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복지위원회 칼럼(sw) 2003-10-08   993

<김창엽의 건강세상만들기> 전쟁의 건강학

그나마 이라크전쟁이 끝난 것을 위안으로 삼아야 할까. 그러나 파병논의에서 보듯 전쟁은 현재진행형이다. 소리 높여 우리의 젊은이를 파병하라는 사람들에게는 어떨지 모르나 전쟁은 언제나 참담하고 슬프다. 작년 여름 잠깐가본 베트남에서 만난 고엽제 피해 어린이, 팔이 없고 다리가 성치 않은 그들의 장애는 전쟁의 직접적인 피해이다. 이라크전쟁 당시 잠깐의 뉴스 화면에도 울컥 눈시울을 적시는 사람이 어찌 나 뿐이랴. 자식을 잃고 울부짖는 부모의 모습에서 50년 전 이 땅이 되살아난다.

어떤 명분이든 전쟁은 반생명적이다. 이번 이라크전쟁에서 민간인이 1200명 이상 죽었고 5000명이 넘게 다쳤다. 어디 그뿐인가. 유엔 인구기금은 하루 2000명이 넘는 산모들이 원시적인 상태로 방치되었다고 했다.

두 번의 전쟁으로 무너진 보건의료체계

이라크는 우리의 상식과 달리 전쟁만 아니라면 비교적 괜찮은 보건의료체계를 가지고 있었다. 잘 훈련된 의료인력들이 그들을 도우러 간 한국의료진들을 얕보았다는 이야기도 들릴 정도이다. 그러나 이제 두 번의 전쟁 때문에 그들의 건강은 최빈국과 다를 바 없다. 지난번 이라크전만 하더라도 미국은 대량살상무기를 갖고 있다는 이유로 이라크를 공격했지만, 막상 이라크 국민이 대량살상을 당한 것이다.

전쟁은 군인이 한다는 말을 믿지 말라. 전쟁은 군인의 몫일지언정 그 피해는 군인의 것이 아니다. 과거에 비하면 현대에서 민간인의 전쟁피해가 더 심하다. 유니세프의 말을 빌리자면 한국전쟁 때는 전체 사망자의 34%가 민간인이었지만 1990년대 이후는 90% 이상이 민간인이다. 이제 전쟁은 사실상 민간인을 대상으로 벌어진다. 기억하기에도 끔찍한 대인지뢰, 민간인에 대한 폭격, 이들 모두가 민간에게 가해지는 전쟁의 직접적인 위협이다.

전쟁이 끝나도 전쟁피해는 계속된다. 아니 오히려 전쟁 이후가 더 문제다. 경제의 피폐, 사회기반시설의 붕괴, 영양결핍, 의료자원 부족 등 평범한 시민의 생명을 위협하는 악조건은 수십년간 지속된다. 멀리 갈 것도 없다. 한국전쟁 이후 한 세대도 넘게 우리 사회가 겪은 고단한 현실을 되돌아보는 것으로 충분히 그 고통을 짐작하리라. 이라크에서도 1990년 걸프전 이후에 다섯 살이 채 못된 애들의 사망률이 전쟁 전에 비하여 3배나 늘었다던가.

건강에 대한 어떤 희망도 전쟁 앞에서는 무력

심지어 전쟁 승리자조차 고통을 피할 수 없다. 2차 대전에 참전했던 미국 군인의 상당수가 50년이 지난 지금도 외상후 스트레스 증후군을 앓고 있다. 베트남 전에 참여했던 미국 군인도 여전히 그리고 충분히 고통스럽다. 미국 질병통제국의 장기간에 걸친 조사 결과 베트남 참전 미군은 다른 군인보다 사망률이 17%나 더 높았다고 한다. 베트남 전에 참전했던 한국군이 아직도 고엽제의 후유증에 시달리는 것도 다를 바 없다.

결국 전쟁의 고통은 군인도 민간인도, 그리고 승자와 패자도 가리지 않는다. 수많은 사람의 목숨을 한 순간에 그리고 또 수십년 동안 계속해서 앗아간다. 건강하게 오래 살고자 하는 어떤 소박한 희망도 전쟁 앞에서는 무력하다. 그래서 어떤 경우라도 전쟁은 막아야 한다. 아무리 그럴싸한 명분도 생명의 고귀함을 앞설 수는 없다. 국제정치와 국가이익의 냉혹함도 핑계에 지나지 않는다.

우리 사회는 벌써 전쟁의 참혹함을 잊었는가. 꼭 이라크 파병 문제가 아니더라도, 국익 혹은 대외관계의 명분으로 전쟁을 은연중 ‘고무찬양’하는 목소리가 결코 작지 않다. 역사의 기억을 시험하는 불온한 시도가 아닐 수 없다. 실은 조금 잠잠해졌다 하지만 전쟁은 바로 우리 옆에 있다. 모두가 알 듯이 북한 핵문제는 전혀 해결되지 않았고 미국은 여전히 강경하다. 말하자면 국민의 건강과 생명을 위협하는 조건은 전혀 나아지고 있지 않은 것이다.

그래서 이제야말로 우리의 생명을 위해서, 전쟁을 부추기는 반생명의 축을 무너뜨려야 한다. 그리하여 평화의 힘으로 생명의 축을 회복하자.

김창엽 (서울대학교 보건대학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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