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복지동향 2021 2021-02-01   1324

[기획1] 탈시설 이념 및 지역사회 거주 권리에 관한 논의

탈시설 이념 및 지역사회 거주 권리에 관한 논의1)

 

박숙경 경희대학교 후마니타스칼리지 객원교수2)

 

2020년 현재 전 지구적 재앙으로 닥쳐온 코로나. 모두가 힘들지만 특히 더 힘든 사람들. 모두가 무섭지만 특히 더 공포 속에 살아가는 사람들. 2020년 코로나 사망자의 절반 가까이가 시설 거주인이다. 이 사람들은 시설에서 거주하고 있는 사람들이 다. 분리와 격리, 집단생활이 더욱 강화된 속에서 한 사람이라도 코로나에 노출되면 피해갈 선택지가 없는 상황, 지옥이 따로 없는 코흐트 격리. 평소보다 더 굳게 안팎으로 닫힌 문. 나갈 수도 들어갈 수도 없는 시설 거주인. 코로나 팬데믹 상황은 탈시설이 왜 필요한 지를 생생하게 말해주고 있다.

 

2014년 유엔장애인권리위원회는 우리나라 정부에 탈시설 전략을 개발하라고 권고하였다. 권고 내용의 핵심은 ‘거주시설과 거주인 증가가 우려스러움, 탈시설화가 효과적이지 않고 장애인을 지역사회에 통합시키기 위한 충분한 조치들이 부족함, 탈시설화와 지역사회 통합을 위한 조치 필요, 인권에 기반한 효과적인 탈시설화 전략을 개발할 것’ 4가지였다.

 

유엔이 대한민국 정부에 탈시설을 권고한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거의 반세기 이전인 1970년 이후 유럽과 북미국가들을 시작으로 우리나라를 포함한 전 세계의 국가들에서 탈시설운동은 지속적으로 이어져왔다. 그러나 여전히 전 세계에 다양한 형태의 시설들은 끊임없이 생겨나고 남아있다. 참고로 유엔 장애인권리협약은 제19조에서 아래와 같이 장애인의 탈시설 권리를 규정하고 있다.

 

제19조 이 협약의 당사국은 모든 장애인이 다른 사람과 동등한 선택을 통하여 지역사회에서 살 수 있는 동등한 권리를 가짐을 인정하며, 장애인이 이러한 권리를 완전히 향유하고 사회로의 통합과 참여를 촉진하기 위하여, 효과적이고 적절한 조치를 취한다. 여기에는 다음의 사항을 보장하는 것이 포함된다. 

 

(가) 장애인은 다른 사람과 동등하게 자신의 거주지 및 동거인을 선택할 기회를 가지며, 특정한 주거 형태를 취할 것을 강요받지 아니한다.

(나) 장애인의 지역사회에서의 생활과 통합을지원하고 지역사회로부터 소외되거나 분리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하여 필요한 개별 지원을 포함하여, 장애인은 가정 내

지원서비스, 주거 지원서비스 및 그 밖의 지역사회 지원 서비스에 접근할 수 있다.

(다) 일반 국민을 위한 지역사회 서비스와 시설은 동등하게 장애인에게 제공되고, 그들의 요구를 수용한다.

 

 

인간으로서의 내가 사라지는 공간 ‘시설

“21살 때 가족에게 부담주지 않으려고 시설에 들어갔어요. 시설 들어갈 때 ‘죽어서 나간다. 내 인생은 여기서 끝이다’ 그렇게 맘먹고 들어갔어요. 그런데 1달 만에 나왔어요. 하는 것이 아무것도 없었어요. 하늘 보고 말할 사람도 없고 내 인생이 이렇게 사는 게 제일 무서웠어요. 인간으로서의 나는 없어지는 거야. 시설 안에서는 생각하면 힘들어요. 생각을 없애려 했어요. 그 안에서 살아남으려면 생각을 안해야 해요. 그런데 3, 4일 후가 되니까 저절로 생각을 안 하고 있더라구요. 내가 없어져 가는 거지. 그런데 그게 무서웠어요. ‘사람으로서의 나는 없어지는 느낌’이 제일 무서웠어요.”

 

열아홉 살에 사고로 전신마비 장애인이 된 J. 그는 가족에게 부담을 주고 싶지 않아서 스스로 시설에 들어갔다. J는 ‘사람으로서 자신이 없어지는 경험’을 했고 그것이 너무 무서운 경험이었다고 말했다. 나는 J가 말하는 그 느낌이 무엇인지를 안다. 15년 이상 탈시설운동을 하면서 전국 곳곳의 시설들을 찾아다니며 수없이 보고 느껴온 일이기 때문이다. 내게 탈시설은 인간으로서의 목소리 그리고 자유와 자아를 찾는 일이다. <표 1-1>의 2012년 국가인권위원회가 실시한 실태조사 내용은 시설에서 인간의 목소리를 잃어가는 사람들의 두려움을 보여준다. 

