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복지동향 2012 2012-02-15   4688

[심층분석3] 돌봄노동의 사회화 유형과 여성노동권

장지연|한국노동연구원 연구위원

 

1. 들어가는 말

돌봄노동을 사회화한다는 것은 전통적으로 가족 내에서 여성에게 일임되어 있던 돌봄노동을 가시화하고 공적인 영역으로 옮겨오는 것을 의미한다. 최근에는 이러한 돌봄노동의 사회화 현상이 급속히 확대되고 있는데, 이러한 현상의 배경으로는 1인 단독가구나 한부모 가구의 증가와 같은 가족구조의 변화, 노인인구의 증가와 같은 인구학적 요인을 지적할 수 있으며, 다른 한 편으로는 여성의 노동시장 진출 확대에 따른 가족 내 돌봄의 공백이 거론된다. 

돌봄노동에 대한 관심은 크게 두 가지 관점에서 제기된다. 첫째는 돌봄을 받는 자의 관점이다. 인간의 상호의존성(interdependency)이라는 시각에서 보자면 자신의 힘만으로는 살아나가기 힘든 약자를 누군가 돌보지 않을 경우 발생할 일들을 우려하지 않을 수 없다. 현대 복지국가에서는 돌봄을 받는다는 것이 시민으로서의 권리로 정립되었다. 돌봄노동에 대한 두 번째 관점은 돌봄을 제공하는 자의 입장에서 바라보는 것인데, 주로 여성인 돌봄 제공자의 시민권에 대한 문제의식이다. 일차적으로는, 시민으로서의 사회적 권리가 주로 자본주의 생산체계에 대한 직접적인 기여와 결부되면서, 돌봄노동을 하느라고 임금노동에 참여하지 못하게 된 경우에 결과적으로 불이익을 당하게 되는 현실에 대하여 문제를 제기할 수 있고, 이러한 여성주의적 인식은 돌봄노동의 사회화를 요구한다. 좀 더 나아가서는 누군가를 직접 돌볼 권리도 시민권의 일부로 등장하고 있다. 부모휴가제도나 양육수당 같은 제도는 이러한 권리의식이 반영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돌봄노동의 사회화 문제를 바라봄에 있어서 돌봄을 받는 자의 관점과 돌봄을 제공하는 자의 관점이 동시적으로 견지되어야할 것이다.

여성노동권은 ‘유급노동에의 접근권’과 ‘돌봄일자리의 질’이라는 두 차원에서 검토할  수 있다. 즉, 돌봄노동을 어떤 방식으로 사회화하느냐에 따라서 여성의 유급노동 참여가능성과 돌봄일자리의 질이 달라진다고 주장하고자 한다.

 

2. 돌봄노동 사회화의 유형: 이념형적 접근

돌봄노동 사회화의 유형을 이념형적으로 구분해 보면 <표1>과 <Box 1>에서 정리한 바와 같이 다섯 개의 유형으로 구분해낼 수 있다.

 

<표1> 돌봄의 사회화 방식의 다양성

사회화

방식

현물급여

현금급여

공공생산

민간생산

돌봄받는자 수급

돌봄제공자 수급

용도제한 있음

용도제한

없음

제도

사례

공립보육시설

우리나라

‘장기요양보험’

‘프랑스 AFEAMA’

‘독일 요양보험-현금’

양육수당

‘영국 care allowance’

돌봄

제공자

공공

시장

제3섹터

시장

제3섹터

가족

시장

제3섹터

가족

가족

 

<Box 1> 돌봄노동 사회화의 다섯 가지 유형

① 국가가 직접 서비스 제공, 시설 또는 재가파견

② 국가가 재정을 투입하여 민간에서 생산한 서비스를 제공, 시설 또는 재가파견

③ 돌봄받는자에게 돌봄서비스를 구매할 수 있는 비용 지원

④ 돌봄받는자에게 용도를 정하지 않은 현금급여

⑤ 돌봄제공자에게 현금급여

 

이렇게 이념형적으로 정의한 다섯 가지 유형의 돌봄노동 사회화 방식에 따라 돌봄노동의 성격이 달라질 것은 자명하다. 가장 중요하게 짚어 보아야할 지점은, 결국 돌봄을 제공하는 주체는 누가될 것인가 하는데 있다. 여전히 가족의 일원이 돌봄을 제공할 수도 있고, 공공부문이나 제3섹터, 민간영리부문이 직접 제공자가 되도록 돌봄서비스가 조직될 수도 있다. 첫 번째 유형의 돌봄은 국가가 재정 뿐 아니라 돌봄서비스의 생산에도 참여하는 가장 전형적인 형태의 공공화 유형이라고 볼 수 있고, 전통적인 복지국가에서 수행하던 방식이었으므로 이 유형을은 하나의 기준이 될 수 있다. 유형②와 유형③, 유형④의 확대는 모두 돌봄서비스의 생산을 주로 민간시장에 의존하게 만드는 유형으로서, 돌봄노동의 상품화(또는 시장화)를 촉진할 가능성이 매우 높다. 한편 유형③, 유형④, 유형⑤의 확대는 돌봄의 역할을 결국 다시 가족, 그 중에서도 여성에게 부여하여 돌봄노동의 (재)가족화를 낳는 방식이다.

