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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간 복지동향 200호 발행
  • 2013
  • 2013.08.10
  • 4630

국민기초생활보장제도 제정 의의 및 과제

 

문 진영 l 서강대학교 사회복지학과 교수

 

국민기초생활보장법 제정 전후

 

복지동향 편집부로부터 국민기초생활보장제도 제정 의의에 관한 글을 부탁받고 법제정 당시의 자료들을 뒤적이다가, 문득 1999년 어느 더운 여름날 여의도의 한 카페에서의 일이 떠올랐다. 당시 국민기초생활보장법 제정추진 연대회의(이하 연대회의) 집행위원들은 국회와 가까운 여의도의 카페에 모여 국민기초생활보장법(안)의 국회 심의결과를 초조하게 기다리고 있었다. 시간은 더디게 지나고, 드디어 국회에서 법(안)이 만장일치로 통과하였다는 소식을 듣고서는 서로 얼싸안으며 환호하였던 기억이 새롭다. 무엇보다도 완고한 기득권층과 경직된 관료의 반대를 뚫고, 시민의 힘으로 사회개혁을 이루었다는 승리감으로 우리 모두는 거의 전율에 가까운 희열을 느꼈던 것이다.


이러한 승리감도 잠시, 법제정 이후 제도를 구성하는 과정에서 국민기초생활보장제도는 시장주의자와 복지 원리주의자 양측으로부터 거의 모멸에 가까운 비판을 들어야 했다. 이 법이 우리 사회에서 공론화되자 온갖 논리를 동원하며 집요하게 공격하였던 보수주의자들은, 이 제도가 근로능력이 있는 수급자에게도 최저생계를 보장함으로써 이들의 근로의욕을 감퇴시켜서 복지병을 유발한다고 날선 비판을 가하였다. 이들은 권리로서 수급권을 보장하는 국민기초생활보장 제도가 정착되면 저소득층이 너도 나도 수급신청을 하여 최소한 600만 명 이상이 수급자가 될 것이라는 비관적인 전망을 내놓았다. 그런 한편으로, 진보주의자보다는 복지 원리주의에 가까운 사람들은 이 제도가 부정수급자 색출에 보다 비중을 둔 ’부정수급자색출법’이고, 주민등록표 때문에 가정해체가 촉진되는 ‘가정해체촉진법‘이요, 조건부 수급자에게는 근로를 강제하는 ’근로강제법‘이고, 정말 보호해야 하는 사람들을 방치하는 ’요보호자방치법‘이라고 맹렬한 공격을 가하였다.


다행히 보수주의자와 복지 원리주의자 양측의 우려는 그리 심각하게 현재화되지 않았고, 2000년 시행 이후 국민기초생활보장 제도는 우리 사회의 소중한 사회적 자산으로 튼튼한 뿌리를 내리고 있다. 그러면 2013년을 살아가는 우리에게 이 제도는 어떠한 사회적 의미를 가지고 있는가? 역으로 물어서, 만약 기초생활보장제도가 없었다면, 우리 사회는 어떠한 모습이었을까?

 

국민기초생활보장제도의 의의

 

국민기초생활보장제도는 빈곤과 떼어놓고 생각할 수 없는 대표적인 빈곤정책이다. 그리고 한 사회의 빈곤정책의 수준과 양태는, 바로 그 사회가 빈곤을 어떻게 이해하고 해석하느냐에 따라 결정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러한 점에서 1999년 제정된 국민기초생활보장제도는 우리나라의 완고한 보수주의 이데올로기를 뛰어넘어서 복지국가로 나아가는 하나의 시금석이 되었다고 평가할 수 있다(안병영, 2000; 박윤영, 2002; 김영순, 2005). 즉 농경사회에나 어울릴 단색(單色) 이데올로기를 가진 한국에서 빈곤하다는 이유만으로 근로능력자에게도 현금급여를 제공하는 것은 분명 기존 보수주의 이데올로기의 틀을 벗어나 새로운 권리의 시대로 나아가는 커다란 진전이었다. 바야흐로 우리 사회에서도 복지국가의 시대가 열린 셈이다. 이러한 의미를 가지고 있는 현행 국민기초생활보장제도는 다음과 같은 세 가지 기둥으로 이루어져 있다. 


