말의 행방을 묻는 질문이 빗발쳤고, 사고 일주일만에 말이 죽었다는 사실이 밝혀지면서 엄청난 공분을 일으켰다. 게다가 촬영장에서 죽은 말이 경주마로 뛰다 은퇴한 퇴역경주마였다는 게 알려지며 경주마들의 안타까운 삶에까지 관심이 이어졌다. 까미는 5-6살 쯤 경주마에서 은퇴한 후 어느 농장에 팔려갔고, 6개월 간 촬영장과 허름한 마방을 전전하다 안타까운 사고로 목숨을 잃었다고 했다. 

까미의 죽음은 참으로 가슴이 아프고 충격적인 일이지만, 다른 경주마들에 비해 유독 비극적인 사건은 아니라는 점에서 더더욱 슬프다. 말은 평균 30년 이상 살지만, 경주마들은 보통 2-4살에 은퇴한다. 그 나이 정도가 되면 더이상 경주에 나갈 만큼 빨리 달릴 수 없기 때문에 승리를 통해 상금을 안겨주지 못한다. 경주 실력이 떨어진 경주마는 이용가치가 사라진다는 의미다. 은퇴한 경주마는 곧장 도축되어 말고기나 사료가 되기도 하고, 까미처럼 농장이나 승마장 같은 곳에 팔려가 제대로 된 치료도 받지 못한 채 열악한 환경에서 목숨을 이어가기도 한다. 퇴역경주마는 한국마사회의 관리 대상에서도 제외된다. 은퇴를 당한 후 어디서 무엇을 하며 살아가더라도 그 누구도 정확히 파악할 수 없다는 뜻이다. 인간을 위해 몸이 부서져라 달리게 만들고는 효용가치가 떨어지자마자 관리 대상에서 제외 시켜버리는 한국마사회 역시 비난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퇴역 경주마 까미의 죽음은 전국이 떠들썩할 만큼 관심이 높았지만, 정작 까미의 본명을 아는 이는 아무도 없었다.

우리 사회는 이제 동물의 이용 없이는 멀쩡히 지탱할 수 없을 만큼 사회 전반에 걸쳐 구석구석 동물의 희생을 기반으로 하고 있다. 나 역시 그들의 희생을 밟고 안락함을 누리는 사람으로서 책임을 느끼고 사죄하는 마음으로 살아가지만, 그중에는 무조건 반대만이 능사는 아닐, 부득이하게 동물을 이용할 수밖에 없는 분야도 일부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인간의 탐욕이나 사유의 부족에서 기인하는 동물 착취는 반드시 금해야 한다. 다른 생명에 대한 연민과 약자를 보듬는 마음은 인간을 인간답게 살게 하는 최소한의 요소이기 때문이다. ‘사람을 수단이 아닌 목적으로 대하라’고 했던 칸트의 말을 이제는 동물에게도 적용해야 하지 않을까. 사람뿐 아니라 동물 역시 인간의 욕심이나 목적을 달성하기 위한 수단이 아니라, 그 자체의 존엄을 가진 목적으로서의 존재로 대우받을 수 있는 그 언젠가를 꿈꿔본다.


1) https://www.seoul.co.kr/news/newsView.php?id=20210409500022&wlog_tag3=nav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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