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복지동향 2014 2014-06-10   4323

[기획주제5] 고령화 사회의 노인자살

고령화 사회의 노인자살
: 노인자살예방을 위한 사회복지기능에의 반성과 고찰

 

박지영 l 상지대학교 사회복지학과 교수, 한국자살예방협회 학술위원장

 

굳이 고령화 사회의 정의를 되짚을 필요는 없을 것 같다. 이미 급속도로 진행되고 있는 대한민국의 고령화와 미처 고령화 사회를 철저히 준비하지 못한 채 맞이해버린 우리 사회의 시행착오들, 그리고 베이비 부머 세대의 주류적 등장과 더불어 세차게 밀려오는 고령화의 세기를 직면해야하는 현재, 우리가 돌이켜 살펴야할 복지논의의 한 꼭지는 고령화 속도를 앞지르며 대두되는 위기, 자살이다.

 

우리나라 자살률은 OECD 국가 간 자살률(OECD 표준인구 10만명당)을 비교할 때, OECD 평균 12.5명에 비해 2.3배 높은 29.1명(‘12년 기준)으로 OECD국가 중 가장 높은 자살률을 수년간 지속하고 있다. 2012년 기준으로 우리나라 15~64세 인구의 자살률은 인구 10만명 당 27.4배인데 비해 65세 이상 노인의 자살률은 69.8명, 80세 이상 고령노인의 자살률은 104.5명으로 비노인인구 자살률 대비 각각 2.5배, 3.8배 높다. 이는 비노인인구와 65세 이상 노인인구 자살률 간 차이가 최고 3.4배까지(80세 이상 노인자살률과의 차이는 약 5.4배) 치솟았던 2006년도에 비해 다소 감소한 수준이지만 그 심각성은 여전히 간과할 수 없는 수준이다.

 

이러한 우리나라 노인자살은 연령이 높아질수록, 여성보다는 남성노인에게서 더 높은 자살률을 보이는데, <표 1>에 제시된 바와 같이 80세 이상 고령노인의 자살률이 65세 이상 노인에 비해 30%~50%정도 더 높게 나타나며, 성별 차이는 남성노인이 여성노인에 비해 약 2.5배 가량(2012년 기준) 높은 편이다.

 

노인자살을 초래하는 위험 요인에 대한 논의는 다양하지만 여러 학자들과 자살예방 전문가들이 동의하는 요인들을 정리하자면 노년기 경제적 빈곤, 퇴행적이고 만성적인 질병, 핵가족화로 인한 가족돌봄 기능의 약화와 노인의 심리적 소외감, 그리고 의미있는 사람들의 죽음과 같은 부정적인 상실경험들, 그리고 이러한 환경적인 요인으로부터 비롯된 정신적인 문제, 즉 우울 등이 그것이다. 그런데 이 요인들은 노인자살문제와 단선적인 인과관계에 머무르지 않고, 일상에서 마치 씨실과 날실처럼 얽히고 설켜 노인을 위축시키고 이들이 스스로 빠져나올 수 없다는 절망으로 압도되는 거대한 위기(crisis)를 초래한다. 그렇기 때문에 노인자살예방을 위한 사회적 노력은 단순한 소득지원, 고독감해소와 같은 일원적인 접근보다 노인이 생활 속에서 ‘사회가 나의 위기를 도울 수 있다’ 는 사회적 지원에 대한 확신감을 느낄 수 있는 입체적이고 실질적인 장치들을 마련할 수 있어야 한다.

 

그리하여 필자는 고령화 사회가 노인자살을 예방하기 위해 거쳐야할 우리의 반성과 앞으로의 과제에 대해 세 가지로 요약하여 제시하고자 한다. 첫째, 노인자살의 핵심적인 위험요인인 경제문제, 노인의 욕구가 배제된 소득 중심, 기초선 중심의 진단 한계를 극복해야한다. 노인자살의 가장 주요한 위험요인을 꼽으라면 아마 단연코 노인의 경제적 어려움과 질병문제일 것이다. 여기서 노인의 경제적 어려움이란 단순히 기초선을 중심으로 구분되는 절대빈곤의 저소득 개념이 아니라, 실생활과 아주 밀접하게 연관된 ‘돈’과 관련된 문제들이다. 예를 들자면 예상치 못했던 치과치료나 수술로 인한 의료비 발생, 보증금을 소진한 월세나 지속적으로 오르는 전세비를 감당하는 것이 더 이상 어려워진 전셋집을 빼야하는 경우와 같이 생활의 다양한 영역에서 노인자신이 ‘경제적으로 대처하기 어려운’ 현상을 의미한다.

