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산적 복지 패러다임 ㅣ 우리사회의 대안인가

생산적 복지의 등장: 중산층 몰락과 분배구조 악화

김대중 정부는 지난 3.1절 경축식에서 IMF 경제위기를 어느 정도 극복하였다는 자신감을 토대로 IMF로 인한 고통을 집중적으로 받았던 중산층과 서민을 위한 정당으로 거듭날 것임을 천명하였고, 이어 지난 6월의 현충일 기념사에서 국정 운영 철학의 두축인 민주주의와 시장경제에다가 “생산적 복지”를 추가로 제시하였다. 대통령의 공식 발언에서 생산적 복지라는 화두가 나온 이후 생산적 복지는 국민의 정부가 추구하는 분배의 지도원리 등장하게 되었고, 광복절 경축사를 통하여 국정운영 철학의 하나로 자리잡게 되었다.

생산적 복지 정책의 내용과 실체에 대한 긍정적 해석과 부정적 해석이 분분하지만, 어쨓든 많은 사람들이 김대중 정부의 정책 노선에 어떤 변화가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효율과 경쟁을 중요시하는 신자유주의에서 국민복지와 분배를 강조하는 신 중도노선으로 선회할 것이라는 분석이 그것이다. 이러한 국정 운영 철학 변화의 배경에는 중산층의 몰락과 분배구조의 악화에 따른 민심의 이반이 자리잡고 있다는 것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우리 사회의 분배구조 악화는 통계청의 도시근로자 소득통계를 보면 쉽게 알 수 있다. 97년 평균 월소득이 509만원이던 최상위 10% 계층의 수입은 98년도에는 529만원으로 4%가 증가한 반면에 73만원을 벌던 최하위 10% 계층의 소득은 56만원으로 22.8%가 줄었다. 더욱이 경기가 회복되었다고 자축하던 올해 1/4분기의 소득분배 구조는 더욱 악화되는 우려되는 상황이 발생하였다. 도시 근로자 가구의 평균소득은 늘어나고 있지만 하위 소득자의 평균소득은 줄어들었다. 상위 20%의 소득 계층의 평균 소득은 98년 4/4분기보다 9.2%가 늘어났지만, 하위 20%의 평균소득은 3.3%가 줄었다. 이런 양극화 현상으로 도시 빈곤층이 크게 늘어나고 있다. 4인가족 기준 월소득 86만원 미만인 빈곤선 가구는 올 1/4분기에 6.9%로 97년 3.0%보다 두배 이상 늘었으며, 이는 98년 4/4분기에 비해서도 0.7%가 증가하였다.

이와 같이 소득분배 구조가 악화되고 절대 빈곤층이 증가함으로써 기존의 자유주의적 대응이 한계에 부딪히게 되자 새로운 대책으로서 생산적 복지 이념과 세정, 세제개혁을 대안으로 제시하게 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그 중에서도 고용과 복지 대책을 통하여 일할 의욕과 능력을 가진 사람들에게 직업훈련과 교육을 통하여 일한 능력을 개발하고 절대 빈곤층에 대해서는 최소한도의 생활을 국가가 보장한다는 것을 주요 내용으로 하는 “생산적 복지” 정책이 그 핵심이라고 볼 수 있다. 8월 19일자 시사저널은 김대중 대통령이 광복절에 중산층, 서민, 중소기업인들에게 희망의 “광복절복음”을 전파할 것이라고 보도하면서 ‘DJ, “서민대통령”으로 거듭날 것인가’라는 표제의 기사를 실었다. 과연 김대중 정부는 생산적 복지를 통하여 시민들의 기본적인 삶을 보장하고 경제성장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잡을 수 있을 것인가?

생산적 복지 패러다임의 실체는 무엇인가?

생산적 복지라는 김대중 정부 사회정책 패러다임의 실체는 무엇인가?

