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복지동향 2021 2021-02-01   956

[기획4] 탈시설의 선제 요건 – 지역사회돌봄의 의미와 쟁점

탈시설의 선제 요건

– 지역사회돌봄의 의미와 쟁점1)

 

김미옥 전북대학교 사회복지학과 교수

 

탈시설이면 되는가?

최근 몇 년 동안 장애인의 탈시설은 중요한 화두 중 하나였다. 그중에서도 발달장애인의 탈시설과 자립에 대한 논의는 더욱 중요해지고 있다. 발달장애인도 일상적인 보통의 삶(Ordinary life)을 누릴 권리가 있다는 인식이 확산된 결과이다. 그러나 탈시설에 대한 논의로 충분할 것인가? 아니 탈시설이 논쟁의 핵심 의제이어야 할 것인가? 그 안에 삶을 살아가야 하는 사람들이 있다. 지역사회돌봄이 탈시설보다 더 선제적으로 논의되어야 할 이유이다.

 

탈시설 과정, 그 안에 ‘사람’이 있다 

 삶의 대부분을 시설이라는 경계 안에서 집단생활을 해 온 사람들에게 지역사회는 경험하지 못한 낯선 공간이다. 시설을 벗어나 왜 지역사회로 나아가야 하는지, 지역사회에서는 어떻게 살아야 할 것인지, 시설 밖 세상을 알지 못하는 사람들에게 탈시설은 엄청난 용기가 필요하다. 김미옥(2017)의 연구에 의하면, 탈시설 장애인이 지역사회로 나아가는 것은 마치 이주민의 경험과 유사하다고 한다. 한 사람이 다른 나라로 이주하여, 그 언어, 문화, 생활양식 등을 재학습해야 하는 것처럼, 오랫동안 시설이라는 경계 안에서 살아온 장애인에게 지역사회는 사회적 언어와 문화를 재학습해야 하는 신공간인 것이다. 또한 집단생활 양식과는 다르게 자기 결정과 선택의 연속인 개인적 삶을 열어가야 하는 사회화의 장이기도 하다. 따라서 탈시설을 논하기에 앞서 그 안의 사람들로 우리의 시선을 이동해야 한다. 탈시설은 단순히 시설에서 지역사회로의 공간적 이동이 아니다. 지역사회생활(community living)을 배워나가는 삶의 혁신적 과정인 것이다.

 

지역사회돌봄, 단계별 지원서비스가 중요하다 

탈시설은 물론 중요하다. 지역사회생활은 더욱더 중요하다. 장애인이 한 사람으로서 지역사회 안에서 보통의 삶을 누리도록 하기 위해서는 탈시설의 준비부터 자립 유지에 이르는 단계별 서비스가 필요하다. 또한 장애인 당사자뿐 아니라 거주시설, 지역사회 등 관련 이해당사자 및 기관들의 연속적인 지원체계가 마련되어야 한다. 이를 정리하면 <표 4-1>과 같다.

 

[1단계]는 탈시설 준비 단계이다. 이 단계에서는 탈시설 당사자 자립 준비 교육, 탈시설관련 정기적인 정보 제공, 다양한 지역사회 생활 체험 기회 확대, 단기 체험 시 일시적 활동지원서비스 활용 가능성 검토, 거주시설의 개인별 자립 및 탈시설 지원계획 수립 의무화, ‘선 배치 후 체험’의 지원생활 체계로 거주서비스 전환 등의 변화가 필요하다. 장애인 당사자가 거주시설에 살면서도 스스로 지역사회에 나갈 동기와 용기를 가질 수 있도록 역량강화 과정(empowering process)이 필요한 것이다.

 

[2단계]는 지역사회 전환 단계이다. 이 단계에서는 탈시설장애인의 선택권을 보장하는 다양한 주거서비스 지원, 한시적인 개별화된 집중 종합 서비스 (집중사례관리) 제공, 활동지원서비스 급여량(탈시설 일정 전환 기간 동안 추가급여) 추가 검토, 집중지원이 필요한 장애인에 대한 안전지원서비스 체계 강화, 개인별 자립정착금 산정 및 지급 안정화 등의 제도적, 실천적 체계 마련이 검토되어야 한다. 이러한 전환단계에서의 성공 여부가 이후 지역사회 정착을 위한 중요한 전제가 된다.

 

NwbLAw03tFhlRddNe0P9mHvpgrus3XInNuYxgPVl

 

[3단계]는 지역사회 정착 단계이다. 이 단계에서는 낮활동 서비스 등의 연계를 통한 일상생활 재구성, 건강형평성을 위한 정기적인 건강관리지원서비스 체계 마련, 동료상담 및 자조모임 등의 서비스를 통해 자립 효능감 향상, 의미 있는 사회참여를 위한 지역사회 지원 써클(circle of support)의 활성화 등이 고려될 필요가 있다. 이 단계야말로 탈시설장애인이 단순한 지역사회로의 공간 이동이 아니라 지역사회가 삶의 기본 장소로서 기여하도록 하는 작업이라고 할 수 있다.

