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복지동향 2011 2011-08-12   3474

[동향2] 부양의무자 ‘조사’했으면 ‘책임’까지 져라

보건복지부의 부양의무자 전수조사의 문제점

부양의무자 ‘조사’했으면 ‘책임’까지 져라
 

손대규│ 참여연대 사회복지위원회 간사

 

# 조 모 씨(청주, 60대)
30년 전 부인과 이혼한 뒤 자식들과도 연락이 끊겨 매월 기초생활수급비를 받아 혼자 근근이 생활해오던 60대 남성 조 모 씨. 최근 지자체로부터 “부양가능한 아들이 호적에 등록되어 있으므로 기초수급 중지 예정자가 됐다”라는 통보를 받고 괴로워하던 중 자살함.

 

# 윤 모 씨(남해, 70대)
2002년부터 기초생활수급자 자격으로 남해의 한 요양시설에서 생활해 온 윤 모 씨. 이번 부양의무자 정기조사 결과 딸 5명의 소득이 드러나면서 부양의무자 기준에 걸려 수급 자격을 잃는다는 사실을 전해 듣고 자녀들에게 부담이 되는 것을 고민하여 자살함.

 

보건복지부는 사회복지통합관리망(행복e음) 도입에 따른 자료정비를 목적으로 올해 5월부터 부양의무자 소득 및 재산자료 정비를 실시중이다. 위 2분의 안타까운 사례는 이러한 조사과정에서 일어났다. 문제는 부양의무자 조사과정에서 급여탈락 통보자만 10만 명이라는 것이다. 급여삭감자는 통계조차 잡히지 않고 있다. 이러한 추세라면 제 2, 제 3의 조 모 씨, 윤 모 씨가 나오지 않으리라는 법이 없다. 수급자를 이처럼 벼랑 끝으로 내모는 막무가내식 부양의무자 조사의 문제점을  짚어본다.

 

첫째, 준비부족을 들 수 있다.

 

2011년 5월 보건복지부가 각 지자체에 보낸 ‘부양의무자 확인조사에 따른 업무처리 요령’이라는 지침을 보면, 조사에 들어가기에 앞서 이미 모의적용 해본 결과 상당수의 수급 탈락자 및 급여 감소자가 발생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그래서 “민원발생이 최소화하도록 신중하게 업무처리” 하도록 지시하고 있다. 그러나 현장에서는 소명절차 등이 제대로 작동되지 않는 등 밀어붙이기 식 조사가 계속되고 있다. 모의적용 결과 상당수의 급여탈락자를 예상하고도 달랑 지침하나와 몇 차례의 복지공무원 교육만 시행하고 밀어붙인 것은 명백한 준비부족이다.

 

현재 돌아가신 조, 윤 모 씨와 같이 탈락 통보를 받은 수급자가 10만 3천명이라고 집계될 뿐, 급여삭감자 규모와 액수는 통계자료조차 나오지 않고 있다. 상식적으로 급여삭감자가 탈락자보다 많으리라고 추정만 될 뿐이다. 아무리 적게 잡아도 저소득 빈곤층 20여만 명의 생사가 달려있는 사안을 이렇게 준비 없이 밀어붙인 것은 아무리 ‘복지효율화’라는 미명으로 포장한다고 해도 ‘정부의 안일한 대처’라는 비판을 면하기 어렵다.

 

또한, 정부는 이번 조사에서 유독 ‘신중한 업무처리 및 최대한의 권리구제’를 강조하고 있고 그것의 제도적 보완을 ‘소명절차’라고 꼽고 있는데 10만 명의 급여탈락 통보자 중에서 소명절차를 진행 중인 사람은 고작 1만 5천명에 불과하다. 현장에서 소명절차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았다는 반증이다. 10만 명중 1만 5천명만 소명절차를 밟는 중이라면 나머지 8만 5천명은 소명기회를 포기한 것일까, 아니면 박탈당한 것일까. 밀어붙이기 행정만 있고 그 안에 사람은 없는 전형적인 행정편의주의이다.