 

인간은 보편적인 환경에서 다양한 경험과 자극, 인간관계를 통해 자연스럽게 신체적ㆍ정신적 발달을 이뤄간다. 그러나 분리된 공간에서의 장기간의 단체생활은 이러한 다양한 경험과 사회적 관계를 맺을 기회를 억제한다. 결과적으로 인간이 스스로 발달해나갈 기회가 차단되는 꼴이며, 이는 신체적ㆍ정신적 발달상의 여러 가지 문제를 야기하게 된다. 탈시설이 필요한 가장 근본적인 이유가 여기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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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시설 이후 사람들의 삶은 어떻게 달라졌을까?

우리보다 앞서서 탈시설이 추진되었던 서구 국가들에서는 수십 년 동안 수많은 연구자들이 탈시설 이후 지역사회로 옮겨간 사람들의 삶이 어떻게 달라지는지를 연구했다. 라킨 등(Lakin, K.C.,Larson, S., and Kim, S. 2011)은 2011년 탈시설 성과 측정 연구 중 적응행동과 도전행동의 변화에 관한 연구들만을 모아서 메타분석을 실시하였다. 연구들은 10개의 집단비교 연구와 25개의 종단연구로 나누어졌다. 10개의 비교집단 연구들은 총 41개 항목을 비교하고 있었는데 35개 항목에서 탈시설 집단의 행동이 긍정적이었고, 25개 종단연구의 15개 연구가 통계적으로 유의미한 적응행동 향상을 보고하고 있었다. 

 

인간 삶의 변화를 특정 시점, 짧은 기간, 1회 조사로 알아내는 것은 사실 불가능하고 바람직하지도 않다. 따라서 탈시설 이후 사람들의 삶이 어떻게 달라졌을까를 알아보려는 연구들은 짧게는 수년 길게는 수십 년에 걸쳐 패널들의 삶을 추적해나가는 종단연구로 진행되는 경우가 많다. 탈시설 이후 사람들의 삶의 변화를 추적한 종단연구 중 가장 많은 패널을 가장 길게 추적한 연구가 콘로이 박사의 펜허스트 종단연구다. 이 연구의 시발점은 미국의 대표적인 탈시설화 사례로 꼽히는 1977년 할더만(Halderman) 대 펜허스트(Pennhurst) 사건이었다. 법원은 팬허스트 학교ㆍ병원과 같이 분리되고 불평등한 환경에서는 삶의 향상을 돕는 기술 제공이 불가능함을 확인하였고, 주 정부가 펜허스트의 모든 거주인을 위해 새로운 집과 활동 환경을 마련해 줄 것을 명하였다. 펜허스트 종단 연구는 이즈음인 1979년에 시작되었으며, 1,154명의 탈시설화 과정과 그 이후의 삶을 관찰하였다. 펜허스트 종단연구에 따르면 탈시설 후 장애인들은 자립성 증대, 도전적 행동의 감소, 만족감 증대, 가족들의 행복감 상승, 공적 비용 감소 등의 긍정적인 효과가 있음이 확인되었다. 필자는 펜허스트연구에서 탈시설의 성과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결과가 ‘가족들의 의견 변화’라고 생각한다. 처음엔 탈시설을 반대하고 우려했던 가족들의 80% 이상이 시설복귀를 반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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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 필자는 펜허스트연구를 수행한 콘로이박사와 공동으로 대구의 희망원과 사회복지법인 프리웰 산하 시설에서 탈시설한 사람들의 삶의 변화 종단연구를 시작했다. 아래의 희망원에서 탈시설한 중증중복발달장애인 9인의 삶의 변화는 해외의 선행연구들에서 보고되었던 긍정적 변화가 우리나라에서도 그대로 나타나고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희망원 산하 시민마을이란 장애인시설에서 수 십 년을 지낸 무연고 발달장애인 9인은 2019년 3월 지역사회의 아파트로 이주하여 사례지원자인 코디네이터와 활동지원사의 도움을 받으며 2인 1주택 형태로 아파트에 거주하고 있다. 

 

<표 1-2>의 변화는 프리웰에서 탈시설한 사람들에게서도 나타나고 있다. 사회복지법인 프리웰은 산하 시설 거주인 모두를 당사자 명의로 계약된 1인 또는 2인 1주택의 서비스와 주택이 결합된 지원주택으로 이전하는 법인차원의 탈시설을 추진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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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시설은 어떤 원칙에 의해 추진되어야 하나?