 

[4단계]는 지역사회 자립유지 단계이다. 혹자는 정착하면 되지 자립유지를 위한 지원서비스까지 검토되어야 한다고 할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위에서 제시한 것처럼 생의 대부분을 시설의 집단생활에 익숙한 탈시설 장애인에게, 지역사회에 정착해 자립하는 것은 어렵고 많은 시간이 필요한 일이다. 구체적으로 이 단계에서는 탈시설장애인에 대한 관점의 전환(탈시설에서 자립 패러다임으로), 탈시설지원센터(가칭)의 이용자에서 지역사회기관으로의 이전 모색, 공적 사례관리지원체계를 통한 지속적인 안전 관리, 지역사회 주민에 대한 장애인식 개선교육 강화 등의 방안이 검토되어야 한다. 

 

지역사회생활 실천 사례:관점의 전환이 필요하다

영국은 1990년대 지역사회돌봄법(Community Care Act) 및 직접지불법(Direct Payment Act) 도입 등을 통해 장애인이 시설이 아닌 지역사회 내에서의 자립 및 생활을 지원받을 수 있도록 하고 있다. 이 글에서는 지역사회생활 실천사례로 영국 내 지원생활 비영리단체 중 하나인 KeyRing을 소개하고자 한다.

 

j3u8ffHKr24ehkHp8tfqnDJyRc2g0xTFQ6cLWByp

 

KeyRing은 1990년부터 네트워크형 지원생활 시스템을 도입하여, 거주시설과 달리 지역사회에서 산발적으로 분포되어 있는 지원생활 서비스 이용자의 집에서 필요한 지원을 받는 체계를 구축해 발달장애인의 지역사회 내 자립생활을 지원하고 있다(CSED, 2009). KeyRing은 장애인이 보통의 이웃들과 함께 거주하면서 그 자신의 집에서 서비스를 받을 수 있도록 지원한다. 지역사회에 거주하는 장애인 당사자와 자원봉사자의 신청을 받아 총 10가구로 구성된 <그림 4-1>과 같은 형태의 ‘지원생활네트워크(Supported Living Network)’를 구축한다. 한 네트워크에는 총 10곳의 집이 포함되는 데 지원을 필요로 하는 장애인이 거주하는 집 9곳과 이들에게 기본적인 도움을 제공하는 지역사회 자원봉사자(Community Living Volunteer)가 거주하는 집 1곳으로 구성된다. 자원봉사자는 한 주에 최소 12시간을 네트워크에 참여한 장애인 성원2)을 위한 지원활동에 사용한다. 자원봉사자의 역할은 각 성원을 유연하게 지원하고, 성원들이 서로를 지원하고 특정 기술을 사용하는 것을 촉진하며, 이웃 및 경찰서 등과 같은 지역사회 기관들과의 연계를 구축하는 것이다. 각 네트워크에 참여한 장애인 성원의 집들은 자원봉사자의 집과 모두 도보로 이동이 가능한 거리에 위치하기 때문에 지원이 필요할 때 보다 편리하고 빠르게 자원봉사자의 지원을 받을 수 있다. 

 

이 지원생활네트워크는 1998년에는 London 지역을 중심으로 총 15개가 운영되었으나, 현재 잉글랜드와 웨일즈 지역에서 100여 개의 네트워크가 운영되고, 900여 명의 네트워크 성원이 참여하며 영국 내에서 그 수가 꾸준히 증가하고 있다(김미옥 외, 2017에서 재인용). 

 

남겨진 과제들

탈시설장애인의 지역사회 돌봄체계를 구축하기 위해서는 여전히 많은 과제들이 있다. 우선, 의료 및 행동(도전 행동 등) 특성을 동반하는 장애인을 고려해야 한다. 해외에서는 지원서비스의 양과 질을 높임으로써, 이들의 지역사회생활을 지원하고 있다. 향후 우리나라도 이들을 위한 주거지원체계 및 서비스 등을 모색해야 할 것이다. 또한 탈시설 장애인의 생애주기별 특성이 고려되어야 한다. 탈시설장애인은 아동청소년 및 고령장애인 등 그 생애주기가 다양하다. 특히 발달장애인은 조기노화의 특성이 있다. 따라서 생애주기를 고려한 지원체계 구축 역시 제고되어야 한다. 이 외에도 탈시설 장애인의 성공적인 지역사회생활을 위해서는 많은 난제들이 있다. 우리가 ‘함께’ 더욱 실천 지혜를 모아 전진해나가야 할 것이다.

 

 


1) 이 글은 김미옥 외(2017)와 김미옥(2019)의 연구에 기초하여 작성된 것임을 밝혀둔다.

2) KeyRing에서는 서비스 제공대상에 대해 지원생활 ‘서비스 이용자(service user)’라는 용어대신 지원생활네트워크 ‘성원(member)’이라는 용어를 사용한다.


참고문헌

김미옥ㆍ정민아(2017), ‘발달장애인의 탈시설 모델 개발에 관한 종단 연구(2015-2017)’, 교남소망의 집

김미옥(2019), 탈시설지원과정에서 필요한 정책 방안, 탈시설자립지원 및 주거지원방안 토론회자료집

KeyRing 인터넷 홈페이지(http://www.keyring.org).

 

정부지원금 0%, 회원의 회비로 운영됩니다

참여연대 후원/회원가입


참여연대 NOW

실시간 활동 SNS

텔레그램 채널에 가장 빠르게 게시되고,

더 많은 채널로 소통합니다. 지금 팔로우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