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복지동향 2011 2011-12-20   3634

[동향5] 서울시 의료의 공공성 강화

문정주│국립중앙의료원 공공의료지원팀장

 

 

의료의 공공성
 

공공성이란 사회 구성원 공동의 행복, 이익, 공동 선(善)을 추구하는 방향성을 뜻한다. 권력층이 자기들만의 이익을 추구하거나 개인이 자기만의 이익을 추구하는 것에 반대되는 개념이다. 다른 표현으로는 사회구성원 공동의 토론과 합의를 바탕으로 공익을 높이려는 방향성을 뜻하기도 한다. 근대 사회에서 시민 계급의 등장과 함께 부각된 개념이며 우리나라에서는 민주화, 인권 신장, 자율적 시민사회의 발달과 더불어 사회의 중심 가치로 점차 힘을 얻어가는 개념이라 할 수 있다.
 

 

인권으로서 건강권의 내용이 유엔의 세계인권선언(1948)에 담겨 있다. “모든 사람은 식량, 의복, 주택, 의료, 필수적 사회 서비스를 포함하여 자신과 가족의 건강과 안녕에 적합한 생활수준을 누릴 권리를 가지며, 실업, 질병, 불구, 배우자와의 사별, 노령, 그 밖에 자신의 힘으로 구제할 수 없는 상황에 처하여 살길이 막막해진 모든 사람은 사회나 국가로부터 생계보장을 받을 권리를 가진다.(제 25조)” 세계보건기구는 이에 근거하여 건강권이란 ‘정부와 공공기관이 모든 사람에게 이용 가능하고 접근 용이한 보건 서비스를 제공하는 정책을 세우고 실행해야 할 의무를 뜻한다’고 하였다. 개인에게는 권리지만 정부에게는 의무인, 건강권의 양면을 잘 설명한다고 할 수 있다. 우리 사회에서도 건강권이 낯선 말이 아니다. 2002년에 우리나라 국민을 대상으로 시행되었던 조사에서 응답자의 89%가 “소득과 구매력을 불문하고 누구나 동일한 양과 질의 의료 서비스를 받을 수 있어야 한다”고 답했다. 우리 국민들은 이미 질병 치료와 건강 유지를 누구나 누려야 할 권리로 인식하며 이에 필요한 의료를 사회가 보장해야 한다고 생각함을 보여준다.
 

 

의료의 공공성이란 그러므로, 의료(기관, 서비스 등)가 모든 사람의 건강권을 최고 가치로 추구하는 방향성을 뜻한다고 할 수 있다. 국가 혹은 지역의 의료체계에 이 방향성이 확고하도록 정책을 만들고 제도화할 책임이 정부, 자치단체에 있다. 내용적으로는, 건강권 보장을 위해 예방․치료․재활을 포괄한 양질의 필수 서비스 전반을 제공하되 영리를 추구하지 않고 대상을 차별하지 않으며 누구나 이용 가능한 방식으로 의료를 제공하는 것이다.
 

 

공공의료라는 용어는 현행 ‘공공보건의료에 관한 법률’에 따르면 국공립병원이 제공하는 의료를 뜻한다. 그러나 사회적 의미는 이보다 훨씬 넓고 깊다. 즉, 병의원의 절대 다수가 사립기관으로 이윤 추구 경향이 강한 우리나라 의료체계에서 공공성에 충실한 의료, 오직 국민의 건강권 보장이 목적이며 이를 국가가 책임지는 의료를 뜻한다고 볼 수 있다. 서울시 공공의료도 법률적으로는 서울시 산하 병원 등 서울에 소재한 국공립병원이 제공하는 의료에 국한될 것이나 사회적 의미는 이를 넘어서, 시민의 건강권 보장을 목적으로 서울시가 정책적으로 제공하는 보건의료를 의미한다고 폭넓게 정의할 수 있을 것이다.

