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복지위원회 칼럼(sw) 2003-10-08   1217

<안국동 窓> 청송감호소 유감

‘청송(靑松)’ 그 이름만큼이나 푸르른 소나무숲이 아름다운 고장이다. 그런데 어느때부터인가 그 이름 뒤에는 ‘감호소’라는 어두운 말꼬리가 붙어다닌다. 그것은 23년전 신군부 등장과 때를 같이 한다.

경북 청송군 진보면에 위치한 ‘청송 제1, 제2 감호소’에서는 지금 800여명이 열흘째 단식농성을 전개하고 있다. 작년 이래 벌써 5번째다. 그들은 ‘보호감호제 폐지와 사회보호법 폐지’를 주장하고 있다. 목숨을 건 단식 6일째인 지난 4일에는 급기야 수용자 1명이 사망했다. 10월 6일 사망원인을 밝히는 부검이 경북대 법의학교실에서 실시되었다. 필자는 변호인 자격으로 그곳에 입회했다.

강모씨, 37세라고 한다. 싸늘한 시신이 된 그를 본 순간 ‘참 모진 인생이구나’ 하는 생각이 스쳐갔다. 그는 소매치기였다고 한다. 간단치 않은 삶의 굴곡이 있었을 터이다. 아직 미혼이고, 한달에 3-4번씩 꼬박꼬박 부모들에게 전화연락을 했다고 한다. 부검 현장에는 부모들과 백부, 누나와 매부, 여동생, 회사동료들까지 10여명의 친지들이 도착해 있었다. 사망원인은 급성맹장염에 의한 복막염 등 언뜻 이해하기 어려운 사인이다. 감호소의 의료시설이 얼마나 열악하기에 그는 고통을 제대로 호소해보지도 못하고 죽음에 이르렀을까.

지금 청송에는 강씨와 같은 피감호자 1600여 명이 높은 담장 안에, 아니 사회적 냉대와 멸시 그리고 무관심이라는 더 높은 벽안에 갇혀 있다. 그들은 우리에게 어떤 존재일까. “언감생심….감호자 주제에 왠 단식이야?” 정도가 보통 우리들의 반응일 것이다. 범죄란 누군가의 재산과 신체, 생명에 위해를 가한 것이라는 점에서 변명의 여지가 없다. 응분의 처벌을 받아야 하는 것은 당연하다. 그러나 무조건 격리하고 회피하는 것이 능사가 아니다. 사회의 책임이 없지 않기 때문이다.

보호감호제와 관련해서, ‘이중처벌이다, 아니다’ 논란이 있지만, 이런 점들은 분명하다. 즉, 사회적 논란과 무관하게 실제 피감호자들은 100% 이중처벌로 느끼고 있다는 점, 작업보상금을 5-6년 모아봤자 손에 쥐고 나올 수 있는 돈은 100만 원이 채 안된다는 점, 재사회화를 추구한다는 감호소가 시설과 처우에서 교도소와 전혀 다르지 않다는 점, 건강보험 적용도 없고 국가에 의한 의료제공도 열악하기 짝이 없으며, 가출소 대상이 된다 하여 취득한 자격증도 사회에서는 아무런 쓸모가 없다는 점, 그래서 결국은 더욱더 심각한 사회부적응자가 되고 만다는 것이 엄연한 현실이다.

더욱 심각한 것은 ‘보호’받고 있는 우리들의 인식이다. ‘격리를 통해 치안유지가 가능하다’는 검증되지 않은 기대를 핑계삼아 인간에 대한 차별을 자연스럽게 몸에 익혀가고 있지 않은가. 인권감수성은 무디어져 가고, 사회적 빈곤을 비롯한 범죄재생산구조에 대해 애써 무관심한 태도를 유지함으로써 공동체의 가치는 냉소와 함께 유린당하고 만다.

사회적으로 복잡하고 시급한 현안들이 많이 있다. 하지만 23년동안 뒷전으로 밀려나 있었던 인권유린의 현실을 더 이상 방치할 수는 없는 일이다. 현재 국회 다수당이 당론으로 사회보호법 폐지를 추진할 전망이다. 그밖에도 폐지에 동의하는 많은 의원들이 있다. 대한변협, 민변 등 법률가단체, 인권단체를 중심으로 한 사회보호법폐지공대위까지 만들어져 본격적으로 활동하고 있다. 오로지 주무부서인 법무부만이 여론의 공세를 ‘개선안’이라는 방패로 막아내고 있는 형국이다.

“저희들의 과거가 지탄받아 마땅하다고 하여 어찌 저희들의 미래까지도 강제로 구금을 당해야 한단 말입니까?” 그들의 절규가 가슴 속을 파고든다. 2003년 가을, 이들의 절규에 이제 우리가 응답해야할 때다.

장유식 (변호사, 협동사무처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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