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복지동향 2010 2010-02-01   3762

[동향4] 기초생활수급자 인권을 말살하는 근로능력 판정기준의 문제점



최예륜
빈곤사회연대 사무국장 / 기초생활보장권리찾기행동
antipoor@jinbo.net




 올해 1월 1일부터 보건복지가족부가 시행하고 있는 ‘근로능력 판정기준’은 사회적 지원이 필요한 가난한 국민들을 정부가 어떠한 관점으로 바라보는지 드러낸다. 수급자들은 평가대상자가 되어 ‘더럽고 무능하고 나태한 근로무능력자’가 될 것인지 이 사회에서 열심히 살아가고자 하는 의지를 의료급여 수급권 제한(1종에서 2종으로 전환)과 맞바꿔치기하고 희망 없는 일자리(‘자활’의 전망이 부재한 자활사업 참여)에 가둘 것인 지를 고민해야 한다. 본인이 선택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수급자에 대한 편견과 반인권적인 발상에서 출발한 자의적인 평가기준에 의해 평가받아야 하는 것이다.


근본 배경은 국민기초생활보장제도의 한계

 2009년 12월 29일 보건복지가족부는 국민기초생활보장법 시행령 제7조 2항의 근로능력이 있는 수급자에 대한 기준을 변경하여 고시했고 그에 함께 근로능력 판단 기준을 새롭게 만든 「국민기초생활수급자의 근로능력 판정제도」를 발표했으며 2010년 1월 1일부터 시행하고 있다. 이 기준에 의해 수급자들은 근로능력 점수가 매겨져 올 4월부터 수급권 변경 적용이 이루어지게 되는 것이다. 


 내가 아닌 타인 누구라도 판단할 수 없는 노동능력을 평가 잣대를 들이대 판별하겠다는 정부의 시도는 끈질기게 지속되어 왔다. 이는 국민기초생활보장제도가 태생적으로 안고 있는 근본 한계에 기인한다. 국민기초생활보장제도는 ‘대한민국 국민이라면 누구나’(연령, 성별, 노동 여부, 장애 유무에 무관하게) ‘소득이 일정액(최저생계비) 이하’에 처한 국민이 ‘건강하고 문화적인 삶을 누릴 권리’를 보장하기 위해 만들어진 제도이다.


 그러나, 국민기초생활보장제도는 시행 10년을 거치며 그 제도의 문제점을 고스란히 드러내고 있다. 우선, 최저생계비가 비현실적으로 낮고 그 수준이 여타의 사회지표에 비해 점점 더 낮아지고 있다. 2010년 최저생계비는 1인 가구 50만원, 4인 가구 136만원 남짓이다. 이는 예산논리에 맞춘 자의적 계측방식의 문제점에서 기인한다. 생필품 항목을 대거 생략하여 죽지 않을 정도의 삶의 기준선을 정하는 전물량방식으로 계측되기 때문에, 사회 전반의 소득 수준이나 물가인상 추이를 반영하지 못하고, 평균소득의 30% 수준에 머물고 있다. 이 기준을 통과할 정도면 정말이지 찢어지게 가난한 사람들이라는 것인데도 소득이 최저생계비 이하여도 수급자가 될 수 없는 사람들이 410만 명이 넘는다. 이들은 여전히 빈곤의 책임이 개인이나 가족에게 있다고 간주하는 부양의무자 기준의 문턱에 걸려 넘어지거나, 현실과 맞지 않는 자동차기준, 재산기준 등의 각종 장벽에 부딪히고 있다. 제도 도입 당시 빈곤한 국민들의 기초생활을 사회적으로 보장하겠다는 기본 취지는 이제껏 제대로 실현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이런 장벽들을 넘어선 사람들에게 다음으로 닥치는 것은 근로능력이 있는지 없는지를 증명하는 일이다. 이것을 가능케 하는 조항이 기초생활보장법 하의 조건부수급조항이다. 기초생활보장법 제9조 5항에서 ‘근로능력이 있는 자는 자활사업에 참여하는 조건으로 수급을 받는다’고 규정하고 있다. 이는 의료급여법 적용의 기준으로 직결되고 있다. 하지만 누군가의 근로능력은 그 어떤 고매한 법으로도 규정할 수 없기에, 기초법도 감히 ‘근로능력자/무능력자’를 명시한 바는 없다. 근로능력이 미약하다고 인정되는 몇 가지 조건들을 제시해왔고, 전담공무원이 해당 수급자의 여러 가지 조건과 상황을 고려하여 판단하도록 해 왔던 것이다. 물론 이 역시 호의적인 공무원을 만나느냐 아니냐에 따라 운명이 엇갈리는 자의적인 조항이므로 제도 도입 당시부터 지금까지 지속적으로 문제로 제기되어왔다. 그런데 수급자격기준의 전반적으로 엄격해지면서 ‘부정수급자’를 걸러낸다는 명분으로 근로능력진단 기준이 강화되기 시작하였다. 비수급 빈곤층 410만 명의 처지의 심각함보다 부정수급 5천여 가구를 걸러내는 것이 시급하다는 태도이다. 2009년 용산구청에서 자행된 수급권자 무더기 강제전환사태는 의사 진단서만으로 근로능력을 판단토록 한 복지부 지침에서 비롯되었다. 이에 대한 이의신청, 수급당사자, 사회단체 등의 항의행동이 이어졌고, 의사협회조차도 이를 거부하기에 이르렀다. 결국 지침은 철회되었으나, 이번에는 객관적이고 공정한 기준이라며 시행되고 있는 것이 지금의 근로능력 판정기준이다. 전체 수급자 156만 명 중 17만 명이 조금 넘는 ‘부상, 질병 등으로 치료나 요양을 요하는 사람들’ 중 일할 수 있는 사람을 걸러내겠다는 것이 복지부의 방침이다.