탈시설의 필요성과 방법을 둘러싼 다양한 쟁점들이 있다. ‘탈시설’이란 용어를 사용할지, 대체서비스가 부족하고 가족의 부담이 큰 상황에서 추진하는 것 자체가 적절한지 등에 관한 내용들이다. 유엔의 권고, 현 정부의 국정과제, 국가인권위원회의 권고가 이뤄진 지금도 이 논쟁은 지속중이다. 이러한 가운데 문재인 정부에서 탈시설 정책은 사실상 추진된 것이 거의 없다. 필자는 이런 상황이 탈시설을 바라보는 관점에서 비롯된다고 본다.

 

진정 탈시설과 커뮤니티케어를 추진하려면 ‘인간의 마음’으로 문제를 바라보고 정책을 추진해야 한다. 인간의 마음에서 ‘시설보호가 장애인과 사회적 약자를 의도적으로 사회로부터 격리하고, 그결과 어떤 사람들에게 동등한 사회참여와 발달의 기회를 차단하고 억압해 온 제도적 학대이자 차별’이라는 점을 인정하고 피해자들에게 사과하는 것으로부터 시작해야 한다. 지금까지처럼 탈시설을 사회복지서비스의 하나의 방법론, 시설운영자, 종사자, 가족과 같은 이해관계자 간의 이해를 조율하려는 정치적 관점으로 바라봐서는 풀리지 않는 과제다. 왜냐하면 시설의 탄생 자체가 효율성을 낮추는 사회적 약자를 집단적으로 수용하여 효율을 높이려는 자본주의의 효율성, 공리주의로부터 시작되었기 때문이다.

 

1970년대 미국 최초로 시설폐쇄를 이끌어낸 펜허스트 판결을 내렸던 레이먼드 브로데릭 판사는 ‘펜허스트가 장애를 가진 사람들을 사회로부터 격리할 목적으로 설립되었고, 결과적으로 그곳에 수용된 사람들의 기능과 직업적 능력을 상실시켜 그들에게 실질적인 피해를 입혔다’는 점을 핵심적인 위헌사유로 판단했다. 유럽연합, 스웨덴, 미국 등 서구 국가들이 탈시설화를 지속적으로 추진해 올 수 있었던 것은 시설에서의 인권문제가 단지 몇몇 시설과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국가와 사회에 의해 의도적으로 형성되어온 제도로부터 발생된 구조적 차별과 인권침해란 인식과 인정, 성찰이 있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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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U의 탈시설정책 추진 원칙과 미국의 HCBS4) 기준

현재까지 탈시설을 가장 앞서서 추진하고 있는 곳은 EU다. EU는 회원국들에게 지속적으로 유럽인권협약과 장애인권리협약을 이행하고 탈시설을 추진하도록 이끌고 있다. 2010년 「유럽 사회복지품질관리기준(European Quality Framework for Social Services)」을 채택하고, 2012년 「시설로부터 지역사회 돌봄으로의 전환에 관한 유럽공동기준(Common European Guidelines on the Transition from Institutional to Communitybased Care)」 및 「시설로부터 지역사회 돌봄으로 의 전환에 관한 유럽연합 자금 사용법 가이드」(a Toolkit on the Use of European Union Funds for the Transition from Institutional to Community-based Care)를 채택하였다. 

 

유럽공동기준은 회원국들이 ‘탈시설을 위해 시설을 폐쇄하고, 시설에 대한 지원을 중단하며, 지역사회 기반 서비스를 구축’을 통해 탈시설을 향한 명확한 전환점을 긋고 사회서비스 정책의 방향을 시설보호에서 탈시설로 선회할 것을 강하게 권고하고 있다. 이 권고의 방향과 원칙은 우리나라에도 그대로 적용될 만하다.

 

 


1) 이글은 2018년 필자가 책임연구를 맡았던 장애인탈시설 방안 마련을 위한 실태조사 – 시설에서 지역사회로의 전환을 위한 정책연구

– 내용을 토대로 작성되었다. 이 연구는 국가인권위원회의 탈시설 정책권고를 위한 기초연구로 진행되었다.

2) 경희대학교 후마니타스칼리지 객원교수, 탈시설운동을 시작하고 연구해온 사회복지학자. 장애와인권발바닥행동 탈시설정책위원회 공동 설립 및 활동가, 전 사회복지법인 프리웰 대표이사

3) 주간활동시간은 시설거주 당시 데이터를 확인할 수가 없어서 t테스트를 실시하지 않음

4) 2014 가정과 지역사회에 근거한 서비스 기준 법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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