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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간 복지동향 200호 발행
  • 2019
  • 2019.05.10
  • 1149

공익(公益)이, 공익(空益)이 되지 않으려면

-대기업집단의 ‘사익’에 동원되어 온 공익법인들-

 

김도희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 민생경제위원회 변호사

 

대한항공 주총의 단상

2019년 주총 시즌 중 가장 뜨거웠던 기업은 단연 한진그룹이다. 한진칼에 대해서는 국민연금이 스튜어드십 코드(Stewardship Code)도입 이후 처음으로 주주권 행사에 나섰고, 대한항공에 대해서는 국민연금 수탁자책임전문위원이 직접 프록시 파이트(Proxy Fight: 위임장 대결)를 선언하고 나섰다. 그중에서도 초미의 관심사는 역시나 고(故) 조양호 회장의 사내이사 연임 여부였다. 참여연대와 민변이 함께 의결권 권유행사에 동참해 조 회장의 연임을 반대하였고, 세계 최대 의결권 자문사인 ISS를 비롯해 서스틴 베스트, 기업지배구조연구원 등 국내 의결권 자문사들도 조 회장의 이사 연임에 반대할 것을 권고하였다. 결국 기관투자자들, 막판에 국민연금까지 반대표를 던짐에 따라 조 회장의 연임은 안건 부결로 저지되었다. 대한항공 직원들이 주주들의 집으로 직장으로 주말과 밤낮을 불사하고 찾아가 위임을 요청한다는 기사가 연일 보도되었던 것을 보면 마지막까지 긴장을 늦출 수 없는 긴박한 상황이었다.

 

공익법인은 재벌의 가성비 좋은 거수기?

그런데 이처럼 주총의 향방이 한 치 앞을 내다볼 수 없을 정도로 박빙이었던 그때 공익(公益)의 이름을 걸고 은근슬쩍 사익(私益)에 쓰이는 곳들이 있었다. 바로 한진그룹 내 공익법인이다. 공익의 개념은 관점에 따라 그 의미가 다양하게 규정되지만 공공의 이익, 즉 사회구성원 전체의 이익을 뜻한다. 한진그룹은 정석인하학원, 정석물류학술재단, 일우재단까지 3개의 공익법인을 가지고 있다. 2017년 기준으로, 인하대학교, 항공대학교, 인하대학교병원 등을 운영하고 있는 정석인하학원은 1조 454억 원, 물류 관련 학술지원을 하는 정석물류학술재단은 603억 원, 문화사업과 장학사업을 하는 일우재단은 366억 원 규모의 자산을 보유하고 있다. 3개 법인의 총자산만 해도 1조 1423억 원에 이른다. 그런데 이들 사이에는 몇 가지 공통점이 있다. 첫째, 의사결정을 하는 이사진이 조 회장 일가 또는 한진그룹과 특수 관계에 있는 사람들이라는 것, 둘째, 공익법인임에도 공익사업에 쓰는 돈이 미미하다는 것, 셋째, 한진그룹 내에서 조 회장 일가의 지배력 유지・강화에 역할을 톡톡히 하고 있다는 것이다.

 

정석인하학원의 이사장은 조양호 회장이다. 「공익법인법」에 따르면 이사회 구성시 특별관계인 수는 이사 현원(現員)의 5분의 1을 초과할 수 없다. 그런데 법인 등기부를 보면 조원태 대한항공 사장, 원종승 정석기업 대표이사, 강영식 한국공항 사장, 최병권 대한항공 상무, 석태수 한진칼 대표이사, 조항진 대한항공 부사장 등 한진그룹 전・현직 임원이 15명의 이사진 중 거의 절반을 차지한다. 대놓고 법의 취지를 무시하는 처사다. 정석인하학원, 정석물류학술재단, 일우재단의 이사진을 비교하면 더러 같은 이름도 보인다. 이른바 공익법인의 회전문 인사다.

 

이 중 정석물류학술재단은 법인 자산 603억 원 중 546억 원이 주식이다. 수익사업을 거의 주식으로 하고 있다고 보아도 과언이 아니다. 대부분의 보유주식은 대한항공, 한진칼, 정석기업 등 한진그룹 계열이다. 이상한 건 546억 원을 주식에 투자하고 있는데 배당수익이 거의 없다는 점이다. 2017년 한진칼과 대한항공으로부터 받은 배당액은 0원이었다. 배당액이 적어서인지 같은 해 공익사업에 쓴 돈은 6.7억 원(1.12%)에 그쳤다. 정석인하학원도 지난해 한진그룹 계열사들이 낸 기부금 52억 원을 대한항공 주식을 사는 데 과감하게 쓴 반면, 목적사업에 쓰는 데는 인색하기 짝이 없었다. 가령 인하대학교의 연간 예산 중 재단전입금은 3%에 불과한 것으로 알려졌는데, 그마저도 교직원들의 사학연금이 90% 이상이어서 재단이 학교에 쓴 돈은 사실상 거의 없는 것으로 드러났다.