수급자 인권 말살하는 근로능력 판정기준의 문제점


 복지부의 근로능력 판정기준은 질병, 부상에 대한 점수를 매기는 의학적 평가기준과 외양과 태도(자세)에 대한 점수를 매기는 활동능력 평가기준으로 구성되어 있다. 이에 따라 근로능력점수를 매겨 ‘근로능력자/무능력자’를 가려내겠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 ‘기준’은 기본 취지 자체가 상식에 맞지 않고 수급자의 인격을 모독하는 요소로 구성되어 있다. 


 우선, 개인의 ‘근로능력’을 타인이 판단하도록 한다는 점 자체가 문제다. 수급자들이 ‘자활’할 수 있도록 돕는 것이 명분이라지만, 그렇게 돕고 싶다면 당사자에게 ‘자활사업’의 전망을 제시하고 동참하도록 설득하는 것이 이치에 맞다. 자활사업에 참여해도 일반 수급보다 전혀 살림살이가 나아질 전망이 없고, 사회적으로 요구되는 노동능력을 계발할 수 없으며 심지어 노동자로 인정조차 받지 못하는 자활사업을, 수급을 명분으로 강요하지 말라는 것이다. 한 사람의 노동이 가능한지 아닌지는 본인 스스로가 판단할 수 있어야 하며 사회적으로 노동능력이 취약하다고 인정되는 사람도 본인이 원한다면 노동을 ‘징벌’이 아니라 삶의 희망으로 수행할 수 있는 사회적 환경을 조성해야 하는 것이다.


 겉으로 아무리 합리적인 것 같아 보이더라도 질병에 대한 의학적 판단기준과 외양과 태도를 관찰한 자의적 판단기준은 ‘근로능력’ 판단 기준이 될 수 없다. 복지부는 제도를 내놓으며 ‘근로능력 없는 자’의 기준을 ① 18세 미만/65세 이상, ②중증장애인(1~2급 장애인, 3급 중복 장애인), ③질병․부상 또는 그 후유증으로 3월 이상의 치료 또는 요양이 필요한 자, ④임산부, ⑤공익요원 등으로 보고 있다. 이는 장애인차별금지법, 남녀고용평등법 등에도 위배되는 몰상식한 규정이다. 개인이 처한 조건과 사회적 환경에 따라 일정한 지원을 받으며 노동할 수 있어야 하는 이들의 권리를 부정하는 대목이다. 이 중 ③ 집단을 판정기준을 들이대 재평가하겠다는 것이다. 이 기준에 의해 ‘근로능력자’로 인정되면 일반수급자에서 조건부수급자로 수급자격이 변동되어 자활사업에 참여하게 되며, 의료급여 1종 수급권자에서 2종 수급권자로 전환된다. 수급자격의 변동을 위해 개인의 근로능력을 인권침해적인 요소가 다분한 기준을 통해 자 의적으로 정의내린다는 것 자체가 반인권적인 발상이다.