국민정부의의 이데올로기 제공자인 황태연 교수는 ‘생산적 복지는 21세기의 화두'(월간리포트 제8호; 10-11)라고 지적한다. 생산적 복지는 민주주의. 시장경제. 생산적 복지의 병행 발전으로, 생산적 복지는 공적부조를 실업문제 해결 및 지식기반 산업화에 필요한 노동인력 공급과 연결시키려는 영국의 “일로 통하는 복지(welare to work)”나 독일의 “공적부조에서 취업으로 이끄는 복지프로그램”과 흡사하지만 완전히 동일하지 않다고 한다. 한국의 생산적복지는 취약집단의 생활보호를 한층 더 강화해 나감과 동시에 지식기반 산업화와 환경친화적 경제발전을 촉진하는 방향에서 계층간 사회적 평등과 세대간 환경권적 평등을 증진하는 21세기 형 복지로 정의된다는 점에서 유럽과는 다르다는 것이다. 그는 생산적 복지 실현을 위한 구체적인 당면 정책들로 국민의 기초생활보장, 4대보험제도 확충, 취약계층의 복지증진, 평생건강관리 기반 구축, 직업능력 개발과 평생교육체계 확립, 교육환경개선, 환경친화적 국토관리 강화, 재난. 재해대비 안전관리체제 강화, 문화향유체제 구축을 들고 있으며, 향후 취학전 아동 완전무료교육, 도시중학교 무료급식, 초등학교 무료급식, 단계적 주당 5일 근무제 도입으로 확대되어야 한다고 한다.

김유배 노동복지 수석은 김대중 정부가 생산적 복지를 추진하게된 배경을 다음과 같이 지적하고 있다. 첫째, 역사적으로는 지난 시절 성장지상주의가 초래했던 인권경시와 복지최소화의 폐단을 넘어서서 성장과 분배의 균형발전을 추진하는 의미를 가지며, 둘째, 국면적으로는 IMF에 따른 소득재분배의 악화, 만성적 고실업구조의 등장, 노사관계의 불안정, 빈곤인구의 급속한 증가, 소득계층간 사회적 양극화 결과로 시민들의 국가역할에 대한 회의와 시장 발전이 일부 국민에게만 혜택이 돌아가는 것이라는 사회적 소외구조하에서는 민주주의와 시장경제의 사회적 기초가 취약할 수밖에 없다는 점에서 국면전환이 필요하고, 세번째는 세계적 경제흐름에서 볼 때 인간의 지식개발에 의한 기술적 진보와 고부가가치 서비스의 창출이 핵심적 국가경쟁력이 될 것이기 때문에 복지를 단순 시혜적 수단에 의존하지 않고 자립의지를 존중하고 경제, 사회적으로 가치있는 활동으로 연계되는 생산적 정책수단을 적극개발하고, 궁극적으로는 국민의 삶의 질 향상으로 이어질 수 있도록 인간개발을 위한 사회투자적 복지인프라를 확충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생산적 복지의 미래지향적 비전은 경쟁원리에 입각한 경제성장과 연대원리에 입각한 분배정의가 균형관계를 이루면서도 분배정의는 안정적 경제성장의 사회적 기초로 작동하고 경제성장은 국민 모두의 삶의 질 향상에 기여하는 상호보완적 관계를 설정하고 이를 통해 국민 모두의 인간적 삶을 보장하는 사회적 시민권을 확립하고 참여와 책임의 공동체를 구현함으로써 지속가능한 사회를 이룩하는데 있다는 것이다. 즉 생산적 복지는 민주주의와 시장경제, 사회정의의 균형발전을 목표로 하고있다는 것이다. 이와 같이 김대중 정부의 핵심 참모들이 생산적 복지에 대한 해석은 신자유주의적 복지패러다임과는 상당한 정도 거리가 있으며, 오히려 스웨덴의 사회민주주의자들이 주장하는 생산적 복지 개념에 가까운 것으로 보인다.

정부가 주장하는 생산적 복지 개념이 사회민주주의자들이 주장하는 생산적 복지 개념과 친화성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많은 학자들은 생산적 복지에 대해서 회의적이거나 부정적인 입장을 표명하고 있다.

