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복지위원회 연금정책 2022-03-09   332

[노후불안 처방전, 국민연금 강화⑤] 연금개혁, 어느 길로 갈 것인가

그간 시민사회노동단체들은 정부가 나서서 국민연금 개혁에 대한 사회적 논의를 빠르게 추진할 것을 요구했으나 묵묵부답이었다. 다행히 2022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국민연금 개혁의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제도 신뢰와 급여 적절성이 담보돼야 재정적 지속성을 위한 사회적 합의도 이뤄질 수 있다. 공적연금강화국민행동은 3/9 대통령선거까지 시리즈 기고를 통해 국민연금제도를 둘러싼 쟁점과 핵심 개혁과제를 짚어보고자 한다. 이번 선거를 통해 모두의 행복한 노후를 보장하기 위한 연금개혁이 이뤄지기를 기대해 본다. [기자말]


노후불안 처방전, 국민연금 강화⑤

연금개혁, 어느 길로 갈 것인가

 

나원준 경북대 경제학과 교수 

 

시간은 미래로만 흐르고 누구나 소득을 벌 수 없는 시기를 맞는다. 따라서 후세대가 이전 세대의 노후를 돌보는 것이 경제적으로 최선이다. 그런데 현재의 근로세대로서는 미래세대로부터 노후부양을 약속받기가 어렵다. 경제이론에서는 세대 간 자원 이전을 위한 시장의 부재를 공적연금으로 극복할 수 있다고 본다. 공적연금은 모든 근로세대가 이전 세대의 노후소득을 부담하도록 국가가 보장하는 사회적 계약이다. 생산연령인구가 빠르게 늘수록 공적연금의 효과도 두드러진다. 반대로 생산연령인구가 정체되거나 줄면 후세대의 부양 부담과 함께 공적연금에 대한 회의도 커지기 쉽다. 최근 저출생, 고령화가 고착화되고 베이비붐 세대의 은퇴가 시작되면서 공적연금을 두고 논란이 재연되는 데에는 불가피한 측면이 있다.

 

그런데 공적연금을 비롯한 사회보험이 도입된 역사에서는 사용자들로 하여금 사회적 보호의 책임을 분담하도록 양보를 이끌어내는 과정이 필수적이었다. 예컨대 미국의 공적연금은 1935년 제정된 사회보장법에 근거한다. 뉴딜을 지원했던 노동과 자본 간 균형이 있었기에 제도화가 가능했다.

 

그와 같은 균형이 무너지는 상황에서 자본의 선택은 공적연금을 약화시키는 것이 되었다. 각국의 연금민영화나 사적연금 활성화가 증거다. 자본은 위장된 자영업과 비정형 고용을 확대시키며 사회보험 책임을 회피한다. 지금도 노동계는 적정급여 확보를 위한 보험료 인상을 대체로 수용하는 반면 발목을 잡는 것은 사용자 측이다.

 

공적연금을 공격하는 논리는 달라진 것이 없다. 적립금이 곧 고갈되면 지급이 중단될 것처럼 불안을 자극한다. 1990년생부터는 국민연금을 한 푼도 못 받는다는 재계의 세대 갈라치기가 그 정점이었다. ‘수익비’가 1을 넘어 수급자들이 낸 것보다 많이 받아간다는 비난도 최근 재등장했다. 하지만 공적연금의 제도 핵심은 세대 간 사회적 부양에 대한 국가책임에 있다. 오늘 적립한 개인의 기여금은 오늘의 노년세대에게 급여로 지급된다. 오늘의 기여금을 이자와 더해 나중에 해당 개인이 돌려받는 구조가 아니다. 누구나 은퇴하면 후세대로부터 적정한 사회적 부양을 받도록 국가가 약속했다. 부양의 적정성이 관건이고 국가가 역할을 제대로 하는지가 중요하다. 수지균형을 따져 자식한테서 받아낼 돈만큼만 부모한테 돈을 들이는 게 공정하다면 공적연금의 존재의의가 부정된다. 그 빈틈으로 시장화라는 악마의 길이 열린다.

 

작년 말 OECD 발표에 따르면 노인과 유족에 대한 2017년 공공지출은 OECD 평균이 GDP의 7.7%였다. 한국은 3%도 안 됐다. 거의 꼴찌다. 대신에 노인빈곤율과 노인자살률은 1등이다. 평균소득자라도 2019년 국민연금 월 급여는 48만원에 그쳤다. 여기서 급여를 더 깎는 것이 노후소득보장이라는 제도 목적에 부합할까? 최근 OECD 연금보고서에서 한국의 소득대체율이 떨어진 것은 타당한 국제비교를 위해 상시고용 평균소득자 기준을 적용한 결과였다. OECD 평균도 저소득자가 고소득자보다 소득대체율이 높아 우리만 하후상박인 것은 아니다. 지급률이 1%라는 주장도 틀렸다. 일각에서는 한국의 소득대체율이 OECD 평균보다 높은 45.8%라고 하지만 현실의 노인빈곤을 감안하면 설득력 없다. 기준이 달라 그 수치로는 국제비교도 안 된다. 국민연금 대신 기초연금을 강화하면 된다고 하나 국민연금이 후세대 부담을 늘린다면 기초연금도 마찬가지다. 노인빈곤율에 미치는 비례급여의 영향을 주의 깊게 평가해야 한다. 중산층을 포괄할 때 복지재정의 정치적 지속 가능성이 제고된다는 연구결과도 고려하자. 연금개혁을 위해서는 결국 미래 급여를 적정 수준으로 올리는 길과 더 깎는 길 중 하나를 골라야 한다. 어느 길이 제도 강화이고 어느 길이 제도를 약화시킬 수 있는지 분명하다. 우리는 어느 길로 갈 것인가.

 

지금은 국민연금이 가입자기반과 국민신뢰를 넓혀가는 과정에 있다. 급여삭감과 수급개시연령 연장의 기개혁조치도 이미 시행되고 있다. 곧 고갈된다는 적립금 규모는 GDP 대비로 OECD 1위다. 연금개혁을 둘러싼 숱한 논쟁점들은 찬찬히 제대로 논의해가자. 하지만 틀림없는 사실은 세대 갈등과 수지균형이라는 프레임이야말로 신자유주의가 공적연금을 공격해온 논리라는 점이다. 후세대를 위한 재정건전화 때문에 연금개혁에서 급여 인상이 가로막힌다면 공적연금의 제도 기초가 흔들리기 쉽다. 당장은 2030에 호소력이 있어 보여도 미래엔 그들도 그만큼 손해를 입는다. 재정확충을 위한 다른 방안이 없지 않다. 진보의 금기를 넘는다면서 뒷문으로 재정보수주의를 들여와서는 안 된다. 그 길은 진보의 길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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