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복지동향 2001 2001-09-10   5960

신자유주의에 갇힌 복지정책

복지정책의 겉모습

현 정부의 각종 정책들에 대한 사회적 평가가 그다지 우호적이지 않은 가운데 사회복지분야는 상대적으로 높은 점수를 받고 있다고 한다. 이러한 평가가 나오게 된 것은 무엇보다도 현 정부 들어서 "생산적 복지"로 대표되는 체계적인 복지정책이 수립되어 실행되었기 때문일 것이다. 1999년 말의 "생산적 복지" 발표 이후 현 정부 사회복지정책의 성과로는 국민기초생활보장제도의 도입과 국민연금·고용보험·산재보험의 적용범위 확대를 들 수 있다.

이와 함께, 현 정부 들어서 복지예산이나 사회보장지출이 꾸준히 증가해 왔다. 보건복지부의 예산은 1997년의 2조 9천억 원에서 2000년 5조3천억 원, 2001년 6조3천억 원으로 증가하였으며, 정부일반예산에서 차지하는 복지관련 예산의 비율도 1997년의 6.2%에서 2001년 9.3%로 크게 늘어났다. 또한, 사회보장지출 총액(복지관련 정부예산과 사회보험급여액의 합계)도 1997년의 16조6천억 원에서 2000년에는 26조5천억 원으로 늘어나 'GDP에 대한 사회보장지출의 비율'이 1997년의 3.8%에서 2000년에는 4.9%로 높아졌다.

이상과 같은 사실들로 인해 현 정부는 집권 초기에 상실하였던 친대중적이라는 이미지를 어느 정도 회복한 것으로 보인다. 실제로 몇 몇 연구자들은 현 정부의 복지정책이 빈곤에 대한 국가 책임의 강화를 지향하는 매우 혁신적인 것으로 평가하고 있다. 과연 이러한 평가는 어느 정도나 타당할까? 과연 현 정부의 복지정책은 확대 지향적인 것이며, 그 결과 우리 나라는 제대로 된 복지국가로 발전해 나갈 것인가?

국가책임의 강화라는 허상

최근 들어 복지제도가 확대되고 복지관련 사회지출이 늘어난 것은 사실이다. 그렇지만, 그러한 사실들이 시민생활에 대한 국가의 책임이 강화되고 있음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우선 복지지출 증가에 대해 검토해 보면, 'GDP에 대한 사회보장지출의 비율'은 1997년에서 2000년 사이에 1.3% 포인트 증가하였다. 불과 3년 동안에 29% 증가한 것을 가지고 지난 몇 년간 우리 나라의 사회보장지출이 크게 늘어났다고 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현재 우리 나라의 사회보장지출 수준은 서구의 1950년대 수준에도 미치지 못하고 있으며, 이와 같이 비교기점에서의 지출수준이 워낙 낮기 때문에 약간의 지출 증대만으로도 높은 증가율을 보이게 되는 것이다.

또한, 사회보장지출 수준이 어떤 요인들로 인해서 높아졌는가도 검토되어야 한다. 1997년과 2000년 사이에 정부의 복지관련 예산은 5조2천억 원에서 7조8천억 원으로 50% 정도 증가하였지만, 사회보장지출 총액에서 차지하는 비중의 측면에서는 31.2%에서 29.5%로 소폭 감소하였다. 반면에, 가입자의 보험료로 운영되는 사회보험의 지출 총액은 12조3천억 원에서 18조5천억 원으로 늘어났다. 즉, 이 기간 동안 사회보장지출을 증가시킨 주요 동인은 사회보험가입자의 보험료 및 고용주의 분담금인 것이다.

이런 점에서, 현 정부 들어서 사회보험의 적용범위가 확대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사회복지에 대한 국가의 책임이 크게 늘어났다고 볼 수는 없는 것이다. 시민생활에 대한 국가의 책임 증대는 사회보장제도에 대한 국가의 재정부담 증대를 통해서만 가능하기 때문이다. 현 정부는 "생산적 복지"정책에서 사회보험제도의 확충과 내실화를 약속했지만, 아직까지는 사회보장제도의 외양적인 확대만을 추구하고 있다.

