질병군 포괄수가제, ‘전면 시행’하지 않는다면 ‘전면 철회’하라

선택 실시로는 의료의 질 개선과 재정 절감을 이룰 수 없다

1. 진료비 지불제도를 개선하기 위한 첫 시도로 추진된 질병군 포괄수가제가 전면 시행을 한달도 채 남겨놓지 않은 시점에서 후퇴할 가능성이 점점 커지고 있다.

우리 시민·보건의료·노동단체들은 이번 질병군 포괄수가제의 후퇴는 과거 두차례 시행을 연기했던 사례와는 근본적인 차이점을 갖고 있다고 인식한다. 과거 연기되었던 사례는 ‘시행 시기’의 차원에서 해석될 수 있었던 반면, 이번의 경우는 ‘모든 의료기관에 적용하는 것’ 자체가 포기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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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지난 8월 정부는 ‘7개 질병군 포괄수가제의 전면 시행’이라는 방침을 세우고 이를 위하여 법령개정안을 내놓았다. 『국민건강보험법시행령개정령(안)』이 그것이다. 이 개정령안의 핵심내용은 질병군 포괄수가제도가 전 요양기관에 당연 적용되므로 선택을 위한 신청절차 등에 대한 단서규정을 삭제(안 제22조제1항)하는데 있었다.

그러나 이와 같은 정부의 안은 8월말부터 의료계의 반발에 부딪히며 조금씩 후퇴하는 모습을 보였다. 지난 8월말 병원협회 대표단을 만난 보건복지부 장관은 7개 질병군 포괄수가제는 11월에 전면 시행하되, 대학병원의 경우 수가가 낮은 문제를 해결한 이후 2004년 6월에 적용하는 것으로 연기하는 것으로 협회의 요구를 수용했다.

이러한 소식은 의사협회의 반발에 도화선을 당긴 셈이 되었다. 의사협회는 보건복지부 장관이 병원협회의 요구를 수용한 것에 크게 반발하며 ‘질병군 포괄수가제 전면 시행 철회’를 주장하고 나섰으며, ‘포괄수가제 설명회’조차 조직적으로 불참하여 정부를 압박한 것이다.

결국 보건복지부 장관은 9월 22일 시작된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국정감사에서 포괄수가제의 전면 시행에 대하여 공식적으로 철회하겠다는 의사를 밝혔다. 요지는 모든 요양기관에 강제 적용되어서는 안되며, 선택적으로 적용하되 포괄수가제의 대상 질병군을 확대하겠다는 것이었다.

이제 ‘7개 질병군 포괄수가제’는 건강보험공단이나 건강보험심사평가원과 같은 보험자 단체를 비롯하여 건강보험정책심의위원회에 가입자 대표로 참석하고 있는 노동단체와 사용자단체는 물론 여러 시민사회단체들이 전면 시행을 촉구하고 있으나, 단지 의료계가 반발한다는 점만이 받아들여져 철회될 운명에 놓인 것이다.

3. 우리 시민·보건의료·노동단체들은 7개 질병군 포괄수가제의 전면 시행을 통하여 우리나라 보건의료의 근본적 문제로 지적되어 온 행위별 수가제를 대체하고 나아가 진료비 지불제도를 개선하는 길을 마련하며, 과잉진료가 억제되고 의료의 질 관리가 확산되고 의료비를 절감할 수 있을 것이라고 기대해왔다. 그런데 만일 질병군 포괄수가제가 모든 의료기관에 적용되지 못하고 선택적으로 적용된다면 이와 같은 우리의 기대는 어느 것 하나 충족시킬 수 있는 것이 없게 될 것이다.

우선 평균 진료비 수준이 질병군 포괄수가보다 높은 병원은 포괄수가제를 선택하지 않고, 평균 진료비 수준이 질병군 포괄수가보다 낮은 병원만 참여하게 되면 의료비는 오히려 지출이 증가하게 될 것이라는 점을 지적하고자 한다. 여기에 장관의 말처럼 포괄수가 대상 질병군을 확대하게 된다면 이와 같은 경향은 더욱 두드러지게 될 것이 분명하다.

반면 행위별 수가 보상수준을 낮추기 위하여 실시 대상으로 참여시켜야 할 의료기관은 오히려 포괄수가제에 참여하지 않음으로써 수익을 확대하려 할 것이기 때문에 의료의 질 관리도 전혀 기대할 수 없게 될 것이다.