 

노년기 경제문제는 그야말로 ‘경제’, ‘수입’의 문제에 머무르지 않는다. 앞서 자살위험요인으로 언급한 질병 문제 역시 질병으로부터의 고통이나 의료서비스의 접근한계가 위기로 작동하기보다는 만성적이고 퇴행적인 노인질병의 특성상 소요되는 끝없는 의료비에 대한 부담, 노인으로 인해 자녀세대까지 이러한 의료비 부담으로 인한 경제적 위기를 초래할 수 있다는 ‘의료비에 대한 위기감’, 그리고 노인의 경제적 취약성에서 파생되는 자녀 및 가족 간 관계 갈등 등 경제적 문제는 단순히 노인의 다양한 생활영역에서 기초안전망을 흔들어놓는 중요한 자살위험요인이기 때문에 이에 대한 매우 전략적이고 실제적인 대안이 필요하다.

 

오히려 국민기초생활보호 대상으로 선정된 저소득층 노인은 의식주, 의료, 정서 등 모든 일상 영역에서 촘촘하게 제도적인 지원과 모니터링이 제공되기 때문에 이들의 안전망은 상대적으로 여러 위기 상황에 탄력적으로 대응할 수 있다. 반면, 실제로 노인인구의 다수를 차지하는 ‘비저소득층’ 노인의 경우는 제도적인 보호권 밖에 있기 때문에 전월세비, 식료품, 의료 및 공공요금 등 일상생활유지에 필수적으로 지출을 요하는 부분에서 보이지 않는 경제적 압박감을 개인적으로 경험하고 대처할 수밖에 없다. 이와 관련한 예로, 배민근 외(2006)는 생필품, 그중에서도 특히 생선류, 곡류 및 채소 등 노인에게서 소비가 많은 식료품 가격 상승이 타연령에 비해 노인의 물가상승 부담에 더 큰 타격을 입힐 것이며, 연금 등 사회보장정책에서 연령별 물가상승률 차이가 고려되지 않는 상황에서 고령층이 실제 부담하는 물가상승률을 반영한 고령층의 실질소득 및 소비여력을 제대로 파악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을 강조한 바 있다.

 

따라서 이제는 노인에게 만성적이고 일상적인 경제위기감, 그리고 스트레스를 초래할만한 위기요인들을 대처하고, 노년기 발달단계에서 요구되는 기본적인 욕구들을 충족할 수 있는 직간접적인 경제지원 기회들을 마련해야한다. 또한 적극적인 소비욕구, 그리고 경제적 자립욕구를 갖춘 베이비 부머를 노인세대로 맞이해야하는 지금, 우리는 미래 노인들의 생명 안전을 위해 새로운 노인복지의 관점, 새로운 복지망을 구축하는 것이 필요하다.

 

둘째, 노인자살예방은 노인의 인지한 위기의 통제보다 이를 대처하는 지역사회 탄력성(community resilience)을 회복, 강화하는 것으로부터 시작해야한다. 필자는 이전에 노인자살예방 관련한 연구와 발표들을 통해 지역사회 탄력성의 중요성을 여러 차례 강조한 바 있다. 우리나라 노인자살이 심각하고 어떤 대처가 필요하다는 것에 대해서는 사회적으로 충분히 인지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개인차원에서 자살 상황에 대한 터부, 낙인, 편견은 여전히 노인자살예방의 넘기 힘든 장벽이다. 따라서 지역사회가 적극적으로 이러한 편견, 낙인을 해소하고 더 나아가 이러한 인식의 변화를 도움행동으로 실제화하여 노인을 보호하고 지원할 수 있는 역량, 즉 지역사회 탄력성을 갖추는 것이 필요하다.

 

그 이유는 지금의 노인세대는 대체로 자신의 문제를 제3자, 혹은 전문가에게 의뢰하여 해결하는 문화에 익숙하지 않고, 가족, 이웃이 자신을 어떻게 인식하는가를 중요시하는, 즉 독립된 자아로서 무언가를 결정하고 행동하기 보다는 집단 내의 합의와 수용범위 내에서 자기 행동을 결정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지역사회가 자살위기에 놓인 노인들에 대해 얼마나 지지적이고 보호할 수 있는가하는 태도, 역량의 정도가 결과적으로 자살위기노인들이 적극적으로 도움을 요청하고 도움을 수용할 수 있는 가능성을 결정지을 수 있기 때문이다.

 

한 예로 작년에 필자는 보건복지부 지원으로 농촌형 노인자살예방모델개발 연구를 진행하면서, 보건소, 지역사회정신건강증진센터, 노인복지기관 등과 협력하여 경기도 여주지역 4개 마을의 이장, 부녀회장단을 중심으로 노인자살예방에 대해 교육하고 이들이 경험하고 생각하는 지역 내 노인자살의 문제점과 대안 등을 논의하는 인터뷰 등을 여러 차례 진행하면서 각자 ‘우리마을’에서 발생되었던 노인자살에 대한 분석, 그리고 이들을 도울 수 있다는 의지 강화를 위해 여러 방법으로 지원하였다. 그 결과 사업이 진행되는 6개월 동안, 처음에 노인자살에 대해 이야기조차 꺼려하던 이장, 주민들이 점차 ‘우리 마을’에서 묵인해왔던 노인자살유가족, 시도자들에게 다가가고, 이들을 정신건강증진센터에 의뢰하기도 하였으며, 무엇보다도 이러한 마을대표들을 중심으로 마을에서 자살이나 마음의 고통에 대해 이야기하는 열린 상황들이 조성되자, 그동안 노인 유가족 스스로가 도움을 요청하는 일들이 시작되었다. 그 결과 안타깝게도 사업기간 중에 노인자살이 발생했을 때, 마을대표들이 마을에서 어떻게 대처하면 좋을 것인가에 대한 자문을 요청하고 자발적으로 그 대안을 모색함으로써 마을 내 노인자살문제를 체계적으로 대처하는 기회를 마련하였었다.

