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복지동향 2007 2007-05-01   577

FTA 협상에 따른 노동구조의 변화

FTA 협상에 따른 노동구조의 변화

하 종 강 / 한울노동문제연구소장

미래 예측의 어려움

한미자유무역협정(FTA)이 우리나라에 미칠 영향을 미리 세밀하게 분석한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수많은 정책 관료와 경제학자들이 지난 97년에 겪었던 외환위기가 코앞에 닥칠 때까지 전혀 짐작하지 못했다. 최소한 거시경제 측면에서는 일관된 분석이 가능할 것 같지만 결코 그렇지 않다. 노동자의 일자리에 미칠 영향에 대한 분석도 그 통계가 여러 가지다.

“한미FTA로 11만5천510명의 일자리 창출효과가 있다”(2004년 12월 정부 제3차 대외경제위원회),

“한미FTA로 인해 많게는 6만7천806개에서 적게는 7천793개의 일자리가 줄어들 것이다”(2005년 11월 산자부 최종보고서, 정인교 인하대 교수),

“한미FTA의 영향으로 일자리가 13만5천개나 늘어날 것”(2006년 3월 대외경제정책연구원-KIEP 보고서).

유일하게 업종별 실직자수와 구조조정 예상 기업의 규모를 분석한 정인교 교수의 보고서가 그나마 신뢰할 만하다는 것이 주변 전문가들의 의견이다. 한미FTA가 노동자들에게 미치는 영향을 설명하기에 앞서, 한미FTA로 인한 장밋빛 미래를 설명하는 정부의 주장이나 통계들을 섣부르게 믿기 어렵다는 것을 먼저 지적한다.

“농업이나 서비스업이 일시적으로 타격을 입겠지만 제조업의 경쟁력은 강화될 것”이라는 정부의 일관된 선전보다 “국내 금속산업이 뿌리째 흔들릴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거나 “한국 자동차 부품시장의 붕괴가 우려된다”는 전문가들의 주장이 훨씬 더 합리적일 수 있다는 뜻이다.

‘경쟁’과 ‘개방’의 의미

정부가 추진하는 한미FTA의 화두가 ‘경쟁’과 ‘개방’이라는 것에 대해서는 한미FTA에 찬성하는 쪽이나 반대하는 쪽이나 모두 이의가 없다. 한덕수 총리가 ‘한미FTA체결지원위원장’의 자격으로 대학생들과 토론하는 자리에서 “과거처럼 정부가 어느 분야를 막아주면서 규제하고 보조금을 주는 시대는 지나갔으며 이제는 자유경쟁을 통해서만 발전할 수 있다.”, “경쟁을 싫어하는 사람들이 FTA를 반대한다.”고 말한 것이나 노무현 대통령이 한미FTA에 대한 대국민 담화를 발표하면서 “법률, 회계, 교육, 의료시장 부문에서는 좀 더 개방을 했어야 하는데 아쉽다”고 한 것은 모두 한미FTA의 가장 중요한 화두가 ‘경쟁’과 ‘개방’이라는 것을 보여준다.

기업 경쟁력과 노동력 품질을 향상시키는 방법으로 인류 사회가 아직까지 ‘경쟁’보다 더 좋은 방법을 발견하지 못했다는 것이 신자유주의자들의 신념이다. ‘개방’이 그러한 지고지선의 ‘경쟁’을 가능하게 만들어 우리 사회를 더욱 수준 높은 선진국으로 발전시킬 수 있다는 것이 한미FTA에 찬성하는 사람들의 기본적인 생각이다.

전혀 일리가 없지 않다. 그러나 소수의 엘리트 지배 집단이 정책 결정권을 독점함으로써 자신들의 사익을 위해 국가 전체 이익에 반하는 결정을 내리는 것이 얼마든지 가능한 비정상적 체제 아래에서는 시장경제체제에서 가능한 그런 긍정적인 효과들을 기대할 수 없다는 것이 문제다.

대체로 우리 사회의 지배 계급은 한미FTA를 적극적으로 찬성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그들의 영향력으로 사회 전체의 분위기를 좌우하고 있다. 대기업이 환영하면 그에 종속된 직장인들과 중소기업도 환영하고, 그 중소기업에 고용된 직장인들도 환영하는 순환 고리에 얽혀 보수 지배 엘리트의 결정이 사회 전체를 관철한다.