결국 포괄수가제의 선택적 적용은 사실상 ‘의료의 질 개선’을 기대하기는커녕 전반적인 보험재정의 낭비 폭을 키우게 되는 부작용만 확대될 뿐이다.

4. 우리 시민·보건의료·노동단체들은 7개 질병군 포괄수가제가 올해 11월 예정대로 모든 의료기관에 전면 적용 실시되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선택적용을 하는 대신 대상 질병군을 확대하겠다는 것은 ‘진료비 지불제도의 개선’이라는 명분을 정부가 스스로 포기하는 결과일 뿐만 아니라 현실상 부작용이 더욱 커질 뿐이라는 점을 인식하지 못한채, 비판을 모면하려는 정치적 수사에 불과한 것이라는 점에서 우리는 반대한다.

만일 그래도 정부가 질병군 포괄수가제를 선택적으로 적용하려 한다면 차라리 ‘전면 철회’하는 것이 더욱 현명한 결정임을 알아야 할 것이다.

2003년 10월 15일

건강세상네트워크,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 참여연대, 건강사회를 위한 약사회, 건강사회를 위한 치과의사회, 노동건강연대, 인도주의실천의사협의회, 참의료실현 청년한의사회, 전국보건의료산업노동조합, 전국사회보험노동조합,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 한국노동조합총연맹

질병군별(DRG) 포괄수가제도란?

‘진단명기준 환자군’이라 번역되는 DRG(Diagnosis Related Group)는 모든 입원환자들을 환자특성 및 진료특성에 의해 임상적인 진료내용과 자원의 소모량이 유사하도록 분류한 질병군으로서 간편하고 가장 널리 사용되는 입원환자의 질병분류체계이다.

‘질병군별 포괄수가제도(DRG 지불제도)’는 한 환자가 병원에 입원해 있는 동안 제공된 의료서비스들을 하나 하나 그 사용량과 가격에 의해 진료비를 계산하여 지급하는 행위별수가제에 반해 환자가 어떤 질병의 진료를 위해 입원했었는가에 따라 ‘DRG’라는 질병군(또는 환자군)별로 미리 책정된 일정액의 진료비를 지급하는 포괄수가제이다.

예를 들어 맹장염수술의 포괄수가가 20만원이라고 가정하면 맹장염수술을 위해 병원에 입원하는 환자는 입원일수, 주사 및 검사의 종류 및 회수에 관계없이 미리 정해진 진료비 20만원만 내면 되는 것이다.

이런 동일 질병군 환자들에 대해서 미리 정해진 일정한 금액을 지불하는 포괄수가제에서는 의료기관의 의료서비스 제공에 대해 행위별수가제와는 정반대의 구조를 가지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질병군별 포괄수가제’와 ‘행위별 포괄수가제의 차이

‘행위별수가제'(진료, 투약, 주사, 수술 각각) 하에서는 의료기관이 서비스 제공량을 늘리면 늘릴수록 이익이 되기 때문에 과잉진료의 원인을 제공하지만, ‘질병군별 포괄수가제’하에서는 서비스 제공량을 늘리면 늘릴수록 의료기관이 오히려 손해를 보기 때문에 의료의 질을 보장하고 의료서비스 제공을 적정한 수준에서 최소화해야 하도록 만들기 때문이다.

한편, 좋지 않은 질의 의료서비스 제공은 재원기간을 증가시키는 등 진료비 증가의 원인이 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저질의 의료서비스를 제공한 의료기관은 중·장기적으로 환자들로부터 외면 당하는 결과를 초래해 의료기관들이 의료서비스의 질을 적정 수준에서 유지해야 하는 유인도 존재하게 되며, 이러한 구조 변경은 불필요한 의료서비스 제공을 근본적으로 막고 적정 진료를 유도할 수 있기 때문에 많은 국가에서 합리적인 의료비 증가의 억제 수단으로 이 제도를 활용하고 있다.

따라서 정부의 말대로 선택적 실시(평균 진료비 수준이 질병군 포괄수가보다 높은 병원은 포괄수가제를 선택하지 않고, 평균 진료비 수준이 질병군 포괄수가보다 낮은 병원만 참여)를 하게 되면 의료비 지출은 오히려 증가할 것이고, 이 제도 자체가 무의미해 질 것이다.

– 국민건강보험공단 홈페이지 “민원업무안내 > 보험급여 > 포괄수가제”에서 발췌.

질병군별(DRG) 포괄수가제도 상세 설명자료 다운로드 (국민건강보험공단 홈페이지)

사회복지위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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