 

둘째, 업무지침조차 지켜지지 않고 있다.

 

언론에 따르면, 복지부는 ‘9월까지 3개월간 소명기회를 주고 있고, 이 기간에 수급자 자격은 유지되지만 생계급여는 끊기고 대신 의료급여 및 임대주택 입주 등 자격은 유지된다’ 고 말하고 있다. 하지만, 업무지침을 보면 분명히 변동사유에 대한 사전안내 후 소명기회를 부여하고, ‘소명사항이 확인 및 반영된 후’에 수급자격 및 급여내용을 결정하라고 명시하고 있다.

 

즉, 소명기간동안 생계급여가 끊긴다는 복지부 관계자의 언론브리핑과 소명사항을 확인한 연후에 수급자격 및 급여내용을 결정하라는 업무지침과의 차이가 분명 존재한다. 지침에서 분명히 지적하고 있는 사항조차 따르지 않는 폭압적 조사로 인해 현장에서는 수급자 2분이 벌써 운명을 달리했다. 상식에 맞지 않는다. 소명기간 중에 급여를 중지할 거면 소명기회는 왜 주고 소명절차는 왜 진행하는 것인가? 소명기간 중에는 급여를 계속 지급하고 유예하는 것이 상식에 맞다.

 

또한, 생계급여는 끊기고 의료급여와 임대주택 자격은 유지된다는 논리는 과연 어디서 나온 것인가? 표현만 달리했을 뿐 이건 3개월 뒤에는 임대주택에서 나가라 라는 얘기와 다를 바 없다. 의료급여와 임대주택 자격은 유지된다며 굉장한 보호 및 시혜를 베푸는 것처럼 말하지만 이것은 이번 조사와 별개로 이미 일부 시행되고 있는 것이다. 조삼모사식 표현일 뿐이다.

 

셋째, 수급자 보호조치가 너무나 부족하다.

 

부양의무자 조사과정에서 숱한 문제가 발생하고 있지만 그 중의 핵심은 부양거부 및 기피의 경우, 이것의 확인 및 처리절차이다. 숨진 조 모 씨나 윤 모 씨의 경우도 오랫동안 연락을 끊고 살다가 이번 일제조사를 통해서 부양의무자가 드러나게 되었고, 연락을 끊고 산지 오래되었다는 소명절차를 진행 중인 상황이었다.

 

법과 지침에 따르면 이러한 부양거부 및 기피의 경우에 대비해서 수급자 선보호 후, 보장비용을 징수 할 수 있도록 규정하고 있다. 이번 조사의 업무지침에도 명백히 나와  있는 사안이다. 하지만,  정부는 이것을 폭넓게 해석하고 적극 권장하는 그 어떠한 제도적 장치도 마련하지 않았다. 오히려 이러한 수급자 선보호 여부는 지자체의 결정으로 위임하고 있다. 예산도 없고, 징수할 행정력도 미비한 지자체가 과연 이러한 시스템을 적극적으로 해석하고 적용할 수 있을까?

 

최근 사회복지서비스 및 급여 부적합결정처분 취소청구소송에서 대구고법은 판결문(2010누2549)을 통해 부양 기피 및 거부 경우로 <국민기초생활보장사업 안내> 책자에서 적시한 것은 대표적 흔한 사례에 불과하므로 폭넓게 해석하여야 한다고 판결한 바 있다. 복지부는 선보호 조치 등 일련의 수급자 보호조치에 대해서 너무나 소극적인 자세로 일관했다. 도시화와 핵가족화 등으로 부양의무를 진 가족과 단절된 수급자가 많은데도, 정부가 이런 현실을 제대로 파악하지 않은 채 행정편의주의로만 일관하고 수급자 탈락에만 혈안이 된 것은 잘못돼도 한참 잘못되었다.