서울 시민의 건강
 

 

서울은 우리나라에서 가장 사망 위험이 적고 건강수준이 높은 지역이다. 서울시 인구 십만명당 연령표준화 사망률이 2009년에 361.3으로 전국 평균인 420.5에 견주어 크게 낮다. 주요 사망원인은 암, 뇌혈관질환, 심장질환, 자살, 당뇨병으로 전국의 5대 사망원인과 같다.
  지역별 건강불평등이 상당하다. 2000~2004년의 표준화 사망률을 비교한 연구에서 서울시 25개 구별 사망률 격차가 상당한 것을 알 수 있다. 사망률이 가장 낮은 구는 서초구, 강남구, 송파구이며 가장 높은 구는 동대문구, 강북구, 금천구이다. 동대문구의 인구 십만명당 사망률은 2,340으로 서초구의 1,772의 132% 수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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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층별 건강불평등 또한 상당하며 근래 격차가 더 커지고 있다. 저소득층일수록, 교육수준이 낮을수록 고혈압 유병률이 높고 비만도가 높으며 우울증 경험률도 높다. 이 격차가 2005년에 비해 2009년에 훨씬 더 커졌다. 2009년에 저소득․저학력 계층의 고혈압 유병률은 고소득․고학력 계층의 3~4배에 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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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수의료 제공이 미흡하다. 시민의 일상생활과 밀접한 건강문제를 다루는 필수의료 및 재난에 대비하여 반드시 필요한 필수의료를 정의하려면 아마도 상당한 규모의 종합병원 진료 내용을 거의 다 포함하여야 할 것이다. 그 중 특히 의학적으로 위험이 크고, 힘들고, 수익이 낮은 분야로 대표적인 것이 응급의료, 분만, 어린이 진료, 감염병 진료, 정신질환 진료, 재활치료 등이다.
 

 

응급의료기관은 24시간 응급실을 운영하는 기관이다. 서울시내에 서울대학교병원을 비롯하여 총 57개소가 있다(2010. 2.). 단순 평균하면 1개 기관당 서울시민 17만 5천명의 응급의료를 담당하는 실정이며 이마저도 분포가 고르지 않다. 즉, 영등포구에는 응급의료기관이 6개소 있으나 마포구에는 전혀 없으며 성동․성북․강북․도봉․은평․강서․금천․서초구에는 각 1개소 있을 뿐이다. 인구 40만명을 넘나드는 구역에 응급의료기관이 전혀 없거나 겨우 1개소만 있다는 것은 시민 생활의 안전 측면에서 어처구니없을 정도로 미흡하다고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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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만 실적이 있는 의료기관이 서울에 총 119개소이다(2009년) 응급의료기관 수에 견주면 2배가 넘으나, 응급의료에 대해서는 보건복지부의 인력․시설․장비의 기준이 있어서 이를 충족하여 지정된 기관을 집계한 것인데 반해 분만기관에 대해서는 이같은 기준이 아직 없고 단지 연간 30건(월평균 3건) 이상 분만 실적이 있는 기관을 모두 포함시킨 숫자라 단순 비교를 할 수는 없다. 분만 의료기관의 분포에도 격차가

 

 

상당하여 강남구에 9개소 있으나 용산․성동․중랑․서대문구에는 각 2개소에 불과하다. 생활권 안에서 분만할 의료기관을 찾기 쉽지 않은 여건인 것이다. 저출산 현상을 극복하기 위해 정부와 지자체가 여러 가지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고 하나, 임신과 출산을 통틀어 가장 긴박한 과정인 분만을 집 가까운 곳에서 안전하게 치루도록 지원할 의료체계는 정작 미흡한 것이 안타깝다.