 

3. 돌봄노동의 성격이 여성노동권에 미치는 영향

 

(1) 돌봄노동 재가족화가 유급노동 접근권에 미치는 영향

우리가 다루는 핵심적인 질문은 돌봄노동의 사회화 유형이 여성으로 하여금 가족을 돌보는 역할과 임금노동자로서의 지위 중에서 어느 쪽을 선택하도록 하는 인센티브 구조를 만들어 갈 것인가 하는 문제와 관련된다. 결국 어느 쪽이 여성의 경제적 독립과 자율을 확보하는데 도움이 될 것인지가 관건이 될 것이다. 한편에서는 어느 시대 어느 국가에서도 가족의 돌봄노동에 대하여 충분한 보상을 해 줌으로써 그 가치를 인정해 준 경우는 없었다고 주장한다. 다른 한 편에서는 임금노동에 나선 여성이 노동시장에서 장시간노동에도 불구하고 저임금에 시달리고 있는 현실을 개선하지 않고 여성을 노동시장으로 내모는 것은 부당하다고 주장한다.

둘 다 옳은 이야기이지만, 필자는 여성의 임금노동자로서의 지위를 강화하는 편을 지지한다. 두 가지 사실을 지적하고자 한다. 첫째, 다른 나라의 사례로 볼 때, 돌봄노동에 대한 보상으로 국가로부터 받을 수 있는 금액은 현실적으로 매우 적다. 이것은 향후에도 근본적으로 개선되기 어렵다. 가족에게 돌봄을 제공할 권리에 대하여 국가가 보상할 기준을 설정하는 것 자체가 어렵지만, 독립적으로 생활하기 어려운 약자에게 돌봄을 제공하는 역할을 자임하고 있다는 점을 고려하여 아동과 노인을 돌보는데 투입할 수 있는 재정의 규모와 운용방식을 감안하면 돌봄 제공자에게 돌아갈 보상의 수준을 가늠해 볼 수 있을 것이다. 돌봄을 필요로 하는 이들에게 개별적으로 최상의 서비스를 제공하는 것을 기준으로 제도가 설계되기는 어려울 것으로 짐작할 수 있다. 둘째, 노동시장에서 여성의 임금이 낮고, 그 중에서도 돌봄서비스 일자리의 임금수준이 낮은 것이 사실이지만, 이것은 어떤 서비스 전달체계를 구축하느냐에 따라 달라질 수 있는 문제이다. 이런 배경 하에서, 모든 성인은 노동자가 될 수 있어야한다는 ‘성인노동자모델’의 의의는 부정되기 힘들다.

그렇다면, 돌봄노동에 대한 경제적 보상은 임금노동을 줄일 것인가? 경제학 이론의 대답은 당연히 ‘그렇다’이다. 현실에서 이러한 가설이 경험적으로도 검증되는가? OECD 국가자료를 시계열로 분석한 류연규(2010)의 연구에서는 가족서비스의 지출비율은 여성고용을 증가시키고 성별 임금격차는 감소시키는 효과가 있었다. 다른 나라에서 나온 연구들도 비슷한 결론을 제시하고 있다(Gustafsson, 1995; Gustafsson & Stafford, 1992; Jaumatt, 2003). 기존 연구들은 돌봄노동에 대한 보상은 여성의 임금노동을 줄일 것이라고 말한다. 물론 그 정도는 보상의 수준에 달렸다.