사회보장제도의 형식적인 확대로 인해 우리 나라에는 사회보장제도의 사각지대가 여전히 폭넓게 남아 있다. 예를 들어, 지역가입자들 가운데서 53%는 연금보험료를 한 푼도 내지 않고 있으며, 그들 가운데서 건전한 노후생활을 영위할 정도의 연금을 받을 수 있는 사람들은 극히 소수에 불과하다. 또한, 노동유연화 정책의 결과 현재 비정규직 근로자들이 전체 근로자 가운데 52∼3%에 달하고 있으며, 이들의 사회보험 가입율은 22∼25%에 그치고 있다. 이에 따라, 전체 임금노동자 가운데 국민연금에 가입한 사람의 비율은 49.5%, 의료보험의 가입비율은 52.1%, 그리고 고용보험의 가입비율은 44.1%에 불과하여 사회보험 적용 확대라는 말이 무색할 지경인 것이다.

복지정책의 신자유주의적 특징들

현 정부의 복지정책은 결코 확대 지향적이 아니며, 지난 몇 년간 우리 나라의 복지수준도 실질적으로는 크게 향상되지 않았다. 오히려 현 정부의 복지정책은 시장의 자유와 경제효율성을 추구하는 신자유주의적 사회개혁의 부산물에 불과한 것으로 보인다.

먼저, 현 정부 복지개혁의 최대 성과물로 평가되는 국민기초생활보장제도에 대해서 검토해 보겠다. 근로능력이 있는 자에게도 급여를 제공하고 생계급여의 수준을 높이는 등 국민기초생활보장제도가 이전의 생활보호제도에 비해 진보적인 성격을 갖는 것은 사실이다. 그렇지만, 이와 같은 식으로 공공부조 프로그램을 강화하는 것은 신자유주의적 구조조정과정을 밟은 나라들에서 공통적으로 나타나는 현상이다. 즉, 신자유주의 정치세력은 노동유연화 과정에서 양산되는 실업자 및 저소득층에 대해 최저한의 생활을 보장함으로써 사회적 불안을 막기 위해 공공부조 프로그램들을 확대하는 것이다. 신자유주의적 사회개혁의 첨병인 세계은행이 우리 정부에 대해 공공부조 프로그램을 중심으로 한 사회안전망의 확대를 요구했던 것은 이와 같은 맥락에서 이해될 수 있을 것이다.

게다가, 국민기초생활보장제도는 생계급여 수급의 조건으로 근로나 훈련을 받도록 강제하고 있다. 보다 구체적으로, 이 제도는 저소득층에게 최저생활 보장을 위한 생계급여를 지급하기는 하되, 근로능력이 있는 경우에는 국가가 제공하는 일자리에 취업하는 것을 전제로 한다. 그리고, 저소득층에게 공공사업에의 취업 기회를 주고 기업이 필요로 하는 기능을 습득하도록 교육·훈련의 기회를 제공하는 것도 포함된다. 이것은 저소득층의 생활보장이라는 사회복지적인 의미보다는 노동의 재숙련화와 유연성 확보를 통한 경제효율성 증대라는 경제적인 의미가 더 큰 정책이다. 이와 같은 근로연계복지 정책은 노동의 상품화를 촉진하는 것이며, 이와 같이 시민들로 하여금 자신의 생활을 위해 점점 더 시장에 의존하도록 한다는 점에서 신자유주의적 복지정책과 일치하는 것이다.

현 정부 복지정책의 신자유주의적 특징은 민간부문의 역할 강화에서도 나타난다. 민간의 사회복지참여 확대는 "생산적 복지" 이후 지금까지 정부가 줄기차게 강조해 온 것이다. 민간보험을 활성화시키기 위한 현 정부의 조치로는 개인연금의 세금공제 확대를 들 수 있다. 공적연금과 비슷하게 노후소득을 보장해 주는 개인연금의 경우, 연간 납입금액의 40%(연 72만원 한도)가 소득공제 대상이었으나 2001년부터는 240만원 한도에서 100% 소득공제되도록 조정되었다. 또한, 최근 의료보험 재정 파탄 대책 중 하나로서 정부는 민간보험의 확대를 적극적으로 검토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마지막으로, 현 정부 들어서 사회적으로 빈곤이 심화되고 소득불평등이 악화되었다는 점을 지적할 수 있다. KDI의 조사에 따르면, 수입이 최저 생계비를 밑도는 절대빈곤 가구의 비율이 1997년 9.7%에서 1999년에는 17%로 급증하였다고 한다. 또한, Gini 계수는 1997년의 0.288에서 1998년 0.316, 1999년 0.320, 2000년 0.317로 변화하여 소득불평등이 점진적으로 심화되어 왔음을 알 수 있다. 이와 같은 현상들은 한편으로는 노동유연화를 핵심으로 하는 신자유주의적 구조조정으로 인해 실업자·비정규근로자·저임금근로자가 증가하였기 때문이고, 다른 한편으로는 현 정부의 복지정책이 시장에서 발생하는 불평등을 감소시키는 기능을 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현재의 복지정책은 노동유연화를 촉진하고 그로 인한 시장의 낙오자들에게 최소한의 생활보호를 제공하는 데 관심이 있을 따름인 것이다.