 

 

서울시 건강 정책
 

모든 지방자치단체가 ‘지역보건의료계획’을 수립하고 보건복지부에 제출한다. 지역보건의료계획에는 건강수준 등 지역 현황, 현황 분석에 근거한 중점 과제 및 이를 개선할 보건사업계획을 담는다. 각 지자체 보건의료에 관한 총괄 계획이며 중기(中期) 정책이라 할 수 있다. 4년을 단위 기간으로 하며. 올해는 제5기(2011~2014년) 첫 해에 해당한다. 서울특별시 제5기 지역보건의료계획에 따르면 중장기 비전은 ‘건강한 시민, 행복한 서울‘이며 중점과제는 감염병 예방관리, 심뇌혈관질환 예방관리이고 각 구 보건소에서 맞춤형 방문건강관리 등 약 20가지 보건사업을 수행한다.
 

 

보건소의 보건사업이 서울시 지역보건의료계획의 내용 대부분을 차지한다. 물론 보건소는 각 25개 구에서 시민 보건에 대해 가장 중요한 기관이라 할 수 있다. 그러나 보건소가 직접 제공하고 관리하는 서비스는 시민의 건강권 보장을 위해 필요한 보건의료 전반에 견주면 일부분에 불과하여, 보건소의 보건사업을 추진하는 것만으로는 ‘건강한 시민, 행복한 서울’이란 비전을 알맹이 없는 구호에 그치게 할 것이 우려된다. 그보다는 시민 건강권을 위해 서울시가 추진할 보건의료 정책 전반을 지역보건의료계획에 담아야 한다. 앞서 서울시민의 건강에 관해 기술하였던 내용과 관련하여 문제점을 몇 가지 짚어본다.
 

 

첫째, 건강불평등 실태를 파악하였으나 외면하였다. 건강수준 분석에서 구(區)와 계층에 따라 불평등한 건강격차가 상당하며 최근 악화하고 있다는 것을 파악하였으나, 전략 수립 단계에서는 이를 거의 반영하지 않았으며 건강격차에 대한 해소 대책도 수립하지 않았다. 다만 산하 병원의 운영을 개선하여 공공의료를 강화하고 취약계층을 위해 기존의 나눔진료 봉사단 운영을 지속하겠다는 계획이 있을 뿐이다.
 

 

보건소를 이용하는 시민이 전체의 1/3에 불과하다는 서울시 조사결과로 알 수 있듯이 생활 지역이나 여건 때문에 보건소를 이용하고 싶어도 할 수 없는 시민이 많다. 건강불평등을 해소할 전략 없이 기존 보건사업을 추진하기만 한다면 보건소를 이용하는 시민과 그렇지 못한 시민의 건강 격차가 오히려 더 벌어질 것이 우려된다. 또한 서울시 산하 병원이 종합병원 3개와 특수병원 6개에 불과한 실정에서 이 병원의 운영을 개선하는 것으로 시민의 의료 이용 여건 개선을 기대한다는 것은 비현실적이다. 더욱이, 이따금씩 방문하는 무료진료 봉사단 활동으로 이미 악화되고 있는 취약계층의 건강수준이 좋아지리라는 것은 안이한 생각이다.
 

 

둘째, 응급의료와 분만 등 필수의료 제공 기관이 부족한 현실을 주목하지 않았다. 서울시를 응급의료 인프라가 갖춰진 상태로만 인식하여, 응급환자 이송 및 정보체계를 강화하고 일반인의 응급처치 능력을 향상시킨다는 계획만 제시하고 있다. 분만기관의 부족에 대해서도 조사 내용이 없어, 이에 대해 주목하지 않았던 것으로 보인다. 서울시에 병원급 의료기관이 373개, 의원급 기관이 14,432개에 달하여 병상 공급이 수요를 초과하는 상태인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병원이 많다고 하여 필수의료가 충실히 공급되는 것이 아니며 사립병원에 의존하는 우리나라 의료체계에서는 손쉽게 수익을 올리는 서비스를 제공하는 기관만 많아진다는 데에 문제가 있다.
 

