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복지동향 2018 2018-06-01   14337

[복지칼럼] 탈시설화와 커뮤니티 케어

탈시설화와 커뮤니티 케어

 

김도희 | 서울사회복지공익법센터 변호사

 

 

불과 몇 년 전까지만 해도 ‘과격한 운동용 개념’이라고 여겨지던 ‘탈시설화’란 용어가 공공연히 정부의 정책과제로 등장하게 된 것을 보니 격세지감이 느껴진다. 탈시설이 운동적 차원을 넘어 국가적 차원에서 논의되어야 할 시대가 도래한 것이다. 인간은 기본적으로 살고자 하는 곳에서 타인의 간섭을 받지 않고 스스로 원하는 방식으로 살 권리가 있다는 명제에 동의한다면, 신체적, 정신적 장애가 있다는 이유로 ‘광범위한 지역사회로부터 고립된 채 공동생활을 하도록 강요하고, 자신에게 영향을 주는 결정과 자신의 삶에 대해 충분히 컨트롤 할 수 없으며, 조직의 필요가 거주하는 개인의 필요보다 우선되는 곳(유럽집행위원회, 2012)’에 살도록 내몰아서는 안 되며, 장애 때문에 보편적인 삶을 영위하기 어려운 경우는 필요한 서비스를 제공해야 한다는 점 역시 동의할 수 있을 것이다.

 

‘탈시설화’에 관한 몇 가지 시선들

‘탈시설화’ 개념을 어떻게 정의할 것인가에 관하여 크게 두 가지 갈래가 있다. 첫 번째 관점은 탈시설화를 광의로 정의한다. 기존의 시설을 개선하고 탈시설을 지향하는 일련의 과정과 노력을 모두 탈시설화로 이해하며, 이러한 관점에서 ‘탈시설+화(化)’라는 표현으로 이해한다. 두 번째 관점은 탈시설화를 보다 엄격하게 협의로 정의한다. 즉, 시설에서 나와 지역사회의 보편적 주택에서 ‘자립생활’을 하는 경우만을 탈시설화로 정의하며, ‘시설화’에서 벗어난다는 의미로서의 ‘탈(脫)+시설화’라는 표현을 사용한다. 이러한 정의가 시사하는 바는, 시설의 문제는 운영보다는 구조의 문제라는 것이다. 단지 대형거주시설을 폐쇄해야 한다는 등의 물리적 공간만의 문제가 아니라, 국가의 예산을 어떻게 분배할 것인지, 서비스 전달체계를 어떻게 바꿀 것인지에 대한 고민 하에 국정철학이 바뀌어야 함을 뜻한다. 이러한 패러다임의 전환은 누구나 같은 시간에 일어나 다 같이 밥을 먹고, 약을 먹고, TV를 보고, 목욕을 하는, 그래서 모두가 같은 취향과 기억과 삶을 가지는 것이 아니라, 개인이 거주공간을 선택하고, 누구와 같이 살지를 고르고, 개인의 의지대로 의사결정이 이루어지고, 사생활이 보장되는 보편적 인권의 가치들이 존중되어야 한다는 의미이다. 

 

그렇기 때문에 탈시설화는 단순히 시설 – 탈시설의 이분법적 논쟁이 되어서는 안 된다. 탈시설은 장애인이 지역사회에서 커뮤니티의 구성원으로 살아가기 위한 수단과 방법이지 목표가 아니기 때문이다. 탈시설화를 엄격하게 정의하는 견해에 의하면, ⅰ) 거주공간을 시설에서 지역사회로 이전하고, ⅱ) 가정과 같은 보편적인 환경에서 거주서비스를 제공하며, ⅲ) 제약을 최소화함으로써 거주인의 자율성을 보장하고, ⅳ) 사생활과 소유권을 보장하며, ⅴ) 사회적 관계와 심리적 회복을 통해 지역사회의 일원으로서 인간답게 살아갈 수 있도록 지원하는 정책을 탈시설화 정책이라 할 수 있다. 이미 2014년 유엔 장애인권위원회에서도 「장애인권리협약 이행 국가보고서 심의 최종견해」에서 ‘장애에 대한 인권적 모델을 바탕으로 효과적인 탈시설화 전략 개발’, ‘정신 또는 지적 장애를 포함하여 장애를 이유로 한 자유의 박탈을 전제하고 있는 현행 법률조항 폐지’를 촉구한 바 있다. 