 

정부는 법령과 판례의 주문대로 부양 기피 및 거부의 경우를 폭넓게 해석하여 부양을 받지 못하는 빈곤층에게는 먼저 국가가 선보호하고(수급비를 지급하고) 사후 보장비용을 징수했어야 했다. 또한 이러한 부양거부 및 기피를 확인하는 과정도 수급자 본인에게만 맡길 것이 아니라 정부가 나서서 적극적으로 확인했어야 했다.

 

이번 부양의무자 조사는 대규모의 전산망 시스템 구축을 통해서 연락이 끊긴 지 오래된 가족을  찾아주었다. 그러나 정부는 찾은 가족에게 ‘부양의무’라는 족쇄를 덧씌웠고 수급자들은 탈락 통보를 받았다. 정부가 한 일은 딱 거기까지였다. 가족을 찾아줬으면 가족부양을 제대로 하고 있는지, 한다면 얼마나 어떻게 하고 있는지 확인하는 절차는 전혀 없었다. 가족부양을 받지 못하는 빈곤층이 있다면 국가가 먼저 보호해주는 것이 맞다. 국민기초생활보장법의 제정취지도 그러하고 실제 법령도 이를 뒷받침하고 있다. 그러나 정부는 조사하고 가려내기만 하고, 실제 보호조치로 연결시키지 않았다. 법을 어기고 국가의 책임을 방기하고 있다고 비판받는 주요 이유이다.

 

겉으로는 ‘사각지대 해소’, 실제로는 ‘예산삭감’

 

그동안 정부는 틈만 나면 ‘서민생활 안정’, ‘친서민’을 강조하고 사각지대 해소를 위해 부양의무자 기준을 완화할 것이라고 공언해왔다. 그러나 정작 복지부의 부처예산요구액을 들여다보면 기준완화로 6만 1천명을 늘이는 대신 부양의무자 재조사를 통해 4만 5천명을 줄이겠다는 목표치까지 밝혀두고 있는 상태이다. 이는 전형적인 아랫돌 빼서 윗돌 괴기식이다. 겉으로 부양의무자 소득기준 완화를 대대적으로 홍보하면서 실제 막무가내식 조사를 통해 수급자를 걸러내는 데에만 몰두하고 있는 것이다.

 

지난 주 진수희 복지부 장관은 사회복지 전담공무원에게 보낸 서한문에서 “부양의무자가 있어도 실제 부양받지 못하는 분들이 억울하게 배제되지 않도록 관심과 노력을 기울여 달라”고 하면서도 “부양의무자 확인 조사는 복지급여의 공정성 확립을 위해 꼭 필요한 조처”라고 강조했다. 복지예산의 효율화를 내세우고 있지만 부작용에 대한 고려 없는 밀어붙이기식 행정은 정부의 책임을 내팽개치는 행위일 뿐이다.

 

그동안 참여연대를 비롯한 많은 시민사회단체들은 소득이 최저생계비 이하임에도 수급을 받지 못하는 100만 명의 사각지대의 원인으로 ‘부양의무자 제도’를 지적하고, 이를 폐지할 것을 촉구해 왔다. 제 2, 제 3의 조 씨와 같은 불행한 사건이 일어나지 않도록 정부는 하루속히 빈곤의 고통에 처한 수급자에게 먼저 생계비를 지원한 뒤 부양능력 있는 부양의무자에게 사후징수 하는 방향으로 제도를 개선하는 한편, 부양의무자 기준폐지에 나서야 한다. ‘조사’했으면 ‘책임’까지 져라.

 

참조 | *이 글은 함께걸음 2011년 8월호에 기고한 글입니다.

정부지원금 0%, 회원의 회비로 운영됩니다

참여연대 후원/회원가입


참여연대 NOW

실시간 활동 SNS

텔레그램 채널에 가장 빠르게 게시되고,

더 많은 채널로 소통합니다. 지금 팔로우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