 

셋째, 환경이 건강에 미치는 영향에 관한 분석이 미흡하다. 대기 오염물질 농도, 실내공기 위생, 먹는 물 수질, 녹지 확보 등에 관한 조사 결과를 제시하였으나 간단한 통계를 나열하는 데에 그쳤다. 그러나 최근 노원구에서 검출된 방사능과 관련하여 건강피해를 걱정하는 사람이 많은 데에서 알 수 있듯이, 환경이 건강에 미치는 영향은 지대하다고 할 수 있다. 이를 감안하여 주요 환경 요소별 현황 및 이에 따르는 건강 영향을 조사해야 할 것이다. 환경에서 비롯되는 구(區)별 건강격차도 관심거리로, 구로구와 금천구처럼 공업시설이 집중된 곳에서는 미세먼지 등 오염물질에 관련된 건강문제에 대해 조사가 필요하다.
 

 

넷째, 시민이 지역보건의료계획 수립 과정에 참여할 기회가 극히 부족하다. 시민은 두 가지 설문조사에 참여할 수 있었다. 하나는 서울시민의 지역사회 요구도 조사인데 구(區)마다 시민 30명을 대상으로 하였고 다른 하나는 보건소 만족도․ 이미지 조사로 4250명을 대상으로 하였다. 두 가지를 합쳐도 참여할 수 있는 시민이 겨우 5000명에 불과하며 이조차도 절반을 ‘상반기 중에 보건소를 2회 이상 이용한 시민’에 할애하여 조사 대상의 계층을 제한하였다. 건강이라는 중요한 분야의 계획을 수립할 때에 시민의 의견을 폭넓게 조사하고 적극적으로 반영하려는 노력이 반드시 필요하다. 계획 수립에서 뿐 아니라, 나아가 사업 추진 단계 및 평가에서도 다수의 시민이 참여하여 정책 효과를 높이는 방안을 강구해야 할 것이다.
서울시 의료의 공공성 강화
 

 

시민 건강권 보장의 과제별 정책을 세우고 추진하는 것이 바로 서울시 의료의 공공성을 강화라 할 수 있다. 구체적 방안의 하나로 “생활권별 필수의료 이용 보장”을 제안한다. 내용의 핵심은 서울시 산하 병원 등에 생활권 중심병원의 기능을 부여하고 이 병원을 중심으로 의료의 공공성을 강화하고 건강격차를 해소하는 것이다.

1. 서울시 전체를 생활권 9~10개로 구분한다.

2. 생활권 안에서 이용이 보장되어야 할 필수 의료 범위를 정한다. 응급, 분만과 신생아 관리, 어린이 입원 진료, 감염병 대응, 정신질환 진료, 재활치료, 암검진, 지역복지서비스에 대한 보건의료 협력 등이 될 것이다.

3. 생활권별 중심병원을 선정하여 병원 기능에 더해 해당 생활권 의료에 대한 연구행정 기능을 담당케 한다. 즉, 중심병원은 필수의료를 직접 제공할 뿐 아니라 보건 관련 전문 연구원으로 구성된 연구단(혹은 지원단)을 설치하여 권내 의료지표 모니터링, 권내 의료 인프라 정기 조사, 권내 건강불평등 개선사업 등을 수행한다. 서울시 산하 병원이 생활권별 중심병원 역할을 맡되 중부나 동남부 등 산하 병원이 전혀 없는 곳에서는 다른 국공립병원 혹은 신뢰할 수 있는 사립 의료기관을 선정하여 기능을 부여할 수 있다.

4. 생활권별 의료협력 네트워크를 구성한다. 중심병원이 네트워크의 중심이 되며, 자기 병원이 할 수 없는 서비스, 일정 거리 이상의 지역을 위한 서비스 등을 권내 다른 의료기관이 제공하게끔 선정하고 지원함으로써 의료 협력체계를 갖춘다.

5. 생활권별 의료 시민위원회(가칭)를 구성한다. 중심병원 및 의료협력 네트워크가 생활권 의료의 공공성 강화에 효과적으로 기능하게 하기 위해 시민이 참여하는 기구이다.

6. 서울시가 행정적 재정적 지원을 하여 생활권별 중심병원이 ‘병원 + 연구행정’ 기관으로서 기능할 수 있게 하며 정기적으로 성과를 평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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