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복지동향 2011 2011-03-10   5821

[심층3] 복지국가는 비효율적인가?

김태일
고려대학교 행정학과 교수


  성장은 개발연대 이후 줄곧 우리 사회의 지고지순한 가치였다. 아무리 좋은 뜻을 지닌 정책이라도 성장에 해롭다고 하면 정당성을 얻기 힘들다. 따라서 복지 확대를 원치 않는 측은 복지가 성장을 저해한다고 주장하고, 복지 확대를 바라는 측은 복지가 성장에 도움이 된다고 말한다. 성장을 다소 저해하더라도 우리 사회의 건강한 발전을 위해서는 복지 확대가 필요하다는 주장을 하는 집단도 존재해야 할 것 같은데, 이런 얘기는 듣기 힘들다. 어쨌든 필자에게 청탁된 주제는 ‘과연 복지가 경제성장을 저해하는가’에 대한 것이므로 이에 대한 논의에만 집중하자. 복지가 경제 성장을 저해하는가의 여부를 먼저 이론적인 측면에서 검토하고 다음으로 실증적인 측면에서 따져 보자.


   복지와 성장의 관계에 대한 이론적인 공방은?


   복지가 성장을 저해한다는 주장
 
이를 단순히 말하면 효율과 형평의 논리에 바탕을 두고 있다. 흔히 효율을 중시하면 형평이 저해되고, 형평을 강조하면 효율이 떨어진다고 한다. 이 논리에서 형평에는 복지, 효율에는 성장을 대입해 복지와 성장은 상충 관계에 있다고 주장하는 것이다. 이를 좀 더 구체적으로 설명하면 아래 내용들이 포함된다.
  ① 산업생산부문의 위축: 공공부문의 복지지출 증가는 그만큼 산업생산부문에 투입할 수 있는 인력과 자본을 감소시킨다 .
  ② 노동력 공급 감소: 복지수혜자에게는 의존성을 유발시켜 근로의욕이 약화되며, 납세자에게는 높은 복지비 부담으로 가처분소득이 줄게 돼 근로동기가 저해된다.
  ③ 저축과 투자의 감소: 연금 등 복지제도는 민간저축을 감소시키며 이는 곧 투자 감소를 초래한다.
  ④ 기업의 해외이전: 복지지출을 충당하기 위해 조세(보험료 포함) 부담이 가중되면 기업의 해외이전을 초래한다. 


  복지와 성장의 선순환 주장
  이에 대한 이론적 논거는 복지제도가 시장실패를 보완한다는 데 기반을 두고 있으며, 구체적인 내용은 아래와 같다. 
  ① 사회통합 촉진으로 정치․사회 안정: 정치․사회가 불안정하면 경제성장을 이루기 어렵다는 것은 자명하다. 복지제도는 자본주의 사회의 정치사회 안정을 가져옴으로써 경제성장의 밑바탕이 된다는 것이다.
  ② 유효수요 창출과 경기조절 : 불황기에는 복지지출이 증가하여 수요를 늘리고 호황기에는 세수가 증가하는 반면 복지지출은 감소하여 수요를 억제하는 경기조절 역할을 한다는 것이다.
  ③ 인적자본 향상: 복지제도로 대중들의 생활형편 향상, 그리고 보편적인 교육과 의료 제공으로 인적자본이 향상되며 이는 경제성장의 밑바탕이 된다는 것이다.  
  ④ 고용창출 및 노동공급 증대: 보육 노인부양 등 사회서비스 제공은 그만큼 일자리를 창출한다. 그리고 가족 내에서 여성이 담당하던 보육과 부양이 사회서비스로 연결되면, 보육과 부양 부담을 덜어 여성은 새로운 노동 공급원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①, ②, ③은 공공부조와 사회보험 위주의 전통적 복지제도 특성이다. 이에 비하여 ④는 주로 전자와 구별해 사회투자 혹은 적극적 복지라 불리는, 최근에 강조되는 복지제도의 특성에 해당한다. 그리고 ③도 적극적 복지에서 더욱 강조하는 특성이 있다.     


  복지와 성장의 관계에 대한 실증 결과는?


  복지와 성장의 관계에 대한 이론적 공방은 양 측의 주장이 다 일리가 있다. 그렇다면 어떻게 판단해야 할까? 이는 두 가지 판단이 필요하다. 
  첫 째는 둘 중의 어느 쪽 영향이 더 큰가이다. 부정과 긍정의 두 효과 중에서 부정적인 효과가 더 크다면 총효과는 성장을 저해하는 것으로 나타날 것이고, 긍정적인 효과가 더 크다면 총효과는 성장을 돕는 것으로 나타날 것이기 때문이다.
  둘째는 부정적인 효과를 줄이고 긍정적인 효과를 크게 하는 방법이 무엇인가이다. 복지제도에 포함되는 정책과 프로그램은 매우 다양해 같은 복지국가라 해도 국가마다 제도 내용은 서로 상이하다. 따라서 부정적인 효과를 축소하고 긍정적인 효과를 크게 할 수 있는 제도가 무엇인지를 찾는다면 이는 향후 우리나라 복지제도 발전에 중요한 시사점일 것이다.
  이상의 두 가지 판단은 결국 실증 문제이다. 즉 우리보다 먼저 복지제도를 도입하고 발전한 외국의 경험에 비춰 판단해야 할 문제이다. 그런데 이를 논의하기 전에 우선 짚고 넘어가야 할 것이 하나있다. 이는 복지와 성장의 관계에 대해 대부분이 동의하는 사실로서 다음과 같은 얘기이다.


