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복지동향 2021 2021-02-01   322

[복지칼럼] 인권의 토양

인권의 토양

이미진 건국대학교 사회복지학과 교수, 참여연대 사회복지위원회 실행위원

 

노인학대를 연구하는 학자로서 최근 일어난 또 하나의 아동학대 사망 사건을 보면서 착잡한 마음이 들었다. 아동학대 사망 사건이 발생할 때마다 뜨겁게 달아오르는 사회적 관심, 속사포처럼 쏟아지는 포털의 기사들, 그리고 발표되는 정부의 아동학대 예방대책. 

 

그러나 단숨에 사회적 관심에서 증발해 버리는 아동학대 사망 사건. 이런 동일한 패턴이 앞으로도 반복될 것이라는 예측, 이런 나의 예측이 과거에도 틀리지 않았다는 생각 때문이다. 사회적인 관심도가 높은 아동학대조차 근절되지 않고 있다는 점에서 사회적 관심도가 미미한 노인학대는 도저히 개선될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는 절망감, 무기력감이 나를 허탈하게 만든다. 

 

아동학대와 노인학대, 모두 중요한 사회문제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동학대에 비해 노인학대는 사회적으로 큰 주목을 받지도 못하고 노인학대 사망사건이 사회적으로 파장을 일으키는 것도 별로 보지 못했다. 왜 그럴까? 아래 사례를 보자. 

 

“당신이 응급실에 근무하는 의사라고 가정해 보자. 아동 1명, 노인 1명이 응급실에 실려 왔다. 누구를 먼저 치료해야 할까? 응급실에는 당신 이외에는 의사가 없다. 2명 중 1명만 선택해야 한다.” 

 

면접 때 위 사례에 대해 질문을 하면, 면접자의 99%는 아동이라고 대답한다. 왜? 너무 간단하다. 아동은 앞으로 살아갈 날이 많이 남아 있고, 노인은 이미 살 만큼 살아온 자이기 때문이다. 

 

앞의 사례는 노년학 교과서에 등장하는 사례로 전형적인 답변은 노인에 대한 편견(연령차별주의)을 드러내는 답이라고 쓰여 있다. 응급상황에서 합리적인 판단은 어떤 환자가 치료를 받으면 살 수 있는가를 기준으로 하여야 하며, 단 순히 환자의 연령으로 판단함은 비합리적이라는 것이다. 

 

그런데 위 사례에서 두 명 모두 살릴 수는 없을까? 왜 응급실에 의사가 1명 밖에 없을까? 우리는 제한된 자원을 가지고 문제를 해결하는 것에 너무나도 익 숙해져 있어서, 문제에 주어진 조건에 대해 의구심을 가지고 질문을 하는 사람은 거의 없다. 

2명 중 1명을 선택해야 한다는 것에 대해 누구도 문제 제기를 하지 않는다. 물론 문제에 대한 답을 해야 한다는 성실함 때문에 문제가 잘못되었다고 질문을 역으로 하는 것에 익숙하지 않아서일 수도 있다. 

 

우리의 의식을 지배하는 일차적인 가치는 무엇일까? 혹시 경제적인 효율성? 갑자기 소름이 돋는다. 돈보다 중요한 것은 생명인데, 그리고 너무나도 당연한 사실이지만 아동의 생명, 노인의 생명 모두 소중한데. 

 

생명에 서열을 매기지 말자. 그리고 진정한 가치를 추구하길 멈추지 말고 쉽게 좌절하지 말자. 역사의 진보는 나의 반걸음부터, 그리고 그 걸음을 멈추지 않아야 하고, 혼자가 아니라 우리가 함께 손잡고 가는 길이어야 한다고 다시 한 번 각성의 칼날을 예리하게 세워 보자. 

 

2021년, “모두의 생명이 소중하다”라고 크게 소리쳐 보자. 모든 생명을 소중하게 여기는 마음이야말로 인권의 가장 밑바탕을 이루는 토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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