 또한, 판정기준의 관문들을 넘기가 쉽지 않다. 의학적 평가 기준은 질병․부상의 16개 항목을 4단계로 나누어 평가하는 것인데, 4단계에 해당하면 근로능력이 없는 것으로 간주되며, 3단계일 경우 활동능력 평가 35점 이하, 2단계일 경우 활동능력 평가 30점 이하, 1단계일 경우 활동능력 평가 25점 이하를 받으면 근로능력이 없는 것으로 판정된다. 그런데 의학적 평가기준 16개 항목 모두에서 3단계로 진단을 받더라도 근로능력이 있는 것으로 간주되어 활동능력 평가 관문을 또 넘어야 한다. 또한 활동능력평가기준 10개 문항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총점을 매기는 방식이므로 예컨대 ‘알콜 중독으로 일상생활이 어렵다’라고 진단되어도 총점이 일정 수준 이상이면 근로 능력이 있다고 간주되어 버린다. 이 관문을 통과하여 자활사업에 참여하지 않아도 되고 의료급여 수급1종을 유지할 수 있다고 해도 수급자들은 모든 면에서 완전히 ‘쓸모없는’ 사람이 되어버리고 마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정말 심각한 문제는 특히 ‘활동평가’ 기준의 수급자의 인권을 부정하는 내용으로 채워져 있다는 것이다. 활동평가 기준으로 제시한 내용을 살펴보면, ‘외모가 혐오스럽고 옷이 더럽고 냄새가 나는지 여부, 집중력 없고 산만한지 여부, 자포자기하거나 작심삼일이 되는 상황여부, 자기 분에 이기지 못하거나 쉽게 좌절하는지 여부, 학력이나 연령 정도’가 평가기준으로 총 10항목 , 40점으로 구성되어져 있으며 총 3점 이하의 점수를 받아야만 근로능력이 없음을 판정받게 되어 있다. 이는 가난한 사람들을 더럽고 혐오스런 이미지로 표현해 빈곤층에 대한 이미지를 고착화하고 최저생계비조차 마련할 수 없어 기초생활수급자가 된 사람들의 자존감을 훼손하고 있다. 이 평가 항목별 기준들은 빈곤층에 대한 사회적 차별이나 편견들을 고스란히 그 기준으로 제시하고 있다. 즉, 빈곤층이 빈곤하게 된 이유 혹은 일자리를 구하지 못하는 이유를 개인의 지저분함, 산만함, 책임감 없고 자포자기하는 태도와 같이 빈곤층 개인의 문제로 환원하는 것이다. 이는 최저생계비 이하의 빈곤층의 권리를 보호해야 할 보건복지가족부가 빈곤층을 낙인찍는 항목으로 기초생활수급자의 인권을 짓밟은 것이다.


조건부 수급조항 폐지, 기초생활보장제도 개선 목소리를 높여야 할 때


 지난해 말 곽정숙 의원이 주최한 간담회 자리에서 빈곤/복지 관련 단체들은 충분한 의견 수렴도 없이 문제투성이 항목으로 구성된 근로능력판정기준 시행을 철회할 것을 촉구하였으나, 이미 제도는 시행되고 있으며, 생면부지의 통합관리공무원에 의해 진행되는 평가시험대에 이미 수급자들이 오르고 있는 중이다. 이로 인한 문제들은 판정기준에 따라 수급자들이 법을 적용받는 4월부터 본격적으로 가시화될 것이다. 지난해 수급권자의 권리를 박탈하는 용산구청과 복지부에 항의하며 수급 당사자와 사회단체 등이 함께 구성한 <기초생활보장권리찾기행동>은 올해 근로능력판정기준의 철회를 촉구하는 기자회견을 개최하고 국가인권위에 진정서를 접수한 바 있다. 예상한 문제들이 현실화되기 이전에, 더 많은 수급자들이 피해를 당하지 않도록 사례를 모으고 공동 대응을 위한 준비를 해나가고자 한다.
 
▶ 기초생활보장권리찾기행동은 지난 1월 13일 국가인권위 앞에서 “기초생활수급자 인권말살하는 근로능력판정기준 철회촉구 기자회견”을 열고 국가인권위에 진정서를 접수하였다.
 



올 해는 국민기초생활보장제도가 시행된 지 10년이 되는 해이다. 그러나 그동안 수급당사자의 목소리는 제대로 드러내지 못했다. 진입장벽을 넘어 제도에 포괄된 수급자들은 갈수록 낮고 비좁아지는 제도의 틀에서 숨 막혀 하고 있고, 제도 밖에 있는 비수급 빈곤층은 사회보장의 무권리 상태에서 허덕이고 있다. 지난 10년간 기초생활보장제도는 오히려 가난한 이들을 옥죄어 온 것이 아닌지 돌아보아야 한다. 또한 끊임없이 등장하는 빈곤의 자기책임론과 가난한 이들의 노동은 신성한 것이 아닌 징벌이라는 정부의 논리는 전환되어야 한다. 국민기초생활보장제도가 제도의 취지에 부합하려면 앞서 지적한 모든 문제들이 해결되는 개선과정이 있어야 한다. 특히 수급권자의 인간이자 시민으로서의 권리를 부정하고 수급권자를 무능한 인간으로 몰아세우는 잣대에 대한 대응이 더욱 강화되어야 한다. 복지 수급의 권리는 수급권자와 평등과 인권을 지향하는 모든 이들이 함께 지키고 확장해나가야 할 것이다.


* 기초생활보장권리찾기행동은
1> 평균소득을 기준으로 한 상대빈곤선 도입으로 최저생계비 현실화
2> 부양의무자 기준 폐지
3> 재산, 소득기준 개선
4> 조건부수급조항 폐지
5> 제도 운영에 대한 수급 당사자와 관련 단체가 참여 보장
등을 주요 내용으로 기초생활보장법 개정 청원운동을 계획하고 있으며 이를 위한 서명운동을 전개하고 있습니다. 서명용지는 빈곤사회연대 antipoor.jinbo.net에서 받으실 수 있습니다. 많은 참여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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