 

다른 나라들은 ‘탈시설화’를 어떻게 추진하고 있나

물론 지구상의 대부분의 국가는 근대기를 거치면서 노동능력이 부족한 장애인에 대해 시설수용 중심의 정책을 펴왔다. 미국만 보더라도 시설 설립이 최고조에 달했던 1970년대에는 700명을 기준으로 만들어진 시설에 2800명을 수용하기도 하였다. 이 같은 대규모 시설 위주의 정책은 미국 연방법원의 ‘펜허스트 판결(1978년)’을 계기로 달라지기 시작한다. 대규모 시설인 펜허스트처럼 지역사회와 분리되고 불평등한 환경에서는 삶의 질이 향상될 수 없다고 판단하고, 주 정부가 모든 시설 거주인에게 새로운 주거지와 생활환경을 마련해줄 것을 명한 것이다. 뒤이은 ‘옴스테드 판결(1999년)’ 역시 지역사회 치료가 더 적절하다고 판단된 정신장애인들에게 시설이 아닌 지역사회 기반 치료를 제공할 것을 명하였다. 이후 미국은 장애인 정책을 지역사회 위주 정책으로 전환하였고, 장애 – 비장애를 분리하지 않는 것을 원칙으로 삼았다.

 

영국의 탈시설화는 정부정책이 사회서비스를 통제하는 방식에서 장애인의 자립생활과 자기결정권을 보장하는 방식으로 변화하는 과정에서 이루어졌다. 1990년 ‘지역사회 돌봄법’을 시작으로 2004년 ‘돌봄법’에서 지방정부로 하여금 장애인 ‘돌봄 및 지원계획’을 세우고, 그 평가에 기초해 ‘개인예산’을 제공할 의무를 부담하도록 한 것이다. 캐나다는 장애인의 지역사회통합을 촉진하기 위해 ‘사회통합법’을 제정하여 비용의 직접지불이나 지역사회 서비스 등을 체계적으로 규정하고 있다. 호주 역시 매우 구체적으로 체계적인 장애인통합계획이 지역사회서비스계획과 함께 추진되고 있다. 스웨덴은 일정 기간 내에 모든 시설을 폐지하도록 하는 법을 제정했다. 1993년 ‘장애인 지원 및 서비스법’을 제정하여 국가는 장애인이 지역사회에서 자립적인 생활을 영위할 수 있도록 지원하도록 규정하고, 1997년에는 남아 있던 장애인 수용 병원 및 시설을 폐쇄하는 법을 시행하였다. 이렇듯 다른 나라들도 자국의 사정에 맞는 탈시설 – 사회통합 정책을 고안하고 시행하기 위해 분투하고 있다. 

 

한국의 ‘탈시설화’ 그리고 ‘커뮤니티 케어’ 

한국은 현재 약 1,500개의 장애인거주시설과 약 30,000명의 시설 거주인이 있다. 사실 지방정부에서는 이미 탈시설 방법들이 다각도로 모색되고 있다. 서울시는 시설거주 장애인을 대상으로 탈시설 욕구조사를 진행하여 2009년 장애인전환서비스지원센터를 설립하였고, 2013년 「장애인거주시설 탈시설화 5개년 계획」을 발표해 체험홈, 자립생활주택, 자립생활가정 등 탈시설 전환주거를 제공하고, 탈시설 정착금을 지급하고 있다. 이러한 측면에서 본다면 중앙정부는 차라리 조금 늦은 편이다. 얼마 전 보건복지부는 장애인과 정신질환자 등 취약계층의 사회정착 지원을 위한 ‘커뮤니티 케어(Community Care)’ 추진 계획을 발표했다. ‘커뮤니티 케어’란 사회로부터 격리하는 시설보호 대신 지역사회 내에서 돌봄, 주거, 치료 등 필요한 서비스를 통합적으로 제공하여 살아가게 하는 서비스 체계를 말한다. 대부분의 OECD 국가들은 1970년대 이후 ‘커뮤니티 케어’ 정책을 펴고 있고, 보건복지부 역시 거주시설이나 요양시설에서 지내는 거주인의 삶의 질을 개선하고 지역사회에 정착해 살아갈 수 있도록 하겠다고 밝혔다. 그렇다. ‘커뮤니티 케어’는 ‘탈시설화’와 동전의 양면과 같은 관계이다. 