 

자칫 노인자살의 문제를 정신병리적인 우울이나 개인의 충동성을 원인으로 환원하여 치료적 접근, 전문가의 개입만이 가장 유용한 대안으로 강조되는 면이 없지 않다. 그러나 노인자살예방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전문가의 역량과 접근성만큼 ‘노인이 필요로 하는 시점’에 ‘노인이 도움을 필요로 하는 상황’에 대해 ‘노인이 안도감을 가질 수 있는’ 가장 익숙하고 친밀한 사람들의 공감과 지원이다. 따라서 노인자살예방을 포함하는 노인복지의 기능은 기존의 욕구 대비서비스 제공 중심의 단편성을 극복하고 이제 노인에게 가장 안전하고 지속적인, 그리고 무엇보다도 노인 일상에 밀착된 지원 가능성을 높이기 위해 지역사회 탄력성을 회복하고 강화하는 전략을 만들어가야 한다.

 

셋째, 마지막으로 사회복지계의 노인자살예방 및 대처에 대한 역할 모색과 합의의 필요성이다. 지금까지 노인자살예방과 관련하여 많은 전문가들이 보건복지통합의 필요성을 강조해왔다. 좀 더 필수적인 요소를 반영한다면, 노인자살예방을 위해서는 보건복지뿐 아니라 경제, 고용, 보건, 복지 등 정부 각 부처와 사회를 구성하는 다양한 분야의 연대와 통합을 요구하는 것이 마땅하다. 그러나 현 시점에서 필자는 그 논의의 출발점을 사회복지계의 연대와 통합, 그리고 이보다 선행되어야 할 노인자살예방에 대한 사회복지계에서의 논의와 역할 모색이라는 가장 기본적인 제안을 하고자 한다.

 

2011년 자살예방법이 통과되고 자살예방 국가기본계획과 사업들이 전개되는 동안 사회복지계의 노인자살에 대한 무관심과 노력의 부재는 우리나라 취약노인들을 가장 많이 보호하고 지원하는 주체임에도 불구하고 공식적인 자살예방 전달체계에 흡수되지 못했을 뿐 아니라 우리나라 노인자살 증가율이 OCED 국가 순위에서 상위권으로 선포된지 거의 10여년이 가까워오는 현 시점에서도 사회복지사들의 노인자살예방대처능력을 향상하기 위한 노력도, 노인자살예방을 위한 정책 제언도 한 번 없이 몇몇 기관의 개별적인 프로젝트 수준에서 근근한 기능들을 수행하고 있을 뿐이다.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다.

 

앞서 논의한 바대로 노인자살은 단순히 정신질환의 문제가 아니라 그야 말로 삶의 질, 삶의 기반이 붕괴되고, 노인 스스로 이러한 문제를 대처할 지원과 대안을 찾지 못했을 때 선택하게 되는 가장 극단적인 결정이다. 따라서 노인자살이야말로 우리 사회복지계의 기존 역할과 기능을 잘 조합하고 연대함으로써 예방하고 대처할 수 있는 사회문제이다. 이에 대한 근거는 자살의 맥락이 사회적 요인으로부터 개인의 심리내적인 요인까지, 즉 생태체계적인 구조에서의 상호작용을 통해 형성되는 동시에 이러한 구조적 특성 때문에 자살을 예방할 수 있는 충분한 가능성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다양한 휴먼서비스 분야가 있지만 사회복지는 한 명의 개인과 가족, 그리고 지역사회와 사회의 여러 구조간의 관계와 상호작용을 관여하는 거의 유일한 전문직이다. 즉 사회복지야말로 현재의 의료적 접근에 집중된 자살예방의 한계를 극복함과 동시에 자살예방적 환경을 조성함으로써 사회 전반의 생명안전망을 구축할 수 있는, 어쩌면 유일한 사회 안전장치의 통합체일지도 모르겠다.

 

이제는 사회복지계가 죽음이라는 이슈를 멀리 하지 말고, 두려워도 말고, 노인자살예방을 위해 우리의 역할을 명확히 하고 여러 조각으로 분절되어 각기 바쁘게 돌아가는 사회복지 분야들을 연대하고 소통하게 함으로 고령화 사회에, 늘어나는 노인인구에 대해, 그들의 취약성뿐 아니라 인간다운 생존, 그리고 우리가 보호해야할 궁극적인 생명에 대해 우리의 책임성을 다시 한번 생각하고 대안을 마련하길 제안하며 희망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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