 첫째, 국민기초생활보장법 제7조에서 수급자에 대한 급여는 소득인정액을 포함하여 최저생계비 이상의 생활수준을 유지할 수 있는 수준에서 결정되어야 한다고 명시함으로써, 복지국가의 가장 기초적인 제도적 조건이라고 할 수 있는 국민최저선(national minimum)이 확보되었다. 둘째, 이 법의 제정을 통하여 우리나라 공공부조제도가 전통적인 노동불능자에게만 극소한도의 급여만을 제공하는 구빈법적 전통을 벗어나 근대적 의미의 공공부조제도로 발전하였다. 즉 이 법은 나이와 성별, 그리고 근로능력 여부와 상관없이, 소득이 일정수준 이하인 저소득층에게 기초적인 생활을 보장함으로써(법 제5조), 헌법에서 보장한 인간다운 생활을 할 권리가 구체적 권리의 성격으로 발전하였다. 셋째, 국민기초생활보장제도는 저소득층의 최저생계보장이라는 전통적인 의미의 공공부조적 성격과 더불어 근로능력이 있는 수급자에게는 빈곤의 덫(poverty trap)에 빠지지 않고 근로의욕을 유지할 수 있도록 조건부 수급제도(법 제9조)와 소득공제제도(시행규칙 제2조)를 사용하고 있다. 즉 근로능력 수급자는 어떠한 형태이던 자신의 근로를 제공하는 자활사업에 참여하는 것을 조건으로 생계급여를 제공하는 조건부 수급제도와 근로를 통해서 소득활동을 하는 수급자에게는 소득평가액에서 일정액을 공제함으로써 결과적으로 자신이 받을 수 있는 급여액보다 그 일정액에 해당하는 양의 급여를 부가해서 받을 수 있는 소득공제제도를 가지고 있다.

 

국민기초생활보장제도가 위험하다

 

“21세기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문명사회와 야만사회를 가르는 기준이 무엇일까?”문명사회는 아마도 그 사회에서 가장 힘들고 어렵게 사는 사람들, 집도 절도 없고, 손을 내밀 가족이나 친척도 없이 막막하게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인간적인 삶의 조건을 만들어주는 사회일 것이다. 역으로 말해서, 인간의 존엄성이 제도화되지 않은 사회, 즉 인간다운 생활을 할 권리가 주어지지 않은 사회는 아무리 물질적으로 풍요롭다 하더라도, 결코 문명사회라 할 수 없을 것이다.


이러한 점에서 IMF 경제위기의 여파가 채 가시지 않은 1999년, 시민사회의 조직적인 힘으로 성사시킨 국민기초생활보장제도는 우리 사회를 문명사회이게 하는 최소한도의 도덕적인 기초라고 할 수 있다. 그리고 우리 모두는 한번 누린 권리는 절대 양보하지도, 포기하지도 않고 지속적으로 발전한다는 '불가역성의 명제'를 철석같이 믿고 있었다. 하지만 예외 없는 법칙은 없다고, 지난 14년간 한국 사회 최후의 안전망으로 굳건한 버팀목 역할을 했던 '기초생활의 보장'이 현 정부의 맞춤형 복지에 의해서 흔들리고 있다.


대선기간부터 지금까지 줄곧 ‘맞춤형 복지‘와 ’일을 통한 지원‘을 강조하고 있는 현 정부와 집권당은, 그 첫 번째 실험대로 국민기초생활보장제도의 전면적인 개편을 시도하고 있다. 이번 5월 14일 주무부서인 복지부와 고용노동부 등 관계부처는 합동으로 [맞춤형 복지를 위한 기초생활보장제도 등 개편방안]을 발표하였고, 곧 이어 집권 새누리당은 [국민기초생활보장법 일부개정법률(안)]을 발의하였다. 하지만 개편의 방향과 내용을 찬찬히 살펴보면, 기초생활의 보장이라는 우리 사회의 도덕적 기초를 무너뜨리는 개악에 가깝다고 평가할 수밖에 없다.