정연택 교수는 생산적 복지가 기본적으로는 경제성장과 복지의 관계에서 경제성장을 우선하는 사고에서 나온 것이며 복지를 노동과 연계하는 “노동을 위한 복지(welfare to work)”를 핵심으로 하고 있다는 점에서 문제가 있다고 지적하고 있다. 1980년대 이후 유럽의 많은 국가들이 근로와 철저히 연계한 복지제도를 많이 시행했는데, 대부분의 국가에서 저소득자의 급여만 감축되거나 사회불평등 정도가 증가되는 결과를 가져왔고 성공적인 사업들은 소수에 불과했기 때문에 우리 나라에서 생산적 복지를 주장하는 것은 이런 맥락에서 복지를 약화시킬 가능성이 크다는 것이다(월간리포트 제8호; 13). 문진영 교수는 생산적 복지는 과거 “문민정부”의 “삶의 질의 세계화”라는 복지구상에서 처음으로 제시된 것으로 전혀 새로울 것이 없는 정치적인 수사에 불과한 개념으로 보고 있다. 그는 생산적 복지란 고도로 발전한 복지국가에서 기존의 사회정책의 틀을 어떻게 발전시킬 것인가 하는 고민에서 고안된 것으로, 우리 나라와 같이 사회정책의 수준이 낙후되어 있는 사회에서 이를 여과 없이 사용할 경우 신자유주의와 선택적 친화관계를 형성하여 오히려 복지발전을 저해할 위험성이 크다고 보고 있다(월간복지동향 11호; 18). 김용하 교수는 생산적 복지라는 개념을 시장경제와 민주주의의 새로운 접목으로 보면서, 단순 구호 차원에서 벗어나, 모든 국민의 생산적 사회참여 기회를 극대화함으로서 지속적 경제성장과 복지증진의 균형을 추구하는 보다 적극적인 투자적. 재창조적 복지로 해석하고 있다. 즉 생산적 복지는 서구의 경험을 교훈 삼아 기존의 저복지로부터 적정수준의 복지를 지향해 나가되, 생산적이고 시장친화적인 복지제도를 마련하겠다는 구상이라는 점에서 긍정적으로 보고 있다. 그러나 D.J노믹스에서 생산적 복지 담론은 그 개념의 정체성을 따지기 이전에 구체적인 정책의 실현을 통하여 평가되어야 할 것이라는 점에서 유보적인 태도를 보이고 있다(월간 리포트, 8호; 6-9).

정부가 내걸은 생산적 복지가 국민들의 기초생활보장을 위한 제도 확립과 직업훈련과 직업안정에 중점을 두는 적극적 노동시장 정책적 요소를 가지고 있다는 점에서 이념적으로는 긍정적으로 받아들일 수 있다고 본다. 그러나 성장중심주의적 가치관과 사고가 지배적인 우리의 상황에서 생산적 복지라는 용어가 가지는 신자유주의와의 선택적 친화성으로 이 용어가 성장중심주의자들이 사회복지 확대 반대 논리로 활용되고 있는 현실을 직시해야 할 것이다. 어떤 이는 학자들의 생산적 복지 담론에 대한 비판이 교과서적인 비판이라고 지적하면서, 생산적 복지는 학술적이거나 이데올로기적 개념이 절대 아니며 한국사회가 처해 있는 경제사회적 변화에 대한 철저하게 실용적이며 현실적인 접근이라고 해석하기도 한다(최민식, 월간복지동향, 11호; 6-12). 생산적 복지라는 용어를 실용주의적이고 현실적으로 해석해야 한다는 주장은 한국 사회에서 생산적 복지라는 용어가 가지는 사회적 의미가 사회민주주의적 의미로 해석되고 활용되기보다는 신자유주의적 의미로 해석되고 활용되고 있는 현실을 무시하고 있는 주장이라고 생각된다. 대통령의 8.15 경축사에 대한 보건복지부의 후속조치와 2,000년도 정부의 예산안을 보면, 정부에서 생산적 복지를 주창하는 사람들의 뜻과는 상당히 거리가 있는 것을 볼 때 생산적 복지가 실용주의적이고 현실적인 개념이 아닌 정치적 수사에 그치고 마는 것이 아닌가 의심하지 않을 수 없다.