소수의 부유층과 다수의 빈곤층 또는 준빈곤층이 사회를 구성하는 미국식 사회 모델이 한국 사회에 상륙한다는데 그것에 대해 빈곤층과 준빈곤층까지 나서서 환영하는 이상한 현상이 발생하는 이유는 그 때문이다. 교육 분야를 예로 들자면, 학교도 이제 부유층 자녀들이 다니는 소수의 명문 학교와 빈곤층 또는 준빈곤층 자녀들이 다니는 다수의 보통 학교로 양분될 가능성이 높다. 부유층은 그것을 “교육 선택의 다양성이 존중돼야 한다”는 말로 합리화하고 있는데, 자녀들을 명문학교에 입학시키고 싶어 하는 교육열 높은 학부형들 다수는 그렇게 될 수 없을 것이 명백한데도 환영하는 상황이다.

‘경쟁’과 ‘개방’이 노동시장에 미치는 영향

갈수록 짧아지는 산업주기에 기업이 기민하게 대응해야 하고 변화에 제대로 대처하지 못하는 기업은 경쟁에서 낙오될 수밖에 없는 것은 사실이다. 그리고 그 기업에 소속된 노동자 역시 경쟁을 통해 노동력 품질을 향상시켜야 한다는 말도 전혀 틀린 주장은 아니다.

신자유주의는 혹독한 경쟁에서 살아남을 수 있는 기업 경쟁력을 그 사회가 추구하는 최우선의 목표로 설정한다. 그 대표적 예가 영국의 ‘대처리즘’과 미국의 ‘레이거노믹스’다. 사회복지 지출을 대폭 축소하고, 공기업을 민영화하고, 기업에 대한 규제는 완화하는 한편 노동운동을 공격적으로 파괴한 영국의 ‘대처리즘’과 미국의 ‘레이거노믹스’가 그 나라의 경제를 장기 불황에서 탈출시켰다는 것이 우파 시장경제주의자 곧 신자유주의자들의 주장이다. 노동자들에게 있어 한미FTA란 국제적인 ‘개방’을 통해 그 치열한 ‘경쟁’ 시장에 내 몰리게 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관세 인하로 값 싼 수입품이 들어오게 되면 특히 경쟁력이 약한 중소기업들이 어려움을 겪을 것은 불가피하다. 미국 기업과 경쟁을 통해 생산성을 높인다든가 미국 기업이 국내에 진출함으로써 신규 고용이 증가하리라는 긍정적 효과는 노동비용을 절약하는 방식으로 경쟁력을 유지해 온 대다수 국내 중소기업들과 별로 관계가 없다. 중소기업은 물론이고 대기업들도 노동유연성에 대한 압력이 높아져 비정규직 수요가 증가할 것이고 기업 구조조정, 업종 변경 등을 겪을 수밖에 없고 실업과 비정규직 상태를 오가는 노동자들이 많아질 수밖에 없으리라는 것을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노동유연화의 긍정적 효과와 가능성

외부 환경 변화에 신속하게 대응하면서 기업 경쟁력을 높이기 위해서는 노동시장의 고용 계약 형태가 다양해져야 한다는 것, 곧 ‘노동 유연성’을 높여야 한다는 주장이 자연스럽게 그 뒤를 이을 수밖에 없다. 기업이 인적 자원을 신속하고 효율적으로 배분할 수 있어야 그 혹독한 경쟁에서 살아남을 수 있다는 것이다.

업무에 적합한 지식이나 기능을 가진 사람을 쉽게 구할 수 있어야 하고(기능 유연성), 인원을 필요한 만큼만 적당하게 투입할 수 있어야 하고(수량 유연성), 다양한 임금체계에 맞춰 사람을 차등적으로 고용할 수 있어야 한다(임금 유연성)는 것이다.

그러한 논리가 극단에 이르면 “비정규직을 정규직화 할 것이 아니라 현재의 정규직들을 모두 비정규직으로 바꿔야 한다.”, “노동자들도 치열한 경쟁을 통해 노동력 품질을 높이기 위해서는 모든 직장인을 연봉계약직으로 고용해야 한다.”, “기업이 노동자를 법률적 규제 없이 자유롭게 해고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는 주장에까지 이르게 된다.

“시장경제는 매일매일 돈으로 투표하는 자율적이면서도 ‘실질적인’ 민주주의 체제”라는 주장이나, 한걸음 더 나아가 “원하건 원하지 않건 무능하고 비효율적인 부분들에게 걸맞은 대우가 주어지는 사회로 인류는 계속해서 전진할 것”이라는 주장도 같은 맥락이다. 이렇게 노동자들 사이의 경쟁을 강조하는 시장경제 신봉자들의 주장을 초등학생도 이해할 수 있도록 쉽게 풀어 쓰면 다음과 같이 설명할 수 있다.

“성실하게 일하지 않는 사람에게는 불이익한 대우를 해서 고통을 겪게 하고, 열심히 일하는 사람에게는 좋은 대우를 해서 행복하게 살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시장경제다. 어차피 인류 역사는 일하지 않고 파업이나 하는 불성실한 노동자들에게는 그에 걸 맞는 고통을 안겨주고, 성실하게 묵묵히 일하는 노동자들에게 복된 삶을 약속하는 사회로 계속 발전할 수밖에 없다.”

