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복지동향 2003 2003-12-10   1466

[권두칼럼] 가족, 정치적 아젠다로 떠오르다

이제 우리 사회도 사적 영역으로만 간주되던 ‘가족’이 정치적 아젠다로 떠오르고 있다. 가족이 정치적으로 이슈화되는 이면에는 사회의 튼튼한 기반이자 전혀 흔들릴 것 같지 않던 가족에 대한 견고한 이미지에 일대 타격이 가해지고 있는 현상과 깊은 관련이 있다. 출산율 세계 최하, 이혼율 세계 2위라는 메가톤 급의 충격 외에도 가족동반 자살, 중산층 주부의 자살, 접점을 찾기 힘든 가족갈등 등은 가족이 당연한 ‘안식처’로서 보다는 깨지기 쉬운 유리로 이미지화 되어 가고 있음을 보여준다. 그리고 이러한 이미지는 사적 영역인 가족을 정치적으로 이슈화하고 아젠다화 하는데 결정적 역할을 하였다.

최근 우리사회에서 가족에 대한 구체적인 정치적 아젠다는 현재 국회에 발의되어 심의중에 있는 ‘건강가정육성기본법’과 ‘가족지원기본법’을 통해 제기되었다고 할 수 있다. 건강가정육성기본법은 가정학계가 발의했고, 가족지원기본법은 사회복지계가 발의한 법으로써 현재 국회 보건복지소위원회의 심의를 기다리고 있다. 여기에 정부(보건복지부)는 가정학계가 발의한 법과 동일한 법명과 내용을 가진 ‘건강가정육성기본법’을 입법 예고하였다. 어찌된 영문인지 보건복지부는 가정학계가 발의한 법과 동일한 법을 정부입법으로 예고하고 있다. 가정학계의 ‘생존’의 긴급성을 이해했다는 것인지 아니면 가정학계의 법안이 우리 국민의 가족문제 해결에 더 적절하다고 생각한 것인지 아니면 그것도 저것도 아닌 다른 이유가 있는지는 알 수 없다.

건강가정육성기본법은 국가가 ‘건강한 가정’을 일정의 방법을 통해 ‘육성’하겠다는 발상에서부터 시작된다. 이 법에서 말하는 건강한 가정을 육성하는 방법의 상당부분은 당장의 실효성 없는 시책들을 제외하면 가족들에게 가족윤리와 바람직한 가족가치를 교육하고, 소비생활을 비롯한 주거생활 및 가족관계에 대한 상담, 그리고 가정의례에 대한 교육과 바람직한 전통적 문화 계승을 통해 하겠다는 의지를 담고 있다. 왜 꼭 ‘건강가정’이 되어야 하는지에 대해 보건복지부의 한 관계자는 국가가 무엇인가를 지향해야 하고 그것을 법명에 담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 아니냐고 하였다. 그런데 나는 이것은 매우 위험한 발상이라고 생각한다. 국가가 어떤 특정의 의도와 방향을 가지고 자율적으로 형성되어야 할 가족을 틀 지우고 이끌어 나가야 한다는 생각은 전체주의적 발상과 맞닿아 있을 뿐만 아니라, 도움을 받으러 오는 가족을 비건강한 가족으로 낙인화하므로써 국민을 건강한 가족과 그렇지 않은 가족으로 이분화 할 수 있기 때문이다.

건강가정육성기본법과 다른 입장에서 발의된 가족지원기본법은 소득, 부양, 양육, 노동 등 가족관련 제반 측면에서의 가족단위 지원을 강화하고, 가족의 역량을 강화하기 위해 지역사회와의 연계와 권익옹호 등 노동시장정책과 문화정책을 포함한 보다 포괄적 차원에서의 지원체계 확립을 강조하고 있다. 가족지원기본법에서 국가가 가족을 돕는 방법은 가족생활과 가치에 개입하여 특정 방향을 지향하도록 하는데 있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가족지원기본법은 국가가 가족이 처한 어려움을 돕기 위해서 각 가족들의 자율적 자기형성을 존중하면서 가족이 필요로 하는 욕구를 충족시킬 수 있는 사회적 인프라를 구축하는데 있다고 보았다. 따라서, 실체가 무엇인지도 알 수 없는 ‘건강가정’의 구호를 외치는 것은 오히려 가족문제 해결에 역효과를 가져올 가능성이 있다고 보았다.

내가 보기에 이 두 법은 우리사회의 큰 화두중의 하나인 ‘가족문제’의 본질이 어디에 있으며 또 그것을 어떻게 해결하는 것이 바람직한가에 대하여 매우 다른 관점에서 접근해 들어가고 있다. 건강가정육성기본법은 소비와 주거, 가족가치 등의 가정생활에 문제가 있기 때문에 가정학의 지식을 동원해 적용하면 오늘날의 가족의 문제가 해결된다는 입장이고, 가족지원기본법은 그보다는 노동시장을 비롯한 사회전반의 구조적 문제들이 현재의 가족문제 기저에 근원적으로 자리하고 있기 때문에 가족원에 대한 미시적 상담만이 아닌 지역사회차원에서 다양한 사회복지적 지식과 방법을 동원해 적용하면 가족의 문제해결에 도움이 될 수 있다고 보는 입장이다. 물론 나는 오늘날 가족문제의 본질이 의식주와 소비 등의 가정생활 문제에 있다고 보지 않는다. 가족문제의 본질을 이해하려면 사회적 문제와 사회시스템의 구조 그리고 그들이 어떻게 가족에 영향을 미쳐 특정한 가족문제가 출현할 수밖에 없는가 하는 메카니즘에 대한 이해가 먼저 이루어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가족’이 정치적 아젠다로 등장하는 것은 우리 사회의 발전과정을 보건데 필연적이다. 오히려 좀더 일찍이 이 문제가 정치적으로 이슈화되었어야 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아쉬움이 든다. 선진 복지국가를 구분짓는 가장 중요한 요소가 ‘가족’에 대한 사회적 지원을 어떤 방향에서 어떤 틀로 규정지었는가 하는데 있다는 점을 감안할 때 우리는 이제 더 진지하게 우리 현실에 적합한 가족을 위한 정책이 무엇인지 고민해야 한다. 그런 의미에서 한 국가의 가족정책의 이슈가 정당과 같은 공식적 정책기구를 통해 제기되지 않고, 특정 이해집단의 생존의 문제에서 출발되었다는 점은 안타깝기 그지없다. 이제부터라도 관련 전문집단의 지혜를 함께 모아 정작 국민에 필요한 가족지원의 틀이 무엇인지를 고민해야 할 때가 아닌가 한다.

김인숙 / 가톨릭대학교 사회복지학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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