레토릭으로서 생산적 복지론은 극복되어야

원래 생산적 복지는 전국민의 기초적인 생계를 보장하는 복지제도와 직업훈련과 직업안정에 중점을 두는 적극적 노동시장 정책을 조화시킬 수 있는 개념으로 스웨덴에서 발전 된 것으로 기초생계보장제도의 구축, 직업훈련과 직업안정 서비스를 제공하는 고용인프라의 구축, 취약집단이 생산활동에 참여 할 수 있는 여건을 보장해주는 보건서비스와 보편적인 가족서비스가 전제 된 것이다(문진영, 월간복지동향, 11호). 따라서 생산적 복지는 제반 이전소득과 서비스를 통해서 일을 하지 않고 있는 빈곤자들을 도와서 경제활동을 할 수 있는 것이어야 한다. 즉 저임금경제에서 근로자들을 위한 임금 및 소득보조제도와 제반 사회서비스와 같은 장래에 대한 사회적 투자와 더욱 근본적으로는 적극적 노동시장정책에 대한 사회적 투자로서 이루어 져야한다. 적극적 노동시장정책이 효과적으로 작동하기 위해서는 노동, 정부, 사업주, 시민대표들로 구성되는 사회적 협의체가 조직되고 제도화되어야 하는데 이러한 제도덕 기반과 협약의 전통과 경험이 부족한 상황에서 논의되는 생산적 복지 정책 지향은 허구에 가까운 것이다(이광찬, 월간리포트, 8호; 4-5).

김대중 정부는 지난 8월에 국민기초생활보장법을 통과시킴으로서 소득보장 부문에 있어서 최저 수준의 기본선을 보장한다는 제도적 기반을 확립하였으나, 의료, 주거, 교육, 사회복지서비스 부문에서의 국민복지 최저 기본선에 관해서는 중장기적인 비젼과 과제를 구체적으로 제시하지 못하고 있다. 또한 정부의 사회복지정책, 노동정책의 내용은 물론 예산 배분에 있어서도 정부가 주장하는 생산적 복지의 이상을 뒷받침하지 못하고 있다. 이 같은 현실을 볼 때 집권층의 강변에도 불구하고 생산적 복지가 성장지상주의자와 복지론자들을 둘다 만족시키기 위한 정치적인 상징조작의 이데올로기로 작용하고 있다는 비판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는 것이다.

이제는 레토릭이 아닌 실천이 문제이다. 김대중 정부의 생산적 복지라는 화두는 구체적인 실천이 담보되지 않는 한 레토릭에 지나지 않는다. 정부가 주장하는 생산적 복지는 우리 사회의 복지 현실을 볼 때 이상에 불과하다. 현실과 이상간의 격차가 너무 크면 그 이상은 실현 불가능한 것으로 또 한번 국민들을 실망시킬 것이다. 생산적 복지라는 현실과 맞지 않는 이상보다는 그러한 이상을 실현할 수 있는 제도적 기반을 마련하는 것이 시급하다. 그 제도적 기반은 국민복지 기본선을 제도적으로 정립하고 이를 실천하는 구체적인 계획을 마련하는 일이다. 생산적 복지라는 이상은 한국 사회의 장기적인 비젼이 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실현 불가능한 레터릭으로서의 생산적 복지라는 이상이 아니라 김대중 정부하에서 실현가능한 중단기적 복지개혁의 청사진이다. 정부는 이제라도 주거, 의료, 소득, 사회복지서비스 욕구의 최저기본선을 확보하는 실제적인 계획을 천명하고 이에 기반하여 경제수준과 경제 능력에 걸맞는 적정 수준의 복지기본선을 지향하는 방향으로 복지계획을 수립해야 할 것이다.

백종만 / 전북대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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