그러한 주장에 일리가 있을 수 있다. 그러나 가장 큰 문제는 우리 사회의 각종 시스템이 그러한 긍정적인 효과들을 무위로 돌릴 수 있을 만큼 비정상적이라는 데 있다. 예를 들어, 노동유연성을 높여 해고를 용이하게 하면 현재 우리 사회 기업의 풍토에서는 유능하고 성실한 노동자를 선별하는 긍정적 측면보다 무능하고 아첨하는 노동자를 우대하고 양심적인 노동조합 활동가들을 퇴출시키는 부정적 측면이 훨씬 더 커질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식민지, 분단, 친일독재, 군사독재라는 비정상적 근대화 과정 속에서 형성된 그 기형적 시스템의 공고함은 다른 나라에서 일찍이 그 예를 찾아볼 수가 없을 정도로 심각하다.

유능하고 성실한 노동자를 우대하고 무능하고 게으른 노동자에게 불이익을 줌으로써 기업 경쟁력을 높이는 것이 가능해지려면, 같은 원리로, 부패한 재벌 설립자나 무능한 2세들을 경영진에서 퇴출시키는 것이 먼저 가능해져야 한다. 그것이 영미식 시장경제주의를 가능하게 하는 최소한의 조건이다. 전근대적 족벌 경영 체제를 유지하기 위해서 각종 불법과 탈세를 마다하지 않는 한국 경영자들이 최소한 유한킴벌리 문국현 사장 정도의 ‘합리적 자본가’들로 변하지 않고는 시장경제체제의 장점들이 우리 사회에서는 기업경쟁력을 약화시키는 ‘독약’이 될 수도 있다.

정상적 시장경제 시스템을 갖추지 못한 채 선진국의 노동 유연화 정책을 흉내 내는 것은 기업경쟁력을 저하시켜 국가 경제에 해로운 영향을 초래한다. 소수의 기업 경영자들이나 그들과 이해관계를 같이하는 사람들이 사익을 늘리는 데에만 유익할 뿐이다. 지금 현재로는 우리 사회의 정책 결정권이 그 사람들에게 있다는 것이 문제다.

선진국 노동유연화 정책과의 차이

한미FTA를 통해 앞으로 우리 기업들이 미국 기업들과 같은 시장에서 경쟁하게 됨으로써 상시적으로 기업 구조조정을 실시하고 기업 인수 합병이 진행될 수밖에 없다고 할 때, 이러한 의문을 제기해 보자. 선진국의 노동시장 유연화 정책이 지금 우리가 추진하고 있는 그것과 다른 것은 아니었을까? 선진국의 정리해고 제도와 우리의 정리해고 제도에 차이가 있는 것은 아닐까? 다시 말해서, 선진국에서 정리해고 당한 노동자와 우리나라에서 정리해고 당한 노동자는 그 처한 상황이 달랐던 것은 아닐까?

미국의 노동시장 유연화 정책을 국내의 어느 중앙 일간지가 전면 특집으로 보도했을 때, 커다란 특호 활자로 뽑은 그 기사의 제목은 이랬다. “해고 쉽지만, 재취업 더 쉽다.” 최소한 이렇게 되어야 한다. 기업이 노동자를 해고하는 유연성이 높아지려면 동시에 해고된 노동자가 기업을 선택하는 유연성이 같이 높아져야 한다. 그렇게 해야만 노동유연성이 경제 성장의 발목을 잡지 않는다. 물론 여러 가지 조치가 필요하고 시간도 많이 걸리는 일이다. 제도와 정책은 물론이려니와 노동자의 정서와 문화에도 큰 변화가 일어나, 고위직에서 해직된 노동자가 다른 기업의 하위직으로 서슴없이 갈 수도 있어야 한다. 기업 경영이 투명해지고 인사노무관리가 선진화되어 불성실한 노동자를 걸러 내기에 앞서 무능한 경영진을 퇴출시키는 것이 가능해져야 한다.

