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복지동향 2005 2005-06-10   602

5월은 잔인한 달?

어떤 시인은 4월을 잔인한 달이라고 노래했지만 현 상황에서 우리에게는 5월이 잔인한 달인 것 같다. 계절의 여왕이라는 5월답게 어린이 날, 어버이 날, 스승의 날, 성년의 날, 5월의 신부 등등 5월에는 좋은 날이 많이 들어 있고, 그래서 청소년의 달이면서 또 가정의 달이라는 5월이 어쩌다 잔인한 달이 되었을까?

중간고사동안이나 중간고사 성적 때문에 죽음을 선택한 중고등학생들.

가정폭력을 휘두른 아버지를 죽인 여중생.

광화문으로 촛불을 들고 나온 고등학교 1학년들.

어린이 날이 서글픈 어린이와 어버이 날이 서글픈 어르신들.

아이를 키울 자신이 없어 출산계획을 세우지 못하는 부부.

이 모든 것들이 5월을 잔인한 달로 만들고 있다. 어린이 날을 앞두고 열렸던 보육관련 토론회에서 한 참석자가 이런 말을 했다. “30대 주부인데 남편이 반대해서 아직 출산 계획을 세우지 못했다. 이유는 두가지인데 첫째는 비용의 문제이고 둘째는 신뢰할 데가 없다는 것이다. 아이를 키우고 어린이 집을 이용하는데 드는 돈을 벌 자신이 없고, 설령 돈이 있다하더라도 믿고 보낼만한 곳이 없어서 남편이 아이를 낳는 것을 반대하고 있다.” 순간 토론회에 있던 모든 사람들이 숙연해졌다. 어느 국회의원은 아이를 가지자고 했더니 부인이 1억원짜리 통장을 만들어오라 했다고 실소한다.

그 다음다음날 또 다른 보육관련 토론회에 참석했다. 주최했던 모 국회의원이나 발제자 모두 보육서비스는 사유재라고 주장한다. 다시 말해 기본적으로 개별 가정의 문제이고 정부는 단지 능력이 없는 계층에 대해서만 책임을 지는 것이 적절하다는 것이다.

우리는 가족이 매우 중요하다고 한다. 그래서 급기야는 건강가족을 지원하는 법까지 만들었다. 그러나 가족이 중요하다고는 하면서도 가족이 누구인지, 어떻게 생활하고 있으며 무슨 문제를 가지고 있고 어떤 도움이 필요한지에 대해서는 별로 관심이나 대안을 가지고 있는 것 같지는 않다. 출산과 육아의 문제도 마찬가지이다. 저출산이 어떻고 하면서도 어떻게 하면 아이를 잘 키울 수 있도록 지원하는가에 대한 고민은 약한 것 같다. 결국 아동이 되었건 또는 장애인이나 노인이 되었건 문제가 발생했을 경우 해결의 책임은 온전히 가족에게로 전가된다. 그리고 해결 능력을 가지지 못한 가족은 문제를 회피하거나 아니면 문제에 짓눌린 채로 다른 가족들의 희생위에 겨우 유지하고 있을 뿐이다.

대학교 다닐 때 당시 사회복지사로 근무하던 선배로부터 들은 이야기중의 하나이다. 도와주고 싶은 클라이언트가 있는데 법적으로 도와줄 수 있는 방법이 없었다고 한다. 부양의무를 가진 보호자가 있어서. 그래서 상담을 종결하면서 마지막으로 해준 말이 “그렇다고 사회복지사(당시는 사회사업가라고 했겠죠)인 내가 당신에게 아이를 버리라고 할 수는 없지 않습니까?”였단다.

우리는 부모가 자녀를, 자식이 노부모를 방임하거나 학대하면 당사자들의 도덕성을 비난한다. 대표적인 예중의 하나가 IMF 이후 아들의 손가락을 자른 아버지가 있었고, 그만큼 사회적 관심을 끌지는 못했지만 그 얼마 뒤 치매기가 있는 노모를 노인요양시설 앞에 버렸다가 동사하게 만든 아들도 있었다. 이런 사건이 발생하면 전 사회가 인륜이 어쩌고저쩌고 하면서 이들의 도덕성을 비난한다. 물론 어떠한 경우에도 이들의 행동이 정당화될 수는 없다. 그러나 과연 이들이 자녀를, 노모를 버린 것일까? 만약에 이 사회가 또는 그 이웃들이 이들에 대해 조금이라도 관심을 가지고 자식과 노모를 돌보는데 필요한 도움을 조금이라도 주었다면 그래도 이들이 자식과 노모를 버렸을까?

지금의 가족은 과거의 가족에 비교하면 형태도 그렇고 기능도 그렇고 과거의 가족과는 많이 달라졌고 또 약해졌다. 그러나 이러한 변화나 약화는 개인의 선택에 의해서 이루어진 것이 아니라 사회의 변화에 의해 강요된 경향이 강하다. 그렇기 때문에 가족안에 문제가 생기게 되면 주위(사회)의 도움을 받지 않으면 해결할 수 없게 된 것이다. 해결할 능력이 부족한 가족의 책임을 강조하는 것은 결국은 가족들에게 다른 가족을 버리도록 강요하는 것과 마찬가지인 것이다. 다시 말해 가족이 자녀나 노부모를 버린 것이 아니라 우리 사회가 그 가족을 버린 것이다.

우리가 가족-형태나 구성이 어떠하든지 간에-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면 그에 걸맞게 중요한 가족이 잘 기능하고 유지할 수 있도록 지지해주어야 한다. 그래야만 5월이 불행한 달이 되지 않을 것이다.

김종해(가톨릭대 사회복지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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