 

그래서 복지부도 상반기 내로 ‘커뮤니티 케어’ 로드맵을 마련해 ‘탈시설화’를 추진한다고 한 것으로 읽힌다. 이를 위한 방편으로 ‘장애인복지법’을 개정해 탈시설화를 개념정의하고, 탈시설지원센터를 설치하며, 퇴소하는 거주인에게 우선적으로 공공임대주택을 공급하는 등의 내용이 담길 것으로 보인다. 일각에서는 주거, 고용, 돌봄, 교육, 여가 등 지역사회 인프라가 마련되지 않은 상황에서 ‘탈시설화’가 추진되는 것에 대한 우려를 제기하지만, ‘커뮤니티 케어’를 시기상조라고 반대하는 목소리는 들어보지 못했다. 2010년 장애인연금제도, 2011년 활동보조지원제도 도입을 통해 탈시설과 자립생활을 지원할 수 있는 최소한의 정책적 토대는 갖추어졌다고 본다. 국가예산을 편성하는데 장애인지적 관점을 반영하는 「국가재정법」 개정안도 발의되었다. 무엇보다 국가정책이 준비가 미흡하다는 이유로 시작되지 못하면 그것은 아마도 시도될 수 없을 것이다. 물론 그 과정에서 누구도 변화의 희생양이 되어서는 안 되기에 결국 예산과 속도가 관건이다. 정부가 탈시설화 – 사회통합 정책을 국가의 책임과 시급한 과업으로 인식하고 이행하지 않으면 안 되는 이유이다. 

 

첫 단추를 잘 꿰려면 

정부의 정책의지를 이끌어내기 위해서는 근거가 되는 법률에 그 내용을 충실히 담는 것이 중요하다. 법률의 모습을 하나로 고정할 필요는 없다. 장애인복지법을 개정하는 방법, 시설폐쇄와 탈시설 내용만을 담은 독립적인 법안으로서 시설폐쇄법이나 탈시설지원법을 제정하는 방법, 현재 범장애계가 추진 중인 장애인권리보장법을 제정하는 방법 등 다양한 양상이 가능하다. 물론 이 중에 택일해야 하는 것도 아니다. 또 다른 방식이 제안되거나 여러 개의 법이 중첩되어 시행될 수도 있다. 따라서 정부의 장애인복지법 개정도 안 좋은 방법이라 단언하지는 않는다. 다만 탈시설화 개념을 정의하고, 탈시설지원센터를 만드는 2~3조항의 개정만으로 실효적인 제도의 작동을 담보하기는 어렵다고 본다. 온전한 자기결정권 행사를 위한 정보접근방식의 개선, 수요자 입장의 탈시설 절차, 탈시설화 전문인력의 양성, 탈시설 지원 전달체계의 구축, 탈시설 이후 재입소나 노숙, 범법행위 등으로 이어지지 않기 위한 심리상담・사회적 관계망 형성, 모니터링과 추적조사 등등 수많은 과제가 동시다발적으로 행해져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보건복지부 내 부서 간뿐만 아니라 국토교통부, 고용노동부, 행정안전부 등 관련 부처 간, 실제로 당사자와 직접 접촉하고 지원할 각 지방정부와의 유기적이고 긴밀한 협조가 필수적으로 이루어져야 한다. ‘탈시설화’든 ‘커뮤니티 케어’든, 이는 사람을 위한 제도인 동시에 완전한 사회통합으로 나아가기 위해 사회의 구성원 모두가 참여해야 할 의무이다. 제도 안의 사람을 생각하고, 이들의 온전한 삶을 담아내기 위한 정부의 노력을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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