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복지위원회 빈곤정책 2007-08-19   755

‘휴대폰은 생필품이 아니다’ 라는 국민정서?

[‘최저생계비 바꾸기’ 릴레이 편지①] 양극화 시대의 마지막 안전망, 최저생계비의 상대적 수준 하락을 막아야 합니다

“아끼고 아껴서 한 달 생활하는데, 돈이 얼마나 필요합니까?”

‘국민이 건강하고 문화적인 생활을 유지하기 위한 최소한의 비용’인 최저생계비에 대한 결정이 오는 22일께 결정될 예정이다. 최저생계비는 국민기초생활보상제도의 대상자 선정과 급여수준의 기준이 되며 각종 사회복지 서비스 수급권의 기준으로 활용되기 때문에 사회복지의 규모와 범위를 결정 짓는 매우 중요한 자료가 된다. 그동안 한국은 최저생계비가 너무 낮게 책정돼 최저생계비보다 약간 더 버는 ‘차상위 계층’이 사회복지의 사각지대에 머물러 있다는 비판이 종종 제기돼 왔다. 이에 최저생계비 결정을 앞두고 참여연대 사회복지위원회 위원과 학생들이 5회에 걸쳐 중앙생활보장위원회 위원들에게 긴급 릴레이 편지를 보내기로 했다. 중앙생활보장위원회는 20일 소위원회를 열고, 주중 최저생계비를 결정해 발표할 예정이다. 동덕여대 남기철 교수가 변재진 보건복지부 장관에게 첫 번째 편지를 보냈다. <편집자>

중앙생활보장위원회 위원장 변재진 보건복지부 장관님께

안녕하십니까. 변재진 보건복지부 장관님.

우리사회 양극화가 심해지고 있고 저출산·고령화의 흐름 속에서 복지의 역할이 점점 막중해지고 있습니다. 이 시기에 어려운 직책을 수행하시느라 어려움이 많으실 것으로 생각됩니다. 특히 며칠 후인 9월 1일은 최저생계비가 공표되는 날입니다. 아시다시피 우리나라의 사회보장제도는 아직도 그 보장수준이 미비한 상황이라 공공부조제도인 국민기초생활보장제도가 매우 중요합니다. 다른 나라의 공공부조와는 비교할 수 없는 상황입니다.

그리고 국민기초생활보장제도에서는 최저생계비가 수급자를 판정하는 주요한 기준이 되며 동시에 급여수준의 기준으로 적용되고 있어 그 수준의 결정에 많은 관심이 모아집니다. 그런데 지금까지 최저생계비의 수준이나 그 계측방법이 부적절하여 국민기초생활보장제도의 취지를 무색케 할 것이라는 우려에서 몇 가지 말씀을 드리고자 합니다.

상대적 수준 하락으로 생활수준 반영하지 못하는 최저생계비

국민기초생활보장제도가 처음 시행되던 시기에 최저생계비가 계측되어 발표되었고, 5년 후인 2004년, 그리고 법 개정으로 다시 3년 후인 올해 최저생계비가 계측되었습니다. 그런데 이 기간 동안 최저생계비가 우리 국민들의 평균적인 생활수준에서 차지하는 위치는 급격히 떨어지고 있습니다.

채 10년이 되지 않는 짧은 시간 동안에 우리사회 중위소득이나 평균소득(혹은 중위지출이나 평균지출)에 비교할 때, 최저생계비의 상대적 수준은 10% 가량 떨어지고 있습니다.따라서 국민기초생활보장제도에서 보장해 주는 수급의 정도도 마찬가지로 수준이 계속 낮아지고 있습니다.

그 이유는 간단합니다. 3년에 한 번씩인 계측년도에 절대적 빈곤선의 전물량방식(생활에 필요한 모든 필수 품목의 가격을 합산하는 방식)을 토대로 최저생계비 수준을 결정하는 계측방법을 사용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게다가 비계측년도에는 물가상승률 이상의 상승은 이루어지지 않고 있습니다. 법에는 분명히 ‘건강하고 문화적인 생활’이라고 명시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물가와 아울러 국민의 생활수준의 변화를 감안하도록 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현재의 최저생계비 수준은 국민의 생활수준 변화를 전혀 고려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생필품의 경계, 어디까지인가”

전물량방식은 생활에 필요한 모든 필수 품목의 가격을 합산하는 방식을 근간으로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 필수품목의 결정이 매우 자의적입니다.

특히 최저생계비 산정을 위한 논의과정에서는 연구진이 조사결과로 명시한 필수품목의 내용마저도 임의적으로 삭제되기 일쑤입니다. 지난 2004년의 최저생계비 결정과정에서 빈곤층을 포함하여 대다수의 국민이 가지고 있고 통상 필수품으로 판단할 수 있는 기준을 충분히 충족하고 있는 휴대전화를 ‘국민정서’라는 모호한 기준으로 품목에서 제외한 것이 대표적인 사례라고 생각됩니다.