첫째, 인수위 보고서부터 최근의 개정법률(안)의 흐름을 보면, 현행 국민기초생활보장 수급자를 근로능력자와 근로무능력자로 나누어 별도의 급여체계로 운영하게 될 가능성이 매우 높다. 둘째, 현행 국민기초생활보장제도에서 최저생계비는 수급권자 선정기준이자 급여의 기준선이 되는 가장 중요한 개념이다. 하지만 개정법률(안)에 따르면 이러한 최저생계비의 기능을 철저하게 부정하면서, 국민기초생활보장제도를 권리성 급여가 아닌 행정부의 재량급여로 전락시키려고 하고 있다. 셋째, 개정법률(안) 제20조에서 규정된 바와 같이, 중앙생활보장위원회의 심의의결 기능이 사회보장위원회(사회보장기본법 제20조)의 심의․조정을 거친 경우 생략될 경우에는 사회적 합의정신과 민주적 정당성이 부정되는 결과를 초래하게 될 것이다.

 

국민기초생활보장제도의 과제

 

물론 국민기초생활보장제도가 이론적으로나 실천적으로 완벽한 제도는 아니다.  제도가 시행된 지 10년이 훨씬 넘은 지금, 제도의 문제점을 냉철하게 되짚어서, 현실성 있는 개선방안을 제시할 시점에 와있다고 할 수 있다.


국민기초생활보장제도의 가장 큰 문제점은 경제침체 등으로 빈곤층은 늘어만 가는데, 수급자의 수는 전 국민의 3% 수준으로 거의 고정되어 있다는 것이다. 엄격한 부양의무자 기준 등으로 인하여 광범위한 사각지대가 존재하기 때문에 과연 국민기초생활보장제도가 권리성 급여인가 하는 근본적인 질문을 하게 된다. 두 번째로 매년 보건복지부 장관이 공포하는 최저생계비의 금액을 가지고 현실적으로 인간다운 생활을 영위할 수 있는가 하는 문제가 있다. 특히 비계측연도의 최저생계비 결정에 있어서 거의 물가상승률만 반영된 결과, 현재 최저생계비의 수준으로 인간다운 생활을 할 권리를 실현하기 매우 어렵게 되어있다. 셋째, 근로능력자 수급자들로 하여금 노동시장에 진입할 수 있도록 유도하는 시스템이 갖추어져 있지 못하다. 특히 자활급여는 노동시장에서 생존할 수 있는 역량을 강화하는 프로그램 보다는 단순히 생계급여를 수급받기 위한 조건이행의 측면이 더 크게 작용하고 있다. 


따라서 국민기초생활보장법을 제정하였던 정신과 가치를 유지하는 한편으로, 변화하는 시대에 맞게 제도를 개편시키기 위해서는 첫째, 부양의무자 기준을 대폭적으로 완화하여 제도의 사각지대를 가능한 한 줄여야 한다. 둘째, 최저생계비를 현실화하여야 한다. 특히 비계측연도의 최저생계비 결정과정에서 물가상승률 이외에 생활상의 변화가 보다 적극적으로 반영되어야 한다. 셋째, 근로능력 수급자들이 탈수급하기 위한 프로그램을 개발하여 적용하여야 한다. 넷째, 국민기초생활보장제도가 단순히 금전적인 수급을 넘어서서, 대인 상담 서비스와 지역사회의 정보와 자원을 연결하는 역할을 보다 적극적으로 하여야 한다. 특히 최근 들어서 기초 지자체가 다양한 사회 서비스를 개발하고 적용하고 있는 현실을 고려할 때, 사회서비스와 국민기초생활보장제도의 정합을 어떻게 유지할 것인가 고민해야할 시점에 와 있다. 다섯째, 현재 전 국민의 약 5-6%로 추정되는 우리 사회의 비수급 빈곤층의 문제를 다각적으로 접근할 필요가 있다. 즉 현재 소득인정액이 최저생계비 이하이지만, 제도의 수급규정 때문에 수급권자가 되지 못한 사람들에게는 현존하는 욕구에 따라서 급여를 지급하는 유연한 제도로 탈바꿈시킬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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