돌봄노동을 통해서 경제적 보상을 받을 수 있다는 인센티브 구조는 여성 일반에게 같은 정도로 영향을 미치는 것이 아니라 저소득층과 고소득층에서 서로 다른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는 점도 간과할 수 없다. 돌봄노동에 대한 보상의 주된 수혜계층은 누구일까? 이로 인하여 노동공급이 줄어들게 되는 계층은 주로 누구일까? 이 질문에 대답할 수 있을 정도의 본격적인 경험적 분석은 발견되지 않는다. 다만, 핀란드의 가정보살핌수당이 특히 저임금 노동자계급 여성의 주부화를 초래한다는 지적이 있다(김혜경, 2004). 저소득층 가족일수록 추가적인 수입을 절실히 필요할 것이고, 이 때문에 저소득층 여성이 쉽게 일자리를 포기하지는 않을 것이라고 예측할 수 있는 반면, 이들이 노동시장에 나가서 벌어들일 수 있는 임금의 수준이 낮다는 점 때문에 낮은 수준의 대체소득이라도 있으면 노동공급을 줄일 것이라는 예측도 가능하다.

 

(2) 돌봄노동 시장화가 일자리의 질에 미치는 영향

돌봄노동 사회화 효과와 관련한 또 하나의 쟁점은 돌봄 일자리의 질 또는 돌봄노동자의 권리에 관한 문제이다. 돌봄노동의 사회화가 여성 일자리에 미치는 영향은 사회화가 얼마나 ‘시장화’ 방식에 의존하는지에 따라 달라진다. 일반적으로 여성은 노동시장에서 낮은 임금을 받는 일자리에 있기 쉽고, 그 중에서 상당수는 돌봄노동을 하는 일자리라는 점은 의심의 여지가 없다. 하지만 돌봄노동을 어떤 방식으로 사회화하느냐에 따라서 이러한 현상은 강화될 수도 있고, 약화될 수도 있다. 필자가 비교자료를 가지고 살펴본 바에 따르면, 돌봄서비스를 시장메커니즘에 의해서가 아니라 공공부문에서 직접 공급할수록, 그리고 재가서비스 중심이 아니라 시설서비스 중심으로 갈수록 돌봄서비스에 종사하는 노동자의 일자리의 질은 높아진다. 

돌봄의 사회화를 위한 제도설계의 과정에서 돌봄서비스 종사자의 권리나 일자리의 질은 관심의 대상이 되지 못하였다. 1980년대가 제조업에서 소비자주권이 강조되었던 시기라면 1990년대에는 이것이 서비스업에까지 전이되었으며, 현재는 돌봄서비스의 영역에서도 소비자 주권과 선택권에 대한 강조는 맹위를 떨치고 있다. 일회성 서비스와는 달리 돌봄서비스는 장기간의 안정적 관계를 갖는 경향이 있고, 우월한 서비스에 대한 정보를 갖기도 어렵고, 근접성이 서비스의 질보다도 더 중요한 선택기준일 수 있는 특수한 서비스이기 때문에 선택권이 제대로 작동하기 어렵다는 한계가 있음에 불구하고, 이러한 점을 돌아보는 논의는 보이지 않았다. 돌봄서비스의 질을 향상시키기 위해서는 서비스제공자 간에 경쟁이 있어야하고 소비자는 선택권이 있어야한다고 하는 논리가 다른 모든 논리를 압도하였다.

이러한 논리를 근거로 공공부문에서 서비스를 직접 공급하는 대신, 민간시장을 활성화하고 정부는 재원을 부담하되 돌봄서비스를 필요로 하는 사람에게는 이용권(바우처)을 지급한다는 방식을 취하였다. 이것은 우리나라에서 보육지원과 장기노인요양보험제도를 설계하는 과정에서 뚜렷하게 나타났다. 그 폐해는 돌봄서비스에 종사하는 노동자의 권리가 전혀 보호되지 못하는 결과로 나타났다. 심지어 장기노인요양보험제도의 도입 초창기에는 요양보호사에게 사회보험이 적용되지 않은 것은 물론이고 근로기준법으로 보호하는 노동자로 볼 것인가 여부까지 논란이 될 정도였다. 지금까지도 건강보험공단이 요양보호 서비스 참여 업체를 평가하기 위한 기준으로 제시한 가이드라인에는 근로기준법을 위반하는 규정이 버젓이 들어가 있는 정도이다(김경희․강은애, 2011).

 

4. 맺음말

어떤 사회화 방식을 채택할 것인가? 물론 가장 이상적이라고 판단된 방식을 우리 사회가 채택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경로의존성이나 정책유제에 의한 제약이 있다는 점은 자명하다. 그러나 이러한 제약조건을 고려하기에 앞서서 먼저 이론적인 측면에서 각각의 방식이 갖는 함의에 대한 고려는 필요하다. 돌봄노동을 어떤 방식으로 사회화하느냐에 따라 여성의 노동권에 커다란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 돌봄노동의 시장화는 여성 일자리의 질 악화를 초래하며, 돌봄노동의 (재)가족화는 여성의 유급노동 접근권에 제약을 가져올 우려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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