그렇다고 해서 그 대체재가 충분한 수량을 동반하여 비용이 대신 인정되지도 않았습니다. 필수품의 항목을 더한다는 전물량방식이야말로 실상은 ‘필수품’의 모호함 때문에 가장 주관성과 자의성이 많이 개입되는 생계비 계측방법입니다. 또한 필수품의 선정과 가격합산 방식은 우리나라 국민들의 생활수준의 변화를 반영하기 어렵습니다.

이런 이유 때문에 지난 2004년 중앙생활보장위원회에서는 다양한 최저생계비 계측방법을 모색해 보아야 한다는 의견이 제시된 바 있었습니다. 또 같은 해 최저생계비 관련 시민단체의 행사에서 유시민 전 보건복지부 장관을 비롯한 많은 인사들이 상대적 빈곤선의 필요성을 역설하기도 하였습니다.

상대적 방법은 중위소득이나 평균소득 대비 일정한 수준을 최저생계비로 정하여 국민의 평균적인 삶의 질이 상승 또는 하락하는 정도를 반영하는 것을 요체로 합니다. 물론 그 수준이 높다면 좋겠지만 재정적 여력이나 다른 보건복지 프로그램과의 관계성을 감안할 때 현실적 한계가 있을 수 있습니다. OECD를 포함하여 많은 서구의 연구자나 공식적 통계치가 국제비교 등을 위해 사용하고 있는 중위소득의 40%, 50%, 혹은 60%라는 기준은 사용하기 어려울 수도 있습니다.

그렇다면 가장 최근의 최저생계비 실계측이 이루어졌던 2004년의 최저생계비가 당해년도의 중위소득이나 평균소득에서 차지하고 있는 비율을 최저생계비의 근거로 사용할 수 있습니다. 이는 이미 우리사회가 공식적으로 발표했던 최저생계비이므로 그 수준을 유지하자는 것입니다.

양극화 심화되었어도 국민기초생활보장제도 수급자수는 그대로

국민기초생활보장제도는 우리사회 저소득층에게 사실상 유일한 안전망이고 소득보장 기제로 작용하고 있는 공공복지 프로그램입니다. 제도 출범 이후 약 150만 명을 수급대상으로 하고 있습니다. 공공부조의 대상자는 빈곤문제의 정도나 특히 양극화의 정도에 따라 그 수가 변화하기 마련입니다.

최근 수 년 간 우리사회의 빈곤문제, 양극화 심화 등은 자주 언급되어 온 것이고 많은 연구자와 특히 정부에서도 그 심각성을 분명히 인정하는 것입니다. 수없이 많은 정부의 문건과 로드맵에서 양극화 심화를 인정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공공부조 대상자가 전혀 늘지 않고 있다는 것이 무엇을 의미합니까? 간단합니다. 국민기초생활보장제도가 너무 협소한 수급대상범위를 가지고 있다는 것입니다. 바꿔 말한다면 최저생계비의 수준을 실질적으로 계속 떨어뜨려 수급대상자의 수를 억제해 왔다는 것이 문제의 본질입니다.

국민기초생활보장제도는 그 시행이 이미 7~8년이 지난 2007년에도 사실상 지난 20세기 말의 최저생계비 수준을 사용하고 있는 것입니다. 현재의 최저생계비 계측과정이 지속되는 한 우리사회는 계속 20세기 말의 보호수준에 머물러 공공부조는 점점 취약한 프로그램이 되고 말 것입니다. 양극화가 무엇입니까?

본질적으로 ‘상대빈곤’과 관련됩니다. 국민의 ‘상대적 박탈감’과 관련됩니다. 세대간으로 악순환 되는 빈곤의 절망 속에서 사회적 통합성이 붕괴되는 것입니다. 양극화의 심각성을 인정한다면 그에 대응하는 프로그램도 그에 어울리는 상대적 성격을 견지하는 것이어야 합니다.

단지 ‘죽지 않을 정도의 생존유지 기준인 구휼선’이어서는 아무런 희망이 없습니다. 그렇다면 국민기초생활보장제도에서 기준선으로 사용하고 있는 최저생계비가 ‘상대적인 수준’을 유지하여 더 이상의 양극화와 사회적 배제를 용인할 수 없다는 의지를 보여주어야 당연한 것입니다. 다른 소득보장 프로그램이 취약한 현실이기에 그 의미는 더욱 중요합니다.

최저생계비, 상대적 수준 떨어지지 않도록 결정해야

지금은 정부 특히 보건복지부의 양극화 대처 의지가 정말 중요한 때입니다. 그리고 최저생계비의 수준과 계측방법의 결정은 그 의지를 구체적으로 보여주는 지표라고 생각됩니다.

며칠 후에 있을 2008년도 최저생계비 발표에서 우리 정부가 양극화와 빈곤문제 해결의 의지를 가지고 있음을 확인하게 되기를 바랍니다.

2007년 8월 19일

참여연대 사회복지위원회 남 기 철

* 이 편지는 프레시안(www.pressian.com)을 통해 동시에 공개됩니다.

남기철 (동덕여대 교수, 참여연대 사회복지위원회 위원)
첨부파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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