  대부분이 동의하는 사실: 일정 수준의 국가 복지는 시장경제의 발전에 필수적이다
  복지와 성장의 상충을 주장하는 학자들이라도 복지제도가 아예 필요 없다고 주장하지는 않는다. 복지제도는 산업화가 진전되던 19세기 말부터 유럽 각국에 도입됐는데, 복지제도의 도입으로 계층 갈등과 사회 혼란을 진정시키고 공황을 극복하면서 자본주의의 순조로운 발전을 진행할 수 있었음은 주지 사실이다. 즉 복지제도라는 것이 자본주의의 산물이며, 시장경제가 계속 유지 발전하려면 복지제도가 뒷받침해야 한다는 점은 누구라도 동의한다.
  이런 면에서 본다면 적어도 어느 수준까지의 복지는 성장을 저해하는 것이 절대 아니며, 도움 정도가 아니라 아예 시장경제의 유지 발전을 위한 전제 조건이 되는 셈이다. 이는 전술한 복지와 성장 선순환의 이론적 논거 중 첫 번째인 ‘사회통합 촉진을 통한 정치․사회 안정’의 주장이기도 하다.


  복지와 성장의 실증분석 결과: +와 -의 총효과는?
  복지와 성장의 관계를 실증적으로 분석한 연구는 두 유형으로 나뉜다. 첫 번째 유형은 수십 년에 걸친 복지국가들의 자료를 모두 모아서 ‘GDP 대비 복지지출 비중’과 ‘1인당 GDP’의 관계를 분석하는 것이다. 연구 방법에 따라서는 규모 자체를 사용하기도 하고 증가율을 사용하기도 한다. 이에 대한 연구는 매우 많은데 분석 시기와 대상 국가에 따라, 그리고 모형과 통계기법 차이에 따라 결과들은 서로 상이하다. 예를 들면 필자가 확인한 10개의 연구 결과를 보면 2개는 관계가 적었음을, 4개는 긍정적임을, 4개는 부정적임을 보였다.
  두 번째 유형은 선진국들을 저복지(미국) 국가와 고복지 국가(스웨덴) 등으로 분류한 후 각 국가군의 수십 년에 걸친 경제성장률을 비교하는 것이다. 이 결과를 보면 고복지 국가군 경제성과에서도 저복지 국가군의 경제성과와 유사한 시기, 더 낮은 시기, 더 높은 시기가 모두 존재했는데, 종합하면 고복지 국가군의 경제성과가 더 우수한 것으로 평가됐다.
  이처럼 실증 결과들도 어느 한 쪽만을 절대적으로 지지하고 있지는 않기 때문에 복지와 성장의 관계가 종합적으로 보면 +인가 -인가를 단정해서 말하기는 어렵다. 하지만 이러한 연구들을 통해 학자와 정책 결정가들 사이에 어느 정도 합의가 이루어진 것은 있다. 이는 복지지출 수준의 높고 낮음 자체보다는 복지지출의 내용이 경제성장과 보다 밀접한 관계가 있다. 즉 동일하게 높은 수준의 복지 지출이라도 내용에 따라 경제성장에 도움이 되는 경우와 경제성장을 저해하는 경우가 있다는 것이다.


  대세는 성장친화적인 복지제도의 구축
  복지제도의 내용에 따라서 성장을 저해할 수도 있고 도울 수도 있다면, 어느 나라이든 성장에 도움이 되는 복지제도를 가지려함은 당연지사다. 구체적인 내용에는 차이가 있으나 최근 선진국들의 복지제도는 모두 성장에 도움이 되는 복지제도를 지향하고 있다. 이들은 사회투자정책 혹은 적극적 복지정책이라고 불리는데, 이의 특성을 요약하면 ‘되도록 많은 사람이 노동으로 복지를 해결하고, 가난한 집에서 태어났더라도 낙오되지 않으며, 노동시장의 참여자들이 부단히 상향 이동하여 더 나은 삶을 영위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양재진, 2010).
  되도록 많은 사람이 일자리를 갖고 또한 더 나은 일자리로 옮기는 것을 장려하기 때문에 교육과 훈련을 강조한다. 여성 취업률을 높이려면 가사 부담을 덜어주는 것이 중요하므로 육아 및 노인부양의 사회서비스를 강조한다. 아울러 사회서비스 제공은 그 자체가 일자리 창출에 기여한다. 불우한 환경의 아이들도 뒤처지지 않도록 아동에 대한 투자를 강조한다. 정리하면 인적자본에 대한 투자와 사회서비스를 강조한다. 
  사회투자적 혹은 적극적 복지정책의 효과성, 가령 지출 대비 고용 성과가 얼마인지 등에 대한 확실한 평가는 아직 내려지지 않고 있다. 하지만 이러한 성장친화적인 복지정책을 강조하는 추세가 향후에도 지속될 것임은 분명하다.


  사족


  앞에서 일정 수준의 국가 복지는 시장경제 발전에 필수적이라는 데 대부분이 동의한다고 했다. 그렇다면 시장의 우월성을 확신하고 작은 정부를 주장하는 자유주의자라도 시장경제의 유지 발전을 위해 필요하다고 동의할 수 있는 최소한의 복지 수준은 어느 정도일까? 이는 알기 어렵다. 다만 선진국들 중에서 시장 경제에 충실한 것으로 알려진 국가가 미국이므로 미국의 복지수준이 어느 정도 기준점은 될 것 같다. 미국의 2007년도 복지지출 수준은 GDP의 16% 정도다. 그리고 복지 축소와 작은 정부를 강조했던 1980년대의 복지지출 수준은 GDP의 13% 정도이다. 따라서 대략 이 정도가 시장경제의 유지 발전을 위해 필요한 최소한의 수준이라고 봐도 무리는 없을 것 같다. 그런데 우리나라의 복지지출 수준은 작년에도 9%가 채 안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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