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천년을 맞이하며 온 세계는 새로운 천년을 맞이하는 기념행사로 흥청거렸다. 우리나라에서도 새천년준비위원회가 여러 가지 행사를 기획하고 수행하였으며, 지난 천년을 청산하고 새로운 천년을 맞이하는 장밋빛 청사진과 희망의 메시지들을 발표하였다. 김대중 대통령도 1월 3일 시무식에서 지나간 천년은 인간과 자연, 강자와 약자, 남성과 여성, 동양과 서양이 서로 대립하던 갈등의 시대였지만, 다가오는 새천년은 인간과 자연의 조화, 남녀평등의 실현 속에서 평화와 인권 정의 등이 지구촌의 보편적인 가치로 정착되는 시대가 될 것이라는 전망 속에 새천년의 국정과제를 제시하였다. 풍요와 번영을 담은 새천년의 메시지대로 사회가 바뀐다면 좋으련만, 역사는 진보적인 방향으로의 변화를 자동으로 이루어지도록 허용하지 않았다.
희망과 번영의 새천년이 시작된 지금 이 순간에도 코소보, 체첸, 동티모르 등지에서는 전쟁과 기아로 어린 생명들이 꺼져가고 있으며, 선진국에서의 빈부격차는 21세기에도 더욱 확대될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경제회복이라는 물량적 성과에 자만하여 축배를 들고 있는 우리 사회에는 경제위기 이전보다 훨씬 증대된 빈부격차의 구조적인 고착으로 신음하며 실업과 질병, 빈곤의 질곡에 빠져있는 다수의 시민들이 있다. "역사는 진보한다"라는 맹목적 믿음에 앞서 지구촌 사회와 우리 사회가 역사의 진보를 위해 무엇을 하였으며, 무엇을 계획하고 있는가를 진지하게 반성해야 한다.
지난 20∼30년간에 급속하게 진행된 신자유주의적 경제질서로의 재편과정에서 보편주의에 입각한 국가복지의 후퇴로 선진국가들에서 노동자들의 삶의 질은 악화되었다. 자본주의적 경제질서의 세계화 과정에서 선진국들은 경제성장의 과실이 주로 잘사는 계층에 국한되어 소득상위계층 20%의 소득은 늘고 나머지 80%의 소득이 줄어드는 '20 대 80의 사회'로 전환되었다. 이러한 현상은 20세기 말에 국한된 것이 아니라 21세기에도 지속될 지구촌의 모습이다. 21세기의 우리 사회가 거대한 자본주의적 경제질서의 세계화 과정에서 결코 자유로울 수 없기에 더불어 잘사는 중산층 중심의 사회를 만들어 나아가겠다는 새천년의 대통령 메시지에도 불구하고 우리 사회가 '20 대 80의 사회'로 고착될 것이라는 것을 의심하는 사람은 거의 없는 듯하다. 선진국가들과는 달리 우리 사회는 시민들의 삶을 위협하는 각종 사회적 위험과 사고에 대한 사회적 대비책으로서 각종 사회복지제도들이 부실하기 짝이 없기 때문에 '20 대 80의 사회'가 우리 사회에 던지는 충격은 더욱 클 것이다. 따라서 새천년에 우리나라의 시민사회가 수행할 활동방향은 보편주의에 입각한 국가복지체제의 수립을 지속적으로 요구하고 세계자본의 일방적인 논리로 움직이는 시장을 제어하기 위해 국제적인 연대활동을 강화하는 데서 찾아야 할 것이라고 제안한다.
새천년의 시발점인 2000년의 김대중 정부의 국정운영 방향을 보면 보편주의적 복지정책을 강하게 추진할 의지도 분명하게 드러나지 않고 있으며, 정책의 우선순위에서도 뒤져 있다. 그러나 우리는 이러한 책임을 정부에게만 전적으로 물을 수는 없다는 생각이다. 김대중 정부 출범 이후 지난 2년을 뒤돌아보면 권력과 부를 가진 우리 사회의 기득권 계층들은 조직적으로 언론을 활용한 오도된 여론몰이를 통하여 각종 사회복지 개혁작업을 사사건건 물고늘어짐으로써 정부의 복지개혁을 지체시키거나 후퇴시켰다. 더구나 약육강식의 경쟁시장에서 삶을 위협받아온 노동자들조차 공정한 나눔의 장을 굳건히 하기 위한 복지제도의 개혁과정에서 '단기적이고 근시안적인 자기몫 챙기기'에 매몰되어 잔여주의적 복지질서로부터 사회적 연대정신에 입각한 보편주의적 복지질서로의 개편을 저지하고 반대하는 우를 범하기도 하였다. 우리 사회는 사회적 연대 정신에 입각한 보편주의적 복지제도가 매우 취약한 상황이고, 그 결과 대다수의 시민들이 보편주의적 나눔의 장치인 사회복지제도가 지니는 사회적 의미를 삶의 일부로 생생하게 체험하지 못하고 있다.
최근에 일어났던 복지개혁을 둘러싼 갈등의 정치를 주목할 때 앞으로의 몇 년이 복지발전을 위한 아주 중요한 시기라고 생각한다. 국민연금 확대, 의료보험 통합이라는 사회복지 개혁과제를 추진하는 과정에서 나타났던 많은 시민들과 노동자들의 저항은 정부의 준비부족에도 그 원인이 있었지만, 한편으로는 기득권층의 조직적이고 의도적인 저항과 일부 시민들과 노동자들의 사회복지제도에 대한 몰이해와 가족이기주의, 집단이기주의가 또다른 큰 원인이었다는 생각이다. 우리는 국민연금을 둘러싸고 자본의 이익을 대변하면서도 서민 대중들의 이익을 옹호하는 양 사실을 왜곡하여 시민들의 건전한 판단을 흐리게 하는 일부 언론의 반복지적인 교활함을 엿볼 수 있었다. 또한 의료보험 통합을 둘러싸고 사회적 연대의 확산이라는 복지의 순기능을 위하여 헌신하기보다 눈앞의 조직적인 이해에 천착하는 근시안적 이기주의를 볼 수 있었다. 그리고 정치권은 정치권대로 거대한 자본과 그들을 등에 업은 언론의 반개혁적 포화에 부화뇌동하여 시류에 영합하는 엉거주춤한 자세로 일관하면서 김대중 정부의 지지도 하락의 주범이 시민사회의 사회복지 개혁 드라이브 때문이라고 몰아쳤다.
21세기는 시민의 시대라고 한다. 시민사회는 거대해진 정부권력과 시장권력, 언론권력의 힘에 대항하여 시민들의 인권을 지켜내야 한다. 21세기 우리 사회의 시민들의 인권, 특히 생존권을 확보하기 위해서는 이제 정부권력만을 상대로 활동해서는 안된다. 균형감각을 잃고 시장의 자유만을 주장하는 기업가들, 이들의 등에 업힌 극단적인 시장주의 옹호자들, 자본의 이익만을 옹호하면서도 교묘하게 공평한 중재자인 것처럼 행세하는 언론들에 대해서도 성역없는 비판의 칼날을 갈아야 할 것이다. 하지만 시민의 시대에도 시민의 힘은 약하기 그지없다. 시민의 시대는 시민 한사람 한사람의 힘이 모여 이루어진다. 21세기 복지발전은 국내적인 시민운동만으로 한계가 있다. 시애틀의 대반란을 기억하며 국제적인 연대활동에도 우리 모두의 힘을 결집하자!
2000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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