보편주의적 복지정책의 핵심이 노동의 탈상품화에 있었다면, 신자유주의 복지정책의 핵심은 노동의 (재)상품화에 있다. 탈상품화 정책이 노령·질병·실업 등의 사회적 위험에 빠진 시민들로 하여금 생활상의 심각한 어려움 없이 노동시장으로부터 어느 정도 자유롭게 이탈하도록 허용하는 것이라면, (재)상품화 정책은 시민생활과 시장의 연계를 강화하는 것이다. 현 정부의 복지정책은 노동의 탈상품화가 아니라 상품화를, 그리고 시민생활에서 국가의 책임 증대가 아니라 시장의 역할 강화를 지향하고 있다는 점에서 '분명하고 명백하게' 신자유주의적인 것이다.

평가와 전망

현 정부 들어서 우리 나라의 복지수준이 어느 정도 높아졌다고 하는 데 대해서는 이견이 있을 수 없다. 특히, 복지국가 확대를 위한 사회적 기반이 취약하고 현 정부가 극우 보수세력에 둘러싸여 있다는 점을 감안하면, 현 정부의 복지정책을 긍정적인 것으로 평가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현재의 복지정책이 확대 지향적이라거나 국가책임 강화노선이라고 할 수는 없다. 국민기초생활보장제도의 도입이나 사회보험 적용확대를 가지고 현 정부의 정책이 진보적인 것이라고 한다면, 최저임금제·국민연금·의료보험의 농어촌지역 확대를 계획하고 실행하였던 5·6공화국과 고용보험을 도입하였던 문민정부의 복지정책 역시 진보적인 것으로 평가해야 할 것이다.

이제까지 우리 나라의 정부들은 확고한 복지의지를 가지고 복지제도를 도입하고 확대한 적이 없었다. 그들은 자신이 놓여있는 정치·경제적 환경의 압력에 따라 불가피하게 그런 선택을 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IMF 구제금융이라는 경제위기를 맞아 5·6공화국이나 문민정부라면 어떤 복지정책을 도입하였을 것인가? 아마 그들도 현 정부와 마찬가지로 세계은행이나 IMF의 권고대로 신자유주의적 구조조정 과정에서 나타날 심각한 사회불안을 막기 위해 사회안전망을 확대하지 않았을까? 이런 점에서 현 정부가 이전 정부들에 비해 더 진보적인 복지정책을 제시했다고 할 수는 없다. 만일 사회복지 향상에 대한 의지가 진정으로 컸었다면 현 정부는 경제적 제약상황을 뛰어넘어 기존의 정부들이 시행하지 못할 정도의 획기적인 복지확대 정책을 도입했었어야 했다. 그렇지만, 아직까지 우리는 그러한 것을 목격하지 못했고, 앞으로도 목격하기 어려울 것이다.

그 이유야 어떻든지 간에 현 정부는 경제 및 노동분야에서 뿐 아니라 복지분야에서도 신자유주의 노선을 따라가고 있다. 겉으로는 복지제도를 확대한 것으로 보이지만, 실제로는 시민생활에 대한 국가의 책임을 강화하고 있지 않으며, 복지개혁에 있어서 소득재분배나 노동의 탈상품화 문제에 대해 관심을 기울이지 않고 있다. 오히려, 현 정부는 복지분야에도 경제성의 논리를 적용시켜 사회보장제도를 대신하는 민간보험을 적극적으로 육성하고 있다. 그 결과, 앞으로 우리 나라에서는 빈곤층은 질 낮은 혜택을 특징으로 하는 국가복지에 의존하는 반면에 중산층 이상의 시민은 좋은 혜택을 제공하는 민간보험에 의존하는 복지제도의 양극화 현상이 나타나게 될 것이다. 현 정부의 복지정책은 사회적 연대성과 보편주의가 아니라 경제효율성 및 이기주의를 조장함으로써 한국 복지국가를 점점 더 미국과 비슷하게 만들어가고 있다.

조 영훈/동의대학교 사회복지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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