 

이렇듯 공익사업에는 도통 관심이 없고, 수익이 나지 않는 사업에만 몰두하고 있는 공익법인들, 그 속에서 이득을 보는 건 총수 일가뿐이다. 실제로 정석인하학원은 2.7%의 대한항공 지분과 조 회장 측에 우호적인 이사진을 가지고, 지금까지 조 회장의 지배력 행사에 유리하게 의결권을 행사해왔다. 한진그룹 계열사가 파산 위기에 몰렸을 땐 대학발전기금을 동원해 막아내기도 했다. 그리고 온갖 전횡 속에서도 조 회장 일가는 끄떡없이 공익법인들을 움켜쥐었다.

 

국가대표 기업 삼성은 수익도 놓치지 않았다

대한민국 대표기업인 삼성그룹은 어떨까. 삼성그룹의 주요 공익법인으로는 삼성생명공익재단, 삼성복지재단, 삼성문화재단, 호암재단 등이 있다. 이 중에서 이재용 부회장은 2015부터 삼성생명공익재단과 삼성문화재단 이사장이다. 이를 두고 재계 안팎에서는 본격적인 ‘경영권 승계’에 돌입하는 것이 아니냐는 관측이 돌았다. 그도 그럴 것이 지난 2014년 5월 이건희 회장이 급성 심근경색으로 쓰러졌고, 과거 이건희 회장도 경영권 승계 과정에 계열사 지분을 소유하고 있는 위 재단들을 동일하게 이용했다. 이들 삼성재단은 위 4개 재단의 총자산은 무려 3조 원에 이르며, 보유한 주식은 6천177억 원으로 21%를 차지한다.1) 종목으로는 2017년 기준 삼성생명 6.86%, 삼성화재 3.41%, 삼성물산 1.69%, 삼성전자 0.08% 등 주로 삼성계열사의 주식을 보유하고 있다.

<표 1-1> 재벌그룹 공익법인의 목적사업비 평균 지출 비중

 

삼성 역시 공익법인임에도 공익사업에 쓰는 돈이 미미하다는 것과 그룹 내에서 총수 일가의 지배력 유지・강화에 역할을 하고 있다는 점은 한진과 다르지 않다. 사회복지법인 중 가장 규모가 크고, 보육사업과 의료사업, 돌봄사업을 주된 사업으로 하고 있는 삼성생명공익재단은 2조 원의 자산 중 공익사업에 쓰는 금액은 2017년 기준 171억 원(0.82%)으로 1%에도 미치지 못했다. 삼성생명공익재단의 건물, 주식, 금융자산에서 나오는 수익만 매년 300억 원에 달함에도 말이다. 삼성문화재단도 총자산 7천697억 원 중 공익사업에 지출한 금액이 92억 원(1.19%)에 그쳤다. 주요 4개 법인 공익사업 지출액을 합쳐도 618억 원(2.1%)에 불과했다. 이는 다른 주요 기업의 총자산 대비 공익사업지출액이 평균 20% 가까이 되는 것과 비교하면 극히 낮은 수준임을 알 수 있다.

 

구체적인 사업을 좀 더 들여다보자. 현재 삼성생명공익재단은 보육사업으로 전국에 약 20개에 가까운 어린이집을 운영하고 있다. 문제는 이 어린이집 원생들이 대부분 삼성그룹 임직원의 자녀들이라는 것이다. 회사가 직원 자녀를 위한 어린이집을 운영하는 것을 두고 직원복지라면 모를까 과연 공익사업이라 할 수 있을까. 돌봄사업은 어떤가. 삼성노블카운티에서 운영하는 요양센터를 이용하기 위해서는 1인실의 경우 보증금만 해도 1억 원을 내야하고 생활비는 600~700만 원 대에 이른다. 초고가의 실버타운 사업을 공익사업이라 말할 수 있을지 의문일 뿐더러, 그런 수익사업을 대기업집단의 공익법인이란 이름을 걸고 할만한 사업인지도 물음표다.

 

수익사업의 규모는 한진보다 훨씬 크다. 2017년 1년 동안 주요 4개 재단의 수익은 금액은 1조 5,020억 원인데, 이중 삼성서울병원의 매출만 1조 2,400억 원에 이른다. ‘삼성생명공익재단 총수익 1조 5,000억 원 가운데 수익사업이 1조 4,000억 원’이라는 모 국회의원의 지적이 이 같은 행태를 상징적으로 드러낸다. 공익법인의 혜택은 혜택대로 누리면서 수익을 올리는 데만 열을 올리고 있다고 비치는 이유다. 삼성 측은 병원사업에 대해 적자를 무릅쓰고 국민의 건강권을 위해 운영하고 있다고 항변하지만 삼성그룹이 신성장 먹거리로 바이오산업을 키워 온 점을 고려하면 이 항변을 액면 그대로 받아들이기 어렵다. 적자건 흑자건 삼성으로서는 유용하고 유의미한 사업일 것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역시나 삼성그룹의 총수 일가는 공익법인을 통해 보이지 않게 지배력을 강화하고 있었다. 그동안 공익법인에 출연한 대기업집단 계열사 지분 5%(성실공익법인 10%)까지는 상속·증여세를 면제해 주는 등 각종 혜택을 주었는데, 이를 이용하여 계열사들의 지분을 과도하게 보유하면서 경영권 승계작업에 효자노릇을 하였다. 그중에서도 최근 대중적으로 드러난 것이 2016년 삼성생명공익재단이 구 삼성물산과 제일모직이 합병하는 과정에서 삼성SDI가 내놓은 삼성물산 주식 500만 주 중 200만 주(약 3,060억 원)를 매입한 사건이다. 알다시피 삼성생명공익재단 이사장은 이재용 부회장이다. 공익법인에서 계열사 주식을 출자하여, 세금을 감면받고, 그 의결권으로 지배력을 행사한다는 전형적인 승계방식이라는 것이다. 주총 때마다 거수기 노릇을 하는 것은 굳이 언급할 필요도 없을 것이다.