미국 정보통신산업의 중심지인 실리콘밸리에서 유행했던 말이 있다. 네 단어로 구성된 문장인데 ‘같은 주차장, 다른 사무실’이다. 노동자가 차를 몰고 같은 주차장에 주차를 했는데 어제까지 주차장 앞에 있는 회사로 출근하던 사람이 오늘부터는 주차장 뒤에 있는 회사로 출근하더라, 이 사람이 언제 주차장 왼쪽에 있는 회사로 옮길지 아무도 모른다더라, 그런 뜻이다. 그렇게 돼야 한다. 노동자가 기업을 선택하는 유연성이 같이 높아져야만 노동유연화 정책이 그 나라 경제에 실제로 기여할 수 있다. 그런데 우리나라의 노동유연화 정책은 기업이 노동자를 해고하는 유연성만 높아지는 상황에서 노동자가 기업을 선택하는 유연성은 전혀 높아지지 않고 있다. 이런 경우의 노동유연화 정책은 기업경쟁력을 저하시키고 건전한 내수 기반을 잠식함으로써 그토록 중요하게 여기는 ‘국익’에 해롭고 ‘국가경쟁력’을 위태롭게 한다.

정리해고 당한 노동자가 경쟁력을 갖춰 쉽게 재취업할 수 있도록 해야만 노동자의 구매력도 유지되고 건전한 내수도 창출된다. 노동시장의 경쟁에서 퇴출된 노동자들이 다시 충분한 노동력 품질을 갖춰 ‘패자부활전’에 계속 도전할 수 있도록 지켜줘야 한다. “불황이 와도 해고하지 않는다”는 일본 ‘도요다’나 한국 ‘유한킴벌리’식 해법을 기업 단위가 아니라 국가 단위로 실행해야 한다. 그렇게 해야 우리 주요 교역 대상국들이 불황에 빠지거나 강력한 경쟁 상대가 나타나 수출이 일시적으로 감소했을 때 노동자들의 구매력이 바탕이 되어 국가 경제를 지탱할 수 있다. 특별히 진보적인 경제학이 아니라 시장경제주의의 시각으로 볼 때에도 그렇다는 얘기다. 수출보다 소비의 부가가치유발계수가 더욱 높은 것이 현 단계 우리나라 경제 상황이다.

소비자잉여 효과에 대한 판단

한미FTA 찬성론자들은 요즘 들어 방송 토론 등에서 한미FTA가 국민들에게 가져다 줄 이익으로 ‘소비자잉여’라는 개념을 부쩍 많이 사용하고 있다. 한덕수 총리가 앞서 설명한 대학생들과의 토론회에서 “수입 쇠고기에 대한 관세를 높이면 소비자는 비싼 가격으로 쇠고기를 사 먹어야 한다. 한미FTA는 소비자들의 장바구니 물가를 싸게 해주자는 것이다”라고 설명한 것 역시 소비자잉여의 대표적 예라고 할 수 있다. 개방을 통해 수입품 값이 하락할 것이니 소비자들에게도 이익이 돌아갈 것이라는 주장이다. 방송 토론에서 찬성 쪽 입장을 가진 사람들이 “소비자에게는 절대적으로 이익인데 왜 소비자 단체마저 반대를 하는지 모르겠다. 이게 바로 실리를 따지지 않고 이데올로기적으로 반대하는 근거다.”라고 주장하기도 한다.

한우와 호주산 쇠고기의 가격을 비교해 보고 어쩔 수 없이 값이 싼 호주 쇠고기를 집어 들었던 주부들이 텁텁한 호주산이 아니라 맛도 좋고 값 싼 미국산 쇠고기를 먹을 수 있다고 기대하는 것을 나쁘다고 할 수는 없다. 소비자들은 이제 ‘울며 겨자먹기’로 비싼 한국산을 살 필요 없이 여러 외국 제품들 중에서 자기 기호에 따라 ‘선택의 폭’을 넓힐 수 있다.

문제는 그런 혜택을 즐길 수 있는 국민들이 점점 더 적어질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대부분의 소비자들이 바로 노동자들인데 직장의 안정성이 흔들리고 ‘비정규직’과 ‘저임금’으로 상징되는 불안한 일자리에 시달리게 될 노동자들이 소비자잉여가 증대되는 혜택을 볼 가능성은 희박하다.

노동자들이 겪는 일시적 고통이 장기적으로는 경쟁력을 높이는 데에 기여하는 것이 아니라 노동자들이 영구적으로 고통스러운 상황에 놓이게 됨으로써 국내총생산에서 노동소득의 비중이 줄어들고 구매력 유지가 불가능해져 건전한 내수가 창출되지 않음으로써 경제성장의 발목을 잡는 악순환을 피할 도리가 없게 된다. 현재와 같은 상황에서는 노동자들이 자신의 고용을 보장 받고 소득을 높이기 위해 한미FTA에 지속적으로 문제를 제기하는 것이 보수 세력이 그토록 주장하는 ‘국익’에 부합할 가능성이 훨씬 높다.

하 종 강

정부지원금 0%, 회원의 회비로 운영됩니다

참여연대 후원/회원가입


참여연대 NOW

실시간 활동 SNS

텔레그램 채널에 가장 빠르게 게시되고,

더 많은 채널로 소통합니다. 지금 팔로우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