 

무늬만 공익법인, 규제할 방법은?

이처럼 대기업집단 소속 공익법인이 설립취지와 다르게 총수일가의 경영권 승계, 편법적 지배력 확대, 사익편취 등의 수단으로 이용되고 있다는 문제의식을 공유하면서 이미 정부와 여당은 공익법인 보유계열사 주식에 대한 의결권 행사를 제한하려는 움직임을 계속적으로 보여왔다. 금융·보험사와 같이 원칙적으로 의결권행사를 제한하되 예외적인 경우 특수관계인 합산 15%, 공익법인 합산 5%까지 의결권행사를 허용하자는 공정거래위원회의 공정거래법제 개선 특별위원회안에 대해, 정부는 특수관계인 합산 15% 제한을 단계적으로 적용하자는 입장이고, 여당은 특위안을 유예기간 없이 도입하자는 입장이다. 그러나 내년도 총선을 앞두고 있는 현시점에서 법통과는 요원할 것이므로 다음 국회를 기대해볼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한 가지만 추가로 지적하고 싶다. 유유자적하게 사태를 관망하는, 우리가 공공(公共) 또는 공익(公益)이라 부르는 곳들이다. 대표적으로 국민연금, 사학연금, 공무원연금 등 공적연금을 관리하는 곳이 그렇다. 연기금은 노후소득보장을 위해 내는 것이므로 공적기관이 투명하고 안정적으로 운용해야 한다. 이번 대한항공 주총을 통해 드러난 것만 놓고 보면, 국민연금은 무려 대한항공의 2대 주주이고, 사학연금은 27만 주, 공무원연금은 1만 8천 주를 소유하고 있다. 국민연금공단은 스튜어드십 코드를 도입하고, 대한항공을 중점관리기업으로 선정했음에도 불구하고, 적극적 주주권 행사를 포기했다. 다른 연금공단도 접촉해 본 바로는 조 회장의 연임에 대한 입장을 특별히 찾아볼 수 없었다. 사학연금과 공무원연금은 바로 올해 스튜어드십 코드 도입을 앞두고 있다. 그러나 이들 연금공단은 의결권 담당 직원을 1명으로 하는 등 인력이 절대적으로 부족하고, 수익률이 아닌 의결권에 대해서는 회사에서 요청이 없다는 이유로 주주로서의 권리는 행사되지 않거나 담당 직원 개인의 관심에 맡겨두고 있다. 한 마디로 시스템이 없다. 대한항공 사례에 국한해 경험한 예이기는 하지만, 언론에 보도된 것과는 달리 공적연금을 다루는 기관들이 기업을 오로지 투자의 대상으로만 보고, 주주권 행사에 대해서는 의지가 없다고밖에 할 수 없다. 나머지 공적연금들이 지체 없이 스튜어드십 코드에 가입하고, 적극적으로 주주권을 행사할 수 있어야 한다.

 

언젠가부터 유행처럼 재벌기업이 공익법인을 만들어 교육, 복지, 의료, 예술 사업을 표방하고 나섰다. 노블레스 오블리쥬, 사회에 좋은 일도 하고 폼도 낼 수 있다. 그러나 그 이면에서는 상속・증여세, 부가세 면제 등의 세제 혜택을 이용해 총수 일가의 지배력 강화나 경영권 승계에 이용되고 있었다. 공익사업이라는 말이 무색하게 수익사업도 거리낌 없다. 주총장에서는 당연한 듯 총수 일가의 우호지분으로 셈해진다. 공익법인의 공익(公益)이 공허(空虛)해지는 순간이다. 더 이상 공익(公益)법인이 공익(空益)법인이 되도록 두어서는 안 된다. 가성비 좋은 거수기 역할을 하게 두어서는 안 된다. 사회의 공적 이익에 이바지하려는 공익법인 본래의 취지를 되찾기 위해서라도 시민들의 감시와 견제가 절실하다.  


 

1) 하지만 이는 보유주식을 장부가로 따졌을 때의 수치이다. 시가를 반영하면 총 자산은 4조 6천430원으로, 주식은 2조 3천200억 원으로 평가된다. 이에 대해서는 공익법인 보유주식을 장부가로 할 경우 자산규모와 총수 일가의 지배력이 과소평가된다는 지적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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